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4
Chapter 40 - 한국시리즈 (5)
5회 말 다이노스의 공격은 1사 만루의 상황에서 3번 타자 나범성에게 이어졌다.
[아웃카운트를 하나 잡기는 했지만 지금부터는 정말 어려운 대결입니다.]
[그렇죠. 여차하면 주자들도 바로 뛸 수 있거든요.]
팡!
초구는 153km의 포심이었다.
유성만큼은 아니지만 그 공도 무시할만한 수준은 아니었다.
"준플레이오프 2경기, 플레이오프 3경기 그리고 한국시리즈 3번째 등판."
"8경기라... 그러고도 아직 구속이 나오는게 대단하군."
"솔직히 한계일꺼야. 이번 경기까진 버틸 수 있어도 그 뒷경기는..."
"히어로즈는 오늘 이겨도 결국 우승을 거두기 힘들겠군."
2구째는 볼이었다.
다른 것도 아니고 만루의 찬스였기에 평소라면 빠르게 배트가 나갔을 범성도 성급하게 승부를 하지 않고 신중함을 보였다.
그러다보니 급한 것은 히어로즈쪽이 되었다.
안 그래도 만루의 위기인데다가 조성우의 등판이 이번 이닝으로 끝나는게 아니라 다음 이닝도 감당을 해야하기 때문이었다.
"평소라면 일단 막는것에 집중하겠지만..."
"뒤가 없는 한국시리즈라는 점이 걸리겠지."
범성만 봐도 평소보다 더 신중하게 타석에 임하고 있었다.
3구째가 스트라이크가 되자 범성은 아쉬움을 감추지 못했다.
들어오는 공을 놓친 것은 둘째치더라도 이제 투수가 어떤 공을 던질지 예상이 됬기 때문이었다.
'떨어지는 공.'
타자로써의 경력이 짧은 범성의 가장 명확한 약점.
그나마 투수가 구종이 다양하지 않아서 복잡하게 머리를 굴릴 필요가 없다는 점은 다행이라고 할 수 있는 부분이었다.
결국 4구째가 예상대로의 떨어지는 공이 날아들었고, 범성은 과감하게 스윙을 진행했다.
딱!
[쳤습니다! 2루수가! 잡을 수 없습니다! 3루 주자 들어오고 2루 주자도 들어옵니다!]
[나범성의 2타점 적시타! 스코어 2대0으로 앞서나가기 시작하는 다이노스!]
"이건 크네."
"게다가 다이노스의 공격이 안 끝났지."
1사가 여전히 이어지고 있는 가운데 주자 1,3루.
단타 하나면 1점이고 제대로된 장타가 터지면 2점이 나올 수 있는 상황이었다.
물론 이호중이 노리는 것은 단 하나뿐이었다.
타석에 들어서서 준비를 하던 이호중은 잠시 1루의 범성과 뒤의 테인즈를 슬쩍 보았다.
사실 후반기부터 다이노스 타선은 테인즈가 4번으로 올라가고 이호중이 5번으로 내려오는 배치가 자주 나왔다.
이는 이호중이 체력적인 문제로 제대로 된 폼을 보여주지 못했기 때문이었는데 충분한 휴식을 취한 한국시리즈에서는 시즌 중일때와는 이야기가 달랐기에 김강문 감독은 베테랑인 이호중을 4번으로 전진 시켰다.
물론 병살타 같은 점을 생각하면 테인즈가 앞으로 가는게 맞겠지만 충분한 휴식을 취하고 한국 시리즈로 돌아온 이호중의 컨디션은 김강문 감독의 신뢰대로 이번 한국 시리즈 내내 좋았다.
딱!
[쳤습니다! 이 타구는 멀리 날아가고! 우리는 이 타구의 종착점을 알고 있습니다!]
[이호중의 쐐기를 박는 쓰리런 홈런!]
그 타구가 저 멀리 날아간 것은 순식간의 일이었다.
이것으로 스코어 5대0으로 완벽하게 기울어진 경기에 히어로즈 선수들중 일부는 기운을 잃은듯 주저 앉기도 했다.
"준비된 투수 있나?"
"아직 준비가 덜 됬습니다."
"일단 한번 올라가봐야겠군."
시간을 벌기 위해서 우선 투수코치가 먼저 마운드에 방문했다.
다음 타자가 하위 타순이었다면 어찌될지 몰랐겠지만 바로 다음 타자가 테인즈라는 점으로 인해 주자가 없는 상황인데도 투수코치는 최대한 시간을 끌며 투수가 안정될때를 기다렸다.
"슬슬 내려가시죠?"
"아 네. 그러죠."
꽤나 긴 시간이었기에 주심이 마운드까지 다가와서 코치에게 경고를 했고, 그도 충분히 시간을 끌었다고 생각했기에 마운드에서 내려갔다.
[자, 히어로즈가 투수 교체를 하지 않았네요.]
[아무래도 준비할 시간이 조금 더 필요한거겠죠. 아니면...]
[조성우 선수에게 좀 더 던지게 하거나 그런 생각이겠죠.]
"꽤나 시간을 줘버렸어. 투수가 안정을 찾았을 가능성이 높으니 신중하게 해."
"OK."
그렇게 테인즈가 타석에 들어서고 승부가 시작되었다.
이미 5대0이라는 스코어로 인해 힘 빼고 경기를 치루어도 되는 다이노스였지만 여기서 아예 쐐기까지 박아버리겠다는 생각으로 공격을 이어갔다.
팡!
"153km... 95마일인가."
"아직은 던질만한가보군."
"본래 계획이랑은 달라진거 같지만 말이야."
2구째도 빠르게 들어오며 테인즈는 순식간에 2스트라이크까지 몰리게 되었다.
그럼에도 그는 침착하게 공을 지켜보았다.
'투수가 이 악물고 전력으로 던지는 포심을 굳이 받아줄 필요는 없다.'
3구째로 유인구가 날아왔으나 참아내며 볼이 되었다.
그 모습을 보며 투수는 작은 한숨을 내쉬었고, 쭉 지켜보고 있었던 테인즈는 그 모습을 놓치지 않았다.
'다음 공이겠군.'
이미 투수는 5점을 내주며 궁지에 몰린 상태다.
어떻게 페이스를 찾기는 했지만 단 한번이면 그대로 무너질 것이다.
그리고 그 예상대로 4구째에 스윙을 한 테인즈의 방망이에 공이 걸렸다.
딱!
[쳤습니다! 이 타구도 큽니다! 그 종착점은 모두가 알고 있는 그대로 담장 밖을 넘어갑니다! 백투백 홈런! 스코어를 6대0까지 벌리는 MC 다이노스!]
"끝났군."
그 말대로 이 이상은 버틸 수 없었기에 히어로즈는 투수 교체를 진행했다.
가까스로 넘어갈뻔한 분위기를 투수 교체로 잡아내며 히어로즈는 더 이상의 실점을 하지 않고 길었던 5회를 마무리했다.
그로인해 6대0이라는 스코어가 이루어진 것은 사실상 승부가 끝났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었지만 말이었다.
6점이나 뽑아내는 빅이닝으로 인해 유성의 어깨가 식지 않았냐는 우려가 있었지만 6회의 마운드에 오른 유성은 그런 우려가 쓸모 없는 것이라는 것을 보여주었다.
"놀랍군. 꽤나 긴 시간을 쉬었을텐데..."
"아예 부담이 없는건 아니야. 5회까지 이어졌던 포심 위주의 피칭이 6회 들어와서 변화구 중심의 피칭이 되었어."
"그러고보니... 야구 지능에서도 비교 대상을 찾기 힘들 정도로 독보적이군."
빅이닝으로 인해 준비할 시간이 많았다지만 이렇게 바로 패턴을 바꾸고 성공 시키는건 보통 수준으로는 불가능하다.
KBO 수준을 진작에 뛰어 넘은 유성이니깐 가능하다고 이야기 할 수도 있지만 스카우터들은 좀 더 큰 그림을 보고 있었다.
[6회도 삼자범퇴로 이닝을 마무리하면서 이제 완봉까지 3이닝을 남기게 된 박유성 선수입니다.]
[더 놀라운건 이번 이닝에 투구수를 확 줄이면서 58구로 이닝을 마무리했다는거죠.]
[평소의 투구수 제한대로 본다면 37구를 더 던질 수 있게 됩니다. 그리고 그 정도 투구수로 박유성 선수는 3이닝을 넘어서 4이닝씩을 소화한 경우가 많습니다.]
이미 6대0으로 스코어가 벌어진 상황이기에 투구수 계산은 큰 의미가 없었다.
그래도 유성이 마운드에 있는 것과 없는 것에 큰 차이가 존재했기에 염감독은 다시 1번 타자로 돌아온 히어로즈 타순에 다시 한번 투구수를 늘리라는 지시를 냈다.
"어렵겠지만 그래도 박유성을 마운드에서 내려야한다."
대놓고 이야기했다간 이미 안 좋은 분위기가 더 안 좋아질 가능성이 높았기에 이야기하지 못했지만 이제는 대 기록을 염두에 둬야하는 상황이었다.
[최대한 공을 지켜보고 있네요.]
[아무래도 박유성 선수의 한계 투구수를 의식한것 같네요. 대기록이 진행 중일때는 거론을 자제하는게 좋기 때문에 박유성 선수가 위대한 기록에 도전하고 있으니깐요.]
초반과 달리 유성이 투구 패턴을 바꾼 덕분에 이 방법은 어느정도 효과를 얻어냈다.
7,8회 연속 삼자범퇴로 물러났으나 유성의 투구수가 89구까지 늘어났기 때문이었다.
"2이닝 31구라..."
"보통의 투수면 적당하다고 할지도 모르지만 지금 마운드에 있는 투수가 누구냐라고 한다면 히어로즈가 잘 버티고 있다고 해야겠군요."
"일단 만약을 위해서..."
"네, 주환이 준비 시키고 있습니다."
유성이 그대로 경기를 마무리하면 문제 없지만 그렇지 못한다면 그 상황을 가장 안정적으로 마무리할 투수가 주환이었고, 실제로 시즌 중에 주환은 몸을 풀지 않더라도 불펜에 자주 모습을 드러내며 나갈 준비를 하고 있는듯한 움직임을 보이며 상대팀에게 심리전을 걸기도 했다.
"앞에서 박유성이 막고 뒤에선 박주환이 끝낸다."
"정석이라면 정석이군. 박유성은 승리 절반 정도를 박주환이 막아냈고, 박주환도 1/3 정도가 박유성 등판 경기였으니."
"이제 3개 남은 아웃카운트를 생각하면 그 가능성은 낮지만 말이야."
7,8회를 거치며 다이노스는 2점을 더 추가하며 스코어 8대0을 만들어둔 상태였다.
그마저도 수비에 집중하기 위해 몇몇 타자들이 일명 퇴근 스윙을 한 덕분에 거기서 그친 것이었다.
[이제 마지막 이닝이 될 9회 초가 시작됩니다.]
[히어로즈는 일단 7번 타자는 그대로 가는듯 하지만 나머지는 대타를 준비 시키고 있네요.]
[아무리 강타선을 자랑하는 히어로즈라고 해도 하위타선이 돌아오면 확신이 모자라게 되니깐요.]
- 걍 기록 줘라. 이렇게 압도적으로 털리는데 변명이 필요하냐.
- 그래도 이대로 끝나면 역사에 이름을 남기는데...
- 기록을 헌납한 쪽으로 말이지.
이런 시점이 되니 히어로즈 팬들도 일부는 포기하였고, 일부는 마지막 희망을 기대하며 경기의 마지막을 지켜보고 있었다.
물론 유성은 마지막까지 방심 없이 히어로즈 타자들을 처리해나갔다.
[헛스윙 삼진!]
[히어로즈의 대타 카드가 실패했네요.]
[이제 2번째 대타 카드가 나옵니다만... 퍼펙트 게임을 막기에는 역부족인듯 합니다.]
불펜에서 준비를 하고 있던 주환도 선두 타자가 잡힌 이후로는 유성의 마지막 이닝을 지켜보고 있었다.
그리고 그 기대에 맞게 유성은 마지막 타자에게 트레이드 마크와 같은 강속구를 꽂아넣었다.
160km, 163km, 165km.
앞선 타자를 상대하며 조금씩 구속을 끌어 올려두었던 유성은 단 3개의 공만을 던졌고, 위의 구속이 기록된 3개의 공들은 정확하게 스트라이크를 기록하며 삼구삼진으로 경기 종료와 함께 대기록의 완성을 알렸다.
[경기 종료! KBO 역사상 첫 퍼펙트 게임을 달성하는 박유성! 그리고 2014 한국 시리즈 우승팀은 MC 다이노스입니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한국시리즈 MVP는 2경기 모두 승리를 거두고 퍼펙트게임까지 달성한 박유성 선수입니다.]
경기를 지켜보던 기자들이 9회가 시작되자마자 유성의 이름을 넣어서 제출했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이견이 없을 정도로 신속하게 선정된 MVP였다.
그렇게 유성은 입단 전 구단과 약속하였던 우승을 달성하였고, 시간이 흘러 시상식에서도 주인공이 되었다.
[2014 시즌 MVP는... 지난 시즌에 이어 이번 시즌에도 투수 4관왕을 달성한 박유성 선수입니다!]
규정 타석 미달이 되었기에 타격은 가산점 정도만 적용이 되었지만 투수로써의 성적은 지난 시즌보다 개선 되었기에 유성의 MVP 수상에 대한 이견은 없었다.
서건수가 KBO 역대 최초의 200안타를 기록했다면 이야기가 달라졌을지도 모르지만 시즌 중에 유성에게 번번히 막힌 것을 만회하지 못하고 결국 코 앞에서 멈추고 말았기에 그렇게 시상식도 마무리 되었다.
"2년만에 트로피 13개인가?"
"신인왕에 2연속 투수 4관왕, MVP, 골든 글러브까지... 13개 맞네요."
"음... 내년에 타격 좀 더 제대로 해볼 생각 없냐?"
"나쁘지 않겠지만... 투수쪽을 좀 더 준비 할려고요."
"하긴 이제 10구단 체제라서 경기수가 늘어날테니깐."
"그래요?"
"그래, 135경기일지 144경기일지는 논의 중이라고 하고 있지만."
"좀 더 많이 준비 해야겠네요."
다음 시즌에도 MVP를 수상해낸다면 그 시즌이 유성의 마지막 시즌이 될 예정이다.
그러니 그에 걸맞는 유종의 미를 만들어낼 필요가 있었다.
"그러고보니 전에 이야기한건 어떻게 됬어요?"
"아직 접촉이 없어서 지켜보고 있지만 니 말대로면 다음 시즌에 성과가 나올꺼다."
"그렇군요. 잘 부탁드릴게요."
"뭐... 전도유망한 선수 구한다고 치고 나한테 맞겨두고 넌 다음 시즌 준비를 해둬."
"그래야죠. 이제 MLB로 가기 위한 마지막 단계니깐요."
그렇게 2014시즌이 마무리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