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기록파괴자-154화 (154/156)

# 154

외전 Chapter - 2017 WBC (3)

2017 WBC 1라운드 대한민국의 2번째 경기인 네덜란드전은 빠르게 4회 초로 넘어왔다.

유성만큼은 아니지만 네덜란드가 선발로 내보낸 밴덴헐크가 4이닝을 충분히 소화할듯한 페이스를 보이고 있었기에 다시 한번 그가 마운드에 올랐다.

"흠..."

이런 상황이다보니 김인신 감독은 고민에 빠졌다.

어차피 밴덴헐크는 이번 이닝이 마지막일 것이다.

그러니 체력 저하 같은건 신경 쓰지 않고 공을 던져 올 것이다.

이번 이닝에 그에게 1점을 뽑아낼지 뒤에 나올 불펜을 노릴지 타자가 타석으로 향하려고 하는 순간에도 그는 눈을 감고 생각에 빠졌다.

팡!

150km가 나오는 초구가 아슬하게 볼이 되었을때 바로 사인을 냈다.

'찬스가 될지 안될지도 모르겠지만... 이 방법은 딱 1번이다.'

1볼이 된 상황에서 나온 사인에 타자는 순간 당황했지만 현재 투수를 공략할 마땅한 방법이 없었기에 벤치에서 나온 사인을 받아들였다.

[자, 여기서 번트 모션을 취하는데요.]

[벤치에서 한박자 늦게 사인이 나온거 같은데요.]

[아무래도 벤치에서는 생각이 많을 수 밖에 없으니깐요.]

승리를 보장하는 필승카드가 있다고 해도 결국 점수를 못 내면 무용지물이 된다.

그런만큼 여기서 작전을 쏟아내서라도 1점을 짜낼 필요가 있었다.

그래서 이 1볼 상황에서 나온 번트 모션에 숨어있는 작전이 통하는게 중요했다.

'무슨 생각이지?'

지금 박유성의 페이스라면 6이닝 정도는 가볍게 소화할 것이다.

그러니 무엇인가를 시도할것이라는건 예상했지만 지금의 작전은 예상이 어려웠다.

"주자라도 있으면 보내기 번트든 뭐든 생각하는데 주자도 없는 상황이고..."

신중하게 공을 던지면 좋겠지만 이미 초구를 볼로 써버렸기에 밴덴헐크는 2구째에 바로 스트라이크를 집어 넣어야만했다.

팡!

번트모션을 취하던 타자가 배트를 빼고 가만히 지켜본 덕분에 1S-1B이 만들어졌으나 의문은 더 늘어났다.

'번트가 아닌건가? 아니면 페이크인척하고 기습 번트?'

또 다른 작전도 머리에서 떠올랐지만 가능성 높은 작전은 아니었다.

저쪽의 타자는 한국이 테이블 세터로 내세울 정도로 컨택, 주루 능력이 뛰어난 선수다.

그런 점까지 감안하여 빠르게 머리를 굴리던 네덜란드 배터리는 1번 더 빼는 쪽을 선택했다.

그렇게 1S-2B가 만들어졌고, 이대로 투구수가 늘어나는듯 했으나 이어진 4구째에서 계속해서 번트 모션을 취하던 타자가 움직였다.

딱!

[페이크 번트 앤 슬래시!]

[2루수가 잡을 수 없습니다! 완벽한 안타!]

작전 성공.

1점이 필요한 입장에서 이번 작전 성공은 점수를 뽑아낼 확률을 크게 끌어 올리는 성공이라고 할 수 있었다.

[오늘 처음으로 무사에 주자가 나가게 되었네요.]

[김인신 감독이 여기서 승부를 걸 모양이네요.]

투구수를 염두에 두고 있기에 불펜이 조금씩 준비를 하고 있지만 헐크가 워낙 안정적으로 던지고 있었기에 급한 모습은 없었다.

"저 속도라면 헐크가 4회를 끝까지 던질 가능성이 높지."

"그러면 이번 이닝에 승부를 보겠군."

한국에서 내로라하는 타자들이 모두 모였다.

그런만큼 김인신 감독은 타석에 들어서기 전에 타자들에게 이야기했다.

"여기서 영웅이 될 필요는 없다."

"네? 아, 알겠습니다."

뒤에 다른 타자들이 있으니 무리할 필요가 없다는 것을 돌려 말한 것을 빠르게 캐치한 덕분에 김인신 감독이 더 많은 말을 할 필요는 없었다.

그래도 타자들은 여기서 점수를 뽑아내야하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부담감을 가지고 타석에 들어섰다.

[무사 1루에서 과연 어떻게 될지...]

[박유성 선수가 버티고 있기에 한국은 6,7회까지도 안정적으로 노려볼 수 있거든요.]

팡!

이 시점에서 152km까지 구속이 올라왔다.

그 모습을 보며 다음 이닝을 준비하던 유성은 생각했다.

'저녀석은 시즌 생각도 안하고 페이스를 쭉 올렸나...'

유성이 평소보다 20km 가까이 낮은 구속으로 던지는 것도 메이저리그의 긴 시즌을 염두에 두고 WBC를 시범경기 대용으로 생각하며 진행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물론 마냥 시범경기와 동일하게 볼 수는 없기에 제구 같은 부분은 좀 더 신경 쓰고 있지만 그래도 전력이 아니라는건 명확했다.

그러나 다른 선수들은 거의 다 시즌 모드라고 할 정도의 페이스였다.

"이래서 메이저리그들이 잘 안 나오지. 그나마 이번에는 규정 변경 덕분에 결승 라운드에선 몇몇은 볼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만..."

이번 WBC부터 각 라운드마다 투수 엔드리를 조정할 수 있게 되었기에 단 1,2경기라면 참가할만한 메이저리거들이 존재했다.

'물론 일단 4강까지 간 뒤에 생각할 이야기지만.'

어느새 2번째 타자는 2S-1B로 몰려있었다.

투구수가 아슬한 감이 있지만 여기서 아웃을 당하면 헐크는 순조롭게 이번 이닝까지 마무리하고 내려갈 것이다.

그때 2번째 작전이 시작되었다.

4구째를 던지려고 하는 순간 타자가 갑자기 번트 모션을 취했고, 동시에 주자가 도루를 시도했다.

그로인해 헐크의 제구가 약간 흔들렸다.

날아오는 공을 쭉 지켜보던 타자가 다시 배트를 물렸고, 공은 살짝 벗어나며 볼이 되었다.

동시에 포수가 2루로 공을 쏘아보냈다.

팡!

"세이프!"

국대 테이블 세터라는 이름에 걸맞는 스피드를 보여주며 순식간에 2루를 훔침과 동시에 볼카운트는 2S-2B로 복잡한 상황이 되었다.

"음... 이거 3개 다 잡기 애매하겠는데."

딱!

[쳤습니다! 외야 깊숙한 곳으로 날아가는 타구! 우익수가 천천히 물러나면서... 잡아냅니다.]

[2루 주자 바로 3루로 갑니다.]

[네덜란드 선수들도 완전히 폼이 올라온게 아니라서 그런지 송구가 좀 벗어났네요.]

[네, 덕분에 안정적으로 1사 3루의 찬스가 만들어졌습니다.]

결국 네덜란드 불펜의 준비 속도가 빨라졌다.

이제 헐크는 1,2타자를 더 상대하는게 한계였으니 말이었다.

"저쪽은 부담감이 엄청날꺼야. 단 1점이라도 주면 규격 외의 괴물이 7이닝 정도까지 틀어막을테고 불펜이 1이닝 정도를 못 막아낼리는 없으니 그대로 오승훈에게 이어지겠지."

"결과적으로 점수를 내주면 게임 끝이라는거지."

유성이 실점을 한다는 가정은 없었다.

그만큼 유성과 네덜란드 사이에 거대한 차이가 존재했기 때문이었다.

[1사 3루의 위기를 맞이하였기에 내야가 조정되는 네덜란드입니다.]

[네덜란드 입장에서 본다면 매우 위험한 순간입니다만 잘 막아내면 역으로 더블 플레이를 만들어낼 가능성도 있습니다.]

물론 이런 상황에서 찬스를 맥 없이 말아먹을 정도로 한국 타자들은 무능력하지 않았다.

딱!

정점에 있는 선수라고 하기에는 아쉽지만 그래도 KBO 최고 중 하나라 자신할만한 선수들이었기에 주자가 들어올 수 있을 정도로 저 멀리 타구를 날려보낼 수 있었다.

[중견수 잡고 바로 쏩니다!]

[하지만 3루 주자가 더 빠릅니다! 가볍게 홈인!]

[길었던 0의 행진이 마무리 되고 4회 초 대한민국 대표팀이 선취점을 획득합니다!]

전광판의 스코어가 1대0으로 바뀌었다.

그와 동시에 네덜란드는 투수를 바꾸었다.

그래도 이닝을 맡겨도 충분했지만 투구수가 제한에 거의 도달했기에 선택한 조치였다.

이어서 마운드에 오른 투수가 초구부터 맞아나가는듯 했으나 우익수가 담장 앞에서 잡아내면서 이닝이 그대로 마무리 되었다.

"유성아. 1점 뽑아냈다."

"네, 이제 더 열심히 막아보죠."

가까스로 나온 선취점은 오늘 경기의 흐름을 단번에 뒤집을 정도로 큰 파급력을 가지고 있었다.

이어진 4회 말 네덜란드 타선은 한바퀴가 돌았기에 더욱 집중력을 끌어 올리며 유성을 상대할 준비를 했다.

그러나 유성은 여전히 140 초반의 구속의 공을 던졌고, 그 공을 확인한 네덜란드 타자들은 그대로 덤벼들었다.

[완벽합니다. 단 9개. 단 9개의 공으로 3타자 연속 삼진을 뽑아내며 이닝을 마무리 하는 박유성입니다!]

이걸로 4회가 끝나며 유성의 투구수는 33구에 도달하였다.

다시 말하면 65구의 제한을 감안했을때 8회까지 혼자서 감당할 수도 있는 투구수였다.

"투구수 남아도 7회까지만 할게요."

"그러거라. 동연아."

"네, 맞춰서 준비 시키죠."

물론 유성은 그렇게까지 던질 생각이 없었다.

7이닝까지만 던져도 선발로써 할 수 있는걸 다 해줬다고 할 수 있기에 김인신 감독도 당연히 유성의 이야기대로 준비를 했다.

"이 페이스면 박유성에게 남은건 3이닝 정도겠군."

"투구수로는 더 갈꺼 같은데?"

"원래라면 시범경기나 하고 있을 시기야. 더 던질 이유는 없지."

"그러고보면 그렇군."

1대0의 리드를 잡고 있으니 이대로 유성이 나머지 이닝도 무실점으로 틀어막을 것이 분명했다.

이런 1점차 접전의 경기에서 유성이 실점한 경우가 손가락으로 셀 수 있을 정도로 적었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한국의 불펜이라면 1이닝 정도는 가볍게 막아낼것이고, 마지막에 나올 오승훈의 존재까지 감안하면 이 경기는 한국이 가져간거나 다름 없었다.

"이 경기 한국이 가져가겠군."

"그렇다면..."

"그래. 소속팀에겐 안 좋은 이야기겠지만 한국은 2라운드로 갈 수 있게 됬어."

그 말대로 유성은 딱 21개의 공으로 3이닝을 더 틀어막으면서 단 54개의 공으로 7이닝 무실점을 기록하는 그야말로 규격 외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거기에 이어서 등판한 주환과 오승훈이 가볍게 2이닝을 마저 막아내며 대한민국은 가장 난관으로 꼽히던 네덜란드전에서 승리를 거두는 것으로 1라운드에서 2승째를 달성하였다.

그것으로 대표팀은 2017 WBC 2라운드에 진출하게 되었다.

이후는 간단했다.

2라운드를 확정한 덕분에 부담감이 사라진 대한민국 대표팀은 3차전인 대만전에 아슬한 모습을 보여주었으나 그래도 순조롭게 대만을 누르며 3전 전승으로 2라운드에 올라왔다.

"2라운드는 도쿄돔에서 진행될꺼야."

"이번에는 일본으로 넘어가는건가..."

"문제는 대회가 길어지면 나중에 시즌 치룰때도 부담이 생긴다는건데..."

"어차피 여기까지 온거 중간에 물러나기에는 늦었잖아요? 이번에는 끝까지 가보죠."

이 말은 우승을 노리자는 이야기였고, 그 말을 한 것은 이번 대회에서 셋업맨 자리를 맡은 주환이었다.

베테랑들은 거기서 깨달았다.

어린 선수들은 이 대회의 결승에 대해 강한 열망을 보이고 있다는 것을 말이었다.

[WBC 2라운드로 접어들었는데요. 8개 팀 중에 어떤 팀이 가장 우승에 근접했다고 보나요?]

[1라운드로부터 시간이 제법 있어서 또 다른 경기력을 보여줄 가능성이 높다고 보거든요.]

[음... 그럼 4강으로 올라갈 팀으로 해보죠.]

한국, 일본, 네덜란드, 쿠바가 도쿄에서 2라운드를 치루고, 도미니카, 푸에르토리코, 베네수엘라, 미국이 샌디에이고의 홈 구장인 펫코 파크에서 2라운드를 치룰 예정이었다.

다만 2라운드까지 며칠의 시간이 있었기에 며칠간의 시간 사이에 선수들은 천천히 페이스를 끌어 올렸다.

[아무튼 4강을 예상해본다면 한국, 일본, 미국에 도미니카 아니면 푸에르토리코로 예상하죠.]

[예상 외로군요.]

[그래요? 그래도 딱히 틀릴꺼라고 생각되지는 않네요. 나머지 3개 팀은 전력상 한계가 보여서 말이죠.]

"그렇다는데?"

"그러고보면 마지막 결승이 벌써 8년 전이네."

"시간 참..."

"그렇게 되었으니 한번 가보자고."

2라운드가 시작되기 전에 대한민국 대표팀은 다시 한번 뭉쳤다.

다른 것도 아닌 WBC 우승을 위해서 말이었다.

그렇게 2라운드가 시작되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