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번째, 그리고 세 번째 씨앗
태원(太原).
고려인들이 가장 동쪽에 세운 도시.
만동강 하구의 평야지대에 건설한 이 도시는 도시 안에 거주하는 인원만 물경 오만에 달했고, 그 영향력이 닿는 범위 내의 사람들을 합하면 거의 육, 칠 만에 육박했다.
주변의 농경지에서는 작물들을 재배하고 있었다.
자세하게 보이지는 않았다.
12월 24일이다.
한여름에 가까워지기에 무척이나 더워 땀이 줄줄 흐를 정도였다.
적도가 가깝게 북상했다는 사실이 절절하게 체감되었다.
강 가의 고려 어부들도 죄다 웃통을 까고 있었다.
옆에 있는 어부도.
“태워줘서 고맙네.”
강 하구 해안가에서 그물을 손질하고 있던 이 늙은 어부는 수상해보이는 병사들과 장교를 군말없이 태원까지 태워주고 있었다.
늙은 어부는 무심하게 빈 통발들을 다시 어선으로 나르며 말했다.
“혹여 서쪽에서 오셨소이까?”
그 단순한 한 마디에 순식간에 일행의 얼굴이 굳었다.
상민은 별 심경의 변화 없이 신기한 듯 노인을 바라보았다.
“얼굴에 티가 나나?”
늙은 어부는 고개를 저었다.
“이곳에서는 병사들이 일개 어부에게 고맙다는 말을 잘 하진 않지요. 기억해 두시는 것이 좋을 겁니다.”
그 말을 끝으로 노인은 그들을 나루에 내려놓고 다시금 강을 떠났다.
등 뒤로 익숙한 곡조 한 가락이 들려왔다.
“어떻게 할까요?”
주형이 물었다.
“뭘 어찌해, 들어가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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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원의 성문.
밝은 적색을 띠는 성벽은 벽돌과 흙으로 지어져 있었다.
이곳의 땅은 유난히 붉은 빛이 강하니 사방이 빨개 눈이 아플 정도.
검문은 상당히 날카로웠다.
고려와 무척이나 멀리 떨어졌고, 8년간의 평화에도 아직 이렇게 흉흉한 까닭은 뭘까.
군의 섭리를 잘 이해하고 있는 자신은 마치 동네 뒷산에 들어가는 것마냥 성문으로 걸어갔다.
정작 초조한 것은 뒤따르는 부하들인 모양.
멀뚱거리던 병사가 자신을 향해 군례를 취해 보였다.
대충 화답한 다음 태연자약하게 들어가면 되는데.
- 다그닥 다그닥
멀리서 누군가 말을 타고 오고 있다.
그 속도는 제법 빨라 자신들이 길을 비켜주어야 할 정도였다.
- 히럇!
성 내에 진입하면 보통은 속도를 줄여야 하는 것이 원칙인데, 저 자는 무슨 긴박한 일이 있기에 저리 뛰어갈까.
복식을 보아서는 무장은 아닌 듯 싶었다.
“나름대로 크게 번화했군.”
철저한 계획을 통해 지어져 건물들의 배치가 균질하고 쾌적했던 서고려의 도시들에 비하면 아주 난장판이 따로 없었지만, 이런 도시가 이 시대에 걸맞는 도시겠지.
치안도 좋지 않고 비위생적인.
“그렇습니다.”
주형이 맞장구를 쳤다.
탐험가란 본래 호기심이 많아, 두려움에 떨던 때가 언제냐는 듯이 그가 열심히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그만 좀 하게, 사람들이 수상한 눈길로 쳐다보겠네.”
“...예.”
태원은 물경 오만, 꽤 큰 인원이 상주하는 도시답게 사람의 수는 많았다.
’이 정도 규모면 예전부터 임씨나 연종 둘 중 하나가 여기에 거점을 만들어 놓고 나중에 도망칠 계획을 세워놨을 수도 있겠다.‘
그들은 으슥한 곳에서 서둘러 환복을 했다.
군인으로 더 위장하는 건 무리수였기도 하고 부하들은 통풍이 잘 안되는 갑주 때문에 땀띠가 다 나려고 하는 모양이다.
“이제 뭘 하실겝니까?”
“관광.”
낮에 방문해야 할 곳은 없다.
그는 뒷짐을 지고 천천히 난전으로 걸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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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고려의 침략 이후 무려 8년이 넘는 세월이 흘렀다.
동고려는 매우 먼 거리를 도망쳐야 했다.
동고려는 예전에 탐사대를 보내 보았다.
동해안의 지형 중 해안가와 붙어있는 곳에는 큰 강이 드물었다.
심지어 경사가 가파른 곳도 있어 도읍으로 삼기에는 힘들어 보인다 했다.
탐사대들은 계속 북상하여 큰 강, 만동강에 이르러서야 멈추었다.
그리고 그곳에 백성을 소개(疏開)시켜 도시를 건설했다.
안동도호부는 수많은 희생에도 불구하고 이곳을 어느 정도 규모가 있는 거점으로 만들어 놓는 것에 성공했으나 조정이 전부 몰려오는 규모에는 감당하기 어려웠다.
제대로 싸워 보지도 않고 패잔병처럼 영토를 버리고 달아난 터라 황실과 조정의 위엄은 이미 땅바닥에 떨어진 지 오래.
조정은 이 땅을 새로운 도읍으로 선포하고 태원(太原)이라 명명했으나 억지로 끌려오며 수많은 희생을 치른 민심은 흉흉했다.
애초에 항복했으면 서쪽의 현명하고 자애로운 새로운 지배자 밑에서 안락하게 살 수 있었던 것이 분명했으니.
기후 또한 전혀 협조적이지 않았다.
익숙한 온대 기후, 심지어 옛 한반도보다 온화한 기후에서 갑자기 너무 급작스럽게 변한 열대 기후에 사람들은 적응하기 어려워했다.
심지어 12월이 되면 새벽에도 더웠다.
낮에 밀짚모자를 쓰고 일을 하고 있노라면 픽픽 쓰러지는 사람들도 많았다.
초여름인데도 30도는 우습게 넘었으며 순식간에 다가와 퍼붓고 떠나버리는 비구름은 우기엔 하루에도 대여섯번씩 그들을 괴롭혔다.
수인성 전염병도 돌고, 온갖 난리가 다 났다.
그래도 그것까지는 어떻게 버틸 수 있었다.
하지만 가장 절망적인 것은 농사일이 망했다는 것이다.
말 그대로 박살.
고려의 쌀은 고려 내에선 따뜻하고 일조량이 풍부하며 비가 알맞게 온다면 그 좁아터진 반도에서 충분한 사람들을 먹일 수 있는 단위면적당 인구부양력이 상당히 높은 작물이었다.
그러나 이 땅의 고온다습한 기후에선 35도가 넘는 1~2월의 폭염에 벼들이 박살이 났다.
또한 짧은 일장에 꽃이 순식간에 피어버리기 때문에 충분한 생장 또한 불가능했고, 크더라도 생산성이 몹시 부진했다.
그리고 보관한 종자 또한 끔찍한 고온에 발아가 되거나 썩어버렸지.
그나마 양은 형편없지만 수확 자체는 할 수 있는 벼에 비해 밀과 보리는 훨씬 상황이 안좋았다.
재배 자체가 불가능할 정도로.
절망적인 순간.
거리에 시신이 넘쳐났고 사방에 시체 썩는 역한 냄새가 많았다.
그렇다면 민중의 화살은 통치자를 향하는 것이 당연했다.
심지어 엎친 데 덮친 격, 전쟁 전에 괴기한 소문이 들었다.
현 태자 왕지(王摯)가 왕온의 친자가 아닐지도 모른다는 소문.
이 뜬금없는 말은 은밀하고 빠르게, 그리고 확실하게 퍼져나갔다.
이러한 종류의 끈적한 소문은 단속한다고 단속되는 종류의 소문이 아니었다.
폐후 배씨가 왜 폐서인 되었는가.
역적 배중손의 혈통이라는 것도 있었지만, 후계를 생산하지 못한 것도 그 이유가 컸다.
애초에 후계를 생산하는데 성공했다면 배중손의 권력이 그리 쉽게 무너질 것이 아니었으니까.
하지만 그 배씨가 서고려에서 재가하여 아이를 무려 셋이나 낳았다는 것은 절대 우습게 볼 사건이 아니었지.
증거를 얻은 소문은 무척이나 빠르게 확산되었다.
마치 누군가 뒤에서 조종하고 있는 것처럼.
왕지의 나이는 진작 서른이 넘었지만 어머니, 황후 임씨의 그늘 아래에서 숨도 못 쉬고 있었던 불쌍한 왕이었다.
복잡하게 꼬여만 가는 이번 일을 계기로 드디어 정치의 전면에 나설 수 있는 기회를 얻은 그는 지금까지와는 사뭇 다르게 단호하게 행동했다.
여태껏 수많은 정적을 요령있게 숙청해왔던 임씨는 극도로 흉흉한 민심과 자식에겐 대응하지 못했다.
“단도직입적으로 말씀드리겠습니다. 물러나 주셔야겠습니다.”
왕지는 처음엔 그녀를 단지 후원에 유폐하기만 하고 발길을 끊었다.
동고려 26대 임금이 된 왕지는 의외로 상당히 괜찮은 통치를 시작했다.
그는 농업을 다시 부흥시켰다.
효율적이지 못한 전통적인 쌀 농업방식에서 근처의 원주민이 재배하는 작물을 들여와 식생활을 바꾸었다.
당장 굶어 죽게 생긴 고려인들은 극한의 상황에서 빠르게 새 문화를 받아들였고 살아남을 수 있게 되었다 한다.
그 작물의 이름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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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사비(稼飼菲, 카사바)와 비타타(菲楕楕)라.”
한글이 반포되며 한자 음역을 되도록 하지 않게 된 서쪽과는 다르게 동고려는 글자적 한계로 음역을 계속 하고 있었다.
전자는 나름대로 유명한 작물이며 훗날의 버블티에 들어가는 말랑말랑한 흑색 젤리같은 식감을 자랑하는 타피오카의 원료를 말하는 것이겠고.
비타타는.
’이게 비타타라고?‘
태원의 난전(亂廛, 허가받지 않은 비상설 시장) 바닥에 앉은 사람이 뚱한 얼굴로 쳐다보았다.
“뭐, 비타타 처음 보시오?”
틀림없는 고구마였다.
상민은 비타타를 들고 한동안 실소를 흘렸다.
어찌되었던 이 사람들은 저 두 개의 작물로 어떻게 살아남는 것에 성공을 했나보다.
고구마는 유명한 구황작물이었지.
이제는 주식이 되어버렸군.
삼시세끼 고구마 먹으라 하면 그것도 못할 짓 같은데.
“비타타 씨앗이 있나?
“있긴 하지만, 이보쇼. 비타타는 씨를 뿌리는 것이 아니라오. 이것을 기르는 방법은...”
상민은 손사래를 쳤다.
“알고 있소이다.”
항해하는 시간이 얼만데 창양까지 그걸 들고가겠냐.
상민은 나무함에 그 씨앗을 소중히 넣었다.
고려의 문익점이 된 기분.
감자가 고려의 개척에 힘을 실어준다면 이 씨앗은 고려에게 닥친 흉년때 구명줄이 될 수 있을 것이었다.
문익점 소리가 나와서 하는 말인데.
상민은 문득 상인이 입고 있는 옷을 바라보다가 몹시 놀랐다.
다들 웃통을 까고 있어 눈치채지 못했다. 하지만 지금 보니 이 상인은 민소매 셔츠 비슷한 것을 입고 있었다.
안그래도 염색도 잘 못하는 시대의 누리끼리한 옷에 땀과 뗏국물이 스며들어 지저분하기 짝이 없었지만.
상민은 그 더러움에도 아랑곳 하지 않고 황급히 손을 뻗어 상인의 옷자락을 만졌다.
장신의 젊은 남성이 대낮에 이상한 짓을 한다면 누구나 놀랄 것이다.
“이... 이 사람이! 대체 무슨 짓을!”
그는 위협받은 남성성에 역정을 내었다.
상민은 거센 저항에 손을 뗄 수 밖에 없었다.
“면포에 관심이 있거들랑, 엄한 사람 옷 만지지 말고 저기, 포목점이나 가시오!”
정말 망측스럽군!
상인이 성질을 내었다.
그리고는 내심 무서운지 난전을 걷고 서둘러 도망갔다.
포목점에 면이 있다고?
정말로?
상민은 홀린 듯 발걸음을 옮겼다.
그의 말대로 태원의 시전에 과연 포목점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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면(綿).
구할 수 없는 비단은 논외로 치고 삼베(대마)와 모시(저마)로는 한계가 있는 현 고려의 의복 생활을 개선해 줄 꿈 같은 작물.
알파카 등 안데스 고지대의 모직물은 가격이 원체 비싸 형편이 좋은 사람도 함부로 사 입기 힘들었고 관리도 어려웠다.
반면 면은 재배를 통해 원료를 대량생산할 수 있었고, 내구도도 몹시 좋을뿐더러 촉감이 부드럽고 관리도 엄청나게 편했다.
가히 의복혁명이라 칭할 수 있을 정도의 작물.
후대의 상식과는 별개로 목화라는 것의 존재는 분명 삼한, 적어도 백제 시절부터 있었다
사별한 아내에게 들은 말로는 원나라 이전의 고려의 옛 왕실도 가끔은 면옷을 입었었다 했었으니까.
다만 그것이 어떠한 이유로 대량으로 생산하기 힘들었던 모양이다.
기후가 안 맞았는지.
’품종이라도 달랐나.‘
공급도 문제였고 수요도 문제였다.
가격도 무척이나 비쌌고 면포를 비싼 가격으로 살 사람은 그것을 입기보다는 더 반짝거리는 비단을 입길 원했겠지.
자신의 생각이 맞다면 문익점은 목화의 첫 전파자라기보다는 한국의 기후에 맞아 자라기 적합한 목화를 도입한 위인일 것이다.
물론 그가 한반도에 ’처음으로‘ 목화를 가져온 사람이 아니게 되었어도 그 엄청난 공로를 폄하할 순 없다.
상민은 포목점에 다가가 주변을 둘러보았다.
대체로 물가가 비싸군.
화폐단위의 기준이 되는 식량이 전보다 귀한 탓일지도 몰랐다.
“이거 얼마요?”
“이 면포는 비타타 세 섬이요”
“이것은?”
“이것은 이 땅의 면포로 제작한 것인데, 조금 더 비싸지요, 네 섬 반이요.”
상민은 갑자기 의아해졌다. 1.5배나 더 차이나지 않는가.
“이것들의 차이가 있소?”
“요건 옛 고려의 땅에서 가져온 목화씨지만 섬유가 짧고 거칠어 값이 싸고, 저것은 이 땅에서 나는 목화인데 섬유가 더 길고 잘 꼴 수 있어 옷을 훨씬 잘 만들 수 있다 합니다.”
만져봐도 되냐 물어보니 그가 머뭇거리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과연 비싼 것이 더 부드럽다.
신기하다. 같은 목화라도 종의 차이가 이렇게 크게 다가올 줄이야.
고구마 네 섬 반이라.
미곡기준으로 생각하니 머리가 조금 아팠다.
그래도 꽤 싼 것 같은데.
왜 이렇게 싼지 물어보려다가, 괜시리 외부인임을 의심받지 않기 위해 질문을 아꼈다.
“이것도 받소?”
상민은 손바닥을 펼쳐보였다.
조그마한 노란 알갱이.
화폐제도가 아직 도입되지 않았더라도 금의 가치가 없어지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귀했으면 더 귀했지.
포목점 주인은 흠칫 놀라며 주변을 둘러보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입죠.”
그리고는 넘겨받은 채 슬며시 금조각을 깨물었다.
상민이 팔짱을 끼며 말했다.
“보다시피 틀림없는 금이라오.”
포목점 주인은 실실 웃으며 머리를 긁었다.
“요즈음 사기를 치려는 놈들이 얼마나 많은지, 소인이 의심병에 걸렸지 뭡니까.”
아까보다 훨씬 공손해진 태도로 그가 면포를 건넸다.
거래를 완료한 상민이 면포 두루마리를 주형에게 건넸다.
“혹시 씨앗도 구할 수 있소?”
완제품 포목점에서 왜 씨앗을 찾는지 의아한 눈으로 바라보던 주인이 말했다.
“목화 재배에 관심이 있으십니까?”
“그렇기도 하고, 개인적으로 흥미가 생겨 조금만 길러보려고 하는 것도 있고.”
“뭐 씨앗 정도는 충분히 드릴 수 있지요.”
주인은 가게 안쪽에서 씨앗주머니를 들고왔다.
“자 여기 있습니다. 만약 목화 일을 크게 할 생각이 있으시다면 꼭, 저 난전 놈들 말고 이곳으로 와주십시오. 실을 비싸게 매입해 드리겠습니다.”
“내 명심하리다.”
포목점 상인은 무언가 신이 난 듯 보였다.
그를 뒤로 하고 상민은 면포를 살펴보고 있는 주형에게 입을 열었다.
“어떻게 생각하나?”
본직이 탐험가지 상인은 아니었지만 주형은 물건을 보는 눈은 상당했다.
“옷감이 치밀하여 무겁고 내구도가 좋은 것 같습니다.”
“또한 부드럽고 따뜻하지. 이 면포야 아직 기술이 발전하지 못해 투박한 편이지만 고급 면포를 본다면 능히 비단과 견줄 수 있을 정도네.”
아무리 그래도 비단이라니요.
전설 속으로 사라진 직물과 비교하는 상민의 말이 그에게는 쉽사리 믿기 힘들 것이다.
하지만 후대에도 세계에서 가장 압도적으로 많이 쓰이는 작물은 면이었다.
수건, 옷, 이불, 붕대 심지어 돈까지.
이 작은 씨앗들이 인류에 끼친 영향이란.
주형은 반문했다.
“...그렇다면 적어도 저마포보단 값이 훨씬 더 비싸야 하는 것 아닙니까?”
그건 좀 이상하네.
지금은 면포가 값이 살짝 비싸긴 해도 두 직물이 비슷했다.
조금 생각해보니 답이 보이긴 했다.
“이곳이 남쪽만큼이나 시원했다면 그랬겠지.”
이토록 더운 곳에는 솜이불과 솜옷이 필요가 없다.
일년에 3개월씩 매서운 추위가 꼬박꼬박 몰아닥치는 한반도보단 아무래도 수요가 적을 수 밖에 없다.
한동안 돌아다닌 그들은 숨을 골랐다.
이것들은 이제 고려로 가지고 가 전파하면 될 것이고.
“이제 날이 저물어갑니다.”
그 말을 듣고 하늘을 바라보니 해는 기울어 저 멀리 서쪽 가장자리에 붉게 빛나고 있었다.
“주막이라도 가 볼까요?”
이 시대의 주막은 조선 중후기의 주막마냥 전문 여관의 개념은 없었지만, 술과 음식을 사먹으면 그래도 재워는 주는 곳이라 평할 수 있겠다.
물론 환경은 기대하지 않는 것이 좋겠지.
온 사방에 이와 벼룩이 들끓을 테니까.
심지어 방에 사람이 가득 차 있으면 마굿간이나 창고라도 가서 자야했다.
물론 그가 황제로 오래 있다 보니 사치스러운 것에 익숙해져 그런 지저분한 자리가 싫은 것은 아니지만.
본질적으로 낮에 이리 시간을 태운 이유가 있었으니까.
“아니, 가야 할 곳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