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기록파괴자-96화 (96/156)

# 96

Chapter 37 - 손 바닥 안의 거인

올스타전이 끝나고 다이노스는 유성의 등판을 한번 늦게 시작하기로 결정했다.

여전히 에이스 역할을 담당하고 있지만 로테이션 순서상으로는 5선발이 된 것이었다.

대신 타자로는 출전을 하였는데 이호중이 가벼운 부상으로 빠지면서 유성이 지명타자로 들어가게 되었다.

후반기 첫 3연전인 이글스전에서 스윕과 함께 3경기 연속 10득점도 유성의 결정적인 한방에서 완성된 기록이었다.

이글스전 스윕을 시작으로 후반기를 시작한 다이노스는 몇차례 위기를 겪기도 했다.

그래도 전반기에 쌓아둔 압도적인 승수를 기반으로 계속해서 1위를 유지한 다이노스는 어느덧 휴식기까지 6경기만을 남겨두게 되었다.

"이 6경기 뒤면 아시안게임이겠구나."

"그렇게 되겠네요."

현재까지 유성이 투수로 등판한 경기는 총 20경기로 143이닝을 소화한 상태였다.

"27이닝... 일단 대표팀이랑 기용 방법에 대한 이야기는 끝냈다. 그리고... 만약 1위를 달성한다면 제한보다 조금 더 많은 이닝을 던지게 될꺼다."

"그정도는 예상하고 있었습니다."

"그래? 하긴..."

새로 조항을 만들기는 했지만 그 조항이 만들어지지 않았더라도 계약서의 조항에 따라 팀이 우승을 한다면 유성을 보내줘야 하는 상황에 있는 다이노스였다.

"어차피 우승할꺼 깔끔하게 보내는게 맞죠."

"애초에 그 조항도 우승한다는 가정으로 추가한거니깐요."

"그렇지."

에이전트가 대부분 업무를 진행해서 눈치채기 힘든 부분이지만 유성은 생각 이상으로 많은 것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다이노스도 유성의 취급은 조심스러운 편이었다.

"본인이야 신경 안 쓴다지만 주변 시선이 있지."

아시안게임 이전의 마지막 등판 상대는 자이언츠였다.

"자이언츠라..."

"어렵지는 않겠네요."

최고 구속이 165km로 갱신된 이후에도 유성은 무작정 빠른 공만을 던지지는 않았다.

애초에 150 중반의 공만 되어도 공략을 못하는 타자들이 많았기에 유성의 후반기 성적은 전반기보다 조금 더 나은 모습을 보였고, 결과적으로 1.13이라는 터무니 없이 낮은 방어율이 기록된 상태였다.

[솔직히 말해서 최근 박유성 선수를 상대하는 팀들의 의욕을 잃었다고 해야할까요? 후반기 들어와서 3실점은 커녕 2실점을 한 경기가 단 1경기도 없거든요.]

[실점을 아예 안 하는건 아닙니다. 오히려 후반기 등판 대부분의 경기에서 실점을 했죠.]

[그러나 그게 끝이라는 점이 선수들의 의욕을 떨어트리는 요소인거죠.]

선수들도 보는 것이 있었다.

유성이 6월부터 등판한 모든 경기에서 무실점이나 1실점 경기를 펼쳤다는 점을 똑똑히 보아왔기에 오늘 경기에서도 자이언츠 타자들은 0점 아니면 1점이 유력했다.

그러한 점으로 인해 자이언츠 타자들은 경기내내 의욕 없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몇몇 선수들을 제외하고는 말이었다.

"그래도 평생 손 놓을 수는 없잖아요?"

"그렇기는 하지."

황재규, 손아성, 최준서, 강만호, 전준오까지 이어지는 자이언츠 핵심 타선은 분명히 무시할만한 상대가 아니었다.

그러나 유성도 애초에 방심을 안 하는 성격이었기에 오늘 경기도 힘과 힘의 대결이 될 확률이 높았다.

"TV로 볼 수 있었던 2010년 자이언츠 타선을 상대하고 싶었지만..."

지금 이 타선이 유지되는 것도 몇년 안 남은 상태였다.

MLB에 비할 정도는 아니겠지만 이정도 수준의 타선을 상대하는 것도 흔한 기회는 아니었다.

팡!

"좋아. 시작하죠."

"그래."

마운드로 향한 유성은 자이언츠 타선을 확인하고는 작전을 점검했다.

마침 자이언츠의 선발이 장원중이었기에 해당 작전의 결정은 손쉽게 이루어질 수 있었다.

[오늘 박유성 선수의 상대인 장원중 선수에 대한 이야기를 하자면 슬로우 스타터라고 해야할까요.]

[네, 경기 초반에는 위기를 자주 맞는데요. 그 위기를 넘기면 이후부턴 쭉쭉 호투를 이어가는 유형이죠.]

[그렇습니다. 결국 다이노스가 초반에 얼마나 점수를 낼 수 있느냐가 관건이 되겠죠.]

"1점이면 충분해."

1회 초는 다이노스의 수비였기에 유성이 먼저 마운드에 오르게 되었다.

그리고 자이언츠 타자들은 예상 외의 상황을 맞이해야했다.

"140km?"

"이건 또 무슨 생각이지?"

"...재미 있는걸 할려나보는데."

스카우터들도 오늘 유성의 새로운 스타일에 관심을 가졌다.

140 초반의 구속이 꾸준히 유지되고 있는 가운데 유성이 공을 던지는 코스는 철저하게 바깥쪽 코스였다.

팡!

[헛스윙 삼진! 1,2구 모두 바깥쪽에 140 초반의 구속이 나온 패스트볼이었는데 3구째가 바로 몸쪽에 들어오는 체인지업이었네요.]

[네. 보기에는 간단한거 같지만 저렇게 들어오면 대부분 타자들은 다 헛스윙으로 물러날 수 밖에 없습니다.]

[첫 타자지만 왠지 떠오르는게 있네요.]

[어떤거요?]

[메이저리그의 전설인 톰 글래빈이요.]

팡!

2번 타자에게도 초구는 바깥쪽 코스였다.

그러나 살짝 빠졌는지 볼 판정이 나왔다.

[초구 볼이 되었습니다. 네... 톰 글래빈이라고 하니깐 제법 보이네요.]

MLB 명예의 전당에 등재된 수 많은 투수 중에서 톰 글래빈은 특별했다.

우완 투수인 유성과 달리 그는 좌완 투수였지만 모든 좌완 투수들이 47번을 탐내게 된 이유가 바로 그가 사용했던 번호였기 때문이었다.

그정도로 뛰어난 영향력을 보여준 투수의 피칭을 지금 유성이 오른손으로 재현하고 있었다.

[정확히 따지면 말년의 글래빈이겠군요. 한창때의 글래빈은 오직 바깥쪽으로만 던졌고, 말년에서야 몸쪽도 던지기 시작했거든요.]

[덕분에 말년에 제 2의 전성기를 경험하기도 했죠?]

[그렇죠. 의문이 드는 점은 박유성 선수가 왜 빠른 공을 놔두고 이런 방식을 취했느냐인데요.]

그 사이에 2번 타자를 범타로 처리한 유성은 순식간에 3번 타자를 불리한 볼카운트로 몰아가기 시작했다.

이렇게 되자 자이언츠 타자들의 머리가 복잡해졌다.

'2스트라이크까진 무조건 바깥쪽인거 같은데...'

문제는 유성이 지금 단순히 포심만 던지는게 아니라 투심을 같이 쓰고 있다는 점이었다.

그러다보니 느린 공이라고 해서 무작정 때리기도 힘든게 공에 따라서 볼이 되는 공도 있기 때문이었다.

팡!

초구는 볼.

여전히 바깥쪽 코스였다.

'어차피 2스트라이크까지 바깥쪽이라면...'

타석에 좀 더 붙는다.

바깥쪽 코스를 적극적으로 공략한다.

그게 바로 손아성의 선택이었다.

'붙었는데?'

'그대로 가죠.'

딱!

[쳤습니다! 우익수 방면! 파울 라인 밖에 떨어집니다!]

[정말 아쉬운 타구네요.]

[손아성 선수는 이렇게 되면 2스트라이크로 몰리게 됩니다.]

팡!

방금 파울이 된 공의 구속은 142km였다.

그리고 지금 손아성이 멍하니 지켜볼 수 밖에 없었던 몸쪽에 들어오는 포심의 구속은 정확히 10km가 올라온 152km의 구속이었다.

"완급 조절력은 확실히 최고 수준이로군."

"단순히 10km를 올린게 아니라 바깥쪽에서 몸쪽으로 들어오는 것 때문에 체감 속도는 더 올라왔겠지."

순식간에 1회 초가 마무리 되었다.

다이노스 타자들은 유성의 말대로 단 1점이라도 뽑아내기 위해 초반부터 공세를 시작했고, 계획대로 2회 말 공격때 1점을 획득하며 승기를 가져왔다.

그러는 사이에 유성은 2회 초에 2개의 삼진을 곁들이며 삼자범퇴로 이닝을 마무리했고, 1점의 지원을 받은 3회 초부터는 단 1번의 출루를 제외하면 자이언츠에게 기회조차 주지 않았다.

[오늘의 박유성 선수는 엄청나군요.]

[네, 바깥쪽 위주로 던지는 피칭을 펼치고 있지만 결정구는 모두 몸쪽으로 들어온 공이거든요. 게다가 오늘 실책으로 출루 시킨 1명의 주자를 제외하고는 단 1명의 주자로 추룰 시키지 않으면서 대기록을 7이닝째 이어가고 있습니다.]

[만약 성공한다면 개인 2번째죠?]

[그렇습니다. 철저한 이닝 관리를 하고 있는 다이노스라고 해도 대기록이 걸린다면 계속 놔둘 수 밖에 없을겁니다.]

[다행이라면 박유성 선수의 투구수가 아직 80개도 안 되었다는 점인데요. 한계 투구까지 20구도 안 남았기에 꽤나 흥미로운 결과가 나올지도 모르겠습니다.]

"어떻게 할꺼냐?"

"그냥... 8이닝까지만 할게요."

"괜찮겠냐?"

"전반기라면 말려도 던졌겠지만... 이젠 우승을 조금씩 준비 해야하니깐요."

"...그렇군."

현 시점에서 유성은 시즌 17승에 도달한 상태였다.

이닝 관리와 타자 출전을 위해 20경기에 등판해서 기록한 기록이었다.

만약 오늘 경기에서 승리를 거두면 18승이 되고 아시안게임 이후 2경기를 더 등판할 예정이기에 전부 승리를 거둔다면 20승을 달성하게 된다.

그런 점을 감안한다면 본인이 끝까지 던질려는 생각도 있을텐데 유성은 대기록까지 저버리며 우승을 위해 준비하고 있었다.

"주환이만 준비 시켜."

"네."

이제는 확고하게 다이노스의 마무리로 자리 잡은 주환도 세이브 1위 경쟁을 할정도로 9회를 철저하게 틀어 막고 있었다.

그런 불펜 상황을 확인한 유성은 마지막 이닝에는 구속을 최대한 끌어 올리기로 했다.

팡!

[여기서 155km가 찍히는군요.]

[박유성 선수가 경기 초반에는 140 초반의 구속을 유지하다가 조금씩 끌어 올려서 직전 이닝에 140 후반이 되었는데요. 끝이 다가왔다는걸 깨닫고 페이스를 올리는듯 합니다.]

[음... 그러면 다이노스는 박유성 선수를 8회까지만 던지게 할 수도 있겠군요.]

[선수 본인이 그러는게 아니라면 가능성은 낮다고 보지만요.]

"아오 여기서 구속을 올리네."

"빨라도 150 초반까지만 올리더니 지금 쓸려고 아껴놨던건가..."

"올해 MVP도 저녀석이겠구만."

"타자로 2년 연속 20홈런 친것만으로 엄청난데 투수로는 2년 연속 4관왕을 할려고 하니..."

오늘 경기 전까지만 해도 의지를 불태우던 선수들이 있었지만 이렇게 압도적으로 당하게 되니 차라리 유성이 올해와 내년까지 MVP를 획득해서 빠르게 MLB로 넘어가버리기를 비는 선수들도 있었다.

결국 유성이 8회를 마무리하고 그쯤에서 테인즈의 솔로 홈런이 터지며 스코어는 2대0으로 벌어지게 되었다.

그리고 이후 9회에 주환이 마운드에 오르며 자이언츠는 큰 짐을 하나 덜게 되었다.

[혹시나 했습니다만 박유성 선수가 정말로 마운드에서 내려갔군요.]

[대기록이 유지 중이었고, 박유성 선수의 투구수도 8회를 마친 시점에서 89구로 마음 먹으면 혼자서 끝낼 수도 있었는데 말이죠.]

그래도 주환이 1이닝을 완벽하게 틀어막으면서 세이브를 획득하는 동시에 팀 노히트라는 기록을 작성하게 되었다.

혼자서 달성하는 노히트 노런과 달리 여러 투수들이 노히트로 틀어막을때 사용하는 단어였는데 이 경기덕분에 다이노스는 팀 역사상 2번째 노히트 승을 1군 진입 2년만에 거두게 되었다.

[노히트까지 아웃카운트가 3개가 남았는데 왜 마운드에서 내려왔나요?]

"곧 아시안게임이기도 하고... 당장의 기록보다는 포스트시즌에 더 집중하려고 제가 8이닝까지만 던지겠다고 했습니다."

[아, 그렇군요. 개인 기록보다 팀을 더 중시하셨군요.]

"네. 휴식기 뒤의 경기가 남아있지만 우리팀이 다른 팀에 비해 한발 정도 앞서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1위를 목표로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 하겠습니다."

이후 자이언츠전 1승과 와이번스전 1승 1패를 기록한 다이노스는 119경기 73승 2무 44패 0.624라는 기록으로 1위를 유지하며 휴식기를 맞이하였다.

그래서 대부분의 선수들은 급격하게 경기가 치루어진 후반기동안 소모한 체력을 회복하기 위한 시간을 가지기 시작하였고, 아시안게임 대표팀에 선발된 4명의 선수들은 이번 아시안게임이 열리는 인천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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