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고려 신대륙에 떨어지다-9화 (9/653)

남미에 떨어진 삼별초(6)

정찰을 나갔던 선단이 돌아오며 보고를 했다.

서쪽과 북동쪽으로 모두 긴 해변이 펼쳐져 있었다.

그 길이는 정말 길어, 몇 백리(里)가 넘었다고 한다.

서쪽으로 삼백 리 넘게 가면 제법 큰 강이 있었다.

그보다도 서쪽으로 가면 큰 만(사실 하구였지만)에 두 줄기의 강이 있었는데, 모두 매우 넓고 유량이 상당하여 그 길이를 짐작하기 어려웠다.

북쪽으로는 여러 만들과 석호(潟湖)들이 있었는데 그 크기가 몹시 거대한 것들도 있었다.

중손은 군영을 물리고 서쪽으로 가기로 결정했다.

꽤 오래 휴식과 개인정비시간을 취한 병사들도 사기가 높아져, 철수 속도는 상당히 빨랐다.

다만 모두가 간 것은 아니었는데.

고려에서 이곳으로 넘어오며 병든 자, 허약해 쓸모없는 자들 백여 명은 이곳에 남겨두었다.

군영은 역병에 매우 취약한 공간이라 삼별초 수뇌부로서도 위험을 감수할 이유는 단 한 가지도 없었겠지.

그래도 허약하다 빼다니.

상민은 동정심이 들어 혀를 찰 뿐 딱히 뭘 한 것은 아니었다.

여긴 꿈도 희망도 없는 중세랜드였으니까.

출발한 지 사흘 만에 단 한 번의 기착도 없이 해안가를 끼고 항해하던 선단이 드디어 목적한 곳에 도달했다.

꽤 넓은 강은 바다와 맞닿는 하구에 조그마한 퇴적섬이 있었다.

삼별초는 이제 강 안쪽에 포구를 건설하여 큰 배들을 댈 수 있게 되었다.

이제 너울성 파도에 대한 걱정은 사라졌다.

삼별초가 마지막으로 보았던 강이 영산강(榮山江)이었던 터라, 이 강의 이름은 소영강(小榮江)으로 이름 붙여졌다.

소영강을 타고 조금 더 안쪽으로 들어가 꽤 알맞은 평야를 발견한 삼별초는 드디어 군영 정도가 아니라 오래 머물 수 있도록 방어시설을 갖춘 견고한 거점을 건설하기로 마음먹었다.

강변에 우거진 잡초와 갈대들, 나무들을 치우고 넓은 대지에 틀을 잡았다.

전략적 요충지로 쓸 수 있는 언덕과 산이라고는 정말 찾기 힘들었다.

보통의 고려 성은 평야에 대도시 평저성을 세운 뒤 그 배후에 산성을 건설하여 기각지세(掎角之勢)를 이루었다.

공격하는 입장에서 한 쪽을 공격하자니 다른 쪽의 성이 계속 거슬릴 수밖에 없는 구조.

하지만 이곳에서는 산은 커녕 조금이라도 높은 언덕도 없어 어떻게 배후 산성을 건설 할 수가 없었다.

조금이나마 방어에 유리하기 위해 상대적으로 지대가 높은 곳을 찾아, 천연해자로 쓸 수 있는 강을 끼고 도시를 건설하기 시작했다.

백성들은 임시로 지어진 나무 목책을 보고 다소 안심하는 눈치였으나 나중에 저 목책을 허물고 그들의 수고로 높은 성벽을 쌓아야 하리라.

산성도 없으니까 높게라도 지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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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점에 온 지 일주일이 지났다.

점심시간이 다 되어 근무를 마치고 오니 신의군 소속 무장들이 또다시 이상한 동물을 잡은 모양이었다.

모닥불을 가운데 놓고 그 광경을 보면서 사람들이 삼삼오오 떠들고 있었다.

‘이게 무슨.’

거대한 쥐 같은 그 동물은 기억이 날 듯 말듯 하면서 어딘가 익숙하게 생겼다.

비버같이 생겼는데?

“진실로 저걸 먹을 겐가?”

“싫으면 먹지 말던가.”

몇 명의 장수들은 무의식적으로 역겹다는 표정을 지어보였다.

이 거대한 쥐는 고려에서 보던 것보다 족히 수십 배는 더 컸으며, 자연히 무게도 무거웠다.

인류 역사의 공통된 적이었던 쥐는 절로 적대적 혐오감을 불러일으킬 뿐만 아니라 곡식을 갉아먹고 질병을 퍼트리는 유해동물이다.

물론 이 시대의 사람들이 페스트의 원흉이 쥐라는 것을 알리는 없겠지만.

생긴것은 그냥 덩치카 큰 쥐라 근본적인 거부감은 있는 모양이었다.

크기도 작아 잡으면 먹기도 그렇다.

송(宋)에서는 나름 익숙한 고기라지만, 고려에선 딱히 아니었다.

다만 끔찍한 전란의 시기에 쥐라도 잡아먹어 연명해야 했던 형편을 살아온 무장들은 그 크기에 놀랐을 뿐 별 반응이 없었다.

심지어 이곳에 와 빠듯한 식량에 가혹한 배급제가 실시되어 사람들의 단백질이 몹시 부족한 이 상황에서 저런 큰 쥐는 물론이고 작은 쥐라도 영양분을 보충할 수 있으면 먹어야지.

훈수 한 마디를 두었다.

"바싹 굽는 것이 좋겠네."

물론 상민 자신은 먹느니 차라리 굶을 것 같았다.

저번에 이어 이번에도 사냥에 성공한 당사자 황사의 낭장은 익숙하게 단도를 들어 그것의 털가죽을 벗기며 해체를 시작했다.

상민은 그 광경을 뚫어져라 지켜봤다.

“털이 꽤 부드러운데.”

한 무장이 아직 핏물이 뚝뚝 떨어지는 털을 이리저리 들고 살펴보았다.

상민의 머리에 무언가 떠올랐다.

‘그래, 뉴트리아.’

자기 전 유튜브 같은 곳에서 본 적이 있었다.

대체 무슨 알고리즘으로 들어가서 봤는지는 모르겠지만.

하지만 뉴트리아의 원래 서식지는 남아메리카라고 들었는데.

대충 내장을 잘라내고 고기를 씻은 뒤 불에 굽기 시작하자, 고기를 굽는 먹음직스러운 냄새가 사방으로 퍼져나갔다.

구워지고 있는 모양은 솔직히 괴기했으나 배가 꽤 고픈 모양인지 갑자기 그것이 너무나 맛있을 것 같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당연한 것이, 강화된 배급제는 백성들과 병졸들은 물론이고 장수들까지 적용되어 상민도 밥을 양껏 먹을 수 있는 처지가 아니었다.

심지어 자신은 하루에 삼시세끼를 먹는 문화에서 넘어온 사람이다.

하루 두 끼를 양도 적게 주다니.

밥도 밥이지만 단백질은 매우 귀했으니, 잡히는 생선이 족족 어디로 사라지기 일쑤였다.

고려가 지금 가축을 가지고 있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조정에서 말과 소 이외에도 양, 염소와 닭을 보유하고 있었으나 수가 많아질 때까지 함부로 도축할 수 없었다.

“오!”

겉이 거의 탈 정도로 바싹 구워진 고기를 불 위에서 빼낸 사의가 한 입을 먼저 맛보고는 감탄성을 흘렸다. 그러고는 주변의 무장들에게 잘라진 고기를 나누었다.

상민에게도 한 조각이 내밀어졌다.

거절하기엔 너무나 먹음직스러운 고기였다.

방금 전의 다짐이 마치 봄 날에 녹는 눈처럼 사르르 녹아내렸다.

고기 조각을 마지막으로 먹은 지가 체감 상 한 몇 년은 된 것 같았다.

잠시 망설이던 상민은 눈을 질끈 감고 그것을 받아들었다.

“...맛있네?”

얼얼할 정도로 침이 고이는 느낌.

21세기의 자신이라면 거들떠도 보지 않았을 음식이었겠지.

역겨운 음식을 먹는다고 찍힌 사진이 인터넷에 떠돌아다닐지도 몰랐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 입으로 들어가는 고기의 풍미는 정말.

맛있었다.

돼지고기 같기도 하면서, 오리고기 같기도 했다.

아 맛을 평가하기엔 너무나 작다. 조금만 더 달라고 해볼까.

문득 정신을 차리고 주변을 보니, 고기를 허겁지겁 먹어치우고 뼈만 들고 있는 무장들이 사의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가 으쓱 어깨를 치켜 올리자 한숨을 쉰 무장들이 뼈들을 쪽쪽 빨다가 던졌다.

그리고는 각자 배식된 주먹밥을 들어 올리고 입에 물었다.

구리고 텁텁한 주먹밥의 맛이 입에 가득 찬다.

아무리 허기가 지더라도 밥맛이 없는 이유는 참 신기했다.

이제 이 맛의 끝은 항상 불쾌함으로 끝나겠지.

-으득.

이렇게 말이야.

모래알을 퉤 뱉으며 상민은 중얼대었다.

‘진짜 뭐같이 맛없다.’

인류의 가장 큰 즐거움인 식도락을 압수당한 그의 심정은 정말 참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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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을 먹고 다시 출근을 하니 자신의 부당 고용주는 저 멀리서 그를 웃는 얼굴로 바라보고 있었다. 인상이 사나워 웃음기를 띈 목소리가 아니었으면 화를 내는 것처럼 보였으리라.

자신은 근무 업무 외에도 따로 군의 행정업무를 겸직하게 되었다.

다만 이것이 문제가 되는 게, 마치 군정을 실시하는 것과 같은 현 상황에서 자신이 민간의 업무까지 관리감독을 해야 하는 것이다.

일이 미치도록 많았다.

그래, 긍정적으로 생각하자.

근무시간 끝나고 둔전(屯田)으로 달려가야 하는 다른 부대 애들보다야 낫겠지.

“왔는가.”

“예...”

“그럼 가지.”

통정은 다소 즐거운 듯 삼별초의 총군영으로 갔다.

정교하게 지어지지는 않았지만 대전보다도 더 먼저 완성된 건물은 이미 사람들로 가득 차 있었다.

“정찰대가 돌아와 복장과 습속이 해괴한 자들을 잡아 왔다 하네.”

“이곳에 본래부터 살고 있던 자들이랍니까?”

“그러한 것 같더군.”

상민은 궁금증이 들었다.

서쪽 해안을 따라 깊게 정찰을 나간 척후들이 큰 강어귀에 도달할 때 쯤, 일단의 무리와 마주쳤다 한다.

몸이 크고 피부가 붉고 짙은 이 자들은 사납기 그지없어 만나자마자 활을 쏘고 창을 치켜들어 척후와 전투를 벌였다.

스무 명의 야인(野人)들과 여섯 별초의 전투는 우수한 개인 무력과 장비, 군마를 가진 별초들의 승리로 끝났으나 한 명이 크게 다쳤다.

적은 열여덟을 죽이고 두 명을 끌고 왔다.

통정과 상민이 도착해서 보니 총군영 앞마당에 두 명의 포로들이 줄에 묶여 있었다.

옴짝달싹하지 못하게 견고하게 묶인 자들이지만, 자꾸 난폭하게 움직이려 해 주변의 병사가 창대로 몇 번이나 후려치고 나서야 잠잠해졌다.

주변의 군사들이 포로들의 모습이 신기한 듯 웅성거리며 쳐다보고 있었다.

배중손과 장수들이 군영 건물 안에서 나왔다.

“가서 쉬거나 할 일을 하라.”

휘하 장수들이 몇 번 호통을 치고 나서야 운집한 병사들이 사라졌다.

“이들의 몰골이 실로 괴이합니다.”

그들을 잡아온 낭장 이순공이 천천히 그들의 활과 창, 돌팔매 같은 무구를 살피며 말했다.

“기술이 조악함이 고려 북쪽 궁벽한 곳에 살던 여진이나 거란의 잔당들, 혹은 왜구들하고도 비견할 바가 되지 않습니다.”

당연한 말이었다.

전자의 유목민들은 야만적이라 하나 중원에 비해 그렇다는 것이었지 요(遼)과 금(金)같은 일세의 대제국을 만들었던, 앞으로도 만들 수 있는 저력을 가진 부족들이었다.

왜구들 또한 나름대로의 문명을 가지고 있어 잊을 만하면 고려의 해안가를 약탈하는 일이 일어났다.

송조(宋朝)의 남쪽에도 야인들이 살고 있었다 하나 그들 또한 마찬가지.

“응당 척후들이라면 기수를 운용하는 것이 순리지만 군마 또한 가지고 있지 않았나이다.”

심지어 갑주조차 없었다.

그냥 나신에 동물 가죽을 엉성하게 덧댄 의복을 입고 있는데 갑주의 방호력은 없다고 봐도 무방하리라.

철기조차 보급이 안 된 모양인지 활촉은 모두 갈은 돌 혹은 날카로운 뼛조각이었고 창날도 마찬가지였다.

궁술이 발달한 고려인들의 눈에는 활은 활 같지도 않았다.

위협적인 것은 활보다도 오히려 원시적인 돌팔매가 더 위험해 보였다.

다친 자도 투석(投石)에 맞아 다쳤다 하니.

밧줄에 묶인 자가 재갈 너머로 무어라 큰 소리로 떠들었다.

“피부색과 얼굴의 생김새가 우리와 비슷한 것 같으면서도 이질적이다. 이들의 언어를 아는 자가 있는가?”

“......”

무신들은 멀뚱거리며 중손을 쳐다보고 있었다.

기대한 그의 잘못.

어떠한 정보도 캘 수 없다는 암담함과 휘하 무장들에 대한 답답함으로 중손이 크게 한숨을 시며 말했다.

“정체를 알 수는 없으나, 적대적인 자들이 출몰하니 그동안 소홀했던 군의 기강을 다시 엄중히 하는 것이 좋겠다. 농사일도 중요하나 경계는 군의 기본이니 제장들은 이를 명심하여야 할 것이다.”

“예 장군.”

“저 자를 하옥하라. 다만 죽지 않게 관리하는 것이 좋겠다.”

“명을 받들겠습니다.”

해산하여 총군영 건물 안으로 들어온 중손도 거치대 위의 갑주를 착용하며 몸가짐을 바르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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