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47
Chapter 54 - 월드 시리즈 (4)
월드 시리즈 3차전은 팽팽한 0의 행진으로 경기가 이어졌다.
하지만 불펜에 여유가 있는 클리블랜드와 달리 컵스는 불펜의 숫자가 적었기에 빨리 승부를 봐야하는 입장이었다.
그렇기에 8회로 접어든 경기에서 유성은 대타로 타석에 들어섰다.
[여기서 박유성 선수를 대타로 꺼내드는 조 매든 감독입니다.]
[이런 흐름이라면 1점으로 승부가 갈릴테니 1차전을 생각하면 박유성 카드는 최고의 대타 카드라고 할 수 있겠죠.]
"이렇게 나온단 말이지?"
곧 바로 클리블랜드 벤치에서 사인이 나왔다.
설마하던 결과였기에 그들을 제외한 모두가 놀랐다.
[고의사구. 설마 이런 장면을 보게 될줄은 몰랐네요.]
[그나마 납득이 되는건 박유성 선수가 겸업을 하면서 타격에서도 엄청난 성적을 보여주던 선수라는겁니다. 실제로 1차전에 유일한 점수를 만들어냈으니 어찌보면 당연한 선택일지도 모르겠군요.]
"이거 참..."
"교체다."
"후... 어쩔 수 없네요."
단 한방을 원했으나 고의사구로 피해버렸으니 컵스 입장에서 유성을 계속 그라운드에 놔둘 이유가 없었다.
[그러고보면 컵스는 25인 로스터지만 박유성 덕분에 야수를 1장 더 쓰는것 같은 효과를 가지고 있네요.]
[듣고 보니 그렇네요. 투수 분야는 긴 이닝을 버텨주면서 컵스의 모자란 불펜을 커버하고, 타격에서도 영향력을 보여주고 있으니...]
비록 고의사구로 출루 하는 것에 그쳤지만 이걸로 기회를 살릴 수 있기에 컵스는 긍정적인 분위기였다.
하지만 어찌어찌 주자를 3루까지 보냈음에도 결국 득점에 실패하며 컵스는 결정적인 기회를 놓치고 말았다.
딱!
"졌군."
결국 역으로 1점을 내준 컵스가 그대로 막히면서 3차전의 결과는 클리블랜드의 1대0 승리로 마무리 되었다.
[팽팽한 투수전의 결말은 클리블랜드의 승리였습니다.]
[컵스로써는 여러가지로 타격이라 할 수 있겠는데요.]
유성의 대타 출전 정도는 예상 범위였지만 불펜을 대거 소진한것이 타격이라면 타격이라 할 수 있었다.
"하루 휴식이라기엔 이동 시간이 있으니깐 온전한 휴식이라기엔 힘든 경우가 있어."
"그러면..."
"2차전에는 얼마 소진이 안 되었지만 3차전에도 이렇게 소모했으니 슬슬 의식을 해야겠지."
클리블랜드가 2승 1패로 앞서가기 시작한 가운데 클리블랜드는 4차전 선발로 클루버를 내세웠다.
2승 1패로 앞서가는 상황에서 클리블랜드가 왜 불펜의 숫자를 늘렸는지 알 수 있는 등판이었다.
[3선발 체제네요.]
[네, 이미 클리블랜드는 2,3차전을 잡은 상태이고 박유성 선수가 나올 5차전을 감안하면 6차전쯤에 끝을 보겠다는 의미인듯 합니다.]
겨우 3일 휴식 뒤의 등판이었지만 클루버는 자신이 왜 이러한 역할을 담당하였는지를 잘 보여주었다.
팡!
"스트라이크!"
[다시 한번 6이닝 무실점! 3일 휴식에도 불구하고 그는 에이스다운 피칭으로 팀의 3승째를 만들어냈습니다!]
[컵스가 내세운 헨드릭스가 못 던진건 아니지만 경기 내내 어려운 승부를 펼치면서 5이닝 1실점의 성적을 거두었고, 이후 불펜까지 흔들리면서 점수는 3대0까지 벌어지게 되었습니다.]
"이번 월드시리즈는 점수가 정말 안 나오는군."
"그러게. 4차전까지 나온 점수를 전부 합해도 9점 밖에 안되니..."
그나마 4차전은 아직 경기가 남아있기에 뒤집을 가능성도 있었지만 지켜보고 있던 컵스 팬들은 어렵다는 것을 느끼고 있었다.
결국 7회부터 9회까지 극적으로 1점을 만회하기는 했으나 대신 불펜이 3점이나 더 헌납하면서 최종 스코어 6대1로 커브는 4차전마저 헌납하고 말았다.
[이제 시리즈는 거의 클라이막스로 향하고 있군요.]
[컵스 타선이 생각 이상으로 점수를 못 내고 있네요.]
[네, 이거 예상외로 클리블랜드가 1,2점만 뽑아내면 5차전에 바로 끝을 내버릴 가능성도 있겠는데요?]
"그건 안될 이야기지."
1차전에 일부러 90구 이전에 내려온건 이날을 위한 것이었다.
그러면서 유성의 머리 속에 한가지 가설이 스쳐지나갔다.
***
[이날이 오고 말았군요.]
[어쩌면 여기서 시리즈가 마무리 될지도 모르는 상황인데요. 월드시리즈 5차전이 잠시 후에 시작됩니다.]
[궁지에 몰린 시카고 컵스는 당연히 박유성을 내보냅니다.]
"니가 등판하는 경기는 대주는 경기다?"
"짐작이지만..."
"흐음... 틀린 이야기는 아니야."
실제로 클리블랜드는 유성이 나서지 않은 3경기를 모두 가져갔다.
그것도 강력한 불펜의 힘으로 말이었다.
그러한 점을 떠올리면 오늘 경기에서도 힘을 빼고 덤벼올 가능성이 높았다.
"6차전에서 끝내기 위해 덤빈다고 가정하면... 그래도 5차전에 녀석들은 나름 전력을 사용할 수 밖에 없을꺼야."
"그래, 유성이 아무리 잘 던져도 공략 가능성이 0인건 아니니깐."
포스트 시즌으로 한정하면 0의 방어율을 유지하고 있지만 이러다가 점수를 내준 적이 많았기에 결국 오늘 경기의 관점은 최대한 빨리 컵스 타선이 터져주는 것이었다.
"지명타자 룰로 인해서 유성이 타석에 들어서지도 못하니깐."
"우리가 초반부터 몰아쳐야해."
"불행 중 다행인건 저쪽 선발이 그리 좋은게 아니라는거겠지."
트레버 바우어.
클리블랜드의 3선발 중 하나로 이번 시즌에 괜찮은 모습을 보여준 투수였다.
하지만 그의 여러 행동은 많은 논란을 불러왔는데 특히나 이번 포스트 시즌에서 가장 많이 거론된 선수 중 하나이기도 했다.
챔피언십 시리즈를 앞두고 드론을 만지다가 다치며 시리즈를 망치고 그 여파로 월드시리즈 2차전에도 안 좋은 모습을 보인것이었다.
"챔피언십 시리즈 3차전에 월드시리즈 2차전을 연달아 망쳤어. 녀석이 좀 맛이 간거처럼 보인다지만 영향을 안 받았을리는 없어."
"그래도 그렇게 부담 가지지는 마. 유성이 마운드에 있는 이상 점수를 줘봐야 1점 정도니깐."
사실 그 1점조차 그동안 제대로 못 뽑아낸 컵스 타선이지만 오늘 경기를 앞두고 생각을 정리하며 집중력을 끌어 올린 상태였다.
"괜찮겠나?"
"네. 오늘 컨디션도 괜찮거든요."
아직 컵스는 패배한것이 아니었다.
선수들도 저렇게 분위기를 끌어 올리고 있었고, 3연패를 한것처럼 3연승을 할 수도 있었기에 유성은 차분하게 등판 준비를 마무리했다.
딱!
"쳇."
"괜찮아. 아직 기회는 많아."
1회 초의 공격은 아쉽게 점수가 나오지 않았다.
그래도 투수의 상태를 파악하기에 충분했다.
바우어의 상태로는 긴 이닝을 소화할 수 없다.
아마 클리블랜드 불펜이 더 빨리 나올게 분명했다.
"오늘은 생각보다 빨리 내려갈 수도 있겠는데?"
"그래?"
"그래도 불펜을 생각하면 길게 버텨야겠지."
"7이닝 정도?"
"그 정도가 되겠지."
"알았어."
유성의 말을 들은 윌슨은 머리를 굴리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최근 컵스 불펜이 제법 많은 소진이 된 상태였기에 유성이 평소처럼 긴 이닝을 소화해주는게 베스트였다.
롱맨으로 들어온 래키도 4차전에 긴 이닝을 소화했기에 쓸만한 카드도 많지 않은 상태였다.
그렇게 시작된 1회 말.
클리블랜드 타자들은 긴장하며 타석에 들어섰다.
"저녀석들도 많은 점수를 내고 있는건 아니지만..."
억눌러둘 필요가 있었다.
그렇기에 초구는 몸쪽 깊숙한 코스로 들어갔다.
팡!
당연히 볼이 되었으나 100마일에 달하는 공에 타자는 움찔하며 몸을 살짝 뒤로 빼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초구부터 몸에 바짝 붙이는 박유성입니다.]
[100마일을 저렇게 던지면 타자로써는 뭔가 할 수 있는게 없죠.]
[네, 오히려 맞을껄 대비하게 되는데요.]
2구째에도 유성은 몸쪽으로 붙였다.
하지만 이번에는 스트라이크가 될 정도로 얇게 들어갔다.
이 모습을 보고 초구는 살짝 미끄러졌나라는 생각으로 다시 타석에 집중하려던 타자였지만 3구째가 높은 몸쪽 코스로 붙으면서 다시 민감하게 반응 할 수 밖에 없었다.
이걸로 1S-2B이 되었지만 유성이나 포수인 윌슨은 별다른 반응이 없었다.
2번이나 위험한 공을 본 타자는 살짝 열을 받은듯 했지만 일단은 그대로 있었다.
그리고 4구째에서 유성은 몸쪽에서 바깥쪽으로 휘어지는 슬라이더로 타자를 헛스윙 삼진으로 처리했다.
[몸쪽에 붙는 위협구를 던지더니 4구째는 바깥쪽 코스를 노리면서 삼진을 잡아낸 박유성입니다.]
[살짝 패턴이 달라졌죠?]
[네, 평소에 보여주던 박유성의 패턴과 조금 다른 볼배합이었습니다.]
선두 타자를 처리하면서 유성은 보여주었다.
원래 유성은 이렇게 위협적인 공을 안 던지는 투수였으나 필요하다면 이렇게 던질 수 있다는 것을 그들에게 맛보기로 보여준 것이었다.
당연히 눈치 없는 선수들이 아니었기에 클리블랜드 선수들은 오늘 단 1점도 뽑기 어려울것이라는 느낌을 받았고, 유성이 2번 타자에게도 초구부터 몸쪽에 붙는 공을 던지면서 경계심을 더 끌어 올리도록 만들었다.
팡!
[2번 타자의 초구에 몸쪽에 붙는 공을 던진 이후로 계속 바깥쪽 코스를 노리며 순식간에 나머지 두 타자를 삼진으로 처리하며 이닝을 마무리하는 박유성입니다.]
[이건 클리블랜드로써는 벽에 막힌 기분이겠군요. 뻔히 패턴이 보이면서도 언제 몸쪽으로 던질지 모르는 상황이다보니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며 물러나고 말았네요.]
"이건 클리블랜드 타자들을 길들이겠다는 이야기로군."
"길들여요?"
"이번 시즌만 놓고 보면 유성이 이런 몸쪽 위협구 같은걸 던진걸 봤던 기억이 거의 없었지."
분명히 그랬다.
데이터 상에 없었던 상황이었기에 클리블랜드 타자들로써도 망설임을 보일 수 밖에 없었다.
현재 유성의 생각을 모르는 관중들이었기에 홈팬인 클리블랜드 팬들은 유성의 피칭에 조금의 비난을 가하기도 했다.
"반응 나오는데?"
"멋대로 떠들라고 해. 까딱하면 우리가 지게 생겼는데 쓸 수 있는 카드를 아껴두면서 봐줄리가 없잖아."
딱!
그때 컵스 타선이 드디어 움직이기 시작했다.
2회 초에 빠르게 선취점을 뽑아내며 리드를 잡아낸 것이었다.
[앞선 경기와 달리 선취점을 획득하며 리드를 잡는 컵스입니다.]
[그동안의 경기를 생각하면 컵스가 선취점을 냈으니 승리를 거둘 확률이 매우 높아졌다고 할 수 있는데요.]
[박유성 선수가 마운드에 있는 이상 클리블랜드가 동점을 만드는거 자체가 어려우니깐요.]
1점을 앞서간 이상 유성은 뒤를 볼 필요 없다는듯 빠른 페이스로 클리블랜드 타자들을 무너트리기 시작했다.
뒷경기를 위해 몸쪽 공을 평소보다 자주 꺼내들었고, 그만큼 바깥쪽 공을 던지며 기록을 챙겼다.
그런 상황에서 4회가 되자 컵스는 다시 3점을 더 뽑아내며 사실상 승부의 쐐기를 박아버렸다.
[결국 바우어가 마운드에서 내려갑니다.]
[4회에 4대0의 스코어는 매우 크죠.]
이미 경기를 내준거나 다름 없는 상황이었기에 하다못해 유성의 투구수라도 늘려야하는 상황이었지만 유성이 귀신같은 볼배합으로 클리블랜드의 도전을 막아내며 무산이 되었다.
결국 클리블랜드는 유성이 6이닝을 겨우 70개로 막아내는 것을 저지하지 못하였다.
"한번 희망을 줘볼까?"
"뭘 할려고?"
"여기서 마운드에 내려가는거지."
"뭐?"
잠시 놀라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으나 이내 납득했다.
이대로 승리를 거둔다면 컵스는 6,7차전에 모든 카드를 꺼내들 것이다.
그것은 5차전에 나선 유성도 마찬가지일것이다.
여기서 떠오르는 선수가 있었다.
'14년의 범가너인가...'
월드시리즈 1,5차전 선발 등판 이후 7차전 구원등판으로 우승을 완성 시켰던 월드시리즈 역사상 최고의 모습을 바로 2년 전의 범가너가 보여주었고, 지금 유성이 생각하고 있는 것도 그것의 재현이었다.
"감독님."
"준비 시키고 있네. 채프먼이 고생 좀 해야겠지."
유성이 생각한걸 조 매든 감독이라고 그러한 운영 방식을 생각 못했던게 아니었다.
다만 아직 6년이라는 기간이 더 남아있는 에이스였기에 기용에 신중함을 가졌던 것이었다.
그래도 유성의 의사를 확인한 이상 컵스도 그에 맞는 수를 사용하기로 했다.
[이게 뭔가요?]
[박유성이 마운드에서 내려갔습니다.]
그것은 명백하게 7차전을 노린 포석이었고, 이러한 모습을 본 몇몇 사람들은 오늘 경기는 물론 시리즈 전체가 새로운 방향으로 흘러가게 되었다는 것을 직감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