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1
Chapter 35 - 왕조의 벽 (2)
2대0의 리드를 유성이 안정적으로 지켜내기 시작하자 라이온즈는 자칫 잘못하면 급해질 수도 있는 상황을 맞이하였다.
"그래도 조급하게 하지마. 아직 경기는 초반이니깐."
"그렇죠. 아직 초반이죠."
하지만 라이온즈는 리드를 내주었음에도 여유가 있었다.
"서당개 3년에 풍월을 읽는다고 했던가?"
"어... 아마 비슷할꺼에요."
"아무튼 3년 연속 우승을 하면 대충 보이거든."
현재 야구팬들에게 누가 우승에 더 가까운가라고 묻는다면 절반 이상이 라이온즈를 지목할 것이다.
그리고 그 다음은 아마 현재의 다이노스일것이다.
"...애들아 다들 집중해라. 조금은 방심했다만 아마 올해 우리가 만날 팀 중 가장 위험한 상대일꺼다."
"그래요?"
"그래, 이미 점수는 줬지만 끈질기게 물고 늘어져."
먼저 선방을 맞았지만 라이온즈 선수들은 순식간에 분위기를 전환해서 그라운드로 향했다.
2회 말 수비를 위해 그라운드에 나서는 라이온즈 선수들을 보며 이호중은 안 좋은 느낌을 받았다.
'이거... 진심이 된거 같은데.'
와이번스에 있을때도 자주 느낀 것이지만 라이온즈는 몇년 전의 와이번스처럼 가장 유력한 경쟁자에게 한층 더 강한 압박을 부여했다.
와이번스도 한때 왕조를 구축한 선수들이었기에 그 압박을 버텼지만 아직 어린 선수들 위주인 다이노스로써는 힘들 수도 있었다.
"그나마 유성이는 다행인가..."
딱!
[쳤습니다만 유격수 전진 잡아서 1루로! 아웃!]
[순식간에 쓰리 아웃을 만들어내는 라이온즈입니다.]
[어째.. 1회와는 완전히 달라진거 같죠?]
[네, 1회에는 조금은 널널하게 했다면 2회는 마치 1위가 걸려있기라도 한듯 분위기가 급변했습니다.]
[물론 현재 다이노스가 1위니깐 이렇게 집중해서 경기를 가져올려는 노력을 해야하는건 맞습니다. 그래도 뭔가 그 이상이 느껴지는데요.]
[아, 알것 같네요. 지금의 라이온즈의 분위기는 마치 한국시리즈를 치루는것 같군요.]
"라이온즈가 몇년 연속 우승이라고 했지?"
"3년 연속. 올해 4년 연속을 노리고 있지."
"과연... 왕조라고 불릴만 하군. 공룡이 이빨을 보이자마자 사자도 이빨을 보였어."
"재미 있는 경기가 되겠군."
가장 안정적이고 완벽한 마무리 투수인 오승훈이 일본으로 떠난 가운데 돌아온 임창영이 마무리 자리를 채우며 전력 자체는 작년에 비해 거의 변동이 없는 라이온즈였다.
오히려 외국인 보강을 착실하게 하며 작년보다 더 강해졌다는게 맞는 말일 것이다.
"형."
"왜?"
"오늘 머리 엄청 굴리셔야겠는데요?"
"...역시 그렇겠지?"
직접 타석에 들어갔다와서 그런지 라이온즈의 분위기가 바뀐 것을 깨달은 김태곤은 유성의 말을 듣고 인정해야했다.
오늘 경기는 시즌 초반의 분수령이 될 것이라는 사실을 말이었다.
***
"박유성 선수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요?"
"유성이요? 작년에도 말한거 같은데 최고죠."
잠시 생각을 하던 그는 이내 말을 이어갔다.
"투수들은 대부분 민감해서 상대하기 까다로운 경우가 많아요. 그런데 유성이는 타자도 해서 그런지 모르겠는데 보통 투수들이랑 달라요."
"정확히 어떤 부분이?"
"예를 들어 작년에 노히트가 걸린 경기때 유성이가 저한테 이렇게 말 했어요."
'노히트든 삼진이든 기록 걸린거 신경 쓰지마. 그냥 앞선 이닝에 하던대로만 하면 되니깐.'
"몇살이나 더 어린 선수한테 그런 말 들을줄 몰랐는데... 그래도 덕분에 저도 긴장 풀고 대기록을 완성 할 수 있었죠."
"그 외는?"
"그 외라... 보통 투수들은 민감한만큼 요구 사항이 많아요. 이건 이렇게 저건 저렇게 같은 식으로 말이죠. 그런데 유성이는 간단해요. 빠르게 끝낸다. 투구수 제한 때문에 그렇게 하기는 해야했지만 그 방향성만 지키면 대부분은 제 사인대로 던져줘요."
여기까지 말하고 잠시 숨을 돌린 김태곤은 나머지 내용까지 말하며 이야기를 마무리했다.
"이게 또 편한게 유성이 공이 워낙 좋아서 타자들이 다 쓸려나가요. 보통 포수라고 하면 볼배합 때문에 고민하는 경우가 많은데 유성이는 구종도 많아서 그냥 적당히 사인 내주면 그냥 삼진이나 범타로 마무리 해버려요."
그것이 오늘 경기 시작 전 김태곤이 말했던 유성에 대한 감상이었다.
그 생각을 잠시 떠올렸던 그는 타자가 타석에 들어서는 것을 보고는 볼배합의 정리를 마무리했다.
'어렵게 갈 필요는 없다.'
팡!
하위 타순으로 접어들었다는 점도 있었기에 김태곤은 유성에게 무리하게 강속구를 던지게 하지 않았다.
어차피 가볍게 던지라고 해도 유성이 알아서 150 초반의 구속을 유지해주기 때문에 구속 부분은 걱정할 필요가 없었다.
[박유성 선수가 던지는걸 볼때마다 감탄하게 되는게 강속구 투수는 보통 제구가 안 좋거든요?]
[네, 그렇죠.]
[그런데 박유성 선수는 구속 조절을 하고 있다지만 제구가 엄청 안정적이에요. 공격적인 피칭 때문이 아니냐고 할 수도 있는데 보면 의외로 세밀한 컨트롤도 잘 하거든요. 대표적인게 지난 시즌 기록인데 20번의 등판동안 실투가 30개도 안 되었어요.]
잠시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에 2구째가 다시 한번 스트라이크 존 구석을 정확히 공략하며 2스트라이크가 만들어졌다.
이 모습을 보며 해설진은 말을 이어갔다.
[2구째도 정확하네요. 그러면 1경기에 실투가 2개도 안 나왔다는거죠?]
[네, 보통 제구가 좋다고 하는 투수들도 1경기에 실투가 꽤나 나오거든요? 물론 박유성 선수도 기록되지 않은 실투가 존재하지만 그 부분을 빠른 공으로 보강해서 그런지 기록이 될 정도의 실투는 이정도만 나왔습니다.]
[그게 포심이 좋아서 그런 수치가 나온건 아니죠?]
[아닙니다. 제가 이거 분석한다고 겨울에 며칠 고생한적도 있습니다. 그래서 단언하자면 박유성 선수의 제구력은 KBO 최고라고 할 수 있습니다.]
- 결론 생태계 파괴자
ㄴ 결론 멋지네.
- 작년에 이녀석 어떻게 2패나 한거지?
ㄴ 운 나쁘게 1,2실점 했는데 타선이 무득점으로 막힘.
ㄴ 그래도 사람 같은 부분은 있네.
'이걸로 끝내.'
팡!
[헛스윙 삼진!]
[순식간에 2스트라이크를 만들어낸 뒤에 스플리터로 헛스윙을 유도한 박유성 선수입니다.]
[이제 어찌보면 간단한 패턴입니다만 알고도 당할 수 밖에 없는 그런 공이네요.]
[이런 공을 정확하게 다루고 있으니 리그 최고인거겠죠?]
[그렇죠.]
첫 시즌인 지난 시즌에 비해 좀 더 나아진 안정감을 지켜보았기에 전문가들은 이미 유성의 2년차 징크스가 없는 것으로 보고 있었다.
관건은 유성이 얼마나 뛰어난 성적을 거두느냐였다.
"오늘은 여유가 있더라도 7이닝만 채우게 하지."
"네."
시즌은 길었다.
그러나 유성에게 걸려있는 170이닝의 이닝 제한이 문제였다.
"이 페이스면 다음 시즌은..."
"10개 구단 체제라서 경기수도 다시 늘어나죠."
"그러고보니 그렇군."
한 시즌의 구상을 하는 감독의 입장에서 경기수 증가는 장단점이 명확했다.
그러는 사이에 유성이 1명의 타자를 더 처리하며 2아웃을 만들어냈다.
[이제 2아웃이 되었습니다. 어떻게 보시나요?]
[지금 라이온즈 타자들의 공통점이 삼진을 당하더라도 공을 끝까지 지켜보고 있어요.]
[그 말은...]
[단 한번의 실투조차 내주면 위험할겁니다.]
'꽤나 끈질겼네.'
김태곤도 바쁘게 머리를 굴리고 있었다.
앞선 타자를 처리하기 위해 5개의 구종을 사용해야했다.
그렇다고 나머지 하나의 구종을 쓰자니 뒤에서 쭉 지켜보고 있던 타자 입장에서 그만큼 노리기 쉬운 것이 없을 것이다.
'이럴땐 포심이 강한게 도움이 된다니깐.'
팡!
김태곤의 사인을 받은 유성은 고개를 끄덕이고 바로 초구를 던졌다.
한단계 페이스를 끌어 올린 포심이 정확하게 스트라이크를 잡아내며 타자도 고개를 저어야했다.
"진짜 까다롭네."
"솔직히 유성이니깐 이렇게 압도하는거지. 다른 투수들로는 어려워."
"그래서 더 까다롭지."
유성과 김태곤에게 주도권이 있기에 라이온즈 타자들은 작은 불만 정도 밖에 말 할 수 없었다.
잠깐이라도 방심하거나 집중을 흐트리면 순식간에 당하기 때문이었다.
"큭!"
[헛스윙! 여기서 스플리터가 제대로 떨어지면서 배트를 유도해냈습니다.]
[이제 2스트라이크가 만들어졌는데요. 어떻게 승부를 걸까요?]
[보통은 유인구를 던지겠지만... 박유성 선수는 어떻게 할지 모르겠네요. 뭐낙 구종이 다양한 선수이다보니 말이죠.]
[그렇죠. 단순히 보면 포심 같지만 또 3번째 공의 90% 이상을 변화구로 던졌다는 자료도 있거든요.]
[아, 분석 많이 하셨네요?]
[의외로 박유성 선수의 패턴이 보이더라고요. 물론 알고도 못 치는 수준이지만 말이죠.]
'그래서 뭘 던지는거냐.'
간만에 유성이 고개를 저었기에 타자의 머리는 더 복잡해진 상황이었다.
물론 김태곤은 빠르게 사인을 교환했기에 유성의 공이 날아올 위치에 미트를 가져다 두기만 하면 되었다.
'저 고개를 젓는게 페이크라는건 생각 못했겠지.'
팡!
"스트라이크!"
"아니 왜 나한테 그런걸 던져."
[가만히 서서 삼진! 그리고 이 공의 구속은 163km!]
[박유성 선수의 최고 구속이 여기서 갑자기 튀어 나왔네요.]
"솔직히 말해봐. 힘 조절 실수했지?"
"하하..."
"미리 대비해서 다행이지 안 그랬으면..."
"미안해요."
"아니, 그래도 그거 못 받으면 프로 하지 말아야지."
그렇게 마무리 된 3회 초에 이어지듯 3회 말 다이노스의 공격이 이어졌다.
3번 타자부터 시작하는 타순이었기에 다이노스로써는 추가점을 노릴 수 있는 절묘한 이닝이었다.
"범성아."
"네?"
"저쪽 분위기 느껴지냐?"
"...대충은요."
"오늘 경기는 엄청 중요하니깐 기회가 될때마다 점수 내야한다."
"네."
이호중의 말을 듣고 타석에 들어선 범성은 우선 초구를 지켜보았다.
공을 최대한 지켜보며 기다린 범성은 초구가 살짝 빠지는 공이었기에 볼로 승부를 시작할 수 있었다.
"호오..."
"무슨 일이죠?"
"라이온즈의 분위기가 바뀌더니 이젠 다이노스도 분위기가 바뀌었어."
"그 말은..."
"정말로 올해 코리안 시리즈는 저 둘이 맞붙겠구만."
경험이 많은 외국인 스카우터들은 직감했다.
이번 시즌 KBO리그의 향방을 말이었다.
딱!
[쳤습니다! 유격수 키를 훌쩍 넘어가는 타구! 좌중간을 그대로 굴러가며 완전히 갈라버립니다!]
[타자 순식간에 1루 지나서 2루로!]
[이제야 중견수가 잡아서 던지는데! 타자 2루 지나서 3루로!]
[송구 방향이 틀어졌는데요!]
[유격수가 가까스로 잡아서 3루로! 던질 수 없습니다!]
그야말로 폭풍같은 한순간은 결과적으로 무사 3루의 엄청난 찬스로 이어졌고, 다이노스 팬들은 범성의 이름을 외치기 시작했다.
다이노스의 프렌차이즈 스타가 지금 라이온즈에게 거대한 한방을 날렸기 때문이었다.
"저녀석... 이거 해결 못하면 안되게 만들어놨네."
"범성이형 주력이면 깊숙한 땅볼만 되어도 들어올껄요?"
"그래. 그정도만 되어도 충분하겠지만... 아직 무사잖아?"
가볍게 웃으며 타석에 들어선 이호중은 그렇게 해결사가 되었다.
딱!
[쳤습니다! 1,2루 사이를 가르는 타구! 3루 주자는 그대로 홈에 들어옵니다!]
[이걸로 스코어는 3대0이 됩니다!]
"아직 공격 안 끝났어."
그 말대로 다이노스의 공격은 지금부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