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29
Chapter 48 - 압도하다 (3)
7회 말로 접어든 경기.
7회 초를 어렵게 막아낸 슈어저는 덕아웃에 들어오자마자 앉아서 한숨을 쉬었다.
"후..."
"8회까지 던지겠나? 투구수는 98구네."
"음..."
이닝당 평균 14구로 많다면 많다고 할 수 있는 투구수지만 유성의 기록 때문에 칼을 갈고 나온 컵스 타선을 상대했다는 점을 생각하면 선방한 수치였다.
정작 그 상대인 유성의 투구수는 7회를 시작하는 지금 시점에서도 80구가 안 되었다.
슈어저도 공격적인 피칭을 안 하는건 아니지만 유성은 극단적이라고 이야기 할 정도로 공격적인 피칭을 하는 투수였다.
'매경기 100구 이하로 투구수 관리를 받고 있기도 하고 녀석도 페이스 조절을 잘 하고 있어.'
거기서 슈어저는 본능적으로 깨달았다.
정말로 유성이 올해 메이저리그의 역사를 바꿔버릴 것이라는걸 말이었다.
딱!
"1루!"
팡!
5구 승부 끝에 선두 타자를 처리한 유성은 투구수를 체크하고는 다음 타자를 상대할 준비를 했다.
[가볍게 1아웃을 만들어낸 박유성인데요.]
[이전에도 느꼈지만 그 워싱턴 타자들을 잘도 상대하고 있네요.]
[자신의 몸값을 시즌 초반부터 제대로 증명하고 있죠. 일단 이번 시즌을 제대로 끝내야 확실한 평가가 되겠지만 지금까지의 모습만 두고 본다면... 메이저리그의 역사적인 기록들을 몇개인가 더 바꿔버릴지도 모르겠군요.]
시즌 10번째 등판 경기를 치루고 있는 지금 시점에서 유성의 삼진은 벌써 100개를 넘긴 상태였다.
이 말은 유성이 부상 없이 지금 페이스로 시즌을 마무리한다면 역대 최연소 300K를 달성 할 수도 있다는 이야기였다.
[물론 아직 전반기도 안 끝났기에 매우 이른 이야기지만요.]
[하긴... 다나카만 해도 충격의 데뷔 시즌을 보여주는듯 했는데 전반기 막판부터 안 좋아지더니 결국 후반기에 수술을 받기도 했죠.]
[사실 다나카가 메이저리그에 넘어온 이후 2시즌간 보여준 성적은 포스팅까지 7년 1억 7500만불의 금액을 받을 정도의 가치가 있는지 의문이 들기는 하죠.]
딱!
그때 유성이 던진 공을 타자가 제대로 받아치면서 유성의 대기록 도전은 오늘도 중간에 멈추게 되었다.
[여기서 안타가 나오네요.]
[아쉽지만 오히려 적당히 부담감을 덜어낼 수 있으니 마냥 안 좋은건 아니라고 봅니다.]
매 경기마다 유성이 퍼펙트를 해버릴 기세로 던지고 있다보니 컵스 선수들은 은연중에 유성의 등판 경기만 되면 계속 긴장감을 유지해야 한다고 한탄 아닌 한탄을 할 정도로 유성은 매 경기마다 자신의 실력이 차원이 다르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었다.
[1사 1루 상황에서... 병살타가 나오면 편한데요.]
[마침 박유성은 병살을 유도할 구종을 여러개 가지고 있죠.]
주자가 있는 상황이었기에 유성은 신중하게 승부를 진행했다.
그 모습을 보며 해설진들은 앞선 이야기를 이어갔다.
[다나카가 포스팅까지 7년 1억 7500만불인데 사실 박유성도 포스팅을 포함 시키면 7년 2억 4500만불이라는 천문학적인 금액이 됩니다.]
[그렇죠. 사실상 메이저리그 최고액이 되죠. 다행스럽게도 지금까지 보여주고 있는 모습은 그 금액에 걸맞는 모습이고요.]
아마 오늘 경기를 통해서 방어율이 0.13에서 더 낮아졌을 것이다.
유성의 방어율이 크게 올라서 1점대가 되더라도 성공이라 평할 정도로 유성의 첫 시즌은 환상적인 성공을 향하고 있었다.
딱!
[말씀드리는 순간 다시 안타가 나옵니다.]
[1사 1,3루가 되었네요.]
[박유성 선수가 오랫만에 위기를 맞이합니다.]
"위기감이 없기는 했네."
앞선 안타도 그렇고 이번 공도 그렇고 완벽하게 컵스 타자들의 노림수가 맞아떨어진 것이었다.
분석이 되었을 가능성이 떠올랐지만 유성은 주기적으로 자신의 투구폼에 대한 분석을 했다.
'그러고보니 오늘 사용한 구종 숫자가 좀 적었지.'
최대 10가지 구종을 꺼낼 수 있지만 실제 경기에선 많아봤자 8개까지 사용하던 유성이 오늘은 5개 밖에 사용을 안 한 상태였다.
"그러고보니 오늘 유성이 사용한 구종이..."
"포심, 투심, 커브, 슬라이더, 체인지업입니다."
"12 to 6 커브나 스플리터 계열은 없고?"
"네. 워낙 압도적인 피칭을 펼치다보니 의식을 못했는데 5개 밖에 안 썼네요."
"과연..."
수 많은 경험을 가지고 있는 조 매든 감독은 바로 알 수 있었다.
유성이 이젠 메이저리그에 대한 적응을 마쳤다는 것을 말이었다.
'애초에 급이 달랐군.'
전문가들은 아니라고 이야기하겠지만 수개월동안 유성을 직접 지켜본 조 매든 감독은 확신할 수 있었다.
유성을 그 금액에 잡은것은 오버페이가 아닌 컵스의 복이라는 것과 올해 컵스가 반드시 우승 할 수 밖에 없다는 것을 말이었다.
위기 상황인만큼 유성은 아껴두었던 구속을 바로 끌어 올리기 시작했다.
100마일이 넘는 포심은 무자비하게 스트라이크 존을 공략하며 순식간에 타자에게 2스트라이크라는 궁지로 몰리게 만들었고, 거기서 꺼내든 3구째는 오늘 처음으로 등장한 커터였다.
딱!
[쳤습니다만 투수 잡아서 2루로! 그리고 1루로! 아웃! 1-4-3 더블 플레이!]
[워싱턴으로써는 최대의 기회를 만들어냈지만 오늘 처음 나온 커터로 인해 그 기회를 날리고 말았습니다.]
"대단하구만."
"한국에서도 괴물이었는데 미국에선 더 답이 없어졌어."
"우린 대체 저런 녀석한테 어떻게 몇점씩 뽑아냈던거지?"
"몰라... 봐줬나?"
이런 상황인만큼 메이저리그 구단들이 유성에게 점수를 뽑아냈던 타자들을 전부 스카우팅 명단에 올려둘 정도로 유성의 성적은 이해불가 수준으로 압도적이었다.
"KBO와 MLB 리그 차이를 감안하면 1점대 방어율까진 어떻게 납득해도 0.12 정도의 방어율은 정말 설명이 안되는데 말이지."
사실 여기에는 유성의 마음가짐에서 차이가 존재했다.
회귀 전에도 KBO와 MLB를 모두 경험해봤기에 두 리그의 수준 차이를 잘 알고 있던 유성은 KBO에선 역사적인 성적을 기록하기보단 프로에서 뛸 수 있는 몸 상태를 만드는 것에 주력했다.
그마저도 3년차 시즌에 KBO 역사상 가장 낮은 방어율을 기록하며 각종 기록을 모두 챙겼지만 기본적으로 KBO 시절을 수련의 시간으로 생각한 것이었다.
반면 메이저리그에선 수 많은 괴물들이 널려있고, 앞으로 올라올 괴물들도 널려 있는 상태였다.
구종을 대거 늘린것에서 알 수 있듯 자신이 할 수 있는 모든걸 동원해서 메이저리그에서 공을 던지고 있는 것이었다.
그리고 어느정도 경기를 치룬 지금 유성은 한단계 더 성장하고 있었다.
"괴물자식..."
"앞으로 저녀석이 모든 투수들의 기준이 되겠군."
[저희가 시카고 컵스 전문이기는 하지만 이런 투수는 메이저리그 역사에서 존재하기는 했을까 싶은 그런 선수입니다.]
[사실 사이영이 부활해도 현대 야구에서 이런 모습을 보일 수 있을까라는 생각까지 들기도 합니다.]
그렇게 스카우터들이 한탄하고 해설진들이 극찬을 표할때 슈어저도 8회에 다시 한번 마운드에 오르며 컵스 타선을 막아냈고, 유성도 똑같이 8회 등판하며 이번에도 무실점으로 이닝을 마무리했다.
마침 둘 다 투구수가 적절하게 채워진 상태였기에 더 이상의 등판은 무리였고, 결국 유성은 데뷔 이후 처음으로 승리를 거두지 못하고 등판을 마무리 하게 되었다.
딱!
두 투수의 투수전이 워낙 압도적이었기에 경기는 결국 연장전으로 접어들게 되었지만 연장 10회에 바로 터진 솔로 홈런 덕분에 경기에선 시카고 컵스가 승리를 거두게 되었다.
[8이닝 접전 끝에 승부를 가리지 못한 박유성과 슈어저.]
[0.13의 방어율을 0.12로 낮춘 박유성.]
"보면 볼수록 터무니 없는 친구로군."
"앞으로 일정도 괜찮은 편이고 말이야."
다만 이 경기 이후의 3번의 등판에서 유성은 21이닝 2실점으로 3경기 중 2경기에서 1실점씩을 하면서 방어율이 조금은 상승하게 되었다.
그럼에도 여전히 메이저리그에서 가장 낮은 방어율을 자랑하는 선수였고, 각종 타이틀 분야에서 1위를 차지하며 2위권과 격차를 벌려가기 시작했다.
이쯤부터 언론에선 유성의 별명을 거의 고정 시키기 시작했다.
폭군이라는 이름의 조금은 유치할 수도 있지만 가장 유성을 잘 나타내는 별명을 붙인 것이었다.
[메이저리그 데뷔 이후 3개월간 14경기에 등판해서 13승 무패 0.26이라는 터무니 없는 방어율을 기록 중입니다.]
[거기에 벌써 150K를 넘겨서 200K에 근접하고 있죠.]
[이마저도 모자라서 타격 분야에선 30경기 정도만 출전했지만 여전히 4할의 타율과 12개의 홈런으로 베이스 루스 이후 최초로 10승과 10홈런을 달성한 것은 물론이고 이 페이스를 유지한다면 역사상 첫 20승과 20홈런이 가능한 상황입니다.]
시카고 컵스도 이러한 유성의 기록에 큰 수혜를 받아 최단기간 50승까지 달성할 정도로 압도적인 성적표를 만들어내고 있었다.
"그나저나 너 여자친구 같은거 없냐?"
"음... 없다고 하긴 좀 그런데..."
"오? 있었나?"
"미국에 오면서 못 만난지 좀 됬거든."
"그거 아쉽네. 그러고보니 가족들이 미국에 넘어온적은 없지?"
"그래."
어느덧 3개월이 지났고, 그 3개월 사이에 몸값에 걸맞는 실력을 보여준 덕분에 유성은 팀내에서도 최고 수준의 위상을 가지고 있었다.
물론 나이로 따지면 막내 수준이었기에 그렇게 딱딱한 분위기는 아니었기에 컵스의 분위기는 아주 안정적이었다.
"가족들은 알고 있어?"
"딱히 이야기한적이 없어서 모르시지."
"흐음... 내 경험담도 있고 다른 녀석들 경험담도 있어서 물어보는건데 결혼 생각 있어?"
"무슨 의도로 물어보는건지 알겠는데... 왜 그렇게 궁금해 하는거야?"
"우리팀을 절대 1위로 이끄는 에이스에 대해 궁금증을 가지는 사람이 너무나 많거든. 그래, 쉽게 말하자면 넌 전국구 스타가 됬어. 겨우 3달만에."
그 점은 유성도 실감하고 있었다.
홈팬인 컵스 팬들은 물론이고 원정을 가면 그 지역의 팀팬들마저 유성에게 사인을 받으려고 하기도 했기 때문이었다.
당연히 구단에선 마케팅 관점에서 유성에게 모든 관심을 쏟아붙고 있었기에 이런 부분까지 잘 알려져 있었다.
"뭐 그렇게까지 묻는다면야... 아직은 이르지."
"이르다라..."
"자꾸 잊는거 같아서 말하는데 나 아직 21살 밖에 안됬어. 몇달 지나야 22살이 되고 말이야."
"흠... 그런가?"
"그렇지."
그렇게 안건을 하나 넘긴 유성은 다음 안건으로 이야기를 넘겼다.
"올스타전이 머지 않았지?"
"그렇지. 그리고 가장 유력한 올스타 참가자가 내 앞에 있고 말이야."
"흠... 한국에선 자주 나가서 이젠 익숙한 수준이다보니 그렇게 끌리지는 않는데..."
"...?"
"농담이야."
"그래서 나가면 어떻게 던질꺼야?"
"어떻게 던진다니?"
"들어보니 한국에서 올스타전때 화려했다던데?"
"음... 살짝 과시용이었는데 말이야."
그렇게 이야기가 이어지며 유성은 7월을 맞이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