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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록파괴자-92화 (92/156)

# 92

Chapter 35 - 왕조의 벽 (3)

쉴틈 없이 이어지는 다이노스의 공격으로 인해 라이온즈의 불펜이 움직일 기미가 보였다.

그와 동시에 잠시 시간을 끌기 위해 투수코치가 마운드에 올라왔다.

"괜찮지?"

"네. 아직 힘은 있어요."

"보통 타자가 아니니깐 신중하게 해라."

"네."

점차 KBO에 적응하고 있는 테인즈는 메이저 40인 로스터에 폼으로 들어간게 아니라는듯한 성적을 보여주고 있었다.

그렇기에 여차하면 거르라는 사인까지 받은 배열수는 복잡하게 머리를 굴려야했다.

'일단 주자 1루지만 발이 느린 주자.'

겨우 3회라서 대주자를 쓸 수도 없다.

목표는 땅볼 유도를 통한 병살타.

'저녀석에게 땅볼을 유도해도 범위 안에 묶어 둘 수 있느냐가 문제겠지만...'

테인즈의 스윙스피드는 엄청나다.

그러다보니 자연스럽게 라이온즈의 내야진도 한발씩은 뒤로 물러난 상태였다.

[네. 지금 상황이 얼마나 중요한지 위치에서 알 수 있네요.]

[위치라면...]

[라이온즈 내야수들의 위치를 보시면 다들 1,2발씩 물러나 있습니다. 이호중 선수의 주력이 상대적으로 떨어진다는 점을 노린거죠.]

[그렇군요. 그러면 테인즈 선수는 어떻게 해야할까요?]

[뒤로 물러나면서 사이사이의 거리가 생긴 내야 공간을 그대로 뚫거나 아니면 아예 외야 한복판에 떨어트리는게 좋겠죠.]

물론 타격을 하는 것은 테인즈였다.

내야의 위치를 살핀 그는 초구를 우선 지켜보기로 했다.

팡!

"스트라이크!"

[초구 스트라이크가 되었습니다.]

[아슬하게 걸치는 공을 잘 던졌네요.]

[그렇습니다. 이런 선수를 상대할려면 그만큼 더 높은 집중력을 보일 필요가 있습니다.]

'공이 좋군.'

메이저리그였다면 이런 여유는 아마 보기 힘들었을 것이다.

하지만 KBO 리그에서 몇경기만 뛰는 것으로 알 수 있었다.

딱!

[파울!]

[엄청난 속도의 스윙 속도와 타구였습니다.]

[테인즈 선수의 아쉬움이 여기까지 전해지네요.]

[그렇죠. 지금 다시 보시면 알겠지만... 공이 배트에 맞은 부분이 흔히 말하는 스윗 스팟에 완전히 벗어났거든요? 이건 배열수 선수가 던진 공이 테인즈의 예상과는 조금 달랐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렇군요. 일단 순조롭게 2스트라이크까지는 만들어졌는데요. 바로 승부를 볼까요?]

[글쎄요... 박유성 선수 같은 경우는 워낙 공격적이다보니 패턴이 어느정도 예상이 되는데 다른 선수들은 그게 아니니깐요.]

실제로 다음 공을 고민하던 라이온즈 배터리에게 가장 골치 아픈 점이 바로 이 점이었다.

'첫 타석때 안 속아서 겨우 잡았는데?'

'그래도 해봐야죠. 일단 우리가 유리한 고지에 있어요.'

사인 교환이 길어질뻔 했지만 현재 유리한 볼카운트를 잡고 있다는 점으로 인해 배열수는 포수의 사인을 받아들였다.

팡!

'이 패턴으로 들어오나?'

당연히 유인구가 들어올 것을 예상했기에 테인즈는 기다렸다.

메이저에서도 이렇게 유인구를 던지는 투수가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메이저에서는 유인구를 던져오는 투수들에 비견될 정도로 많은 숫자의 투수들이 곧 바로 승부를 걸어왔다.

"리그의 차이라고 해야할까? MLB에선 제법 흔한 40인 수준의 선수지만 KBO에선 최고의 선수 중 하나로 평가 받고 있으니깐."

"음... 그런 관점에서 본다면야..."

확실히 메이저리그에선 테인즈보다 몇단계씩이나 위의 단계에 속하는 투수들이 많았다.

하지만 KBO에선 아무리 높아도 동급 수준의 투수들만 있었다.

유일하게 테인즈를 압도할 수 있을 것이라 예상되는 유성도 같은 팀이라 대결이 성사될 일도 없다.

새삼스럽지만 그들은 유성의 실력을 재 평가해야했다.

"포스트 시즌 경험만 생기면 딱 좋겠는데..."

"다이노스는 작년보다 전력 보강이 충실하게 되었고, 몇몇 선수들도 성장했어. 올해는 무조건 갈꺼야."

"그런가..."

딱!

배열수의 4구째가 날아갔으나 테인즈가 가볍게 때려냈다.

그리고 때려낸 타구가 투수를 스쳐지나갔고, 그대로 내야를 벗어나려고 했다.

갑자기 튀어나온 글러브만 아니었다면 말이었다.

[쳤습니다! 하지만 2루수 잡아서 유격수에게! 그리고 1루로! 4-6-3 병살타!]

[완전히 안타라고 생각된 타구를 병살로 만들어냈습니다. 대단하네요.]

"쳇. 하필 저기로 갔군."

아쉬운 상황이었으나 이미 병살타가 되었기에 별 수 없이 덕아웃으로 돌아가야했다.

결국 다음 타자도 범타로 물러나며 다이노스는 1점을 추가하는 것에 그쳐야했다.

"이정도면 충분해."

라이온즈 타선의 기세가 올라오기는 했지만 유성은 억제할 자신이 있었다.

그와 별개로 김태곤은 생각에 빠졌다.

'이번 이닝은 1번 타자부터 시작한다. 2번째 타석이니 주의할 필요가 있어.'

유성에게 별 다른 이야기를 하지는 않았다.

유성은 언제나 자신이 요구하는 그대로 공을 던져주기에 자신이 유성에 대한 리드를 제대로 하면 될 뿐이었다.

[이제 경기는 4회 초로 이어집니다. 어떻게 보시나요?]

[라이온즈 타선이 이제 2번째 타석을 맞이하기 때문에 다이노스 배터리가 조금 더 주의를 기울여야할겁니다.]

[그렇겠죠. 그래도 박유성 선수의 공이라면 큰 위기가 없을것으로 보입니다.]

'1번 타자는 별거 아니야.'

팡!

150 초반으로 내린 공에도 제대로 못 따라 오고 있다.

유성의 슬라이더는 타자에 따라 점점 멀어지는 공이 되거나 아니면 몸으로 파고드는듯한 인상을 주는 공이었다.

"큭..."

타자가 좌타자였기에 유성의 슬라이더는 몸으로 파고드는듯한 움직임을 보였고, 피하는 것에 신경을 쓴 타자는 순식간에 2스트라이크로 몰리게 되었다.

거기서 이 승부는 끝난 것이다.

팡!

"스트라이크!"

[루킹 삼진! 가만히 지켜볼 수 밖에 없었습니다!]

[포심, 슬라이더, 포심으로 이어지는 간단한 패턴이었지만 전혀 건드릴 수 없었습니다.]

[그만큼 박유성 선수의 공이 이런 단순한 패턴에도 확실한 결과를 낼 수 있는 공이라는 이야기인데요.]

"그냥 실력 부족이지."

"KBO는 싱글A부터 트리플A까지가 모여있다고 했던가?"

"올해는 MLB급도 있지."

"...그렇군."

유성에 대한 더 정확한 판단을 위해서 메이저리그 스카우터들은 KBO 선수들을 최대한 파악하고 있었다.

그리고 방금의 1번 타자의 평가가 더 내려갔다는 것은 따로 말할것도 없는 이야기였다.

"이쪽은..."

"개인적이지만 라이온즈 2번부터 6번까진 다 볼만해."

"그런가..."

나바로가 타석에 들어서자 유성은 김태곤에게 사인을 보냈다.

만약 유성이 사인을 보내지 않았다면 평범한 주문을 했겠지만 유성의 주문을 받은 김태곤은 새로운 플랜을 꺼내들었다.

'기발한데?'

'머리 좀 굴렸지.'

초구는 스트라이크 존에 들어오는 커브였다.

첫 타석때 유성의 공격적인 피칭 스타일과 과감성을 파악한 나바로지만 이렇게까지 들어올줄은 몰랐기에 움찔하기는 했으나 배트를 휘두르지는 못했다.

거기다가 유성이 빠르게 다음 공을 던질 준비를 하고 있었기에 생각을 하기도 힘들었다.

팡!

150km의 구속이 나왔지만 마지막 순간의 변화로 보았을때 이번 공은 투심이었다.

늘 그렇지만 유성과 붙으면 타자들의 머리는 계속해서 복잡해졌다.

'커브 다음에 투심이라니 이제 뭐가 오는거지?'

보통이라면 가장 많이 던지는 포심을 생각하지만 이렇게 변칙적으로 덤벼들면 그 가능성도 매우 낮아진다.

이점은 스카우터들도 파악하고 있었다.

"샘플은 적지만 첫 2구가 포심이 아니라면 높은 확률로 변화구가 들어와."

"문제는 남은 구종이 3개나 된다는 점이겠군."

딱!

[쳤습니다! 하지만 투수가 잡아내고 1루로 던지면서 아웃!]

[마지막은 커터였네요.]

[그렇습니다. 여차하면 포심을 하나도 안 쓰고 타자를 처리할 수 있는게 박유성 선수니깐요.]

'2아웃은 순조롭고... 지금 페이스라면 다음 타자도 문제 없다.'

결국 마지막 타자마저 삼진으로 처리하며 4회 초도 무실점으로 틀어막은 유성은 잠깐의 휴식 이후 5회 초 마운드에 올랐다.

[4회까지 투구수가 40구가 안되는데요. 원한다면 완봉도 생각 할 수 있는 박유성 선수입니다.]

[그래도 지난 시즌에 투구수의 여유가 있어도 딱 1번을 제외하고는 완투조차 하지 않았던 점을 감안하면 그 전에 마운드를 내려갈겁니다.]

"7회란 말이지."

마운드에 오르기 전에 최일헌 투수 코치에게 7이닝에서 내리겠다는 이야기를 들었기에 유성과 김태곤은 한층 여유롭게 볼배합을 구상할 수 있었다.

그렇다고 일부러 라이온즈 타선에게 여유를 줄 필요는 없었기에 이번 이닝에는 공격적인 패턴을 더 이어갈 생각이었다.

[라이온즈의 4,5,6번 타자가 나서는 이닝. 라이온즈로써는 이 이닝에 1점이라도 추격을 해야할텐데요.]

[네. 배열수 선수가 잘 던져주었지만 타선이 무득점으로 막혀서 패전 위기거든요. 좀 더 분발이 필요합니다.]

"정말 골치 아픈 녀석이군."

기본적으로 포심 일변도라고 할 정도로 높은 포심의 비중을 보이고 있는게 박유성이라는 투수였다.

하지만 앞선 이닝처럼 마음 먹으면 변화구만 던질 수도 있었기에 타자인 최영우 입장에선 수 없이 많은 가능성을 생각해야했다.

초구를 가만히 지켜본 것도 유성이 어떤 식으로 나올지 모르기에 할 수 밖에 없는 선택이었다.

그리고 153km의 구속이 기록된 포심을 던진 것을 확인하고 선택지를 줄일 수 있었다.

'초구가 포심이면 2구와 3구 중에 하나는 무조건 포심으로 들어온다.'

아마 4번 타자인 자신을 잡기 위해 포심을 던진다면 더 빠른 공이 날아올 가능성이 높았다.

그렇기에 최영우는 2구째도 지켜보기로 결정했다.

그리고 2구째는 아슬하게 존에서 벗어나는 체인지업이었다.

1S-1B로 팽팽해진 상황에서 유성은 김태곤의 사인을 거절했다.

'싫어? 그럼 이거? 아니면 이거?'

'음... 다른거.'

'...이거?'

'그래.'

김태곤이 주문했던 공은 포심이었다.

하지만 거절 당하였기에 잠시 머리를 굴린 그는 다른 공을 연달아 제시했고, 결국 유성은 고개를 끄덕였다.

'설마... 저녀석 눈치 챈건 아니겠지?'

유성이 고개를 젓는것 자체가 보기 드문 일인데 그걸 몇번이고 반복했다.

배트를 잡고 있는 손에 잠시 힘을 뺐다가 다시 넣은 최영우는 날아오는 3구째마저 지켜보기로 결정했다.

그리고 3구째는 아슬아슬하게 존에 걸쳐 들어오는 커터였다.

"스트라이크!"

[여기서 커터를 꺼내들었군요.]

[그러게요. 게다가 그 공을 스트라이크 잡는걸로 사용했어요. 이러면 최영우 선수로써는 다음 공이 뭐가 될지 짐작하기 힘들거든요.]

[네, 단순하게 봐도 아직 투심, 슬라이더, 스플리터가 남아있거든요.]

"후..."

심호흡을 하며 최영우는 다시 다음 공을 예상해야했다.

단순하게 덤벼들기에는 유성의 기량이 조금 더 높다는 것을 인정 할 수 밖에 없었기에 확실한 한방을 노려야만 했다.

이런 침착한 판단은 4구째 슬라이더가 볼이 되는 것으로 이어졌고, 5구째에서야 최영우는 스윙을 하였다.

기다리고 기다리던 더 빠른 공이 날아왔기 때문이었다.

딱!

[쳤습니다! 유격수 키를 훌쩍 넘어가는 타구! 좌중간을 완전히 가릅니다!]

[빠르게 잡아서 2루로! 하지만 타자는 이미 2루에 도착했습니다!]

[드디어 박유성의 노히트를 깨는데 성공한 라이온즈의 4번 타자 최영우!]

- 4이닝 노히트 드디어 깨졌다.

- 진짜 힘들었네.

- 이 기세로 점수까지 노려보자.

5구 승부 끝에 2루타를 내준 유성은 작은 후회를 했다.

좀 더 빠르게 승부를 볼걸이라는 작은 후회였다.

그러는 사이에 5번 타자인 박선민이 타석에 들어섰다.

그 모습에서 유성은 깨달았다.

라이온즈가 본격적인 반격이 시작하고 있다는 것을 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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