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단
갑술년(甲戌, 1274년) 십이월 초하루.
집무실에서 중손은 문득 답답한 마음이 들었다.
“윤서 있느냐.”
“예, 별감.”
“궁으로 가야겠다. 채비하거라.”
이제는 가까이에 있는 것도 말시종이 앞에서 고삐를 쥐고 가야만 말을 안정적으로 탈 수 있었다.
이에 위엄이 흐려질까 저어해 중손은 오히려 큰 가마를 만들라 지시했다.
장정 여덟, 많게는 열 명이 나서 들어야만 움직이는 가마. 이를 타고 보위도감을 나서 흥평궁으로 향했다.
그 위세가 얼마나 대단한지, 주변 백성들이 모두 머리를 땅에 박았으며 감히 쳐다보려는 사람이 없었다.
그는 궁에 도착하여 가마에 내리고는 마중 나온 궁인에게 물었다.
“주상께선 어디에 계시느냐.”
“아직 침전에 계시옵니다.”
“시간이 미시(未時, 오후 1시~3시)가 다 되어가는 때인데 아직 침전에 계시다는 말이더냐?”
“그것이...”
그는 성큼성큼 대전(大殿)으로 걸어갔다.
지근거리에서 주상을 호위하는 금군대장(禁軍大將) 김통정이 그 앞길을 막았다.
“별감, 황상께선 연총전(延寵殿)에 계십니다.”
“이 대낮에 말인가?”
통정이 난처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해가 대낮인데 망측하게 귀비의 처소에 있는 것이 군왕으로서 정상은 아니다.
물론 그 시간에 뭘 하겠느냐마는.
적어도 서책이라도 보는 것이 군왕의 도리일텐데.
그리고 중전과의 사이가 아직도 회복되지 않은 것인가.
잠시 못마땅한 듯 콧방귀를 끼던 중손이 이윽고 발길을 돌렸다.
“중전을 뵙고 갈 것인데, 이것마저 말리진 않겠지.”
“소장이 어찌 말릴 수 있겠습니까.”
통정이 난처하게 웃었다.
-
중궁전에 도달하여 보니, 자신의 수양딸은 한창 바느질에 열중이었다.
궁인들이 무어라 알리려는 것을 멀리서 조용히 하라 손짓하니, 누구 하나 나서서 말하려는 사람이 없었다.
중손은 슬그머니 중전의 옆으로 가 섰다.
기척을 죽이는 재주가 뛰어난 것이 영락없는 고려의 명장이다.
그 재능을 나이 오십이 넘어 딸을 놀리려 하는 곳에 쓰고 있는 것도 영락없는 아비였다.
“무엇을 하고 계신지요.”
중전은 화들짝 놀랐다.
바늘을 들고 있어 위험해 보여, 그 손에서 바늘을 치워내 바늘꽂이에 꽂았다.
“아버님!”
신체적으로는 다 컸지만, 중손은 아직도 딸이 어린 소녀처럼 느껴졌다.
고려의 안주인 또한, 그 아비 앞에선 예전의 표정이 어떠했건 간에 슬며시 웃음을 지었다.
“중전께선 그간 평안하셨습니까.”
딸의 얼굴이 살며시 흐릿해지다, 다시금 원래의 무덤덤한 얼굴로 돌아오는 것을 중손은 뿌연 시야로도 놓치지 않았다.
“저는 잘 지냈습니다. 바느질을 하면서요.”
“어찌, 좀 느셨습니까?”
황후 배씨는 조용하게 대답했다.
“예전에 아버님께서 소녀에게 구박을 했던 시절보단 더 나아졌답니다.”
중손은 수염을 쓸어내리며 웃었다.
“구박이라 하심은 이 아비가 서운합니다. 단지 골무를 끼지 않아 자꾸만 다치는 것을 이 아비는 보기가 편치 않아요.”
“이제는 그럴 일은 별로 없을 것 같답니다. 이젠 골무를 끼고도 바느질도 잘 한다니까요.”
황후는 조금은 민망하고 조금은 뿌듯한 듯 작게 말했다.
중손은 피식 웃고는 황후의 머리를 쓰다듬으려다 이내 그만두었다.
거추장스런 머리 장식을 쓰다듬기 힘든 것도 있었고 이제는 자신의 어린 딸이 아니기에.
주변 궁인들은 오랫동안 못 본 상전의 웃음에 잠자코 지켜보기만 했다.
“무엇을 만들고 계십니까?”
“이번에 성화전주의 아들이 돌을 맞이하고 있지요? 그 아이의 옷을 제가 한번 만들어 보고 싶어 이리 만들고 있답니다.”
“......”
중손은 말을 아꼈다.
황실 여인들의 세계가 따로 있는 만큼, 그들의 인간관계를 굳이 나서서 이래라 저래라 할 이유는 없었다.
성화전주와 성명전주, 그리고 중전이 친하게 지내는 것이 오히려 득이면 득이지 실은 아니니까.
“이제는 비단을 구할 수가 없어 모시로 밖에 만들지 못하는 것이 안타까워요. 혹여 아버님은 비단을 구하실 수 있으신지요?”
“비단은 황상께서 입으실 황포의 재료도 부족한 상태입니다.”
선단은 이곳에 오면서 누에까지 가져오진 않았다.
설령 가져왔다 하더라도 뽕나무 씨앗이 발아해 그 잎을 먹이기 전까지 모두 굶어죽었으리라.
강화에서 가져온, 그리고 서해안을 털며 강탈한 견포가 전부였다.
그마저도 이제는 거의 다 쓰고 있었고.
따라서 요즘 고려의 복식에 견직물을 보기란 몹시 어려웠다.
기존의 옷감이 세월에 상한다면 새로운 고려에선 비단이란 직물은 역사 속으로 사라져 버릴 것이었다.
“말이 나와서 말인데, 아버님께서는 그 잔치에 오시려나요?”
“어느 잔치 말입니까?”
“아까 말했잖아요. 성화전주와 안서도호부사의 아들 돌잔치 말이에요.”
“돌잔치라.”
중손은 슬쩍 웃었다.
재미있는 짓을 하는구나.
자식의 돌을 축하하는 것은 옛부터 삼한의 풍습에 있었지만 그들 부부가 벌이는 잔치는 조금 독특했다.
자식의 뭐 앞날을 예견하여 돌잡이라는 것을 한다 그랬었나.
둘이서 조촐하게 하려 했지만, 그 언니가 껴들었고 이내 중전도 끼며 황실의 잔치가 되어버렸다.
항상 짙게 어둠이 드리운 궁 분위기 상 드문 잔치였기 때문에 나쁘게 생각하지도 않았다.
“그럽시다. 얼굴 한 번 비추는 것도 그리 나쁜 일은 아니겠지요.”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려다, 황후의 평복 소매가 너덜거리고 있는 것을 보았다.
예전 개경에선 상상도 할 수 없는 일.
그는 못 본 척 자리에서 일어나 다시 중궁전 밖으로 나섰다.
-
다시금 가마에 오르러 가는 길, 일단의 궁녀들이 무엇을 들고 가고 있었다.
처음에는 그것을 자세히 볼 수가 없어 무엇인지 몰랐다.
궁녀 한 명이 아랫것에게 작게 호통을 치는 소리가 들렸다.
“조심히 걸어라! 귀한 비단을 떨어뜨리면 어찌 경을 치실지 잘 알고 있지 않느냐!”
중손의 눈이 나빠지는 것과는 별개로 귀에는 전혀 문제가 없었다.
갑자기 발걸음을 멈춘 그가 소리를 낸 궁녀들을 불러세웠다.
“너희들은 어디로 가는 게냐.”
감히 모르는 척 갈 수 없는 신분.
그들은 머리를 조아리며 대답했다.
별 일이야 있을라고.
“...연총전으로 가는 중입니다.”
“이 많은 비단을 들고?”
“예.”
노장은 평온하게 물었다.
“네 상전의 지시더냐?”
--
- 콰앙
격한 소리를 내며 연총전의 문이 열렸다.
이번에는 통정조차 만류하지 못했다.
냉기를 풀풀 풍기는 중손이 성큼성큼 걸어가 섬돌 아래에서 숨을 한 번 들이쉬었다.
“폐하!”
우렁찬 소리는 마치 이제 볼 수 없는 범의 포효와도 같아 연총전 안에 있는 궁인들이 반쯤 까무러친 것이 보였다.
전 안에서 다급한 소리가 나더니, 이윽고 흰 모시 저고리만 걸친 채, 당황한 표정의 왕온이 문을 열었다.
“무... 무슨 일이시오, 별감. 내... 짐이 부...분명 아무도 들이지 말라 하였을 텐데!”
짐짓 위엄을 챙기려는지 말이 끝으로 갈수록 언성이 커졌으나, 후들거리는 다리가 영락없는 토끼와 같았다.
“대고려의 황상께서 하루 종일 귀비의 치마폭에 쌓여 계시니, 위로는 하늘과 선제들께서 노할 것이며, 아래로는 백성들이 손가락질하옵니다. 어찌 체통과 위엄을 지키시지 않으시옵니까!”
“그...”
“그 뒤에!”
독기를 품은 귀비가, 단정히 복장을 챙겨 입고 언제 그랬느냐는 듯 왕온의 뒤에서 걸어나왔다.
그 진한 사향의 냄새가 섬돌 밑까지 풍겼다.
화려한 비단, 금실을 수놓은 그 옷의 아름다움은 고려의 어느 여인에도 비견할 바가 되지 않을 정도로 사치스럽고 호화로웠다.
중손은 입을 씰룩였다.
“그대는 그대가 무어라 생각하는 것이기에 감히 황상과 황후께서 입어야 할 견포를 혼자서 차지하는 탐욕을 부리느냐!”
“그것은, 짐이 명한 것인데...”
그 어이없음에 중손의 화가 더욱 폭발했다.
별감이라 하나 고려의 황제에게 손찌검을 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말인즉! 네년이 사사로이 성상의 눈을 가려 총기를 흐리고, 국정과 조종의 법도를 농단하는 것이니 이를 내 어찌 좌시할 수 있겠는가!”
중손은 화가 잔뜩 난 상태로, 계단을 올라가려다 발을 삐끗했다.
주변 무장들이 서둘러 달려와, 그를 부축했지만 중손이 그들을 거칠게 쳐내었다.
그 모습에, 귀비가 분노에 눈이 멀어 빈정거렸다.
그 또한 하지 말아야 할 말이었다.
“눈이 가려진 자가 과연 누구일까요?”
- 아악!
귀비에게는 불행하게도 눈이 흐려진 것이 평생 전쟁터에서 살아온 무장이 기껏 돌 계단을 오르지 못하게 막지는 못했다.
꽂혀있는 장식을 뽑을듯 머리채를 질질 끌고 내려오니, 귀비가 돌계단에 걸려 내려오며 고통스러워하는 비명이 들렸고, 주변 궁인들은 발만 동동 구른 채 아비규환이었다.
“별감!”
통정이 이 처참한 광경에 아연실색하다 이윽고 얼굴을 굳혔다.
“금남의 구역에 들어오신 것도 소장은 막지 못했으나, 감히 전하를 성상과 이리 수많은 사람 앞에서 욕보이는 것을 소장은 허락할 수가 없습니다!”
“땅에 떨어진 조종의 법도를 아무도 세우지 않으려 하기에 직접 내 손으로 바로잡으려는 것이다! 이 행사가 그릇 된 것인지는 직접 성상께 듣거라!”
왕온은 항상 그랬듯이 제 자리에 주저앉아 그저 벌벌 떨 뿐이다.
중손은 병졸들을 시켜 연총전을 뒤져 견포와 비단 옷들을 압수했다.
또한 사치품들과 향낭 등 수많은 물품들 까지도.
그들은 심지어 꿇려 앉혀진 귀비의 옷까지 벗겨 내의(內衣 속옷)와 내상(內裳, 속치마)만 남겨놓은 채로 떠났다.
귀비는 돌계단을 끌려 내려오며 쓸린 무릎에서 피가 번지는 고통도 잊은 채, 수치심과 분노에 벌벌 떨며 울고 있었다.
--
갑술년(甲戌, 1274년) 십이월 이레.
하나밖에 없는 아들의 돌잔치.
본디 조촐했어야 하는 자리였는데.
상민은 뚱하니 성화전의 마당에서 불청객들을 노려보고 있었다.
처형(妻兄) 왕영이야 그렇다 치더라도, 저 마당발 넓은 아줌마(자세한 나이는 몰라도 이십대 정도 밖에 되지 않아 보이는 사람이지만 그래도 아줌마라 부르고 싶었다)와 그 아비까지 와 가족끼리의 소소한 일을 크게 키워버렸으니.
마음에 들래야 들 수 없는 음흉한 늙은이다.
노인네는 여인들의 수다에는 낄 자신이 없는 지 자신에게 다가와 옆에 섰다.
그의 키가 작아 보이는 것은, 나이와 상대적 체격 때문만은 아니리라.
“주상께선 오지 않으셨나.”
님이 온다는데 오겠어요? 며칠 전 그 난리를 피워놓고.
단지 고개를 젓는 상민을 보며 노인이 고개를 끄덕였다.
“좋은 날에 표정이 좋지 않구나.”
“분기, 아니 반년에 한 번 아내를 만나러 와야 하는 심정을 어찌 별감께서 알 수 있으시겠습니까.”
“네가 내 면전에 그렇게 해달라 청한 것은 잊은 모양이구나.”
“머리 검은 짐승이란 본디 배은망덕하지요.”
노인은 클클 웃었다.
분명 이곳에 왔을 때 낭장따리 시절에는 배중손은 그저 위엄 있는 장군으로밖에 보이지 않았으나 머리에는 세월의 흔적이 불과 사년 사이에 급속도로 내려앉고 있었다.
현대인이었으면 염색약을 발라서 흰 머리를 감췄겠지.
그리고 그것보다, 어느새 고려 내에 한 손에 꼽히는 지위에 올라 보니 권력 너머 숨겨져 있던 것들을 읽을 수 있었고.
가면이 벗겨진 어떤 우주 배경 영화의 검은 기사가 떠올랐다.
상민도 피식 웃었다.
사적인 자리에서 만나는 만큼 격의가 별로 없었고 살짝 적대적이라 볼 수 있는 관계에도 불구하고 노인과 청년은 그보다도 더 내밀한 생각을 공유하고 있었다.
노인은 청년을 상당히 대단한 자라 생각하고 있었고, 그 반대도 마찬가지.
적어도 이 순간만큼은 적이 아닌 먼 가족의 일원으로 마주하고 있는 것일까.
“저번 일은 별감께서 굳이 그렇게까지 하셨어야 했나 하는 의문이 들었습니다.”
순간 중손의 얼굴이 굳어졌다.
하지만 별 표정의 변화 없이 울고 있는 자신의 아들에게 시선을 고정하던 상민이 입을 열었다.
“하지만, 다시금 생각해보니 그럴 만도 했다 생각이 듭니다.”
중손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상민은 무엇인가 생각났다는 듯 주머니를 뒤적였다.
그리고 이윽고 주머니에서 손바닥 절반보다 작은, 안경알 정도의 수정을 꺼내었다.
“창양 근처에서 발견된 수정입니다. 이를 갈아 연마했으니, 약간의 불투명한 것이 있어도 예전보다 사물을 더 자세히 보실 수 있으실 겁니다.”
“부탁하지 않은 일을 구태여 하는구나.”
“별감이 평안하셔야 고려도 그렇지 않습니까.”
중손은 피식 웃었다.
그리고는 수정을 들어 자신의 눈에 가져다대었다.
“일 없다. 이 수정도 딱히 또렷하게 보이게 해 주지 않는구나.”
중손은 다시 수정을 내밀었다.
상민은 그것을 받으며 슬쩍 그의 눈동자를 살펴보다 다시 시선을 돌렸다.
그 모습에 중손이 너털웃음을 터트렸다.
“나는 널 내 사냥개로 보았는데, 이제는 너가 날 사냥개로 보는구나. 내 죽고 난 다음을 노리시겠다?”
“이미 저는 맡은 바, 큰 사냥감을 바친 것으로 압니다. 그러니 별감께서 계속 별래무양하시길 기원할 뿐입니다.”
상민도 슬그머니 웃었다.
그 모습을 바라보던 중손이 불쑥 입을 열었다.
“네놈은 신기한 놈이야.”
“무엇이 말입니까.”
“노영희가 흉계를 꾸미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려 토벌한 것. 기상천외한 기물들을 제작하여 바치는 것. 야지에 떨어뜨려 놓아달라 청한 후 달랑 일 년 치의 곡식만 요구한 그 대범함. 그리고 허허벌판에 개척을 보란 듯이 성공하여 저 동쪽의 어린 것이 매번 비교 당하게 만들었지.”
“.......”
“내가 널 언급할 때마다 그 놈이 어찌 분노하고 당황하는 지. 그 얼굴을 봤어야 하는데.”
“안동도호부는 그만의 사정이 있겠지요.”
“네놈도 네놈의 사정이 있어 그리 엄히 문단속을 하고 다녔던 것이냐?”
“저는 제 방에 들어오는 쥐새끼들을 그리 좋아하는 편이 아닙니다.”
“예전 같았으면, 난 널 내쳤을 것이다. 그리고 내쳐진 자들은 하나같이 목이 잘렸지. 하지만 내 늙음이 내 결정을 재촉하지 못하는구나.”
“무슨 말씀을 하고 싶으신 것인지 소장은 알 수가 없습니다.”
중손은 말을 더 이어가지 않았다.
잠시간의 침묵 뒤, 그가 입술을 떼었다.
“...이번에 창양으로 갈 때, 처와 자식들을 모두 데리고 가거라.”
“잘못 들었습니다?”
“잘 못 듣긴, 제대로 들은 표정인데.”
노인은 말을 흐렸다.
잔치가 이제 끝을 향해 달려가는지 주변의 소란에 한창 자고 있던 아들 준(晙)이 깨어나 울었다.
“그리고 혹시.... 혹시 말이다.”
“말씀하소서.”
“되었다. 잊거라.”
상민은 별 신경 쓰지 않았다.
이제 본격적인 돌잡이가 시작하는지 준이 자신의 앞에 놓인 것들을 살펴보고 있었다.
종이, 조그마한 활, 조그마한 목검, 실, 쌀 등등
대부분은 이 시대에 있을 법한 것들이지만 조금 특이한 것들도 보였다.
“이게 뭐지요?”
중전이 묻기에, 상민이 마지못해 대답했다.
“주판이라는 것입니다. 단순한 셈을 할 때 굉장히 유용한 기구이지요.”
“신기하게 생겼군요.”
응 안줘.
별 미동 없는 상민의 반응에 시무룩해진 중전이 뒤로 물러나자, 준이 잽싸게 방금 말했던 주판을 집어 올리려다 무거워 끙끙대었다.
문과 아비에게서 이과 아들이 태어났구나.
주판의 알을 움직이려는 모습이 사랑스럽다.
아마 자신에게 오줌을 싸도 사랑스러울 것이지만.
객 중 누가 말했다.
“셈을 잘 할 수 있는 기구를 골랐으니, 이 아이는 필히 장성하여 황상의 대업에 일조하는 능신(能臣)이 될 것입니다.”
상민은 그저 웃을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