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3
Chapter 35 - 왕조의 벽 (4)
5회 초
유성은 선두 타자에게 2루타를 허용하며 무사 2루의 위기를 맞이하게 되었다.
이런 위기 상황이 자주 나오는 것이 아니었기에 스카우터들은 자세를 바로 하고 이 장면을 지켜보았다.
"타선 좋네."
"게다가 라이온즈가 묘하게 분위기를 탄거 같아서 말이지."
"1점은 준다는건가?"
"글쎄... 찬스에 더 잘 치는 타자가 있고 못 치는 타자가 있는것처럼 위기때 더 잘 던지거나 더 못 던지는 투수도 있으니깐."
"박유성이 못 던지는 투수는 아니니... 타자가 관건이겠군."
잠시 생각에 빠졌던 유성은 타자가 타석에 들어선 것을 보고 바로 자세를 잡았다.
2루의 주자는 빠른 주자가 아니기에 우선적으로 장타를 막아내야했다.
'부담은 가지지말고...'
장타만 억제한다면 다이노스 외야진으로 충분히 막아낼 수 있다.
생각을 정리한 유성은 타자를 보았다.
라이온즈의 5번 타자 박선민.
보통이라면 매 시즌 20홈런 80타점 이상을 때려내는 파워와 집중력에 주목하겠지만 유성은 이 타자의 진가를 알고 있다.
'소위 말하는 OPS형 타자.'
흔히 이야기 되는 3할 타율, 4할 출루율, 5할 장타율.
이 조건을 완벽하게 부합 시키는 타자가 바로 박선민이었다.
"덕분에 눈에 띄는 리그 폭격을 해본적은 없지만..."
세이버 메트릭스를 중시하는 다이노스가 96억이나 투자하게 되었다.
과거의 기억에 따르면 결국 실패였지만 말이었다.
'게다가 앞으로 다이노스는 불펜 문제가 제기 된다.'
지난 시즌은 유성과 재후라는 뛰어난 토종 선발과 놀라운 선구안으로 데려온 외국인 선발 덕분에 5선발을 돌리다못해 간혹 6선발을 돌릴 정도였고, 이번 시즌도 상황은 비슷하게 흘러갈 예정이었다.
하지만 다음 시즌부터가 문제였다.
외국인이 1명 줄어들기에 기본적으로 4선발은 유지되겠지만 새로운 선발을 찾을때까지 불펜이 그만큼의 부담을 더 해야한다.
"어차피 나랑 큰 관계는 없겠지만."
팡!
155km
초구 스트라이크를 얻어낸 뒤에 전광판을 슬쩍 보면서 구속을 확인한 유성은 빠르게 다음 공을 던졌다.
2구째인 슬라이더가 날카롭게 꺾여들어왔기에 박선민도 맥 없이 헛스윙을 할 수 밖에 없었다.
그것을 보고 김태곤은 바로 승부를 보는걸로 결정했다.
'안타 정도는 아예 안 맞을 수 없는거니깐 여기서 처리하면 된다.'
빠른 승부는 유성도 원하는 것이었기에 바로 결정구를 던졌다.
그렇게 날아가기 시작한 3구째에 맞춰서 박선민도 다시 스윙을 시작했다.
분명히 유성에게 유리한 상황이지만 박선민은 유성의 모습을 보고 직감적으로 3구째를 눈치챘다.
그렇기에 그의 스윙은 아래에서 위로 올리는듯한 모션이 되었고, 김태곤은 순간 경악을 했다.
딱!
[걷어 올립니다! 내야를 완전히 벗어나면서 우전 안타!]
[2루 주자는 3루로! 그리고 바로 홈까지!]
[우익수! 홈으로! 하지만 1루수가 커트! 결국 실점을 하고마는 다이노스! 그리고 스코어 3대1로 추격을 시작하는 라이온즈!]
"와... 그걸 쳐?"
약간은 어이 없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방금의 박선민은 명백하게 스플리터를 노리고 걷어 올리는 타격을 했다.
1루에 있는 그를 보며 고개를 젓고 있는 유성을 향해 김태곤이 걸어왔다.
"미안. 너무 급하게 덤볐다."
"아니에요. 그냥... 타자가 더럽게 잘 쳤어요."
이걸로 3점의 리드를 2점으로 줄어들었다.
물론 유성이 쉽게 점수를 내주지는 않겠지만 불안감이 들 수 밖에 없었다.
"어떤가?"
"아직은 괜찮습니다. 애들이 이 정도 위기를 작년에 못 겪어본 것도 아니니깐요."
"그렇지."
중요한건 이 다음이다.
이제 타자는 라이온즈의 6번 타자 이승연.
스코어를 다시 확인한 유성은 이 시점에서 가장 골치 아픈 상대를 만났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면서도 한가지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시즌 초반에 라이온즈를 만났기에 얼마든지 문제점을 개선할 시간이 있었다.
그리고 다음에 만날때는 좀 더 치밀한 패턴을 준비 해올 것이다.
"왕조를 상대하는데 이 정도 정성은 들여야겠지."
그렇게 생각을 정리한 유성이 김태곤의 사인을 확인했고, 김태곤은 방금 맞았던걸 고려했는지 초구로 투심을 요구했다.
초구는 지켜보는걸로 방향을 잡았는지 이승현도 초구를 지켜보았다.
'투심? 방금의 1점 때문에 복잡하게 가기로 했나보군. 그렇다면...'
가끔 자존심이 강한 투수들은 맞았던 공을 그대로 던지는 경우도 있었다.
하지만 분석에 따르면 유성이 똑같은 공을 결정구로 쓸 확률은 30%도 안 된다는 자료가 있었다.
'그래도 투심이 초구라면...'
잠시 고민을 하던 그는 이내 결정을 했다.
유성이 무엇을 던질지 확신을 가지지는 못하지만 그래도 하나의 공에 타겟을 잡아두기로 했다.
2구째는 159km까지 올라간 포심이었으나 그가 기다리던 공이 아니었다.
그렇기에 가만히 2스트라이크를 주었음에도 표정에 큰 변화가 없었다.
'투심은 그렇다고 쳐도 포심도 기다렸다... 단순히 빠른 공이라서 그런건 아닌거 같고...'
너무나 미동이 없었기에 김태곤도 의심이 들었다.
그렇기에 살짝 빠지는 유인구를 요구했다.
[3구째 볼. 여전히 가만히 지켜보고 있는 이승연 선수입니다.]
[2S-1B로 불리한 볼카운트인데요. 다이노스 배터리는 방금의 실점 때문에 급하게 승부 하지 않고 있고요.]
'이제 뭘 던질꺼냐.'
커브를 제외한 모든 공을 염두에 두어야한다.
승부를 길게 가져가겠다는건 다양한 구종으로 승부를 보겠다는 이야기니 자신이 노리는 구종도 들어올 것이다.
그리고 4구째가 날아오는 것을 본 이승연은 본능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오랜 시간동안 공을 쳐온 타자로써의 직감이 말했기 때문이었다.
딱!
[쳤습니다! 이 타구! 모두가 생각하는 그대로! 담장을! 넘어갑니다! 이승연의 동점 투런!]
[여기서 동점을 만들어내는군요.]
[박유성 선수가 이렇게까지 몰린게 얼마만이죠?]
[지난 시즌에 히어로즈전 5실점 이후로 처음이죠.]
[그렇게나 오래됬군요.]
- 오늘 무슨 마가 끼었나.
- 진짜 작년이랑 다르네.
홈런을 허용한 유성은 답답함을 느끼고 잠시 모자를 벗었다.
그리고 머리카락을 헝크리며 방금 상황을 복기했다.
'완벽하게 당했네...'
방금의 그 타이밍, 스윙, 임펙트까지 모든 것이 유성의 체인지업에 초점이 맞춰진 것이었다.
급하게 김태곤과 최일헌 코치가 마운드에 올라왔으나 유성의 이야기를 듣고 내려갔다.
어쩌다보니 무사 주자 없는 상황이 다시 만들어졌고, 유성은 페이스를 끌어 올렸다.
아예 못 치는건 아니지만 칠 엄두가 안 나는 공이 바로 유성의 빠른 공이었다.
그렇기에 정확히 8개의 155km가 넘어가는 강속구를 변화구 하나 없이 던진 유성은 2개의 삼진과 1개의 범타로 이닝을 마무리 해버렸다.
[대단합니다. 3실점을 했음에도 흔들림 없이 오히려 빠른 공만을 던지면서 이닝을 마무리해버린 박유성 선수입니다.]
[그래도 다이노스 입장에서는 꽤나 타격이라고 해야겠네요. 믿었던 에이스가 3실점으로 동점을 허용했으니깐요.]
[아직 역전까지는 안 갔으니 다시 힘을 내서 1점을 더 추가하도록 노력해야할겁니다.]
[그렇겠죠.]
그러나 다이노스는 이후 유성이 내려갈때까지 점수를 내지 못했다.
기회가 없던 것은 아니었다.
배열수가 6회에 위기를 맞이했으나 라이온즈의 호수비가 나오면서 추가점을 얻어내지 못한 것이었다.
결국 7회에부터 라이온즈 불펜이 가동되면서 더 이상의 점수는 얻어내지 못하며 유성도 등판을 마무리하게 되었다.
[7이닝 3실점. 평소보다는 조금 안 좋았습니다만 그래도 실점을 제외하면 박유성 선수답게 훌륭한 피칭이었습니다.]
[오늘 경기 시작 전에 0.39였던 방어율이 바로 1.2로 올라가버렸지만요.]
[뭐... 박유성 선수는 지난 시즌에도 1점대 방어율을 기록했으니깐요. 어찌보면 자리를 찾아간거라고도 할 수 있겠죠.]
- 자기 자리 찾았는데 1점대 방어율...
- 뭐... 맨날 잘 할 수는 없으니깐.
팬들도 평소에 유성이 던지는 모습을 봤기에 불안정한 모습을 자주 보여준 배열수에게 퀄리티 스타트를 내준 타선에 대한 이야기를 더 하였다.
"작년에도 투수로 20경기 나서서 16승 2패였으니..."
"올해 20승이 가능할려나?"
"작년보단 등판을 더 늘린다고 다이노스쪽에서 그랬으니 타선의 도움만 따라오면 문제 없을꺼야."
팬들은 타선에 대한 성토를 하려고 했으나 경기 후에 있던 유성의 인터뷰로 인해 거기까지는 하지 않게 되었다.
"오늘 승리 투수를 놓친거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그냥 제가 라이온즈 타선을 제대로 압도하지 못한 잘못이죠. 타자들은 3점이나 뽑아줘서 충분히 잘해줬습니다."
"그렇군요. 그럼 다음 경기는 어떻게 하실껀가요?"
"뭐... 타선이 3점만 뽑아주면 제가 못 던지는게 아닌 이상 다 이길 수 있습니다."
- 자신감 봐라.
- 2년차 징크스 오겠던데 오만한거 봐라.
ㄴ 징크스는 무슨... 그럼 시즌 초반에 틀어막힌 팀들은 뭐냐.
ㄴ 그 팀들도 다음에 보면 털겠지.
지난 시즌이 첫 시즌이었다는 보호막도 사라졌고, 유성이 MVP라는 실적까지 낸 상태였기에 소위 말하는 어그로들은 유성이 오늘 경기에서 비교적 부진하자 건드리기 시작했다.
꾸준히 뉴스 댓글을 확인하고 있었기에 이런 분위기를 파악한 시영이 유성에게 연락했으나 유성은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댓글요? 뭐... 떠들고 다닐 문제는 아니니깐 정말 심각한게 아닌 이상 놔두세요."
메이저리그에서도 부진할때 현지 팬들에게 자주 이런저런 이야기를 들은 경험이 있는 유성이기에 지금 수준은 가볍게 무시해도 될 정도였기 때문이었다.
'그러고보니 박병훈 선배한테 엄청난 안티가 있었지.'
당시 구단에서 고소를 하려고 했으나 박병훈의 선의로 인해 먼 훗날에서야 잡혔던 인물로 메이저리그에서 수 많은 경험을 얻었던 유성도 악질이라 판단할 정도의 인물이었다.
"나한테는 그런 녀석 없나보네."
간간히 SNS를 하면서 흔히 말하는 팬 관리를 조금씩 해온 유성이었기에 아마 그런 악성 댓글이 있었다면 바로 팬들의 제보로 이야기를 들었을 것이다.
거기까지 반응을 확인한 유성은 다음 경기를 준비했다.
치열한 접전 끝에 라이온즈와의 1차전에서 다이노스가 패배를 했기 때문에 유성은 3차전에 타격으로 복수할 계획을 잡았고, 2차전에 타선이 터지며 승리를 거둔 다이노스는 3차전에 합류한 유성의 엄청난 활약을 바탕으로 위닝 시리즈를 완성하였다.
"시즌 초반이지만 압도적인 차이로군."
"8할이 넘는 승률이라... 그래 엄청나게 압도적이군."
가장 위협적인 라이온즈마저 위닝 시리즈로 무너트렸다.
라이온즈가 1차전에 힘을 쏟아부으면서 2차전에 무기력하게 당했다면 3차전은 유성의 원맨쇼 수준의 경기였기 때문이었다.
"마지막에 3루타 대신 홈런이 되버려서 사이클링 히트를 실패했지?"
"그렇지. 라이온즈 입장에서는 한숨 돌린거겠지만 말이야."
"위닝을 내줬는데 한숨을 돌렸다기에는..."
"위닝에 기록까지 줬으면 처참했을텐데 하나는 막았잖아?"
"아... 그렇다면야..."
왠지 모르게 납득이 된 스카우터들이었다.
라이온즈 3연전을 마무리한 다이노스는 월요일을 맞이하며 하루 휴식을 취하였다.
그리고 다시 경기를 치루게 되었다.
그렇게 시간은 빠르게 흘러 올스타전이 다가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