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고려 신대륙에 떨어지다-53화 (53/653)

작별

단지 이 작은 제국의 창업, 그리고 사십 년의 수성 정도로 일반인의 정신은 한계에 달했다.

불면증에 시달리는 것은 제국의 무게가 자신의 어깨를 짓누르고 있어서 그랬을지도 몰랐다.

수십 년을 잠조차 제대로 잘 수 없는 상태에서 관리해왔다.

하다못해 일주일 야근을 해도 온갖 욕설이 나왔던 예전의 삶과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책임감과 인내심이 강해졌으나 결국 번아웃이 온 모양.

자신은 정말로 휴식이 필요했다.

그러나 영역에 대한 책임감은 그를 쉬게조차 할 수 없었으니까.

그리고 그것을 지탱하던 마지막 퓨즈가 끊겼다.

노신도 떠나보낸 후, 상민은 그토록 바라지 않았던 순간, 그리고 어쩔 수 없이 다가온 순간을 맞이해야 했다.

--

김상민과 왕예.

우리는 본디 다른 시간대에서 태어났고 질 존재였다.

만날 수 없었던, 이름조차 남기지 못했을 그녀.

팔백년의 세월 속에서 두 남녀는 서로 마주보았다.

처음 본 순간을 기억한다.

나무 의자에 옷가지가 걸려 허둥대는 그 모습을.

자신은 그 기억을 안고, 조금씩 인연의 끝자락을 더듬어가며 그녀에게 당도했다.

그 여정은 순탄하지마는 않았다.

시시각각 미쳐 돌아가는 주변 상황 속에서도 우리가 마주잡은 두 손은 풀리지 않았다.

상민은 그 손이 자신을 이곳으로 인도했다고 생각했다.

그 손이 없었으면 자신은 이 막막한 땅에서 어떠한 빛도 찾지 못한 채 길을 잃어버리고 말 것이었다.

그리고 그 촛불의 마지막 심지가 타들어가는 광경의 앞에서 그의 손과 시선은 갈 곳을 잃어버린 채 방황하고 있었다.

눈 앞, 흐릿하게 일렁이는 촛불처럼 왕예의 안색은 어두웠다.

자글자글한 주름이 가득한 그녀는 더 이상 젊지 않았다.

예순이 넘은 나이, 육신은 이미 늙어 지금은 완전히 할머니라고 불러도 되겠지.

이 시대의 사람들이 흔히 그러하듯 어느 순간부터 지병을 달고 살았으며 몸이 편하지 않았다.

의학이 아주 조금 진보했다 하더라도 아는 질병만큼이나 모르는 질병이 많았다.

태의들의 온갖 노력을 다한 진료에도 황후는 조금씩 시들어갔다.

돌이켜보면 그녀는 마치 학창 시절의 아련하고 애틋했던 첫사랑처럼 다가왔다.

이십 대에 서로 하나가 된 우리는 실로 뜨거웠다.

서른 살이 넘었을 때, 우리는 밤새도록 이야기를 나누는 인생의 동반자가 되었다.

마흔 살이 되었을 때, 장성한 자식을 앉혀두고 덕담을 나눌 수 있는 존재가 되었다.

쉰 살이 되었을 때, 우리는 처음으로 손자를 보았다.

그녀는 자신의 연인이자 친구이나 아내이자, 그리고 어머니같은 존재였다.

마주잡았던 그 손은 점차 탄력을 잃어가고 주름이 들어갔다.

그리하여 지금 침상의 머리맡에 앉아 있는 젊은 남편과 누워있는 늙은 아내는 영락없는 모자지간처럼 보였다.

부부는 어느 순간 서로 관계를 가지지 못했다.

하지만 그들의 정신적 교감은 더욱 깊어졌다.

그들은 긴 시간동안 못다한 추억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녀가 졸린듯 가끔 깜빡 깜빡 졸고 다시 깨어나 문득 웃음지을 때도, 그는 계속하여 그녀에게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처음 본 이야기.

자신이 경험했던 일들, 그리고 이뤄온 일들.

앞으로 하고자 할 일들.

그리고 세월을 넘어 가져온 자신의 가장 깊은 비밀까지도.

죽어가는 이에게 한 고해성사는 꽉 막혀 곪아 터지고 있던 마음을 뻥 뚫리게 해 주었다.

요령없고 두서없는 길고 긴 고백을 모두 들은 왕예는 주름진 얼굴로 웃었다.

그는 그때서야 눈치챘다.

자신과 평생 함께한 사람이다.

자신의 이상함을 진작 알고 있었으리라.

“그랬었군요.”

“...내가 이상하지 않소?”

늙은 아내는 고개를 저었다.

“주상께선 이상하신 게 아니라, 특별하신 게지요.”

그녀는 자신의 손을 가볍게 쥐었다.

그 손에는 힘이 전혀 실려있지 않아 가슴이 아팠다.

“당신이 구원자로 오지 않았다면, 소녀는 북적들에게 죽었을 것이에요. 다른 수많은 이들과 마찬가지로.”

예순 살이 넘는 여인은 항상 존경하는 마음과 사랑하는 마음을 담고 자신을 쳐다보고 있었다.

"저, 있잖아요."

"말씀하세요."

"당신이 말한 곳 같이 가 보고 싶었는데."

이구아수였나요, 당신이 그 때 말해준 그 절경이라는 폭포 말이에요.

아름답다는 소금 사막도 있다고 했었죠.

상민은 고개를 떨구었다.

"미안하오. 나중에..."

나중에.

그러니까 조금만 더.

상민은 그 거짓말을 차마 입 밖으로 내뱉지 못했다.

그녀가 야속하게도 몇 차례 심하게 기침을 했다.

황급히 문 밖에서 대기하던 일석을 부르니 그가 달려와 진맥을 했다.

열린 문 사이로, 둘 만의 시간을 배려해주고 있던 자식들이 도저히 기다릴 수 없었는지 그녀의 옆에 들어와 꿇어앉았다.

왕예는 고개를 저었다.

어딘가, 자신의 시선을 넘어 다른 곳을 보던 그녀가 작게 속삭였다.

“저는 먼저 가니 되도록 늦게 오세요. 아예 오지 않으시면 더 좋겠구요.”

“...그것은 너무나 가혹한 말이구려.”

예는 자식들을 하나하나 살피며 말했다.

모후의 마지막 잔소리에도 다 큰 사내들이 그저 고개만 끄덕였다.

그들을 따스한 눈으로 바라보던 예가 고개를 돌렸다.

그 시선 안에는 간곡함이 서려 있었다.

“나 대신 애들 잘 돌봐줘요. 그 애들의 애들도. 나이는 많이 찼지만 그래도 당신 앞에선 영원히 애들에 불과할테니.”

“그리 하리다.”

그녀는 무엇을 더 말하려다 이윽고 처연하게 웃었다.

그 모습에 눈가가 뿌옇게 흐려졌다.

“진지는 거르시지 말구요.”

자신의 죽음 앞에서도 내 밥이 중요한 것인가.

그 말에 하염없이 미어지는 바람에 그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못한 채 그저 고개만 끄덕였다.

"조금만 기다려줘요. 당신은 오래 살아갈 수 있을 테니. 소녀가 윤회(輪廻)하여 다시금 돌아올 때까지."

불교를 믿는 여인이 할 말은 아니었다.

그가 쓰게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윤회는 고통의 굴레이니 스스로 그 구렁에 뛰어들지 말아요.

"당신은 불국토(佛國土)에 갈 것이외다."

당신은 안식에 들어요.

이것은 오로지 나 혼자 지고 가야 할 운명이니.

상민은 처음으로 자신의 운명을 저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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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전의 상 이후, 상민은 며칠이나 대전에 틀여박혀 나올 생각을 하지 않았다.

신료들은 그동안 수많은 일을 겪어왔지만 처음으로 국정에서 아예 손을 땐 황제가 극히 염려스러웠는지 대전 앞을 오가며 상태를 살폈다.

세 형제는 침전의 앞에서 침통한 얼굴을 한 채로 모였다.

천붕(天崩)을 겪은 자식들은 나이가 많이 들었어도 눈물을 가끔 보였다.

“모후께서 붕어하신 것은 지극히 슬픈 일이나, 부상께선 이 나라의 지존이시니 서둘러 털고 일어나셔야 합니다.”

그나마 가장 빠르게 신색을 회복한 황자 해진의 신위(宸威)에 모두가 고개를 끄덕였다.

옆에 자리한 태자 해준이 그의 등을 떠밀었다.

형의 얼굴은 아직도 깊은 슬픔에 잠겨 있었다.

“나는 말재주가 없고 감정이 많아 부상을 보더라도 눈물을 흘릴 뿐 할 말을 제대로 하지 못할 것이다. 네가 가는 것이 좋겠다.”

“예, 형님.”

같은 부모를 둔 형제자매들은 모두 우의가 좋았다.

심지어 진은 배다른 동생들도 그리 싫어하지 않았다.

황제의 후계에 대한 어심은 특정인을 향하는 것이 아닌 공평하게 아무도 향하고 있지 않았으니까.

그의 형은 정치적인 기반이 아예 없는 사람이다.

매일같이 만나는 사람이라곤 한림원과 국자감의 신하들이었으니 그의 정치적 경쟁자라 부르기도 이상했다.

장자라는 특권이 있지만 그 자신조차 한결같이 정치에 뜻이 없음을 피력하고 있었으니.

해진은 저녁 진지를 직접 들고 대전의 문에 다가갔다.

상이 이제 끝난 관계로 정갈하게 담긴 음식들엔 부상께서 좋아하시는 고기반찬도 조금은 보였다.

번을 서던 금군 두 명이 머뭇거리며 그 앞을 가로막았다.

부상께서는 모후의 상으로 비탄에 잠겨 계시리라.

호통치는 대신 진은 나지막하게, 그리고 간곡하게 말했다.

“아버지께서, 요 며칠 진지를 드시지 아니하셨다. 자식된 도리로 이 상을 드리고 물러나려 하니 비켜줄 수 있겠느냐.”

왼편에 선 자가 고심 끝에 고개를 숙였다.

“예, 전하.”

상을 들고 침전에 들어간 해진은 의외의 풍경을 볼 수 있었다.

어두운 복도와는 달리, 안의 집무실은 그리 어둡지 않았다.

의외로 아버지는 어머니의 죽음에 그리 슬퍼 보이지 않았다.

혹은 그 짧은 시간동안 극복해 내신 것이겠지.

항상 그러셨듯이.

아버지는 단지 계속하여 무엇인가를 써 나가고 있었다.

”왔느냐.“

고개를 들지 않은 채 아버지가 말씀하셨다.

”이게 다...“

가히 서류의 산.

질색할 정도로 많은 서류더미들은 분명 상서성에서 처결을 바라고 쌓여 있는 것과는 별개의 문서들이었다.

상민은 피식 웃더니 그것들을 대강 정리하고는 세필을 조그마한 천에 문질러 닦아내었다.

”시간 있느냐?“

”예.“

황상께서 시간이 있느냐 물으면 누가 없다고 대답할까.

해진은 다소 어이없는 미소를 머금으며 대답했다.

”말을 타고 조금 멀리 나갈 것이다. 따라오너라.“

상민과 해진은 아무도 대동하지 않고 뒷문을 통해 나섰다.

무장 출신임에도 사냥대회를 그리 좋아하지 않는 상민은 아들과 이렇게 나란히 말머리를 같이 하고 달릴 기회조차 별로 없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이제 저 아이도 장년의 나이가 되었는데.

잠시간 대지를 달리는 말발굽 소리를 제외하곤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다.

부자지간에 맴도는 어색한 침묵.

그는 살짝 자책했다.

스스로가 부모의 사랑을 받고 자란 것이 아니라서 사랑에 어색해 자식들에게 베풀지 못한 것이 지금에서야 아쉬웠으니.

”어디로 가시렵니까.“

”병부의 기기서로. 네게 보여줄 것이 있다.“

둘은 기기서 휘하의 총통위(銃筒衛)에 도착하고 나서야 말을 내렸다.

특이한 이곳은 사방이 분지형으로 중심을 둘러싸고 있었고, 심지어 그 위에는 얕은 벽돌 담이 있어 소리를 차단하려는 흔적이 돋보였다.

해진은 눈을 휘둥그렇게 뜬 채로 들어갔다.

극비 중 극비 시설이니만큼 처음 보는 사람의 반응은 대개 저러하겠지.

그곳에는 미리 언질을 받은 병부상서 곽연수가 나와 대기하고 있었다.

그의 안색은 썩 좋아보이지 않았다.

”폐하, 그래도 금군은 대동하고 움직이시는 것이.“

”이 일도 머지 않았는데, 너무 잔소리만 하지 말거라.“

그 말을 들은 해진의 귀가 쫑긋거리는 것이 웃겼다.

이윽고 총통위의 장인들이 큰 물건을 끌고 나왔다.

바닥에 바퀴가 있는 이 물건은 진에게 있어선 조금 생소한 물건이었다.

굵은 청동 원통 그리고 바퀴.

- 치이익

절차가 완료되자 황상과 황자가 안전한 곳에 자리한 것을 확인한 연수가 직접 만들어진 청동 대포의 심지에 불을 붙였다.

- 콰앙

이윽고 귀청을 찢는 우레와 같은 소리가 나더니, 대포에서 발사된 포탄이 표적을 산산조각내었다.

엉겹결에 주변인들을 따라 귀를 막은 해진의 입은 찢어질 듯 벌어졌다.

나이가 서른이 넘은 놈이, 저리 표정관리를 못하는 광경이라니.

상민은 그 모습을 보며 껄껄 웃었다.

이 땅은 정말 풍요로운 땅이다.

치족 영토 서쪽의 아우칸킬차(Aucanquilcha) 화산에서는 유황이 발에 채일 정도로 많아 매년 엄청난 양이 흘러들어오고 있었다.

그보다 남쪽에는 아타카마 사막이 자리하고 있었는데, 자연적 환경으로 인해 초석의 보고라 불릴 수 있을 정도였다.

초석 뿐만이 아니었다.

이 괴상한 땅은 비가 내리는 것을 1년 내내 구경하기 힘들 정도로 메마른 사막이지만, 노천에는 엄청난 양의 구리가 존재했다.

정말이지 말문이 막힐 정도로 거대하고 거대한 양이었다.

과연 인간이 저 양을 다 캘 수 있을지 정도로 의심스러울 정도의 양.

유황과 초석이 안정적으로 확보되고, 또한 구리의 공급까지 원활한 고려.

그리고 적어도 아주 기초적인 지식은 알고 있는 황제.

화약과 화기의 발명은 어찌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화약이라는 것은 지금의 고려인들에겐 생소한 무기였다.

별무반이 발화무기를 쓴 기록이 있으나, 초석이 없는 형태라 화약이라 칭할 수는 없었고, 제대로 된 흑색화약 자체는 지금 거의 처음 보는 것이 분명했다.

이곳에서 개발을 할 때도 극비로 했으니 저런 반응이 당연하겠지.

"다음 것을 보자꾸나."

연수가 이번에는 긴 나무 막대기를 들고 왔다.

자신에게는 익숙한 것이지만 아들에게는 그렇지 않을 것이다.

그는 직접 시연을 보여주었다.

기술적 및 금전적 이유로 오직 극소량만 생산된 이 총은, 그의 까다로운 주문 만큼이나 복잡한 구조를 가지고 있었다.

그는 직접 쏘는 것은 약간 오랜만인 듯 총기 장인의 조언에 따라 화약접시에 화약을 담고 가늠쇠와 가늠자를 일치시킨 후 표적을 노려보았다.

해진은 저것이 직감적으로 저 덩치 큰 대포라는 것을 극도로 축소하여 손에 들 수 있게 만든 것이라는 것을 알아차렸다.

그가 약간의 불안함을 가진 채 연수를 불러 물었다.

”부상께서 직접 쏘셔도 안전한 것이겠지요?“

”예, 전하. 몇 번이나 따로 실험을 한 것입니다.“

방아쇠가 당겨지자 망치가 부싯돌에 긁히며 작은 불꽃을 만들어 내었다.

부싯돌이 넘어가며 노출된 화약접시에 그 불꽃이 떨어지자 담긴 화약이 빠르게 반응했다.

- 타앙

대포의 폭음보다는 확연히 작고 날카로운 소리가 울려퍼지고 표적지에는 구멍이 하나 뚫린 종이가 생겼다.

상민이 약간의 아쉬움과 약간의 대견함이 섞인 모순적인 얼굴로 자신의 손에 든 총을 바라보았다.

화승총은 건너뛰고 어찌 아는 지식을 동원해 몇 십년간 만들었는데.

기억과 지식은 그렇다 쳐도, 구현할 수 있는 기술력이 문제가 많았으니.

”이 시대의 야금술과 짐의 지식으로는 이 총이 한계인 것 같다.“

후대에 부싯돌형(Flintlock) 소총이라 명명될 이 총은 아직 한계가 명확하지만 동시대의 어떠한 무기조차도 범접할 수 없는 잠재력을 가지고 있었다.

여기서 강선을 파고, 탄의 모양을 바꾸는 등의 일은 천천히 해야겠지.

”진아, 너는 이 무기들의 가치를 알아보겠느냐?“

진은 대포를 가리킨 채 흥분하며 떠들었다.

천성적으로 무재가 걸출한 아이답게 통찰력도 뛰어났다.

”이 무기는 가히 엄청난 물건이옵니다. 이 대포라는 것의 크기를 키우거나 개수를 늘린다면 성을 공략하는 것에 몹시 좋을 것입니다. 또한 그 소리와 위력이 대단하니 적들의 선봉과 사기를 꺾는 것에도 몹시 유용할 것인즉, 실로 하늘의 무기입니다.“

”그래. 그렇다면 저것은 어떠하냐?“

이번에는 상민이 소총을 가리켰다.

해진은 다소 뜸을 들였다.

”장전하는 것에 시간이 꽤 많이 걸립니다. 또한 화약이라 하신 그 검은 가루가 우천의 시기에 젖는다면 쏘지 못하지 않겠습니까?“

그리고는 무언가 생각한 듯 덧붙였다.

”하지만 기존의 활도 마찬가지로 아교가 풀어져 우천의 시기에 쏠 수 없다는 것을 감안해 보면 비슷한 상황일 것이니 그 이유를 차치한다면 재정적 문제가 있지 않겠사옵니까. 오직 소량 생산된 것을 미루어 볼 때, 그 한 정의 가치가 매우 귀할 것입니다.“

”그렇지. 맞는 말이다.“

상민은 아들에게 직접 쏘아보라고 권했다.

이런 것은 자신이 직접 경험하지 못하면 그 내재된 가치를 알 수 없으니까.

주변의 조언을 따라가며 총을 한 발 쏜 그가 갑자기 탄성을 내질렀다.

"정녕 대단한 무기입니다."

"다른 생각이 떠올랐느냐?"

"예, 시위를 당기는 것에 근력의 수고로움이 없습니다. 또한 과녁이 이리 직관적으로 보인다니, 수 년동안 갈고 닦아야 할 궁술과는 확연하게 다른 면이 있습니다."

"만약 기술이 발전하여 이 총의 제조과정이 개선된 후 중앙군을 이 무기로 무장하면 어떠한 광경이 펼쳐질 것인지 짐작이 가더냐?"

진이는 자신을 따라 많은 전장을 갔다왔다.

정복전쟁과 통일전쟁 모두를.

심지어는 자신이 도성에 있을 때, 남부로 파견을 내보내기도 했었지.

전장이라는 상황 자체는 그에게 그리 낯선 환경은 아니었다.

"야인들은 물론이고 옛 고려의 북적들이 다시금 온다 한들 감히 고려의 국경을 침탈하지 못하겠습니다."

"그렇지. 그리될 것이다."

그는 그것들을 내려놓고 만든 장인을 치하한 뒤 다시 궁성으로 돌아왔다.

자신이 앞장서 주도한 이상 화기의 발전은 필연적이었다.

이제 시범생산된 총을 개량하여 조금 더 대량생산에 적합하게 만들고 난 뒤엔, 얼마 지나지 않아 많은 병사들이 저 무기로 무장할 것이었다.

자신이 언제 어디서든 죽을 수 있게 만드는 무기.

날아오는 화살을 반응하여 쳐 낼 수 있다 한들, 어둠 속에서 총구를 내밀고 쏜 화기에 맞는다면 생사를 장담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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