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3
Chapter 40 - 한국시리즈 (4)
[2014 한국시리즈 5차전. MC 다이노스가 3승 1패로 우승 확정까지 단 1경기만을 남긴 시점에서 경기장은 잠실 구장으로 이동하게 되었습니다.]
[다이노스와 히어로즈 모두 홈 구장 관중석에 관한 규정을 충족하지 못하였기 때문에 중립 구장으로 잠실 구장에서 경기를 치루게 되었죠.]
[지금 다이노스의 분위기라면 7차전까지 가기도 전에 끝을 내버릴 기세지만요.]
[실제로 오늘 선발로 나서는 투수가 바로 1차전에 등판해 승리를 이끈 박유성 선수죠.]
"따로 물어볼 필요는 없을꺼 같지만 오늘은 어떻게 할래?"
"뭐... 간단한 이야기죠. 처음부터 끝까지 전력으로 막아야죠."
"그렇네."
괜히 물어봤다는듯 머쓱한 표정을 지었던 김태곤은 유성에게 마지막 말을 남기고 자신의 자리로 향했다.
"유성아, 마음대로 던져라."
"얼마든지 그러죠."
[중립 구장에서 펼쳐지는 경기에서는 1위팀이 내내 홈팀으로 경기를 치루게 됩니다. 다시 말해 다이노스가 홈팀의 위치에서 경기를 치루기에 다이노스 기준으로 선수비 후공격으로 경기가 진행됩니다.]
[그래서 지금 박유성 선수가 마운드에 오르고 있습니다.]
"확실히 구장이 크니깐 분위기가 다르네."
잠실구장의 위치상 다이노스보단 히어로즈팬들이 더 많아보이기는 하지만 히어로즈도 상대적으로 팬층이 적은 팀이었기에 큰 차이가 나지는 않았다.
그야말로 중립구장이라는 의미에 걸맞게 양팀의 팬들이 비슷하게 잠실 구장을 채우고 있었다.
물론 그 중에는 단순히 야구를 보러왔거나 특정 선수의 경기를 보기 위해 온 사람도 있을 것이다.
"플레이볼!"
생각에 잠시 잠겼던 사이에 시간이 되었는지 주심이 경기 시작을 선언하였고, 유성은 타자에게 인사도 할겸 초구부터 정확하게 한가운데로 공을 던졌다.
그렇게 초구부터 기록된 구속은 무려 164km나 나왔고, 많은 다이노스 팬들이 환호를 보냈다.
[164km! 초구부터 164km가 나왔습니다!]
[이 공 하나로 이번 시즌의 다이노스가 설명이 됩니다. 다이노스가 이번 시즌의 챔피언까지 단 한발이 남았다는 사실을 말이죠.]
평소라면 삼진을 생각한 피칭을 하겠지만 유성은 오늘 다른 것을 생각하고 있었다.
그렇기에 2구째로 투심을 꺼내들었고, 구속이 느려진 것을 깨달은 서건수가 타격을 시도했으나 투심인것은 알아차리지 못했기에 순식간에 유격수 땅볼로 물러나고 말았다.
유성이 첫 타자를 가볍게 정리하자 히어로즈 타자들은 빠르게 계획을 바꾸었다.
원래대로라면 유성이 강속구 위주의 피칭을 할것이라 보고 그곳에 초점을 맞추었겠지만 오늘의 유성은 변화구 비중이 생각보다 높을지도 모른다고 생각 되었기 때문이었다.
실제로 유성은 2번 타자에게도 초구는 160km의 공을 던졌으나 2,3구 모두 변화구를 던지며 헛스윙 삼진으로 2아웃을 만들어냈다.
"어차피 160은 배트가 못 따라가. 녀석이 155 아래로 내려서 완급 조절을 하면 모르겠지만... 오늘 변화구 비중을 보니 완급 조절은 변화구로 할 생각인 모양이야."
"그러면 변화구에 맞춰야하는데 유성이 변화구가 워낙 많으니..."
국가대표팀을 통해서 유성의 공에 대해 자세히 알아본 히어로즈 선수들이 꽤나 있었기에 유성의 구종 자체는 파악하고 있는 히어로즈였으나 투심을 제외하고도 4개나 남아있는 변화구에서 하나를 고르는 것도 어려운 선택이었다.
"지난 시즌엔 그나마 사람 같았는데 올해는 구종이 늘어나서 진짜 답이 없네."
"일단 오늘도 컨디션은 좋은가보네."
3번 타자도 삼구삼진을 기록하며 단 8개의 공으로 1회를 마무리한 유성이 마운드에서 내려가기 시작했고, 지켜보던 히어로즈 타자들은 한숨을 쉬며 수비를 준비하기 시작했다.
"끝났군. 초반 분위기부터 넘어가버렸어."
"남은건 박유성이 오늘 경기에서 어떤 기록을 세우고 마운드에 내려가느냐 정도겠군."
"마지막 경기인데 끝까지 던질 가능성은?"
"...그러고보니 오늘 이기든 지든 이번 시즌의 마지막 등판이군."
지난 시즌에도 마지막 등판때 9이닝 모두를 던졌던 유성이기에 스카우터들은 이번에도 그렇게 될것인지를 지켜보기로 하였다.
한편 1회 말에 공격을 전개하던 다이노스도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마지막이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히어로즈 투수들이 전력을 다해서 다이노스 타자들을 틀어막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결국 양팀 투수들이 모두 1회를 무실점으로 막아낸 것을 기점으로 경기는 단 한순간도 방심 할 수 없는 투수전으로 접어들었다.
"생각보다 더 질긴데?"
"그만큼 저쪽도 절실하니깐요."
"그나저나 이번 한국시리즈는 1경기 빼곤 5점 이상 뽑은 적이 없네."
"그만큼 투수들 집중력이 좋았으니깐요."
4회까지 0대0 상황이 유지되고 있는 상황이었기에 무엇인가 변화가 필요한 시점이었으나 마땅히 변화를 줄만한 방법도 없었다.
그렇게 고민에 빠져 있는 사이에 경기는 5회로 접어들었다.
[이제 경기가 5회로 접어들고 있는데요. 투수전을 예상하기는 했습니다만 이렇게까지 팽팽한 경기가 될줄은 저희도 예상을 못했습니다.]
[네, 박유성 선수는 예상대로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지만 히어로즈는 예상 이상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보니 이런 상황이 이어지는것 같습니다.]
[그래도 슬슬 변화를 줄 필요가 있을텐데요. 실제로 히어로즈 불펜이 준비를 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네요.]
[그렇다면 5회가 끝나면 바로 바꿀 가능성이 높겠네요.]
투구수의 여유가 있지만 많이 던질수록 체력이 떨어지기에 빠른 교체를 가져갈 것으로 예상되는 히어로즈와 달리 다이노스 투수들은 평온함 그 자체였다.
다시 마운드에 오른 유성의 투구수가 아직 40구도 안 된 상황이었기 때문이었다.
"치지도 못하는데?"
"그래. 그래서 준비 해봤자 2명 정도만 할꺼야."
이미 2년간 유성의 경기를 지켜보았다.
작년엔 그나마 6이닝만 던지고 마무리한 경우도 있었지만 올해는 7이닝이 최소이기도 했고, 여차하면 오늘 경기를 유성이 혼자서 모두 책임질 가능성도 있었기에 불펜 투수들은 평소처럼 지켜보고 있었다.
"하긴... 일단은 기록이 하나 진행 중이니깐."
전광판을 얼마든지 확인 할 수 있는 그들이기에 지금 유성이 진행 중인게 무엇인지 알 수 있었다.
그러는 사이에 박병훈, 강정하와 2번째 대결을 가지게된 유성은 가볍게 간을 보듯 스트라이크 존에서 살짝 벗어나는 투심을 던졌다.
하지만 선구안이 떨어지는 타자라면 혹해서 배트를 내밀 정도로 아슬하게 벗어나는 공이었기에 쉽게 참기는 힘들 것이었다.
팡!
[초구 볼이 되었습니다.]
[박병훈 선수가 살짝 움찔했던거 같지만 참아냈습니다.]
[그렇습니다. 사실 이건 휘둘렀어도 뭐라 할말이 없을 정도의 공이었거든요.]
- 솔직히 말해서 우승 기대 접었으니 대기록 같은거만 주지말자.
- 그래. 지더라도 마지막까지 발악하다가 지는게 나음.
"지더라도 어떻게든 1점이라도 낸다."
딱!
2구째인 160km의 공을 건드렸으나 타구가 높게 그리고 뒤로 떠버리면서 포수가 가볍게 파울 타구를 아웃으로 만들어내며 박병훈의 의지와는 달리 2구만에 아웃 카운트가 만들어지게 되었다.
[이게 이렇게 파울 아웃이 되버리는군요.]
[그러게요. 히어로즈로써는 가장 믿을 수 있는 타자가 또 한번의 기회를 만들어주기를 빌었을텐데 어렵게 되었죠.]
강정하라면 홈런을 노릴 수 있을지도 모르지만 한가지 알아둬야할 사실이 있었다.
유성이 후반기에 들어와서 단 1번도 홈런을 허용한 적이 없다는 점이었다.
다른 선수들을 분석하며 자신의 기록도 확인하는 유성이었기에 그런 점들을 이미 알고 있었지만 그렇게 중요하게 여기지 않고 있었다.
반면 그런 유성을 상대해야하는 타자 입장에서 본다면 정말 막막한 상대가 바로 유성이었다.
펑!
[헛스윙 삼진!]
[결국 강정하 선수까지 삼진으로 처리한 박유성 선수입니다.]
'졌군.'
아직 0대0의 상황이 이어지고 있지만 히어로즈의 염 감독은 직감했다.
다이노스의 불펜은 움직일 기미조차 없었다.
반면 히어로즈는 얼마 안 되는 불펜을 6회부터 투입할 예정이었다.
'저쪽은 선발이 혼자서 9이닝을 책임질 수도 있지만 우린 불펜이 최대 10이닝을 막아야한다.'
히어로즈가 엔트리에 포함 시켰던 투수의 숫자를 감안하면 연장전까지 돌입하더라도 분명 어딘가에서는 한계가 생길 수 밖에 없다.
그래서 한국시리즈에서 속전속결을 원했고, 매 경기를 정규 이닝 안에 승부를 내기를 원했다.
사실 1승 3패로 패배 직전까지 몰린 시점에서 이미 끝난것이었으나 마지막 희망을 잡고 있었으나 유성이 5회마저 완벽하게 삼자범퇴로 마무리하자 결국 한숨을 쉴 수 밖에 없었다.
"이런 규격 외의 괴물을 내년에도 상대 해야하는건가..."
이런 상황이 되다보니 그도 여러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다이노스가 그 제도에 적극적이었던건 MLB로 선수를 진출 시키는 것 말고도 리그의 균형을 맞추기 위해서라는 조금은 이상할지도 모르는 생각이었다.
그러는 사이에 5회 말이 시작되자 그라운드로 시선을 보냈다.
"슬슬 점수 내야하는데... 타순이 조금 아쉽네."
"그러게요. 4명 중 2명은 출루해야 저희한테 기회가 연결이 되니깐요."
히어로즈 타선이 유성에게 완벽하게 눌려져서 부각이 안되었지만 다이노스 타선도 그렇게 좋은 모습을 보이지는 못하고 있었다.
8번 타자부터 시작하는 타순에서 선두 타자는 손시한이었다.
'슬슬 칠때가 됬지.'
이미 공에 대한 적응은 끝났다.
그렇게 빠른 공을 던지는 투수는 아니지만 괜찮은 변화구와 수준급의 제구력으로 인해 쉽게 공략하지 못했을 뿐이었다.
그렇기에 적응이 끝난 지금이라면 칠 수 있다.
딱!
[초구 쳤습니다! 유격수 키를 넘기는 타구! 손시한의 깔끔한 좌전 안타!]
[오늘 경기에서 처음으로 무사에 주자가 나가게된 다이노스네요.]
"어?"
"아직이야."
9번 타자는 포수인 김태곤이었다.
오늘 유성의 공이 좋기에 편하게 볼배합을 가져가도 되었지만 유성의 컨디션이 좋다는 것을 깨닫고 볼배합에 집중했던 김태곤이기에 타격은 상대적으로 집중력이 떨어진 상태였다.
'다음 이닝은 하위 타순이니...'
팡!
"집중 좀 해야겠네."
아직 4이닝이나 더 남아있었기에 김태곤은 초구가 볼이 되자마자 집중력을 끌어 올리며 투수의 공을 차근차근 지켜보기 시작했다.
가장 타격이 약하다고 평가 받는 김태곤의 타석이었음에도 투수는 신중하게 공을 던지고 있었고, 그 결과 1S-3B로 유리한 카운트가 만들어진 상태였다.
"...준비할까요?"
"그래. 지금 하자."
계속해서 지켜보고 있던 나범성과 이호중은 김태곤이 다음 공까지 참아내며 볼넷을 얻어내는 것을 보고는 바로 타석에 들어설 준비를 시작했다.
이제 타순은 1번 타자부터 시작하고 있었다.
"득점권의 악마가 나오겠군."
[이제 무사 1,2루의 찬스가 만들어졌는데요. 지금 타석에 들어오는 박민오 선수는 이번 시즌 신인왕이 유력한 선수입니다.]
[네, 이번 시즌 박민오 선수의 타율이 정확히 3할인데요. 여기서 주목할 점은 득점권 타율이 0.380에 달한다는 점입니다.]
[그 말은 득점권이 만들어진 지금 8푼이나 더 높은 확률로 안타가 나온다는 이야기로군요.]
"득점권 타율이 허상이라는 세이버 메트리션들이 제법 되지만... 막상 보면 실제 찬스에서 한단계 더 뛰어난 폼을 보여준 타자들은 수 없이 존재했어."
"그렇다면 이번에는 어떻게 될꺼 같나?"
"안타지만 적시타는 무리일꺼야."
딱!
[쳤습니다! 순식간에 내야를 벗어나고는 중견수 앞에 떨어지는 안타!]
[주자는 무리하지 않고 3루에서 멈춥니다!]
[아, 이건 약간 아쉽네요. 타구가 너무 정면으로 갔어요. 안타가 되기는 했지만 주자가 들어올 정도는 못 되었네요.]
게다가 히어로즈가 알게 모르게 조금씩 전진을 했던 상태라서 이런 결과가 나온 것도 사실 운이 따라준 것이었다.
"감은 아직 안 죽었군."
"이제 사표 쓰고 나왔지만 시즌 중까지만 해도 히어로즈에 데이터를 제공하고 있었으니깐 두 팀 모두 잘 알고 있다고."
그런 상황에서 히어로즈는 급하게 투수 교체를 감행했다.
준비야 진작에 시작했으니 올리는 것 자체는 문제가 없었고, 히어로즈는 이 위기를 넘기기 위해 과감하게 조성우를 마운드에 올렸다.
그리고 2번 타자인 김종하를 돌려 세우며 히어로즈로써는 가까스로 한숨을 돌리게 되었다.
"다녀올게요."
"다 쓸어먹지는 마라."
"어... 노력해볼게요."
하지만 한숨을 돌렸을뿐 여전히 1사 만루의 상황이 이어지는 상황에서 이 찬스를 기다리던 다이노스의 클린업 트리오가 차례차례 나서기 시작했다.
오늘 경기에서 가장 중요한 대결이 그렇게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