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55
외전 Chapter - 2017 WBC (4)
WBC 2라운드는 빠르게 진행되었다.
도쿄로 무대를 옮긴 대한민국 대표팀의 2라운드 대진은 쿠바, 네덜란드, 일본였다.
왠만하면 2승을 거두면 4강이 확정되는 상황이었기에 대표팀은 선택과 집중을 하기로 했다.
"쿠바전에 올인하고... 유성이는?"
"네덜란드를 한번 더 잡겠다고 하더군요."
"그러면 일본전은 부담감 없이 할 수 있겠군."
2승을 거둔다면 사실상 4강이 확정되니 아무리 일본전이라 해도 무리하게 치룰 필요가 없게 된다.
그렇게 시작된 WBC 2라운드의 첫경기는 마치 2008 올림픽에 버금갈 정도로 치열한 혈전의 연속이었다.
7명의 투수를 투입하는 엄청난 물량전을 통해 가까스로 대한민국 대표팀은 첫 경기에서 승리를 거둘 수 있었다.
그리고 그 승리를 발판으로 다시 한번 네덜란드를 상대하게 된 유성은 다시 한번 그들에게 악몽을 선사하였다.
"똑같은 7이닝. 하지만 투구수는 늘어났군."
"유성의 페이스가 올라온만큼 네덜란드의 페이스도 올라왔으니깐."
60구도 안되는 공으로 네덜란드를 잡아냈던 앞선 경기와 달리 이번 경기에선 79구를 사용하며 2라운드 제한인 80구에 걸릴뻔 했던 유성이었다.
"그나저나 이제 어느정도까지 올라왔지?"
"140 중반. 마일로 하면 90에서 92마일 정도군."
"87에서 89마일 나오던 이전 경기보단 나은 편이지만..."
"이 속도로 폼이 올라온다면 시즌 시작할쯤에는 90마일 후반 정도로 시작하겠군."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빠른 공이었지만 유성이 작년에 최대 104마일까지 던지던걸 생각하면 아쉬운 구속이었다.
어찌되었든 유성은 네덜란드전에서 다시 한번 리드를 가져왔고, 불펜도 무실점으로 틀어막으며 대한민국 대표팀은 조기에 2승을 달성하며 4강을 확정하였다.
"남은 한일전이 문제로군."
그리고 많은 관심을 모았던 한일전은 치열한 접전 끝에 대한민국의 아쉬운 패배로 마무리 되었다.
이미 2승을 획득했기에 조 2위로 4강에 올라가게 되었지만 기대하던 팬들 입장에서는 아쉬운 패배라고 할 수 있었다.
[8년만의 4강 진출. 그러나 아쉬운 일본전 패배.]
- 이제 4강에 올인해야겠네.
- 그래. 4강에서 이기면 박유성이 다시 나올 수 있지.
일본전의 패배는 매우 아쉬웠지만 어찌되었든 4강까지 올라왔고, 김인신 감독도 일본전 패배를 만회하기 위해 4강에 최대한의 전력을 쏟아붙겠다고 이야기한 상태였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유성이 이미 결승 등판을 이야기했기에 가능한 전략이었다.
[한일전에 아쉬운 패배를 거두었지만 8년만에 4강 진출에 성공한 대한민국 대표팀이 결승을 노리고 푸에르토리코와 맞붙습니다.]
참고로 반대편에선 정말 예상대로 미국과 푸에르토리코가 4강에 올라왔다.
일본이 미국과 만나고, 한국은 푸에르토리코와 대결을 하게 된것이었다.
"어차피 6일이나 쉬었으니깐 체력적으로 힘들다 같은 소리를 할 녀석은 없을꺼라 믿는다. 이제 우린 뒤가 없다는 생각으로 유성이 빼고 올인 한다."
준결승부터는 다저스타디움에서 경기가 치루어지게 된다.
그렇기에 하루에 1경기씩만 진행이 되는데 대한민국 대표팀의 경우 첫 경기를 치루기에 하루의 휴식이 있는 상황이었다.
이미 2라운드 이후 일본에서 미국으로 넘어오는걸 감안해도 6일이나 되는 시간이 있었기에 모든 선수들이 출전할 준비가 된 상태였다.
"좋아. 그러면 가자."
2017 WBC 4강 1차전이 그렇게 시작되었고, 이번 대회에서 가장 치열한 접전이 펼쳐진 명경기 중 하나로 마무리 되었다.
두 선발 자원은 물론 왠만한 불펜까지 모두 투입된 그야말로 끝장 승부를 시도한 대한민국 대표팀은 운 좋게도 1회부터 1점을 얻어내며 앞서갈 수 있었다.
이후 빠른 템포로 사용 가능한 투수들을 모두 투입하며 푸에르토리코의 공세를 막아냈고, 8,9회에 나선 주환과 오승훈이 무실점으로 마무리를 해내면서 최종 스코어 3대1로 승리를 거두었다.
다시 말해 역대 2번째 WBC 결승 진출을 달성한 것이었다.
이렇게 되다보니 가장 많은 선수를 보낸 KBO의 베어스는 눈 앞이 흐릿해지는 기분을 느꼈고, 시카고 컵스도 유성이 결승 등판을 하게 되자 언론을 통해서 고통을 표현하기도 했다.
"새 시즌에 더 관리 하면서 써야겠군."
"그나마 페이스는 천천히 올려서 큰 문제는 없을듯 합니다."
"안 그래도 지난 시즌에 던진 이닝이 포스트시즌까지 250이닝에 근접해서 말이지."
새 시즌에도 포스트 시즌에 진출할만한 전력을 유지 중인 컵스였고, 투수진의 중심을 잡고 있는 유성이었기에 최소 2경기는 감당해야 할것이었다.
"그래서 시즌 200이닝 제한을 걸려고 했는데 잘못하면 180이닝 정도로 끊어야할지도 모르겠군..."
"또 계획을 짜둬야겠군요."
"그래. 이럴줄 알았으면 어떻게든 막는거였는데..."
어찌되었든 끝내 결승에 진출한 대한민국 대표팀은 하루의 휴식을 최대한 활용하였다.
유성이야 그동안 결승에 맞춰서 준비했지만 다른 선수들은 매 경기를 위해 빠르게 폼을 끌어 올려야했기에 이 휴식은 결승전을 앞두고 이로운 쪽으로 작용하게 되었다.
"이제 마지막 경기만 남았네."
"그러게요."
"자신 있지?"
"자신 없다고 하면 어떻게 하실려고요?"
"또 총력전으로 가야지."
한번 해봤으니 2번째도 충분히 할 수 있다는 이야기였다.
물론 유성이 그리 쉽게 밀릴 일은 없었기에 그런 상황으로 가지는 않을 것이다.
[2017 WBC에 대한민국 대표팀이 8년만에 결승전에 올라왔습니다.]
[과거에는 일본과 결승전을 치루었는데 아쉽게 졌죠.]
[네, 그때 정말 아쉬었는데요. 이번에는 미국과 결승을 치루게 되었네요.]
"좋아, 가자."
이번에야말로 WBC 우승을 거두기 위해 선수들은 각오를 다지고 마운드로 향했다.
[2017 WBC 결승전 양팀의 투수들에 대해 먼저 이야기해보죠.]
[먼저 결승에 올라온 한국은 예상대로 박유성이 선발로 나섭니다.]
[1,2라운드에 65구와 80구 제한에도 불구하고 7이닝씩 틀어막는 괴력을 보여주었는데요.]
[결승에선 100구로 제한이 늘어났기 때문에 조심스럽게 완봉 가능성도 점쳐지고 있죠.]
팡!
마치 선전포고를 하듯 마운드에 오른 유성은 연습 투구에서 93마일(150km)이 기록된 공을 던졌다.
[박유성의 경우 이번 WBC에서 자랑거리인 강속구가 전혀 안 나왔는데요.]
[그래도 구속은 꾸준히 올라오고 있고, 앞선 경기에서 보았듯 새로운 방식으로 박유성 선수는 성과를 냈습니다.]
[네, 맞춰잡는 피칭처럼 보이지만 그와중에 삼진은 잘 잡아냈죠.]
"이정도면 올스타 2군 정도일려나."
마운드에 올라서 미국의 타선을 떠올린 유성은 플레이볼 선언을 기다렸다.
그리고 시간을 확인하던 주심이 이내 선언하였다.
"플레이볼!"
초구는 93마일이 기록되는 포심이었고, 유성의 스타일대로 초구부터 스트라이크가 만들어졌다.
"역시 박유성이군."
선두 타자는 디트로이트 타이거즈의 이안 킨슬러.
이번 대회 미국의 1번 타자로써 활약하고 있는 메이저리그 최고의 2루수 중 하나인 선수였다.
그런 그였기에 단 하나의 공만을 본것으로도 100%가 아닌 유성을 공략하기가 쉽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애초에 1,2라운드에도 조건은 비슷했어. 그런데 유성이 그런 성적을 만들어냈으니... 녀석은 이번 시즌에도 엄청난 기록을 쓸꺼야."
"WBC 후유증이 걸리겠지만 말이야."
나름 대비한다고 페이스 조절을 했지만 이런식으로 준비하는 것도 처음이었기에 분명히 시행착오가 생길 수 밖에 없었다.
"다음 대회에 또 나올 가능성은 낮지만."
그 말처럼 유성도 그동안 대한민국이 WBC 우승을 거둔적이 없었던 점을 염두에 두었기에 1회성 참가라는걸 어느정도 못 박아둔 상태였다.
그 이야기를 벌써부터 할 필요는 없었기에 협회는 조용하게 있었지만 유성은 결승 이후를 염두에 두고 있었다.
팡!
"큭"
다만 지금은 경기에 집중을 해야하니 유성은 생각을 지우고 빠르게 승부를 이어갔다.
볼카운트는 2스트라이크가 만들어졌기에 유성은 망설임 없이 바로 승부를 보았다.
[헛스윙 삼진! 2개의 포심 뒤에 스플리터로 삼진을 뽑아내는 박유성!]
[박유성의 정석 패턴 중 하나인데요. 구속이 시즌보다 느림에도 공의 위력은 여전하네요.]
[네, 지금 박유성 선수를 보면 구속은 아직이지만 구위는 거의 시즌 수준에 근접한듯 하네요.]
거기서 유성을 잘 아는 사람들은 지금 유성의 폼이 어느정도인지 알 수 있었다.
"악취미라고 해야할려나?"
"구위가 시즌 수준에 근접했는데 저 구속이면... 명백하게 힘을 아끼고 있는거지."
"그래. 애초에 지금 시기라면 구속이 90마일 후반이 나와야해."
거리 상 들릴 수가 없는 그 말을 듣기라도 한건지 2번 타자인 애덤 존스를 상대로 유성의 구속이 바로 95마일로 올라왔다.
"이거..."
"시즌 준비는 거의 끝난 모양이군."
슬라이더 2개가 연달아 들어왔다.
하나는 헛스윙으로 스트라이크가 되고 다른 하나는 타자가 가까스로 참아내면서 2S-1B이 되었다.
하지만 이 정도는 100구의 제한이 걸린 유성에게 딱히 문제 없는 볼카운트였다.
[박유성 선수가 KBO 시절에 내내 투구수 제한이 걸려있었다고 하더군요.]
[3년 내내 말인가요?]
[네, 그와중에 이닝을 계속 늘려서 200이닝 시즌까지 만든건 놀라울 따름이죠.]
그러한 제한들은 당시에 아직 어렸던 신체를 보호하기 위한 차원이었지만 그런 상황에서도 어떻게든 성장해온 유성이었기에 지금 시점에서 이런 제한은 우수울 정도였다.
그렇기에 다음 타자인 크리스티안 옐리치도 유성에게는 그렇게 어려운 상대가 아니었다.
체인지업을 통해 변칙적으로 승부를 시작했지만 나머지 2개 공은 포심을 구석에 정확하게 꽂아넣으면서 다시 한번 삼구 삼진을 뽑아내는 모습을 보였다.
그렇게 유성이 1회 초에 던진 공은 단 10개에 불과했고, 미국은 시작하자마자 큰 압박을 받게 되었다.
"역시 어렵네."
"작년 MVP라... 설령 지더라도 경험을 쌓기에 이 이상으로 뛰어난 상대는 없겠지."
다른 상대도 아니고 그 유성이 상대였기에 미국 선수들도 어느정도는 내려둔 분위기였다.
그렇기에 미국의 선발로 나서는 마커스 스트로먼은 오히려 유성과의 대결로 경험을 얻겠다고 이야기하고 있었다.
빠르게 1회 말로 이어진 경기.
대한민국 타자들은 경기에 나서기 전에 유성에게 나름의 정보를 들었다.
"리그가 달라서 붙어본적은 없지만 인터리그 덕분에 자료를 볼 시간은 충분했죠."
"그래? 그러면... 조언 좀 받아볼까?"
"구속도 빠른 편이고 제구도 좋고, 땅볼 유도 능력도 좋은 녀석이라 솔직히 쉬운 상대는 아니네요."
"그건 예상했어."
지난 시즌의 성적과 WBC 중의 모습 그리고 유성이 아는 그의 미래까지 종합하여 생각을 정리한 유성은 선수들에게 차근차근 공략 포인트를 잡아주었다.
물론 쉬운 상대가 아니라고 이야기한만큼 아무리 공략점을 잘 포착해도 금방 공략할 수 있는 상대는 아니었다.
"뭐... 백날 들어도 실전이 없으면 결국 모르니깐 붙어보면 알겠지."
"그래. 그래도 신중하게 승부를 펼쳐야하니 일단 최대한 공을 지켜보자고."
그렇게 1회 말로 넘어간 경기에서 대한민국 타자들은 제법 투구수를 늘렸으나 삼자범퇴로 물러나며 1회의 스코어는 0으로 마무리 되었다.
"이제부터가 본격적이겠군."
"어. 서로 탐색전을 했으니깐."
그 말대로 양팀은 2회부터 본격적으로 공세를 나서기 시작하며 진정한 경기 시작을 알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