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7
Chapter 41 - 3번째 시즌 (3)
여전히 0대0의 스코어가 유지되는 가운데 시작된 8회 말.
"하위 타순부터인가..."
"왠만하면 여기서 승부를 보고 싶겠지만 저쪽도 아직 여력이 남아있는게 문제겠군."
다이노스의 7번 타자는 베테랑인 손시한이었다.
비록 이번 시즌 큰 부진을 겪으며 이전 시즌보다 낮은 타율을 기록 중이었지만 한방에 눈을 뜨면서 여차하면 그대로 담장을 넘기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기에 쉽게 승부를 봐서는 안되는 타자였다.
'또 낮은 코스?'
다만 투수 입장에선 약간 불만이 존재했다.
장타를 가지고 있는 것은 알지만 타율이 낮은만큼 높은 코스를 시험해보고 싶은 생각을 가지고 있었는데 오늘 라이온즈 포수인 이지용은 주구장창 낮은 코스를 요구하고 있었다.
"슬슬 패턴 바꿀 타이밍인데..."
"안 바꿀꺼 같은데요."
"응?"
팡!
"스트라이크!"
"낮은 코스라..."
작은 의문을 만들었던 유성은 그 공을 보고 확신했다는듯 이야기했다.
아무리 퀄리티 높고 빠른 공을 던져도 코스를 안 다면 다이노스 타자들은 능히 그 공을 때려낼 능력이 존재했기 때문이었다.
"오호라... 해볼만 하겠는데?"
"문제는 낮은걸 어떻게 때리느냐인데..."
잠시 타임을 통해 손시한이 시간을 벌은 사이에 선수들은 급하게 머리룰 굴렸다.
"억지로 퍼 올릴 정도의 파워가 아닌 이상 내야를 관통하는 쪽을 노려야하는데 저쪽의 구위가 워낙 좋다보니 그것도 어느정도의 파워가 안 되면 내야에 걸릴 가능성이 높아."
"이거 이번 시즌 시한 선배 타율이 애매했던게 전화 위복이 된건가..."
"그걸 그렇게 생각하는것도 대단하네."
"솔직히 타율도 높으면 좋겠지만 시한 선배처럼 한방에 터지는게 많으면 그것도 좋거든요."
메이저리그에서 공갈포라고 불리는 타자들은 앞으로 입지가 좁아지게 된다.
그럼에도 수요는 꾸준히 존재하고 있었는데 어느 시대에서나 장타는 막힌 경기를 한번에 전환 시킬 수 있기 때문이었다.
유성의 의견을 받아서 빠르게 결론을 낸 다이노스 벤치는 바로 손시한에게 사인을 보냈다.
낮은 코스야 손시한도 짐작하고 있었지만 앞선 타석과 비슷하게 간다고 하면 더욱 쉽게 상대가 가능했기에 2구째가 날아오자 손시한은 앞선 타석을 떠올리며 스윙을 하였다.
딱!
[쳤습니다! 낮은 타구가 순식간에 내야를 빠져나갑니다!]
[그동안 선두 타자 출루를 이루어내지 못했는데 이번 이닝에 그걸 해내는 다이노스입니다.]
[확실히 8회 정도 되니깐 어떻게 공략 방법을 찾은거 같나보네요.]
[운이 좋았을 수도 있겠습니다만... 이어서 8번 타자 지석준이 타석에 들어섭니다.]
무사 1루의 상황에서 다음 타자가 타석에 들어서자 다시 해설진들은 바쁘게 입을 움직였다.
[원래 다이노스 3루는 모창인 선수 자리인데 이번 시즌 흔히 호러물이라고 할 정도로 안 좋은 수비와 부상까지 겹치면서 지석준 선수가 새로 주전 3루수로 올라오게 되었습니다.]
[네, 그리고 지금까지 놀라울 정도로 안정적으로 그 자리를 채우고 있죠.]
[강팀이라면 주전 선수가 빠졌을때 그 공백을 매꿀 백업 선수가 있어야하는데 다이노스가 강해졌다는걸 실감 할 수 있는 부분이기도 하죠.]
[맞습니다. 그러는 사이 초구는 볼이 되었네요.]
'이게 볼?'
7이닝에 이닝을 끝냈다면 모를까 8이닝씩이나 던지게 되자 그도 슬슬 완투를 염두에 두고 있었기에 볼배합부터 볼 판정까지 모든것에 민감해진 상태였다.
그래도 라이온즈가 거액을 투입한 이유가 있다는듯 심호흡을 한 그는 머리를 바쁘게 굴리기 시작했다.
'불평할 여유도 없는게 아쉽군.'
일단 주자가 나갔으니 더 냉정한 피칭을 해야한다.
다시 낮은 코스의 공이 들어왔을때 별 다른 반응 없이 던진것도 그런 이유에서였다.
딱!
문제는 이제 다이노스가 확실하게 감을 잡기 시작했다는게 라이온즈에게는 악재라고 할 수 있었다.
[쳤습니다! 유격수 뛰어올라도 잡을 수 없습니다! 연속 안타로 무사 1,2루를 만드는 다이노스!]
[이거 제 예상과 달리 기회를 잡아내는군요.]
- 그런데 우리 타자가...
- 대타 없냐?
9번 타자 김태곤이 타석에 나설 준비를 하는 모습에 다이노스 팬들은 말 없는 탄식을 뱉어냈다.
주전 포수로써 그가 모자라다고 말하는 사람은 딱히 없었다.
하지만 타격만큼은 팬들도 아쉬움을 표하는 타자가 바로 그였다.
"평소라면 수비를 준비했겠지만..."
"이번에는 배트를 준비 해야지."
갑작스러운 연속 안타에 라이온즈 배터리는 신중을 기하며 2개의 공으로 1S-1B 상황을 만들며 차근차근 승부를 이어가고 있었다.
"하위 타순에서 갑자기 저러면 투수로써는 곤란하지."
"포수까지 코스가 막막해진 모양이야."
실제로 3구째 사인 교환이 맞지 않아서 결국 포수가 마운드 등판을 하는 모습을 보며 다이노스는 고개를 끄덕였다.
"대체 뭘 던질려고?"
"높은 코스."
"...뭐? 걸리면 한번에 넘어갈 수도 있어."
"아니, 난 아직 힘이 남아있어."
통역을 거치기는 했지만 그에게서 느껴지는 분위기를 본 이지용은 몇마디를 더 해도 무리라는 것을 깨닫고는 고민하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리드대로 제대로 던져줘."
"그러지."
위기 상황인 것을 자각하고 있기에 빠르게 의견을 주고 받은 이지용은 바로 자리로 돌아갔다.
[자, 다시 경기가 재개됩니다.]
[3구째 쳤습니다!]
딱!
[이 타구는 내야를 훌쩍 넘기고 우중간에 떨어집니다!]
[2루 순식간에 홈으로 가고 1루 주자도 2루 지나서 3루로! 이제야 중견수가 잡고 내야로 던집니다!]
[김태곤의 1타점 적시 2루타!]
길었던 0의 행진이 드디어 마무리 되었다.
그것이 가능하게 했던 것은 놀라울 정도로 정확하게 높은 공을 예상한 유성과 그 작전을 수행해낸 김태곤의 타격 능력이었다.
- 왠일로 이걸 해내네.
- 오늘 노디시인줄 알았는데 결판이 나네.
이런 상황이 되자 결국 투수 코치까지 마운드에 올라왔고, 라이온즈 배터리는 막판에 볼배합을 급격하게 바꿔야했다.
그렇게 바꾼 볼배합은 분명 효과가 있었지만 무사 2,3루까지 몰려있던 상황에선 추가 실점을 할 수 밖에 없었기에 끝내 8회 말이 마무리 되었을때의 스코어는 3대0이 되었다.
[7회까지 잘 던졌습니다만 8회를 넘기지 못하고 결국 8이닝 3실점의 기록으로 마운드를 내려가게 되었네요.]
[이 정도 차이라면 박유성 선수가 더 던질지 말지도 관건일텐데요.]
[아까 1점이 나자마자 박유성 선수가 사라지고 불펜에 박주환 선수가 준비를 시작하기는 했는데 말이죠.]
- 저번에 완봉 했으니 이만하고 쉬자.
- 그래. 이제 다음 경기 준비 해야지.
그런 팬들의 기대에 맞게 다이노스는 유성을 내리고 주환을 올리며 경기를 그대로 마무리 시켰다.
그렇게 오늘 경기에서도 유성은 팽팽한 투수전에서 8이닝 무실점을 기록하며 승리를 추가하였다.
[우스겟소리로 하던 시즌 25승 페이스를 만들어가고 있는 박유성 선수네요.]
[그러게요. 오늘 경기 승리로 시즌 8승째를 거두게 되었는데요. 이번 시즌에 저희 계산대로면 27경기 정도 나설텐데 앞으로의 경기를 거의 다 이기면 25승을 진짜 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면 또 새로운 역사를 쓰겠네요.]
[그렇겠죠. 사실 저희가 의식을 못해서 그렇지 박유성 선수는 KBO 최연소 기록들을 하나씩 갈아치우고 있습니다. 얼마 전에 통산 40승을 달성했는데 그것도 제가 알기로 최연소 기록으로 알고 있습니다. 지금 페이스대로 시즌 25승을 달성 할 수 있다면 최연소 50,60승까지 기록 할 수 있죠.]
[그렇군요. 그러고보니 삼진 기록도...]
[네, 아까 워낙 경기가 빠르게 진행되다보니 짧게 거론하고 지나갔는데요. 마찬가지로 최연소 500삼진을 오늘 경기에서 달성했습니다.]
- 각종 최연소 다 갈아치우네.
- 이런 선수가 내년에는 한국에 없을 확률이 99%
유성이 라이온즈와의 경기에서 승리를 거두며 위닝 시리즈를 확정한 다이노스는 라이온즈가 정신 차리기 전에 마지막 경기까지 잡아내며 스윕을 완성하였다.
그렇게 라이온즈라는 큰 산을 넘긴 다이노스는 이후 치룬 12경기에서 10승 2패라는 압도적인 성적을 거두며 2위와의 격차를 더 늘려냈다.
그리고 드디어 일이 진행되었다.
*
[단독 속보를 보내드리겠습니다. 프로야구에 다시 한번 승부조작의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워질뻔했습니다. MC 다이노스의 이태영 선수에게 브로커가 접촉을 하였는데요. 다행스럽게도 이태영 선수는 이 사실을 구단에 알리며 오히려 승부조작의 뿌리를 잡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 승부조작이 또?
- 와 이건 진짜 칭찬해줘야한다.
한번 물꼬가 터지자 일은 순식간에 진행되었다.
다이노스의 경우 유성이 꾸준히 체크를 해왔기에 추가적인 승부조작 연류자는 나오지 않았지만 다른 팀에선 이야기가 달랐다.
[2,3개 정도 팀에 소속된 선수가 승부조작에 연류되었다고 합니다.]
[아쉬움만 드네요. 그렇게 하지 않더라도 충분히 연봉도 보장받고 하던 선수들이거든요?]
[세상에는 이해 할 수 없는 일이 자주 일어나더군요.]
순식간에 여러 선수들이 용의선상에 올랐고, 명목상이기는 하지만 다이노스에서도 이태영과 이재후가 소환되었다.
"일단 각 구단에 접촉 확인이 됬거나 의혹이 있는 쪽은 전부 부른다더구나. 숫자로 치자면 10명이 조금 넘는 숫자인데... 보통이라면 이정도 규모가 무리지만 우리쪽에서 꽤나 공 들여서 준비해둔 덕분에... 이렇게 되었지."
조사로 인해 일순간 2명의 선발 공백이 생겼으나 다이노스는 한발 더 과감한 행보를 보였다.
[시즌 초반 부진을 겪던 첼리가 2군에서도 좋은 모습을 보여주지 못하였기에 다이노스는 새 외국인 투수를 영입하기로 결정했습니다.]
[이미 5월 말에 물색을 끝내고 계약을 진행하면서 곧 한국에 들어온다고 하더군요.]
[이름은 제이크 스튜어트로 우완 투수라고 하더군요. 전체적으로 본다면 첼리 선수와 비슷한 유형으로 보셔도 될겁니다.]
지난 시즌에 비해 하락세를 보이는 이재후와 첫 풀시즌을 보내는 이태영의 상황을 감안했을때 다이노스에게 스튜어트는 최적의 대체 카드라고 할 수 있었다.
"어찌어찌 4선발은 유지되네요."
"두녀석이 빨리 돌아오길 빌어야지."
당분간은 2군에서 선발 수업을 받고 있던 선수를 끌어 올려서 임시로 매꾸기로 했다.
승부조작의 영향으로 거의 대부분의 구단들의 분위기가 뒤숭숭했지만 다이노스는 안정적으로 7할 승률을 유지하며 점차 1위 가능성을 높이고 있었고, 그러는 사이에 몇몇 선수들의 조사가 마무리 되며 무혐의인 선수와 아닌 선수가 구분 되었다.
"돌아오니 전반기 끝날때가 다 됬네."
"거기 다녀온 느낌이 어때요?"
"...다신 가기 싫어."
"그렇다는데?"
"왠지 상상 되네요. 그래도 무혐의로 끝났으니 이제 원래 하던대로 야구에 집중하죠."
"그래야지."
KBO에 다시 뛰게 되면서 유성은 항상 승부조작을 의식하고 있었다.
그런 상황에서 이렇게 상황을 정리하게 되었으니 더 이상 걸리는 것은 없었다.
이제 KBO 마지막이 될 시즌만 제대로 마무리하면 될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