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고려 신대륙에 떨어지다-29화 (29/653)

외전) 종(種), 바이러스, 쇠(지도)

미시적인 관점에서 그것은 작고 귀엽고 둥글둥글하다.

표면은 약간 우둘투둘 하며, 가운데가 들어간 조랭이떡의 단면같이 생기기도 했다.

건장한 남성이 들기에는 너무 작고 가벼운 아령 같기도 했고.

처음 그것이 인간에게 들어간 시작은 확실하지 않았다.

어디에서 기원했는지도 불분명하다.

다만 아주 먼 옛날, 수많은 사람들을 호령하여 거대한 건축물을 지을 정도의 권력자도 그것을 피해갈 수 없었다.

그것은 더운 곳에도 있었고, 추운 곳에도 있었다.

그것은 다만 분열하고 번식한다.

임차인은 임대인을 쓰러뜨리고 그 피부에 툭 튀어 나와 새로운 매물을 구한다.

수없이 긴 시간에 걸쳐. 그것은 단순히 자신의 DNA에 각인된 임무를 할 뿐이었다.

다른 동류들과는 다르게 그것은 잘 변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은 그네 숙주들의 역사를 바꿀 수 있었다.

기억하기로는 꽤 최근에 일어난 일이었다.

부주의한 인간 하나가, 무심결에 시신의 화농에 손을 가져갔다가, 그것의 접근을 허락하고야 말았다.

손을 타고, 코를 통해 들어간 그것은 그 체내에 깊이 잠복했다.

처음에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숙주는 다만 무자비한 유목민들에게서 목숨을 구한 것을 천지신명에게 감사드리고 있을 뿐이었다.

그것이 과연 감사를 받을 정도의 행운이었는가는 모른다.

살아남은 반가운 고향 사람들을 맞이한 그의 몸속에서 이미 그것들은 그 수가 불어나고 있었다.

천천히, 그리고 확실하게.

마침내 그것들은 들불처럼 전란을 피한 사람들마저 잡아 삼켰다.

마을 하나가 사라졌다.

감염되지 않은 자들도 굶어 죽었다.

들판에 굴러다니는 시신은 전란의 시기에 그리 특별한 것도 아니었다.

결국 종착지는 같은 것인데, 가는 교통수단만 다른 것이었으니까.

쇠로 죽었는지, 그것들에 의해 죽었는지 이미 썩어버린 시신은 말이 없다.

그것은 숙주의 몸 밖에서 연약하다.

또한 죽어가는, 죽은 숙주의 몸에서도 연약하다.

시간은 촉박하게 흘렀다.

수많은 분신들이 자연적으로 소멸해갔다.

썩어가는 시체 안에 세상에서 잊혀 질까 오들오들 떨고 있던 그것은, 마침 나타난 친절한 사람이 예전 숙주를 묻어주는 틈을 타 그 손에 안착했다.

이번 숙주는 강했다.

접촉되어 몸 안으로 파고들어간 그것은 안에서 서서히 그 수를 불려나갔다.

저항이 강했다.

증식은 다소 어려웠다.

외부로 퍼져나갈 시기는 좀 늦어보였다.

물론 그것에게 외부 상황을 인지하는 능력을 기대하긴 어렵겠지만, 그것의 숙주는 과연 나중에 그 기록이 깨질 수나 있을까 의심스러울 정도로 인류 역사상 가장 먼 곳을 가장 짧은 시간동안 이동한 무리들 중 하나에 속해 있었다.

수많은 무리가 한 곳에 머물렀다.

어쩌면, 그들 모두에게 그것들이 퍼져나갔을 수도 있었다.

숙주의 귀를 통해 말들이 들려왔다.

알아들을 수는 없으나 대충 이와 비슷했다.

“저것들, 안색이 좋지 않고 열이 심하다는데?”

“지유께 알리자.”

-

다른 무리들은 떠났고 숙주는 결국 남겨졌다.

씁쓸해 하는 사람도 있었고, 분노해 하는 사람도 있었고 절망에 빠진 자들도 있었다.

하지만 그들은 들판의 잡초처럼 억셌다.

아직 체력이 남아 있는 사람들은 버려진 군영을 정돈해 어떻게든 살아남았다.

밭을 갈고 씨를 뿌리며.

약속된 시간이 다가왔다.

세포에서 세포로 이동하던 그것은 어느 순간 세포를 용해시키고 혈류 속으로 엄청난 숫자의 자신의 분신들을 이동시킨다.

다시 한 번 골수와 지라, 림프절에서 서로 수를 불려나간 그들은 최초의 뾰루지에서 그 존재를 세상에 선보였다.

하나 둘, 셋.

그리고 수백, 수천.

그리고 셀 수 없을 만큼 많이.

그 흉측하게 올라온 뾰루지들을 본 사람들은 기겁했다.

역병에 걸린 자를 한 곳으로 격리하고 접근을 막았지만 이미 늦었다.

그들 자신에게서도 미약한 열이 느껴졌다.

그것은 느낄 수 있었다.

그것의 분신들도 저 사람들의 몸속에 있다는 것을.

숙주들이 절망에 빠졌다.

하지만 이미 때는 늦었으니.

그것들은 이미 액체와 고체에 묻어 한 사람에서 여러 사람으로 전파되기 시작했다.

거시적인 관점에서 그것은.

죽음의 파도였다.

-

시간이 지나며 사람들은 천천히 그 수가 줄어들었다.

누가 누구를 챙겨줄 수도 없었다.

이미 병을 경험하고 살아남은 몇 명의 사람들이 있었지만 그들이 이 전부를 돌볼 수는 없었다.

건강한 사람도 앓아누웠다.

그들은 세상을 저주했다

마치 죽음의 파도가 그들을 삼키는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어떠한 역병이라도 모든 사람을 다 죽일 순 없었다.

그들에겐 다행스럽게도, 죽은 사람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어떻게든 살아남았다.

생존자들은 아직 아픈 흉터와 축난 몸을 이끌고 종자를 파종하고, 들판에서 먹을 것을 찾으며 어떻게든 살아남으려 발버둥 쳤다.

그리고 마침내 일단의 무리들을 만났다.

처음 만난 야인들의 정체는 무엇일까.

학자들이 있다면 아마 그들을 가장 남쪽으로 내려온 투피(Tupi)족, 혹은 과라니(Guarani)족이라고 분석했을 것이었다.

이 새로운 무리들은 본디 지금으로부터 상당히 북쪽에서 살고 있었다.

어떤 누군가의 지도에선 브라질의 해안가나, 브라질과 파라과이의 경계선이라고 보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들의 밑에 살고 있던 부족이 무슨 이유에선지 크게 세력을 잃자 영역을 침범하여 세력을 넓혀가고 있었다.

같은 부족들끼리의 영역다툼에서 밀려난 한 무리는 심지어 해안가까지 내려오기도 했다.

그들은 밤에도 환하게 불이 밝혀져 있는 곳을 발견했다.

그곳의 주민들은 이상하게 생기고, 이상한 것들을 걸치고 이상한 말들을 했으나 그리 강해 보이지는 않았다.

그 수가 그리 많아보이지도 않았고.

따라서 그들은 그들을 정복했다.

놀라울 정도로 쉬웠다.

전사로서의 능력은 거의 없었다.

본디 그들은 적이라도 강력한 전사일 경우 그를 죽이고 힘을 흡수하기 위해 시신을 뜯어먹는 풍습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이 자들은 시신으로 만들어 뜯어 먹을 가치도 없었다.

시시한 전투 이후 그들은 끝까지 살아남은 자들을 모아놓고 모두 죽이려고 마음먹었다.

하지만 이상한 물건들이 많이 보였다.

자신들이 가진 그 어떤 것보다도 단단한 것들.

만약 이것을 날카롭게만 만들 수 있다면, 이것은 수월하게 그들의 적대 부족원의 가슴으로 파고들어갈 수 있을 것이다.

이들이 이것을 만들 수 있을까.

그들은 약한 자들을 죽이지 않고 다만 데려가기로 했다.

가진 것들을 빼앗아 다시 그들이 내려왔던 방향으로 올라갔다.

또 다른 불청객이 아직 살아있다는 것을 모른 채.

그래서 종(種)과 바이러스와 쇠는 북쪽으로 향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