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5
Chapter 33 - 2014 개막전 (4)
7회까지 0의 행진이 이어지고 있는 경기.
안타도 양팀 합해서 겨우 3개만 나올 정도였고, 볼넷은 1개도 존재하지 않았다.
그만큼 치열한 투수전은 8회에도 이어지고 있었다.
"8회가 마지막일꺼다."
"그래도 저녀석도 8회면 끝날듯 하니 다행이지."
그래서인지 타이거즈 불펜이 준비를 시작하였고, 다이노스도 그 모습을 보고 바로 불펜을 가동 하기 시작했다.
덕분에 두 사람의 생각은 같았다.
"어떻게든 막는다."
"0대0 상황으로 불펜에 넘겨야해."
팡!
[투구수가 제법 많아졌기 때문에 마지막 이닝이 될것이 유력한데요.]
[그 점은 박유성 선수도 비슷해 보입니다.]
7회를 마무리한 시점에서 유성의 제한 투구수는 15개도 안 남은 상태였다.
물론 따로 언론에 공표하지 않았으나 지난 시즌의 상황을 감안했을때 90~95개 정도로 예상되고 있기에 유성은 마지막 이닝을 준비하고 있었다.
첫 타자가 헛스윙 삼진으로 물러나고, 모창인이 타석으로 또 김태곤이 대기 타석으로 향할때 유성은 불펜으로 향했다.
"응? 왠일이냐?"
"그냥..."
"마침 잘 왔다. 유성아, 타자들 이야기 좀 해봐라."
"네."
불펜에서 준비 중인 선수는 손민훈과 박주환.
8회에도 유성이 나가기에 두 사람은 9회와 연장전을 대비로 하고 있었다.
"2이닝씩 던져요?"
"투구수 남으면 그렇겠지. 진짜 연장전 가면 1명 더 준비 해야겠지만."
"베스트는 20개 아래로 던져서 2이닝씩 잡는건데..."
"아무튼 정보 전달하러 온거지?"
"네."
기본적으로 강속구를 던지는 유성이기에 두 사람과 스타일이 다른 유성의 이야기가 안 통할 수도 있지만 손민훈은 한때 KBO 정점에 올랐던 투수였고, 주환도 유성에게 가려져서 그렇지 괴물이라 불릴만한 투수였다.
"대타...는 알아서 해야겠지."
"아무래도 그렇죠. 이닝 상황을 생각하면 1명쯤 나올지도 모르겠지만..."
연장전에 돌입하면 뒤가 사라진다.
그렇기에 냉정하게 상황을 예측해야했다.
"유성아. 이닝 끝났다."
"벌써요? 아..."
"빨리 끝내고 오면 되니깐 나가봐."
"네."
물론 그 사이에 손민훈은 유성의 정보를 모두 확인했다.
그렇기에 계속 등판을 준비하면서 옆의 주환과 여러 이야기를 이어갔다.
"어떻게 생각하냐?"
"사실 전 언더핸드라서 제 맘대로 가도 충분히 막을 수 있어요."
"하긴... 그러면 난 어떻게 던져야겠냐?"
팡!
"음... 유성이라면 마지막 이닝에 강속구 위주로 던지면서 남은 체력을 쏟아붙는 식으로 할꺼에요. 그렇다면 변화구 위주로 던진다던가...?"
"나쁘지 않지."
그 말을 듣고 손민훈은 바로 변화구를 체크해봤다.
강속구 투수 뒤에 등판한다면 그만큼 변화구가 날카로워야하니 말이었다.
그렇게 불펜이 한창 바쁘게 돌아가고 있을때 유성은 8회 말 수비를 위해 마운드에 올랐다.
올라오기 전에 들었던 양현정의 투구수는 무려 110구를 넘어간 상태였다.
'개막전부터 120구 가까이라...'
새삼 이렇게 철저한 관리를 받을 수 있는 환경이 얼마나 좋은지 깨달은 유성이었다.
그래도 마지막 이닝 상대는 5번부터 시작하는 타선이었기에 유성은 페이스를 끌어 올렸다.
팡!
[역시 마지막 이닝으로 보고 있는듯 합니다. 이 시점에서 160km가 나왔습니다.]
[최대한 빠르고 간단하게 끝내겠다는거죠.]
팡!
[변함 없이 160km를 다시 한번 기록하는 박유성. 이러면 오늘 경기에서는 제한 투구수를 확인하기 어렵겠네요.]
[단순하게 본다면 90개로 생각하면 될겁니다. 지난 겨울에 추가된 새 조항을 생각하면 말이죠.]
- 괴물이네.
- 아무리 투구수가 적었다지만 8회인데 저 구속이 나오나?
- 다른 애들은 모르겠는데 박유성은 작년에 직접 보여줬으니...
유성은 이 이닝을 길게 끌고 갈 생각이 없었다.
그렇기에 3구째의 구속은 모두를 놀라게 만들었다.
[헛스윙 삼진! 163km! 이 시점에서 박유성 선수가 자신의 최고 구속을 다시 한번 기록합니다!]
[정말 대단하네요. 여기서 163이...]
지켜보던 사람들은 모두 경악했다.
유성의 체력이나 파워 그리고 제구력을 보며 그들은 이제 시즌 첫 경기가 진행 되고 있음에도 올해 유성이 다시 한번 정점에 도달할 것이라 생각했다.
"한 녀석이 독보적으로 달리고 나머지가 급하게 추격하는건가..."
"다른 선수들에게는 악몽과도 같겠군."
"아직 몰라. 새로 KBO에 들어온 선수들은 마냥 강속구에 당할 수준이 아니니깐."
실제로 몇몇 구단에서는 작정하고 빠른 공에 강점을 보이는 타자를 데려오기도 했다.
마침 다른 팀의 외국인 투수 중에도 강속구 투수가 제법 있었기에 유성은 물론 대다수의 강속구 투수들도 방심하기 힘든 상황이었다.
"어찌되었든 개막전만 보면 박유성이 최고로군."
"그렇지."
2번째 타자에게 4구만에 삼진을 잡아내며 어느덧 유성은 오늘 경기 15번째 삼진을 잡아냈다.
하나하나 처리를 하다보니 만들어진 기록이었기에 타이거즈팬들도 유성의 그 삼진 능력만큼은 고개를 저으며 감탄할 수 밖에 없었다.
"마지막인가..."
타순상 7번 타자지만 타이거즈는 대타를 꺼내들었다.
지난 시즌의 성적을 생각하면 그렇게 위협적인 타자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대타였기에 조금 더 신경 써주기로 했다.
[초구부터 과감하게 스플리터를 던지는 박유성 선수입니다. 어떤 의도로 던진걸까요?]
[글쎄요. 일단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만... 다른 타자들은 3번째 타석을 맞이하지만 이 선수는 첫 타석입니다. 벤치에서 지켜보기는 했지만 타석에서는 본적 없다는 점을 고려한걸지도 모르겠습니다.]
딱!
[쳤습니다. 하지만 유격수가 가볍게 전진해서 잡아내고, 1루로 송구하면서 아웃!]
[이닝 체인지. 박유성 선수의 투구수가 87구로 일단 작년의 85구보다 많아졌다는 것이 확실해졌네요.]
[또 올라올까요? 만약 95구 제한이라도 개막전이니깐 아껴두겠죠. 게다가 160km를 막 던지는 선수니 아껴두는게 좋을겁니다.]
"수고했다."
"네. 경기가 길어질꺼 같은데 좀 자고 와도 될까요?"
"그래."
개막전부터 완벽한 모습을 보이며 8이닝 무실점 15K를 기록한 투수다.
왠만한 이야기는 다 들어줄 수 있었다.
"아, 개막전부터 머리를 너무 굴렸어..."
그렇게 유성이 사라지고 선수들은 각자의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투구수가 적기는 해도 8이닝씩 던지면 지치기는 하지."
"내가 작년에 몇번 완투를 했더라..."
"슬픈건 그 중에 1번 밖에 못 이겼다는거지."
"그때는 진짜 유성한테 고마웠지."
다음 경기가 예정된 외국인 투수들도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며 유성에 대한 평가를 하였다.
한편 유성은 잊어먹은게 있는 것을 깨닫고 불펜에 잠시 들렸다.
"피곤해 보이네?"
"당연히 피곤하지. 머리 굴리는건 그만큼 힘든 일이니깐."
"강속구 위주로 찍어 누르기만 해도 그렇게 복잡한건 없을텐데?"
"내가 여기서 계속 머물면 그렇겠지만..."
"MLB라... 난 나중에 7년 채워야 가능할려나?"
"다른 선수도 생각해야지."
"그런가? 뭐... 그때까지 꾸준히 잘 해야하니."
유성의 영향을 받아서 그런지 주환도 은근히 해외진출을 생각하는 경우가 많았다.
작년보다 구속도 제법 오른 그였기에 만약 해외로 나간다면 해볼만한 도전이었다.
"나머지 이야기나 하자."
"네."
주환이 잠시 몸풀기를 미루었기에 불펜에는 3번째 투수까지 준비를 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여차하면 2이닝 정도를 던지게 할 생각으로 이민오를 준비 시키고 있었는데 덕분에 그도 유성과 다른 투수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경기 준비를 할 수 있었다.
"저쪽은 새 외인 투수가 마무리라더니 진짜 올라오네."
"마무리 투수를 벌써 올린다라... 아무리 그래도 1이닝씩 던지는게 좋을텐데..."
"선배님 그러면 저는..."
"넌 애초에 롱맨이잖아."
다이노스 불펜의 분류는 간단했다.
손민훈을 중심으로 한 승리조, 이민오와 선발 경쟁에서 떨어진 투수들로 이루어진 패전조 혹은 롱릴리프 그리고 KBO 최강 마무리로 평가 받는 주환까지 어느덧 다이노스 불펜도 그 구색을 안정적으로 갖추고 있었다.
"그래도 폼으로 데려온건 아닌가 보네."
"민훈아, 너 먼저 나간다."
"네."
개막전이었으나 다이노스는 그렇게 무리할 생각이 없었다.
그렇기에 단 3명의 투수만을 준비 시키며 남은 1이닝과 연장으로 이어질 경우에 소화해야할 3이닝까지 4이닝을 3명이 나눠서 담당하게 했다.
한편 유성은 라커룸으로 들어가서 조용히 수면을 취하기 시작했다.
동시에 에이전트인 시영은 누군가를 만나고 있었다.
"이런 곳이 있다니 놀랍군."
"...누구지?"
"그냥 흔한 에이전트야."
"에이전트? KBO에는 없을텐데?"
"당연히 NPB, MLB 위주에서 활동하지."
"...좋아. 여기에 온 목적은?"
"아는 사람의 요청이 있어서 말이야."
"요청?"
그때 또 다른 인물이 뒤에서 나타났다.
"혹시 승부 조작에 대해 알고 있는거 있나?"
"승부 조작? 2년 전인가 있었던 그거?"
"그래. 그때 KBO가 너무 졸속으로 행동해서 완전히 잡지를 못했거든."
"이런 일은 보통 어두운쪽의 친구들이 엮여서..."
"비용은 문제 없어. 뒷배도 문제 없고."
그 말을 듣고 사내는 고민했다.
사실 또 다른 인물은 보자마자 알 수 있을 정도로 그에게 익숙한 얼굴이었기 때문이었다.
"좋아, 보라스까지 끼어들었다면 이야기가 편하지."
"다행이군."
"KBO 승부조작... 그래. 그때 잡히지 않은 녀석들이 있어. 시간이 제법 지났으니 다시 타겟을 찾고 있겠지. 마침 리그에 새로운 피도 수혈되고 있으니깐 말이야."
거기까지 이야기가 진행되자 이번에는 시영이 고민을 할 차례였다.
유성의 이야기에서 시작된 의혹이었지만 조사할수록 리그에 숨어있는 검은 손이 보였기 때문이었다.
"다이노스에 실제로 닿아있는 손은?"
"음... 부하한테 물어봐야겠는데... 알고 있는거 있나?"
"둘이 움직이고 있습니다. 하나는 적당한 잠재력을 가지고 있는 유망주고 다른 하나는 박유성이죠."
"박유성을?"
"그게 무슨 말이지?"
"진정하시죠. 박유성 선수의 에이전트 박시영씨."
"!"
보라스의 도움으로 만난 전직 브로커들은 생각 이상의 정보력을 가지고 있었다.
자신이 누구인지 밝히지도 않았음에도 그들은 시영의 정체를 확인했다.
'내가 너무 쉽게 반응을 해줬나?'
"그냥 찔러본건데 맞았네. 혹시 박유성 사인볼 있나?"
"...있기는 한데."
"선물로 두고가. 필요한건 여기 있으니깐."
그렇게 이야기는 끝났다.
여기까지 따라와주며 시영에게 여러 도움을 준 보라스는 시영에게 부가적인 설명을 해주었다.
"저들은 한때 MLB의 검은 돈의 진원지에 접근한 적이 있는 진짜들이지. 운이 좋은줄로 알라고."
"그건 감사하게 생각합니다만... 아무리 그래도 이렇게까지 도와주는건..."
"뭐, 어떤가. 자네 덕분에 여러 유망주를 추가로 발굴할 수 있었으니 이 정도는 괜찮아. 그보다 중요한건 자네가 그 정보를 어디에 쓰냐겠지만..."
"이런 정보를 얻었는데 당연히 승부조작의 뿌리를 뜯어내는데 사용해야죠."
그 말을 듣고 보라스는 잠시 생각에 빠졌다.
그러다보니 어느새인가 각자의 차량에 도착하였고, 헤어지기 전에 보라스는 입을 열었다.
"내가 KBO를 완벽하게 아는 것은 아니지만 대기업들이 모여있는 리그니 승부조작 이상의 검은 손이 존재할꺼네. 그 부분을 주의하게."
"마지막까지 충고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렇게 두 사람은 헤어졌고, 그 사이에 이어지고 있었던 다이노스와 타이거즈의 개막전 경기는 12회 연장 접전 끝에 0대0의 스코어로 마무리되며 승자 없는 경기가 연출되며 마무리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