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기록파괴자-84화 (84/156)

# 84

Chapter 33 - 2014 개막전 (3)

"후..."

생각 이상으로 힘들었던 5회 말이었다.

8이닝 정도를 생각했던 이닝 제한을 조정해야하나 싶을 정도로 타이거즈 타자들은 끈질기게 유성의 투구수를 건드려왔다.

"62구가 되었군요."

"28구라..."

"노히트도 깨졌으니 이제 부담은 없습니다."

"7회까지는 확실하겠는데... 어디까지 가능할것 같나?"

"유성이라면... 8회까진 잡겠죠."

덕아웃에 돌아온 유성의 모습을 보면서 그들은 플랜B를 준비하기 시작했다.

"만약 8이닝 못 채울 가능성도 있으니..."

"네, 미리 준비 시켜두겠습니다."

이닝은 6회 초로 이어지고 있었다.

"더럽게 질기네."

"어떻게 될꺼 같냐?"

"안 좋은 방향을 생각해야겠죠."

유성도 양현정도 오늘 경기가 1점 싸움이라는 것을 알고 있지만 그 1점을 뽑아내기가 요원한 상태였기에 마땅한 수를 내지 못하고 있었다.

[양팀 모두 여전히 1점도 내지 못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덕분에 타 구장은 이제 4,5회 정도인데 혼자 6회 초가 진행되고 있죠.]

[네, 그만큼 경기 템포가 빠른데요. 말씀드리는 순간 헛스윙 삼진!]

[이닝 체인지. 이번 이닝에도 다이노스는 점수를 내지 못했습니다.]

"슬슬 감이 잡히기는 했는데..."

"일단 막고 나서 생각하죠."

"그래."

6회 말 8번 타자부터 시작부터 하위 타순이었기에 유성은 이 이닝에 투구수를 줄이기로 결정했다.

팡!

[슬슬 경기 후반으로 접어들고 있는데요. 이번 공의 구속이 147km가 나왔는데 앞선 이닝보다는 낮아졌습니다.]

[아직 박유성 선수에게 체력적인 여유는 있을겁니다. 다만 오늘 경기의 진행 상황을 보면 좀 더 긴 이닝을 소화해야할지도 모르니깐요.]

[그렇죠. 잘못하면 두 투수 모두 9이닝을 다 던지고도 승을 못 챙기는 상황이 생길 수도 있습니다.]

딱!

[쳤습니다! 유격수! 잡아서 1루로! 아웃!]

[넓은 수비 범위로 다이노스가 왜 자신을 영입해야했는지를 확실하게 보여준 유격수 손시한!]

"이야... 당분간 유격수 걱정은 없겠다."

지난 시즌과 비교했을때 수비의 안정감이 차원이 달라졌다.

베테랑의 존재는 그런 것이었다.

'수비의 안정화. 그게 바로 강팀이 되기 위해서 현재의 다이노스에 필요한 것.'

2명의 베테랑은 팀을 한단계 더 업그레이드 시킬 수 있는 최고의 카드였다.

그러면서 김강문 감독은 유성을 보았다.

'유성이 덕분에 예상보다 적게 사용했다고 했던가...'

지난 시즌에 때려낸 30개의 홈런 덕분에 유성은 확고한 주전으로 평가 받고 있었다.

덕분에 유성이 80경기 정도만 출전하더라도 하나의 포지션에 고정적으로 뛰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유성이 선발로 나설때는 나머지 선수들끼리 로테이션이 돌아가게 된다.

때에 따라서 중견수인 범성이 우익수로 가기도 하고, 김종하나 이종오가 다른 포지션으로 이동하면서 유성이 타자로 나설때에 맞춰서 적절하게 로테이션을 돌렸다.

"유성이 수비 부담을 덜어줘야하니 범성이가 우익수로 가는게 제일 편한데..."

"정 안되면 다른 애들이 우익수를 돌아가면서 담당하는 방법도 있으니 천천히 생각하죠."

"그래야겠지."

어느새인가 2번째 타자에게 초구 아웃을 잡아낸 유성은 3번째 타자에게도 순식간에 2스트라이크를 만들며 유리한 볼카운트를 만들어냈다.

[박유성 선수의 피칭을 볼때마다 느끼는건데 공을 던지고 그 다음 공을 던지는 텀이 엄청 짧고 준비도 빨라요.]

[그렇죠. 볼배합은 이야기를 해보니 이닝 시작 전에 미리 짜두고 시작을 한다더군요. 김태곤 선수가 박유성 선수랑 경기할때 사인을 안 보내는 경우를 자주 보셨을텐데 그게 미리 짜놔서 가능한거라더군요.]

[그렇군요. 지금은... 사인을 보내고 있네요.]

'바로 끝내?'

'그러죠.'

팡!

[네, 여기서 160km의 공이 삼진을 잡아내면서 이닝을 마무리하는 박유성!]

[투구수를 절약할려는 의도가 그대로 성공했습니다. 이번 이닝에 단 6개만을 던지면서 투구수를 크게 절약했는데요. 이 페이스라면 8이닝을 노릴 수 있겠네요.]

"...어렵군."

이런 상황을 지켜보던 한 타이거즈 선수는 눈을 감고 한숨을 쉬었다.

3번째 타석이던 1번 타자마저 맥 없이 물러났다.

분명 다이노스도 골치 아픈 상황이겠지만 중요한 것은 자신의 팀이 어려운 경기를 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일단 막고 생각하자."

"그래야겠지... 가자."

"네."

7회 초 다이노스의 선두 타자는 3번인 이종오부터 시작하고 있었다.

이제는 점수를 내야하기에 선수들은 타석에 나서기 전에 유성에게 몇가지 이야기를 들었다.

겨우 프로 경력 1년에 불과한 선수의 말을 누가 들을까라는 의문이 생길지도 모르지만 유성은 작년에 투수 4관왕과 함께 30홈런을 때려낸 투타 모든 분야에서 정점에 도달한 선수였다.

"유성이가 선수 분석에선 타고난 능력이 있어."

"그래요?"

"작년에 몇번 툭툭 던지듯 이야기했는데 거의 맞아 떨어졌거든. 니들도 알꺼야. 우리가 꽉 막혀있다가 나랑 범성이가 백투백 쳐서 경기 뒤집은거."

"아, 그 경기... 그러면 그게?"

"그래. 유성이의 이야기가 신뢰도가 높다보니 우리도 그 부분을 노리기 시작했어. 그러니 너희도 들어봐서 손해 볼거는 없을꺼야."

유성의 이야기는 간단했다.

제법 체력이 빠지기는 했지만 언제든지 구속을 끌어 올릴 수 있는게 양현정이었기에 차라리 변화구를 집중적으로 노리는 것이었다.

그리고 유성이 시선을 집중 시킨 변화구는 체인지업이었다.

딱!

[쳤습니다! 2스트라이크까지 잘 잡은 양현정이지만 체인지업을 공략 당하며 선두 타자를 내보내고 말았습니다.]

[이건 노린걸까요?]

[아무래도 그렇겠죠. 앞선 두 타석동안 지켜본게 있다지만 양현정 선수의 포심은 아직 공략하기 까다로우니깐요. 그래서 차라리 처음부터 변화구에 포커스를 맞추는걸로 방향을 잡은듯 합니다.]

"오... 열렸네?"

"지금부터가 중요하지."

체인지업을 맞았으니 양현정은 이 공을 아껴둘 것이다.

그렇다면 포심의 비중이 올라가거나 특정 변화구의 비중을 끌어 올릴텐데 구종이 많은 투수의 경우 확실한 공략점을 찾기 힘들다.

'다행인건 타자가 주장이라는거지.'

20년의 경험이 있는 이호중이라면 정확히 하나의 공을 노려서 칠 수 있다.

초구를 지켜본 이호중은 유성의 이야기를 떠올리며 다음 공을 기다렸다.

'체인지업은 없다. 그렇다고 포심을 노리기에는 아직 투수 체력이 남았기에 어렵다. 그렇다면...'

딱!

또 다른 변화구인 슬라이더를 제대로 때려낸 그는 순식간에 달려나가기 시작했고, 1루 주자인 이종오도 갑작스러운 스타트에도 불구하고 순식간에 속도를 올리기 시작했다.

[우익수 옆의 안타! 주자 2루 지나서 3루로! 3루에서... 아! 계속 갑니다!]

[2루수 바로 홈으로 승부! 주자가 먼저 들어오...?]

[아, 아웃! 아웃 판정입니다!]

"뭐?"

"아니, 저게 뭐야?"

누가봐도 이종오가 1초 가까이 빠르게 들어왔다.

장님이 아닌 이상 확실하게 구분이 될정도로 말이었다.

[아... 이건 다시 봐도 아닌데요.]

[이 판정은 경기 후에도 논란이 많을듯 합니다.]

[네, MLB에서 비디오 판독 이야기가 나오고 있던데... 지금 상황을 보니 판정 번복도 없을듯 하고요.]

- 눈뜬 상태로 1점 털렸네.

- 심판놈들아 이게 뭐하자는 짓이냐?

당연한 이야기지만 팬들은 분노했다.

젊은 선수들이 많은 다이노스에서도 일부 선수들이 분노를 표하려고 했으나 덕아웃에 있던 코치들이나 몇몇 베테랑들이 진정 시키면서 문제가 생기지는 않았다.

"어처구니가 없군."

그 사이에 2루까지 이호중이 진출하기는 했지만 이후의 상황을 생각하면 대주자로 교체하기도 힘들었다.

만약 경기가 연장전에 들어갈때를 대비해야하기에 김강문 감독은 보통이라면 대주자를 기용할 타이밍이었으나 이호중을 루상에 그대로 두었다.

"이러면 테인즈랑 범성이가 해결해줘야하는데..."

한편으로는 양현정은 포수를 불러들여서 여러가지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두 타자 연속 안타만 본다면 그럴수도 있는 일이기에 상관 없지만 서로 다른 공을 기다렸다는듯 노렸기에 이야기를 할 필요가 있었다.

"나도 그부분이 찜찜했는데... 그래도 변화구를 파악했다보단 아예 다른걸 포기하고 그것만 기다렸다는 느낌이었어."

"음..."

그때 지난 시즌의 히어로즈를 떠올린 양현정은 조금은 감을 잡을 수 있었다.

히어로즈도 어느순간부터 공격이 매서워졌고, 그 유성에게 유일하게 4점 이상의 점수를 뽑아낸 팀도 지난 시즌에 히어로즈가 유일했기 때문이었다.

'그래도 다이노스는 초중반에는 힘을 못 썼다.'

이야기를 마무리하고 포수를 돌려보낸 양현정은 결론을 냈다.

"둘 다 뛰어난 전력분석원 같은게 있나보군."

프로 경력이 제법 되는 그였기에 상황 판단은 빠르게 이어졌다.

고비라고 할 수 있는 타자가 아직 남아있었기에 호흡을 가다듬은 양현정은 다시 공을 던졌다.

[이 시점에서 150km가 다시 나오는 양현정 선수입니다.]

[뒤에 주자가 이호중 선수이다보니 상대적으로 신경을 덜 쓰게 되죠.]

팡!

[2구째도 152km까지 올라갔습니다. 테인즈 선수도 이건 어쩔 수 없다는 표정이죠?]

[제대로 제구가 된 강속구는 메이저리그 경험이 꽤나 되는 선수라도 마냥 건드릴 수 없죠.]

딱!

그 말이 이어지자 말자 테인즈가 151km가 기록된 3구째를 파울 라인의 펜스에 직격하고도 한참 튕겨 나오는 타구로 만들어내자 입을 다물고 말았지만 4구째 변화구를 참아낸 테인즈가 5구째에 연달아 들어온 변화구에 속으며 헛스윙 삼진으로 물러나고 말았다.

"제법인데?"

"똑같은걸 연달아 던질줄은 몰랐네."

"그러게. 한팀의 에이스답게 배짱이 있어."

이번 시즌이 끝나고 포스팅의 가능성이 있는 것 정도는 알고 있지만 MLB 스카우터들은 그에게 큰 관심을 가지지 않고 있었다.

테인즈를 세타석 내내 막는 점에서 가산점이 들어가겠지만 그렇다고 아직 확실한 성과가 없는 선수였다.

"하다못해 윤석인처럼 타이틀이라도 가졌으면 모르겠지만..."

"타이틀도 없었던가?"

"없지."

스카우터들의 판단은 냉정하면서 정확했다.

커리어 하이 기록도 170이닝을 넘겨본적이 없고, 가장 좋은 방어율을 기록한 것도 3점대 초반의 기록이었다.

올해 갑자기 성적이 좋아지지 않는 이상 관심을 가지는 팀은 없을 것이다.

그런 판단하에서 스카우터들은 양현정이 나범성을 잡아내며 이닝을 막아냄과 동시에 유성을 보기 위한 준비를 다시 하였다.

"이걸로 7이닝째인가... 올해도 스카우터들이 있는거 같고..."

마침 이번 이닝의 타이거즈 타선도 2번 타자부터 시작하고 있다.

심호흡을 하며 마운드에 오른 유성은 페이스를 끌어 올리기 시작했다.

팡!

[박유성 선수도 점점 막판으로 향하고 있는 것을 알고 있는지 구속이 159km가 기록되는군요.]

[타이거즈로써는 이 공을 어떻게 공략하느냐가 관건인데요.]

[솔직히 말해서 대기록을 안 주는것만으로도 용하다고 봅니다. 지난 시즌에 그 난공불락 같던 박유성 선수를 공략 직전까지 갔던 것도... 히어로즈가 유일했으니깐요.]

- 뼈 아픈 현실이라 뭐라 할말이 없네.

- 사실 우리가 투수진이 나쁜건 아닌데 타선이...

팡!

"스트라이크!"

[헛스윙 삼진! 공을 건드리지도 못하고 있습니다.]

[오늘 경기는... 어쩌면 승자 없이 마무리 될지도 모르겠네요.]

그 말처럼 유성은 선두 타자를 가볍게 삼진으로 돌려세운 이후 다음 두 타자에게도 변화구를 포함 시키며 연달아 무너트렸다.

그로인해서 결국 경기는 8회로 넘어가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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