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미에 떨어진 삼별초(4)
대체 나는 왜 이 회의를 가고 있으며, 뭐 이리 익숙하게 행동하고 있는 것일까.
이게 적응력 특성의 실체인가?
의문도 품지 않고 그냥 주변 환경에 적응을 해버리는?
이 몸으로 다시 현실로 돌아간다면 올림픽 메달이라도 딸 수 있겠는데.
수많은 잡념들이 범람했지만, 어찌 용케 잘 찾아 가는 모양이다.
가는 길 주변에 자신보다 더욱 더 고위급 장수들이 간혹 보여 낭장의 계급에 부풀었던 가슴이 약간 사그라들었다.
말단 사졸로 오지 않았다는 것 자체에 감사함을 느껴야 하는 부분도 있겠지만.
낭장이라는 무관직은 참 애매한 관직이었다.
계급체계가 아직 익숙지 않지만 삼별초의 계급을 대충 해석하면 이러했다.
용호군(龍虎軍), 응양군(鷹揚軍) 등 동시대의 고려 중앙군의 편제와 비슷한 것이 있었으며 다른 것이 있기도 했다.
지유(指諭)는 지휘관이란 뜻으로 범용적으로 쓰이는 표현이었다.
산원부터 령, 그리고 그 위까지 골고루 쓰이는.
배중손이나 노영희, 이신손이나 유존혁 등 별초의 수뇌부들도 쓰이고, 자신도 부하 병졸에게 지유의 호칭으로 불리기도 했다.
삼별초의 총지유는 현재로썬 배중손이라 볼 수 있었다.
그 밑에 령(領)을 이끄는 장군과 중랑장. 이들은 독립된 부대의 지휘관으로 천인장급 관직이다.
그 밑에 중견 지휘관급 낭장(郎將)이 있었고
낭장과 비슷하지만 조금 더 낮게 취급되는 별장(別將).
낭장과 별장을 보좌하는 산원(散員)이라는 관직도 있었다.
이들은 대충 부대 규모가 다르지만 백인장, 이백인장 정도로 볼 수 있었다.
그 밑에 위(尉)나 혹은 오위, 교위로 불리는 오십인장급 지휘관이 있었고
마지막으로는 십인장, 이십인장급 지휘관 대정(隊正)이 존재했다.
하지만 군의 체계가 21세기 한국처럼 깔끔하게 정돈된 것은 아니라, 혼선이 있는 부분이 존재했다.
자신의 비유도 솔직히 마음에 들지 않았다.
신의군과 좌우별초의 편제가 사소하게 달랐다.
그 규모가 차이가 나는 것도 있었으며 이질적인 출신 성분도 이유가 되겠지.
이곳에 도착한 삼별초 군은 만 명이 살짝 넘었다.
자신이 알고 있기로는 만 몇 백 명이 되는 것 같다.
그럼 대충 따지면 오륙십 명의 낭 별장 급 지유들이 있는 셈이다.
그 모든 부대의 지휘관급 이상 무장들이 한 곳에 모이면 실로 바글바글할 것이다.
다행인지 지금 이곳에는 신의군 소속 낭, 별장들만 모여 있었다.
그 숫자는 자신 포함 열둘.
이들은 모두 눈빛이 형형하고 제각기 짙은 살기를 뿜고 있었는데, 상민으로써는 이렇게 짙은 혈향을 맡아 본 적이 없었다.
끝없이 이어지는 전투에 개인정비를 할 시간이 부족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 혈향에는 비단 물리적, 생물학적 냄새 말고도 심리적 냄새도 자욱하게 나고 있었다.
자신이 갔다 왔던 군대와 비교할 수조차 없었다.
화력의 우위를 논하는 것이 아닌 오로지 마음가짐을 비교한다면.
이들은 그야말로 전쟁기계다.
피도 눈물도 없이 적들을 죽여 왔고 앞으로도 도륙할 수 있는 기계들.
그리고 문득 자신의 갑주를 보니 그 누구보다도 더욱 핏물이 짙게 베여 있었다.
이 공기들이 갑자기 답답하여 주변을 둘러보다가 저 구석에 자신과 면식이 있는 사람이 있어, 그 곁으로 자연스레 다가갔다.
“강휘 형님 오셨습니까?”
자신의 자를 말한 자는 친한 신의군 소속 별장 이문경(李文京)이었다.
친한 사람끼리는 이름이나 성 대신 자나 호로 더 많이 부르는 것 같다.
강휘(强輝)라.
내 이름보다 훨씬 좋아 마음에 들었다.
마찬가지로 그의 자를 불렀다.
“준원(俊瑗)이.”
시간이 지나고 이곳이 익숙해지자 기억도 천천히 정리되고 있었다.
친한 척 하는 것이 어색하지가 않았다.
문경의 모습은 밝아 보였다.
“뭐 들은 것 좀 있나?”
미리 와 있던 문경에게 슬쩍 물어보니, 그가 약간 어색한 듯 웃었다.
“저도 잘 모릅니다. 근무자라 바로 온 것뿐이라.”
그래도 그의 얼굴이 약간의 기대감이 젖어 있었다.
문경이 주변을 둘러보고는 고개를 숙이고 귓속말을 할 찰나 군막 바깥으로 삼별초 총지유 배중손과 신의군도령 김통정이 나왔다.
이들의 얼굴은 기억 속에 있었으나 이렇게 가까이 보는 것은 처음이었다.
둘 모두 나름대로 국사 시간에 짤막하게나마 언급될 정도로 유명한 자였으니, 굉장히 신기했다.
중랑장들, 낭장들과 별장들 모두 예를 갖추며 입을 다물고 자세를 바르게 했다.
지유의 말을 기다리며.
하지만 중손이 몇 마디를 하자, 삽시간에 주변이 소란스러워졌다.
“이곳은 우리가 해도재천(海島再遷, 멀리 떨어진 섬으로 도읍을 옮김)으로 삼으려 했던 진도가 아니며 삼남의 지방 또한 아니다.”
무슨 소리를 하시는 거지?
다른 장수들도 의문을 느꼈는지 서로를 쳐다보기 시작했다.
“또한, 북적과 개경의 배신자들 또한 보이지 않으며 백성들의 고을 또한 찾을 수 없었다.”
무장들이 수군대었다.
“정말인가?”
“총지유께서 우리에게 거짓말을 할 이유는 없으실 텐데.”
“모두 그만!”
통정의 고함에 모두 다시 합죽이가 되었다.
중손이 다시금 입을 열었다.
“제장들의 궁금함은 나도 잘 알고 있다. 다만 정찰을 한 후에 곧이어 군영을 물리고 더 입지가 좋은 곳으로 가야 하니, 선별하는 인원들을 제외한 자들은 경계를 하되 그동안 쌓였던 피로를 풀고 있으라.”
제장들의 표정이 밝아졌다.
아무리 그들이 정예하며 수많은 사선을 넘어왔다 하나, 몽골군의 공포는 실로 무서워 죽음의 그림자를 가까이 끌어안고 살았던 군의 사기가 당연히 좋을 수 없었다.
문턱까지 왔던 죽음이 물러가자, 모두들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 있었다.
너무나 오랜 만에 느끼는 평화.
칼날처럼 예리했던 분위기가 확연히 사그라졌다.
그나저나 여기가 고려가 아니라면 대체 어디라는 거지?
저 자들이 거짓말을 하는 것 같지 않았다. 할 이유도 없을 거고.
실제로 자신도 안개 이후 눈을 떴지만 작은 배에서 본 것이 있어 이곳이 서해안, 진도 근처나 제주도가 아닌 것을 알고 있었으니까.
섬은 정말 눈 씻고 쳐다봐도 없었다.
해안가만 보면 동해안 어디인 것 같은데.
그리고 자신이 알기론 지금 날짜는,
‘경오(庚午, 1270)년 팔월 십칠일이라 했지.’
근데 꽤 시원하다.
통정과 중손은 무언가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신의군의 지휘권에 대한 재량권을 줄 터이니, 그동안의 전투로 손실된 부대를 통폐합하여 새롭게 조직을 가다듬는 것이 좋겠군.”
“나머지 별초 조직은 어떻게 하실 계획이십니까?”
“후우... 그것은,”
중손이 한숨을 내쉬며 무언가 푸념하는 소리가 들렸다.
잡담 소리로 주변이 시끄러워 잘 들리지 않았다.
중손이 먼저 떠나고 무언가 생각하던 통정은 이윽고 종이를 들고 앞으로 나왔다.
“우리의 임무는 군영의 경계이다. 호명하는 자는 앞으로 나와 임무를 받으라.”
“낭장 원종강, 별장 이세온....”
“등은 북쪽의 경계를 맡고...”
“낭장 황사의, 별장 강숙....”
“등은 서쪽의 경계를 맡으며...”
차례가 지나고 상민과 문경이 호출되었다.
“낭장 김상민, 낭장 박량, 별장 이문경, 별장 정찬승은 앞으로 나와 명을 받으라.”
그들이 호명되자 서둘러 앞으로 나갔다.
“그대들은 황실의 존인(尊人)에 대한 호위를 해야 할 것이다. 넷 모두 교대로 황실의 경호를 맡는다.”
별 표정의 변화가 없는 상민과는 반대로, 문경은 똥을 씹은 얼굴로 명을 받고 들어갔다.
그러고는 나직이 중얼거렸다.
“이런, 썩을.”
“무엇 때문에 그러냐?”
문경은 업무 명령이 끝나 해산하고 있는 지휘부의 어수선함을 틈타 그의 귓속에 대고 말했다.
“사실상 승화후(承化侯) 왕온(王溫)은 허수아비잖습니까, 그런 사람 호위하는 것이 뭐 그리 중요한 일이라고. 게다가 한번 이렇게 고정 된 이상 앞으로도 우리에게 저 치들 호위하라는 명령 계속 내리는 것 아닙니까?”
“...큰일 날 말이다.”
아니, 아무리 허수아비라지만, 그래도 나름 고려왕으로 받들어 모신 것 아니었나.
누가 들을까봐 서둘러 그의 입을 막고 군막으로 돌아왔다.
그때까지도 자신의 뒤를 졸졸 따라 불평하던 문경은 상민의 천막 옆에 위치한 자신의 천막에 들어가는가 싶더니 오히려 한 사람을 더 대리고 왔다.
“강휘 형님. 들어가도 되겠습니까?”
상민이 얼떨결에 대답하자 군례를 취하며 들어온 자는 곽연수(郭延壽)로, 문경의 산원이었다.
이 자도 친했는데 친할수록 더더욱 격식을 차리는 용길과는 다르게 눈매가 온화하고 서글서글함이 있어 다른 자들과도 두루두루 붙임성이 좋았다.
용길까지 합류한 넷은 죽이 맞아 작은 탁상에 둘러앉아 오랜만에 화담을 나누었다.
당장 근무는 내일부터라니, 오늘 하루는 모두 편하게 쉴 수 있다.
다른 장수들도 오늘 하루만큼은 푹 쉬라는 명령을 받았으니 실컷 늘어져 있겠지.
전란 중 귀한 술이 자신들에게 있을 리 없었고 설령 있더라도 마시라고 위에서 허락한 것도 아니었다.
대충 물을 들이켜도 분위기에 취하는 느낌이라 서로 자기 할 말만 하는 것이 오랜 지기와 같아 상민은 마음에 들었다.
물론 고려의 왕에 대한 험담은 막았지만.
이 시대 사람들과 지내다 보니 느낀 적이 몇 가지 있었다.
인성도 그러했는데 옛날 사람들이라 아직 혐성이 덜 든 것인지 아니면 무신들이라 상대적으로 순진한 것인지 사람들이 대체적으로 표정관리를 잘 하지 않는다, 혹은 감정에 솔직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포커페이스가 무기의 일종이라는 사실은 분명 서책과 경전으로써 전해지는 내용이라 수많은 전란에 시달린 동시대의 사람들에게 그런 고차원적 자기관리를 기대하긴 어려운 부분이 많을 것이다.
하물며 나름대로 잠시나마 사회생활을 한 현대인인 상민인데.
문경은 그 중에서도 표정이 솔직하고 가식이 없어 수다스러움이 자신의 친한 동생들을 보는 듯 했다.
그냥 사고방식이 어리다는 뜻이다.
자신보다 계급도 낮고 어리지만 나이는 분명 적지 않았다. 스물 셋 넷은 된다 들었으니까.
고려인 귀족 평균 수명이 사십세 정도였고 전란의 시기에는 더 짧았다 들은 기억이 있다.
그러니까 지금으로 따지면 스물 넘으면 중년인 셈인가?
아 물론 수명이 짧다고 노화가 빨리 오는 것은 아니며 호르몬 또한 제 나이에 걸맞게 분비되고 있으니 현대인의 생각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은 있겠지.
하지만 저리 어려 보여도 실전압축근육이 오밀조밀하게 꽉 들어찬 사람이다.
심지어 고려군 내에서도 칼 잘 쓰기로 소문이 자자한 용장이란다.
상민은 문득 치밀어 오르려는 호승심을 억눌렀다.
젊어져서 그런가, 아니면 자신이 지정한 특성 때문인가, 자신이 이해할 수 없는 감정들이 불쑥불쑥 들기도 했었다. 심지어는 가끔 호르몬이 날뛰는 것 같은 기분도 들었다.
제발 나대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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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뇌부들의 긴급 회의가 열렸다.
진도에 자리 잡을 수 없게 된 삼별초는 큰 문제에 봉착해 있었다.
사실 삼별초의 난이 명부를 가져간 왕정으로 인해 즉흥적으로 일어난 감이 없잖아 있었지만
그 계획은 이미 꽤 오래 전부터 수립되어 있었다.
진도는 예전부터 그 계획의 중심 거점이었다.
고려시대의 세수는 대부분 육상이 아닌 해상으로 운반되었고 삼남의 물류와 조운이 통과하는 길목에 위치한 진도는 먼 옛날부터 전략적 가치가 매우 중요했다.
또한 삼남과 그 근처의 땅들은 최씨 무신정권 시절부터 그들에게 부역해온 야별초들의 앞마당이나 다를 바가 없었다.
진도 자체도 풍요로운 섬이라 꽤 많은 물자를 섬 안에서 스스로 생산할 수 있었다.
서해안을 남하하며 아산의 하양창, 서산의 영풍창, 임피의 진성창, 나주의 혜릉창, 부안의 안흥창, 영광의 부용창을 죄다 털어버린 삼별초이지만 대군을 운용하면서 드는 식량은 정말 무시무시할 정도로 많아 언제 소진될지 몰랐다.
원래의 계획은 진도에 터를 잡고 삼남에 빨대를 꽂아 백정들을 착취하며 저항을 이어가려는 하는 계획이었겠지만 이미 첫 단추부터 크게 어긋난 셈.
“서둘러 파종을 해야 하겠소.”
“맞습니다. 정찰대의 보고가 들어온다면 농사를 지을 만한 땅으로 바로 움직이는 것이 좋겠습니다.”
별 이견이 있을 수 없었다.
그렇다면 그들이 모여 있는 이유는 무엇이냐 하면.
하나의 점괘 때문이었다.
저번에 그들에게 별자리의 이상함을 알려주었던 판태사국사 안방열이 별초들이 봉기한 직후 태조(왕건)의 어진 앞에서 점괘를 친 적이 있다 했다.
점괘의 결과는 반존반망(半存半亡).
안방열은 이것을 망하는 것은 육지로 나가는 자들이고 존하는 자들은 별초를 따를 자들이라 해석하며 스스로 별초의 무리에 합류했다.
또한 이 점괘를 고려시대에 유행했던 도참설(圖讖說) 중 용손십이진(龍孫十二盡) 향남작제경(向南作帝京)과 연관지었다.
뜻을 풀이해보면, 용손(태조)의 혈통이 12대에 끊어지고 남쪽에 황제의 수도가 건설된다는 뜻이겠다.
일견 웃기는 말이다.
심지어 고려왕 왕정은 고려의 24대 왕이었으니까.
남북조시기 당의 건립을 예언하며 크게 유행하게 된 십팔자위왕(十八子爲王)설과 비슷한 참설이었으며 국가에 큰 난리가 일어날 때마다 매번 반복되는 다소 뻔한 이야기였을 뿐이었다.
그랬었다.
적어도 엊그제까지만 하더라도.
처음 이 예언을 들었을 때, 무장들은 별로 믿지 않았다.
다만 이것을 진도에 가 무지한 백정들에게 퍼트려 별초들의 정부에 대한 정당성을 이용하는 것으로 써 먹으려 한 정도였다.
하지만 지금의 상황은 완전히 달랐다.
이곳이 남쪽인지는 몰랐으나 정녕 새로운 땅에 와 버렸으니까.
이곳에서는 점괘와 도참설을 이용해 먹을 삼남의 백성들이 존재하지 않았다.
그들이 쓰고 있는 가면을 쓸 이유가 없어진 셈.
또한 참설 그 자체의 흡입력과 설득력이 생기게 되었다.
한번 믿음을 가지게 되어 그 효력을 발휘하기 시작한 도참설의 그 위력은 서서히 무장들을 감싸기 시작했다.
끈적한 갯벌에 발을 담근 것처럼.
정말로 용손의 혈통, 즉 왕씨가 그 운명을 다한 것일까.
고려왕 왕정이 고려의 스물 네 번째 왕이라고 하지만.
만약 그것이 왕사(王史)의 순서가 아니라 왕사의 가계(家系)를 논하는 것이었다면.
태조 왕건에서 안종 왕욱(王郁)으로, 현종, 문종, 인종을 거쳐 왕정으로 내려오는 계보로 따지면, 분명 왕정은 열한 번째 항렬을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지금 금상(今上) 왕온은...
누군가 침을 삼키는 소리가 들렸다.
“성상(聖上)의 즉위식은 국가적으로 중대한 상황이니, 사정이 이리 여의치가 않을 때에는 열과 성을 다한다 해도 미흡한 점이 있을 수밖에 없소이다. 마땅히 미루어 한 치의 소홀함도 있게 해서는 안 됩니다.”
“동의하오.”
대부분의 장수들이 동의했다.
혹자는 그 이유를 농사일에 찾았으며,
혹자는 그 이유를 방위(防衛)에 찾았고,
혹자는 그 이유를 심지어 근왕(勤王)에 찾았다.
허나 이 자리에 있는 이들 중 그 아무도 당사자에게 여쭈려 하는 자는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