소설리스트

고려 신대륙에 떨어지다-70화 (70/653)

칵틀 루임

치첸 이트사의 아하우는 수많은 귀족들과 사제들, 시민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위대한 정복자’에게 고개를 조아렸다.

도시는 심대한 피해를 입었다.

주변 부족들을 공격해 몸집을 불려 나가던 거대한 맹수에서 이제는 상처 입은 덩치만 큰 초식동물로 바뀐 상황.

그 상처에서 피 냄새를 맡은 다른 도시들은 이 동물을 언제금 쓰러뜨릴 수 있도록 준비를 하고 있을 것이었다.

그 와중에 더 이상의 희생은 감당할 수 없었다.

위신이고 나발이고.

그러나 아하우의 생각과는 별개로 사제계급은 격노할 수밖에 없었다.

대제사장을 빼앗긴 것도 있었고, 신성모독을 저지른 자에게 굴복한 것도 있었으니.

사제계급들은 저 괴상한 존재를 진정한 ‘쿠쿨칸’으로 인정할 수 없었다.

자신들의 정치적, 종교적 이권이 걸린 문제였기 때문일 것이다.

대제사장을 돌려달라는 말에, 청해군은 마치 짐짝을 건네듯 대제사장을 돌려주었다.

“으흐흐흐.”

정신이 반쯤 나가버린 듯한 대제사장은 괴상한 웃음을 흘리고 있었다.

의복 하의에서 비릿한 냄새가 나는 것이 오줌까지 지리고 있었던 모양.

이미 그들의 종교의 권위는 바닥으로 추락해 있었다.

수많은 치욕적인 조약이 체결되었다.

포로들을 해방시키는 것은 당연했고.

청해군들은 마음껏 해골탑, 촘판틀리를 부수고 다녔다.

차크몰 석상이 깨지고 인신공양의 제단들이 박살 나는 현장.

승리자들이 그렇게 돌아다니는 것을 바라보는 마야의 백성들의 눈은 굉장히 복잡했다.

평생 그들을 규합하던 종교의 권위가 밑바닥으로 추락했다.

석상들은 목이 잘리고, 신성한 해골탑도 무너졌으며 대제사장은 미치광이가 되었다.

하지만 저 이방인들이 마냥 나쁜 존재였는가?

그 물음은 답하기 어려웠다.

청해군은 식량창고까지 약탈했었다.

제의에 쓰려 한 건지, 신민들은 굶어 죽는데 창고에는 옥수수 가루가 가득이다.

옛 고려나 여기나.

지도층의 무능함은 백성들에게 고통만을 안길 뿐.

상민은 곡창을 열고 굶은 자들에게 식량을 마음껏 뿌렸다.

“……!”

저 멀리 마야의 귀족들이 절망하는 것이 보였지만 당장 무언가를 조금 먹을 수 있게 된 치첸 이트사의 백성들은 요동치는 감정을 제대로 다스릴 수 없었다.

신의 자애를 직접적으로 맛본 것이다.

종교적 세력에게 침탈당하던 삶을 살아간 하층민들에게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내밀어진 구원의 손.

사제계급의 필사적인 부정에도 불구하고 치첸 이트사의 하층민들은 그를 진정한 쿠쿨칸으로 여기며 경배하기 시작했다.

* * *

자신은 여전히 적대적인 시선이 사방에서 쏘아지는 이곳에 장시간 머무를 생각이 전혀 없었다.

강력한 화력으로 거의 이천에 달하는 적들을 죽일 수 있었지만, 더 이상 전투하기엔 엄연히 한계가 있었다.

화약도 거의 다 떨어졌고, 개인정비도 필요했다.

장기전을 치를수록 그들의 피로도와 손실은 증가할 것이다.

치첸 이트사도 이것을 모르진 않았겠지.

다만 그들도 이제는 주변의 도시들의 공격을 대비해야 했기에 더 이상의 피를 바라지 않는 심정으로 자신들을 내쫓아 버린 걸지도 모른다.

석상이 파괴를 방관하고, 자신들에게 패권을 상징하는 쿠쿨칸의 눈까지 주고, 그리고 또한 쿠쿨칸 이외의 다른 신을 섬기지 않기로 맹세했다.

맨 마지막 조항은 솔직히 어찌 되든 상관없었지만 바다새의 부리가 열심히 주장하기에 소원 하나 들어주는 셈 치고 넣어 본 것이었다.

단죄와 구출의 목적은 이루었으니 툴룸으로 돌아가야 할 때.

하지만 의외의 장애물이 그의 발목을 잡았다.

사크베를 행군하는 청해군 뒤로 어마어마한 수의 마야인들이 걸어오고 있었다.

그 숫자는 거의 수천에 달했다.

대체 왜 쫓아오는가?

바다새의 부리가 그 말을 전해 듣고는 약간 씁쓸한 듯 말했다.

“전투에서 패배해 세력을 잃을 도시의 끝을 알고 있기 때문이랍니다.”

또한 전능하며 강한 존재에게 심신을 의탁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라며 그가 자랑스럽게 설명했다.

굳이 따지자면, 마야인들은 전혀 호감 가는 민족이 아니다.

벽화니, 신전이니, 촘판틀리니, 여러 군데에서 실제로 겪은 경험에 의해 일어난 감정이었다.

하지만 이들에게도 변화될 기회 정도는 주고 싶기도 했다.

그렇게 또 짐 덩어리를 껴안게 된 상민이 머리를 굴렸다.

‘골치 아프구만.’

목적지인 툴룸이 꽤 번성한 항구도시였다 하더라도, 그 규모는 치첸 이트사의 유민들을 수용할 수 없었다.

바다에 접한 도시인만큼 농업도 한계가 있었으니까.

고민을 하며 걷고 있는데, 눈앞에 해결책이 스스로 나타났다.

코바의 폐허.

치첸 이트사에서 출발해 툴룸으로 가는 도중 마주할 수 있는 거대한 유적지이다.

한때는 다른 도시국가들과 자웅을 겨룰 정도의 세력을 자랑했던 코바는 전성기를 누리고 있던 치첸 이트사에 의해 몰락했고 폐허로 변했다.

그 시기가 짧지는 않았는지 지금 이 장소는 마치 인디애나 존스 영화에서나 나올법한 식물들로 뒤덮인 유적지로 변신해 있었다.

잔재를 살펴보기만 해도 상당히 큰 도시였다는 것을 바로 알 수 있었다.

외부의 방벽도 많이 손상되긴 했지만 뼈대를 이용해 재건할 수 있고.

의도한 것은 아니겠지만, 근방의 땅은 그동안 푹 쉬었을 것이고.

마침 큰 호수 두 개가 옆에 있어 츠누트(천연동굴)를 이용하지 않아도 농업용 용수를 충당하기 쉽네.

상민은 큰 말의 등을 타고 이곳에 깃발을 꽂았다.

계시를 내리는 것처럼 근엄하게 이곳을 칵틀 루임(Kuxtal Lu'um; 생명의 땅)이라 명했다.

그리고는 자신의 충복, 바다새의 부리를 이곳의 지도자로 직접 임명했다.

전통적인 왕, 아하우(Ajaw)의 명칭을 쓰는 대신, 위대한 신에게 직접 임명받은 지도자, 카롬테(Kaloomte, 신성왕)로.

바다새의 부리는 '현명한 전사'라고 칭해진 것처럼 매우 인상적인 행보를 보였다.

그는 예전 툴룸의 주민들과 이트사의 유민들을 모두 평등하게 다스렸다.

전쟁에 지친 자들, 기근에 힘겨워하는 자들이 이 땅의 민족으로서는 생소할 정도로 자비로운 이 생명의 땅으로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 * *

건국.

남들은 한 번 하기도 힘들어하는 경험.

졸지에 프로 건국러가 되어버린 상민은 어처구니가 없었다.

이제는 심지어 신이란다.

그래 좋게 생각하자.

이왕 이렇게 된 것, 제일 먼저 신앙을 좀 고쳐야지.

이미 마야의 신앙은 이들에게 족쇄나 다름없었다.

물론 뭐 나름대로 국가 지배층의 통치에 효율적인 기능은 있었겠지.

하지만 스스로 국가의 잠재력을 깎아 먹는 잔혹한 풍습은 결국 역사를 봐도 주변에 의해 도태되어버릴 풍습이었다.

가나안의 땅에서 믿었다는 몰렉처럼.

상민은 머리를 굴렸다.

자신의 뜻대로 종교를 개혁할 절호의 기회였다.

또 언제 신이 되어보겠는가.

‘모티브는 많이 얻을 수 있다.’

세계로 전파된 강력한 종교들은 제각기 저마다의 특성이 있기 마련.

그는 장점들을 뽑아 쿠쿨칸 신앙을 개혁하기 시작했다.

‘유일신에… 도덕적 규율에….’

불교에서 한 스푼, 기독교에서 한 스푼. 나머지 종교들에서 또 몇 스푼.

잡탕찌개를 본 그가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찌개의 외형이 뭐 그리 중하겠나, 맛만 좋으면 그만이지.

종교를 건드린 후 다음 수순은 정치 구조 개혁.

마야의 관습적인 정치와 지배 구조도 바꿔야 했다.

맨날 심장 뽑고 치고받고 싸우는 마야의 정치구조는 조금 너무하다 싶을 정도로 군국주의적이었다.

원시적인 행정조직을 만들고 관제와 관품, 그리고 복식을 규정하니 왕권이 상당히 올라간 것이 느껴졌다.

개혁이 틈틈이 진행되는 순간에도, 상민은 바다새의 부리를 불러 여러 가지를 가르쳤다.

이곳에서도 나름대로 발전한 농법이 있었다.

대표적으로 세 자매 농법과 화단 농법 등등.

하지만 한계점은 있었다.

기후의 한계는 극복할 수 없으니 어쩔 수 없는 것이라 치더라도 이곳의 주 작물 옥수수는 지력을 무진장 퍼먹는 작물이었다.

농업기술이 발전되고 대지 자체도 무척이나 풍요롭다는 고려의 창강 대평원에서도 옥수수는 대체로 장려되지 못했다.

그도 그럴진데 이곳은 말해 무엇하리.

체계적으로 윤작을 실시해야 하는 것은 물론, 시비법 또한 정비해야 했다.

맹목적으로 숲을 불태워 화전을 실시해 태풍과 홍수에 취약점을 내버려두는 대신, 조림사업 또한 병행해야 했다.

농업뿐만 아니라 기술적 진보도 이루어졌다.

솔직한 말로 가장 기본적인 진보라 할 수 있겠지.

아직도 석기시대에서 넘어가지 못하고 있는 이들은 철제 농기구가 없어 땅을 깊게 갈지 못했다.

칵틀 루임에서는 중앙 대륙 최초로 철기가 만들어지기 시작했으며, 이는 국가의 방위와 농경에 현저한 도움이 되기 시작했다.

* * *

5개월 뒤.

개천 42년, 8월 13일.

급속도로 발전하는 칵틀 루임과는 반대로 청해군들은 어느덧 얼굴에 그늘이 져 있었다.

현지인과 결혼한 몇 명 빼고는.

수많은 사람들에 의해 공경하고 숭배받는 것은 좋은데, 그것도 하루이틀이지 이제 향수병에 걸리기 시작했는지 집에 가고싶어 안달이 난 모습을 보였다.

솔직히 자신도 이 연고도 없는 이 머나먼 열대기후의 땅에서 신처럼 받들어지며 살기는 싫었다.

‘물도 이상한 맛이 난단 말이야.’

석회석 물은 여전히 적응이 되지 않았다.

돌아가 할 일도 많았다.

자신의 최우선 목표는 오로지 고려의 안녕이지, 칵틀 루임이 마야의 패권을 쥐는 것이 아니었다.

듣기로는 본국도 지금 나름대로 곤란에 빠졌다했다.

여러 이유로 귀환을 결정한 다음 날 아침,

상민은 어느덧 많은 양의 정보가 수록된 마야―고려 사전을 뒤적거리다 말했다.

“너에게 줄 선물이 있다.”

바다새의 부리는 선물이라는 소리에 매우 감격한 모양이었다.

상민은 그를 데리고 툴룸으로 향했다.

칵틀 루임의 항구도시가 되어버린 툴룸은 카롬테의 고향이자, 위대하신 쿠쿨칸께서 이 땅에 직접 강림하신 성지였다.

툴룸의 부족들은 카롬테가 된 바다새의 부리가 칵틀 루임으로 이주시켰으며 툴룸 자체는 청해군이 직접 관리하는 항구가 되어 있었다.

그곳에는 이제는 조금 익숙하게 보이는 협저선들이 정박해 있었다.

그리고 어제 정박한 특출나게 커다란 배도 새로 보이게 되었지.

적강목으로 만들어진 배는 청해 통령의 직속 배였다.

적색 배는 용골을 훤히 드러낸 건조 당시의 모습을 기억하기 힘들 정도로 위풍당당하게 서 있었다.

선수에는 거대한 용이 입을 벌리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선수상을 보며 전율을 느끼는지 바다새의 부리가 부르르 떨었다.

상민의 손짓에 배에서 많은 수의 가축들이 내렸다.

“자, 이게 너에게 주는 선물이다.”

소와 돼지.

솔직한 말로 이들이 얼마나 많이 사회를 변혁시킬 수 있을지는 몰랐으나, 소는 농경과 식생활에 큰 도움이 될 수는 있겠다.

돼지는… 솔직히 작고 왜소하다.

미안, 스페인산 이베리코가 아니라.

가축들 뒤 수레 가득 그들이 당장 외부와의 전쟁을 치를 때 사용할 수 있는 철제 무기들이 잔뜩 실려 있었다.

자신들이 떠났다고 여긴다면, 마야판이나 다른 강대한 도시들이 그들을 가만히 내버려 두지 않을 가능성이 농후했다.

하지만 언제까지나 그들을 어린 병아리처럼 보호해 줄 수도 없는 노릇이고.

‘제발 잔혹한 운명과 시대 속에서 끝까지 살아남기를.’

칵틀 루임의 쿠쿨칸은 마지막 책임감의 잔재를 그 수레에 실어 보냈다.

* * *

툴룸에 정박하고 있던 거대한 배들은 바다로 향했다.

일렬로 사라지는 그들의 뒷모습은 마치 거대한 뱀처럼 보였다.

거대한 돛에 그려진 문양.

푸른 뱀의 문양은 어딘가 조금 낮설었다.

하지만 굉장히 인상적이었다.

하루 종일 떠나간 신의 뒷모습에 오열하던 칵틀 루임의 카롬테와 사제들은 그다음 날부터 신을 기리기 위해 거대한 벽화를 그리기 시작했다.

선수상과 돛의 그림에서 영감을 얻은 것이 분명했다.

심장을 뽑는 광경을 묘사한 과거의 잔혹한 벽화와는 달랐다.

자애로운 뱀이 동쪽의 바다에서 건너와 탐욕스러운 적들에게 불을 뿜고, 착한 백성들을 위해 수많은 것들을 나누어 주고 가르쳐 주는 광경.

그리고 다시 동쪽으로 돌아가는 모습.

현지인과 결혼해 자식까지 낳아 이 도시에 잔류하기로 한 청해군 열 명이 그들의 그림을 보며 훈수를 시작했다.

그림을 그리던 사제들은 도시의 강력한 권력자에 속하는 고려 출신 귀족들의 말을 듣곤 머리가 복잡해짐을 느꼈다.

처음에는 분명히 머리에 깃털달린 뱀이었는데.

어느덧, 뱀은 굉장히 요상하게 변해버렸다.

“그래, 거기.”

놓친 부분을 지적당한 그들이 서둘러 쿠쿨칸의 턱에 두 줄기 선을 그었다.

영락없는 수염이었다.

* * *

훗날.

창양 국자감.

사관은 설화적 측면을 기술했다.

[칵틀 루임은 마야의 뱀신 쿠쿨칸을 숭배하는 종교를 가지고 있었다. 본디 치첸 이트사와 툴룸의 후예였던 그들은 처음엔 저지대의 다른 마야 도시와 비슷한 다신적인 교리를 지니고 있었으나, 오직 홀로 위대한 존재 쿠쿨칸이 동쪽의 바다에서 강림하시어(청해군의 여정을 뜻하는 것이 명백하다) 그들을 인도한 후로는 급격히 변화되었다 한다. 이 이후의 교리를 일신론적 쿠쿨칸 교리, 즉 후납 쿠(Hunab Ku)라 부른다.

… 중략 ….

주변국이 야만적인 인신공양의 풍습을 버리지 못할 때, 그들은 다른 도시들과 대조적으로 놀라울 정도로 도덕적인 관습을 유지했으며, 이를 통해….]

사관은 세필을 놀려 칵틀 루임이 어떻게 저지대 마야의 패권을 잡게 되었는지 열심히 서술했다.

[칵틀 루임은 비어버린 치첸 이트사의 자리를 가져갔으나, 주변 부족을 전임자보다 훨씬 원활하게 다스릴 수 있었다. 마침내 남부의 강자 마야판까지 복속시킨 그들은, 이윽고 북부에서 떨치고 내려오는 예시칸 틀라톨로얀(Ēxcān Tlahtōlōyān)과의 전쟁에서도 대승을 거두며….]

그것까지는 실제로 일어난 사건이라 쓰는 것이 어렵지는 않았다.

이제는 사견을 넣는 곳.

사관은 참고자료 비슷한 것을 뒤적거리다 이윽고 수염을 만지작거렸다.

[치첸 이트사의 벽화에 그려져 있는 쿠쿨칸과 칵틀 루임의 대성화(大聖畵)에 그려져 있는 쿠쿨칸은 현저하게 다르다. 전자는 상당히 독특한 그들의 풍습에 맞게 묘사되어 있는 공포스러운 존재였다면, 후자는….]

후자는 마치, 고려의 용처럼 생기지 않았나?

사관은 그 종이를 위아래, 좌우로 돌려보았으나, 누가 봐도 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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