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기록파괴자-125화 (125/156)

# 125

Chapter 47 - 에이스 매치 (2)

1회 말에 마운드에 오른 유성은 올해 짝수해 법칙에 따라 다시 한번 대권을 노리고 있는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 타선의 면면을 떠올리고는 투구 자세를 잡았다.

'범가너가 11개였던가? 빡빡하네.'

유성도 평소에 자주 기록하던 이닝당 투구수였지만 막상 직접 하게 되자 고민이 길어졌다.

그래도 기본적으로 볼배합에 대한 고민은 포수도 하기 때문에 결정은 쉽게 이루어졌다.

팡!

[초구 96마일이 기록됩니다.]

[최근 경기에서 조금씩 구속을 낮추면서 완급 조절을 하는 모습을 계속 보여주었죠?]

[그렇죠. 박유성 선수가 오래 갈것이라는 생각이 드는게 바로 이 완급조절 능력이거든요.]

잠깐 이야기를 하는 사이에 선두 타자는 손쉽게 삼진을 헌납하고는 덕아웃으로 들어가야했다.

[빠르네요.]

[메이저리그에서 다음 공을 던지기까지 걸리는 시간이 가장 짧은 선수가 박유성인데 볼배합까지 다양하니깐요. 처음 만나는 타자들은 아무리 분석을 해도 상대가 어려울겁니다.]

그 말대로 컵스 타자들은 이미 범가너와 수없이 붙어보았기에 나름의 공략 방법을 알고 있었지만 자이언츠 타자들은 유성을 처음 상대하는 것이었기에 1회 말에는 별 다른 모습을 보여주지 못하고 순식간에 3아웃만 헌납하고 공격권을 넘겨야했다.

"아예 9개라..."

"꽤나 의식했나 본데?"

"나도 더 열심히 해야겠네."

2회에도 범가너는 컵스 타선을 차근차근 처리하며 아웃카운트를 만들어냈고 투구수도 유성에 비견될 정도로 조절하며 이닝을 마무리했다.

[2회를 마무리하며 투구수는 23구가 되었습니다.]

[이 페이스를 유지할 수 있다면 오늘 범가너는 얼마든지 완봉이나 완투를 할 수 있을겁니다.]

[반면 자이언츠는 박유성에게 완투는 주더라도 절대 완봉을 내줘서는 안되는 입장이죠.]

1회 말의 무실점 덕분에 유성의 무실점 기록은 52이닝째로 늘어났다.

완벽하게 틀어 막히고 있음에도 제법 여유를 가지고 있는 컵스 타선과 달리 자이언츠 타선으로써는 어떻게든 유성에게 실점을 안겨주거나 9회까지 던지지 못하게 만들어야했다.

- 건드리지를 못하네.

- 이럴려고 그 돈을 줬던게 아닌데...

- 어쩌겠냐. 지금 가장 폼이 좋은 투수인데

그동안 유성이 보여준게 있었기에 팬들도 공략이 어렵다는 것은 이해했다.

그렇다고 그게 공략을 실패했을때의 면죄부가 되지는 않았다.

팀의 4번 타자마저 삼진은 안 주었으나 아웃을 당하면서 팬들은 한숨을 내쉬었다.

[자이언츠도 마땅한 방법이 없는듯 합니다.]

[일단 5번 타자 버스터 포지가 타석에 들어서고 있습니다.]

어쩌면 오늘 자이언츠 타자 중 가장 주의해야할 타자가 포지일지도 몰랐다.

그런만큼 유성은 천천히 볼을 손에서 굴리면서 초구의 그립을 잡았다.

팡!

"스트라이크!"

'투심?'

94마일의 투심이 정확하게 초구 스트라이크를 가져갔다.

이 공을 보며 포지는 수 없이 분석했던 유성의 피칭 데이터를 떠올렸다.

메이저리그 데뷔 이후는 물론 바로 작년인 KBO 3년차 시즌의 자료까지 모두 살펴 보았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지난 시즌 데이터보단 메이저리그에서 뛰기 시작한 이번 시즌 데이터의 비중이 높았지만 포지는 앞서 유성을 상대한 수 많은 팀들이 당했던 것을 떠올리며 좀 더 긴 시간을 투자하였다.

'초구를 포심으로 시작할 확률 약 63%에 투심을 포함하면 그 확률은 72%에 달했지.'

다시 말해 투심이 초구로 나올 확률은 9%에 불과했다.

그래도 2번째로 비중이 높은 구종이었다.

'불행 중 다행이라면 박유성이 한번 사용한 패턴을 이후에도 몇번씩 사용했다는 점이지.'

그건 KBO 시절의 자료에서 발견한 패턴으로 유성이 가장 많이 만난 피츠버그전 데이터만 따로 취합해보니 여기서도 공통점을 찾을 수 있었다.

팡!

2구째는 볼.

슬라이더가 아슬하게 빠진것이었다.

'투심 다음에 슬라이더가 나올 확률은 17%.'

단순하게 본다면 확률이 낮은 케이스지만 유성이 사용할 수 있는 변화구 종류를 떠올린다면 매우 높은 비율이라고 할 수 있었다.

경기를 지켜보던 스카우터들 중 일부는 이 대결이 다른 대결과 다르다는 것을 느꼈다.

"그러고보면 그동안 만났던 포수들은 대부분 타격이 아쉬운 편이었지."

"몰리나 정도가 뛰어난 편이었지만 그때 폼이 좋다고 하기는 힘들었지."

지금 유성을 상대하고 있는 포지는 4년 전 이야기지만 2012 MVP까지 수상한 타격 분야에서 가장 뛰어난 능력을 갖춘 포수였다.

3구째가 다시 스트라이크가 되었으나 포지는 당황하지 않았다.

3구째마저 가장 높은 확률의 구종이었던 스플리터였으니 말이었다.

'계산대로라면 4구째는...'

딱!

[쳤습니다! 내야를 벗어나는 타구! 중견수, 좌익수! 좌익수가 몸을 날려서 잡아냅니다! 슈퍼 캐치!]

[누가봐도 안타에 가까웠던 타구를 몸을 날려서 잡아냅니다!]

"크... 아깝네."

수비가 호수비를 펼치며 도와주었지만 유성은 알 수 있었다.

방금의 타구는 완벽한 안타였다는 것과 포지가 자신의 공을 정확하게 공략했다는 것을 말이었다.

"역시 요주의 인물답네."

그렇다면 다음 타석에 좀 더 신경 써서 상대해주면 된다.

이후 6번 타자마저 처리해내며 유성은 2회 말 수비를 끝냈다.

이렇게 양팀 모두 첫 2이닝동안 무실점을 기록하였고, 경기는 빠르게 3회로 넘어가게 되었다.

3회에는 투수들의 타석이 돌아오기 때문이었다.

[범가너는 여전하네요. 짝수해가 돌아온걸 알고 있는걸까요? 두 타자가 아무런 힘도 쓰지 못하고 물러나야했습니다. 과연 2아웃 주자 없는 상황에서 박유성은 어떤 모습을 보여줄지 기대 되는군요.]

[다른 타자들이 부진하더라도 박유성 혼자서 판을 깔고 득점까지 만든 적이 있으니깐요.]

야구는 분명히 혼자하는 스포츠는 아니다.

하지만 유성은 그런 스포츠에서 거의 유일하게 혼자서 경기를 이끌고 갈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

어찌되었든 여기선 유성이 흐름을 만들어내야했다.

"드디어 붙어보는군. 메이저리그에서 가장 핫한 투수의 타자 버전을 말이야."

"리드 잘 따라와."

"걱정마. 내가 언제 니 말을 안 들은적 있었냐?"

"뭐... 없던건 아니지만 지금이 중요하니깐."

유성이 타석에 들어서는 것을 보고 먼저 포지가 마운드에 오르며 범가너와 이야기를 나누었다.

한창 불타오르던 시즌 초반과 달리 어느정도 분석이 진행되기 시작했기에 유성의 타율은 조금씩 내려오고 있었다.

그래도 터무니 없을 정도의 고타율을 유지 중이었기에 신중을 기하며 상대할 필요가 있었다.

"좋아. 해보자고."

"그래."

타석에 들어선 유성은 가볍게 체크 스윙을 하고는 자세를 잡았고, 유성이 자세를 잡자마자 포지는 사인을 보냈다.

팡!

'박유성이 초구를 지켜볼 확률이 75%가 넘어갔어. 초기는 적응기였다고 하지만 2달 가까이 시즌이 진행되면서 점차 KBO 시절과 비슷해지고 있지.'

덕분에 초구는 상대적으로 쉽게 스트라이크를 가져갈 수 있었다.

문제는 지금부터였다.

'바로 노리는건 당연히 무리수고... 그렇다고 투구수를 마냥 많이 쓰기엔 긴 이닝을 소화하는데 악영향을 끼치게 되니...'

맡겨달라고 했지만 벌써부터 머리가 복잡해지는것을 느낀 포지는 순간적으로 답을 찾아냈다.

팡!

"스트라이크!"

[순식간에 2스트라이크를 잡아내는 매디슨 범가너와 반대로 2스트라이크에 몰리게 된 박유성입니다.]

[포지가 엄청 준비를 해온듯 하네요. 범가너가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고개를 끄덕이고 있고 또 포지도 벤치를 전혀 안 보고 있거든요. 이 말은 오늘 경기에서 사인의 대부분을 포지가 내고 있다는 이야기거든요.]

대기록을 저지해야한다는 목적과 우승 후보인 컵스의 기세를 꺾어야한다는 목적이 있는만큼 오늘 포지는 할 수 있는 모든 준비를 마치고 나왔다.

그런 상황에서 3구째는 아슬한 코스에서 볼이 되었다.

1,2회를 통해서 진작에 주심의 스트라이크 존을 확인했던 포지였기에 주심의 판정에 신경 쓰기보단 다음 공을 고르는데 머리를 굴렸다.

'한번 더 신중하게 갈것인가 그대로 붙어볼것인가...'

첫 타석부터 이렇게 복잡하게 머리를 굴리게 만들다니 과연 메이저리그를 뒤흔드는 루키답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그래도 포지는 결정을 내려야했고, 곧 바로 범가너에게 사인이 들어갔다.

고개를 끄덕이며 사인을 받은 범가너의 전력이 들어간 공이 날아갔고, 유성도 칠때가 되었다는듯 스윙을 시작했다.

딱!

[쳤습니다! 빠른 타구지만 내야를 벗어나지 못하고 유격수가 잡아서 1루로! 아웃!]

[지금 타구 속도가 꽤나 빨랐는데 유격수가 예상이라도 했는듯 조금 뒤로 물러나 있었습니다. 덕분에 잡아낼 수 있었습니다.]

"아까웠어."

"오늘 엄청 어렵겠는데."

"그러게..."

3회 초까지 무실점으로 마무리되며 범가너의 투구수는 32구로 조절 되고 있었다.

이러한 점은 3회 말 수비를 맞이한 유성이 순식간에 2명의 타자들을 잡아내고는 27구의 투구수를 기록하며 범가너와 비슷한 페이스로 투구수를 조절했다.

[2.2이닝 무실점을 기록하고, 이제 박유성도 투수를 만납니다.]

[매디슨 범가너도 타격에 일가견이 있는걸로 유명한 투수죠.]

[네, 박유성만큼 화끈하게 타격을 보여주지는 못하고 있지만 실버글러버를 수상한적 있을 정도였죠.]

확실히 투수들 중에선 가장 까다로운 타격 능력을 보여주었지만 그렇다고 자이언츠에서 가장 경계해야할 정도의 타자는 아니었다.

팡!

"스트라이크!"

[삼구삼진! 범가너를 삼진으로 돌려세우며 박유성도 3회까지 완벽한 피칭을 선보입니다!]

[오늘 경기도 투수전 덕분에 재미 있네요.]

[그렇죠. 사실은 그동안 박유성이 나섰던 경기는 상대 선발들이 조금씩 아쉬워서 투수전이 되는듯 하다가도 순식간에 승부가 기울어졌거든요.]

[오늘은 박유성이 1선발 위치로 나선 첫 경기인데다가 그 상대가 범가너이다보니 오늘 경기는 어쩌면 박유성이 처음으로 승을 못 챙기는 경기가 될지도 모르겠네요.]

어중간하게 비슷했다면 이런 이야기를 하지도 않았겠지만 오늘 범가너는 유성과 동급의 투수라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사실 커리어로 따지면 범가너가 박유성급이 되는게 아니라 박유성이 범가너급이 되어야하는거지만..."

"지금의 54이닝째가 된 무실점 기록의 임팩트 덕분에 박유성이 더 돋보이고 있지."

"솔직히 50이닝 넘게 던져서 아직도 방어율 0을 기록 중인 투수인데 그정도 대우는 해주는게 맞지."

그러는 사이에 양 투수들은 2번째 타석을 맞이한 4회에도 다시 삼자범퇴를 기록하며 이 팽팽한 투수전이 더욱 길게 이어질 것이라는 것을 예고하였고, 5회 초에 다시 한번 유성이 4번 타자를 처리하면서 2번째 지략전이 펼쳐지게 되었다.

[현 시점에서 범가너의 공을 가장 잘 공략한건 박유성이고, 박유성의 공을 가장 잘 공략한건 포지입니다.]

[네, 그리고 지금 그 포지의 타석이 돌아왔습니다.]

경기는 다시 한번 두 선수의 지략전으로 돌입하게 되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