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2
Chapter 24 - 9번째 심장 (1)
개막전부터 3연패에 빠진 MC 다이노스는 급하게 가지 않기로 했다.
그러면서도 기대감을 감추지는 않았다.
"3명의 선발이 모두 좋은 피칭을 펼쳤음에도 승리를 거두지 못했어."
"심지어 1경기는 끝내기 기회를 잡고도 끝내지 못했죠."
"음..."
"오늘 유성이는 예정대로 85구만 던질겁니다. 하지만 그러는 사이에 녀석은 긴 이닝을 소화해주겠죠."
"그렇겠지. 아니, 그래야만 할꺼야. 녀석은 에이스의 자질을 가지고 있으니깐."
경기 전 회의에서 눈에 띌만한 이야기는 없었다.
제한 투구수를 채운 유성 이후에 누굴 기용할 것인가 정도였다.
"흠..."
"준비 됬냐?"
"네. 진작에... 끝났죠."
그래도 약간의 떨림은 있었다.
다만 그것은 두려움이 아닌 기대감이었다.
"가죠."
[개막전부터 3연패를 기록한 MC 다이노스는 다행스럽게도 최하위가 아닙니다.]
[네, 이글스 팬들에게는 미안한 이야기지만 헌화 이글스가 이미 개막 5연패를 기록 중이기 때문이죠.]
[특히 MC 다이노스는 오늘 경기에 더 많은 기대를 하고 있는듯 한데요. 첫 원정경기임에도 불구하고 많은 다이노스 팬들이 이곳 대구 시민야구장에 찾아오신 상태입니다.]
[새 구장이 바로 몇달 전에 건설이 시작되었죠?]
[네, MC 다이노스도 신구장 문제가 조금 복잡하지만 건설 준비 중에 있거든요? 이 부분은 칠성 라이온즈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며 시간을 끌고 있는 가운데 원정 경기이기에 선공을 하게 된 다이노스 선수들은 각오를 다지고 있었다.
"앞선 경기에서 모두 아쉽게 졌어. 하지만 오늘마저 질 수는 없어."
"유성이라면 분명히 한건을 해줄꺼야. 그러니, 최소 1점이라도 뽑는걸 목표로 하자."
"네."
공격을 지켜보는 대신 마지막 점검을 진행하였던 유성은 라이온즈 홈팬들의 환호를 들으며 자신이 나설때가 되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역시 무득점인가...'
몇년 뒤에는 기량이 떨어지지만 아직까진 전성기 모습을 가지고 있는 선수답게 쉽게 가기는 힘들듯 했다.
거기다가 유성에겐 85구라는 제한까지 걸려있으니 더욱 신중하게 움직여야했다.
"초반에 충격을 좀 줘야겠네."
오늘 피칭의 방향을 잡은 유성이 마운드에 올랐고, 라이온즈의 선두 타자가 타석에 들어섰다.
1번 타자인 배영선은 2011년 신인왕을 수상한 선수였다.
"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말이야."
팡!
[초구부터 151km가 나오는군요.]
[역시 오늘 경기에서도 100% 전력을 사용하지는 않을 모양이네요.]
라이온즈 타선을 무시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긴 시즌을 치루기 위해서 무작정 전력으로 던질 필요도 없었다.
'이정도 구속이라면...'
아마추어 시절 160km를 던진 다는 것으로 인해 유명세를 탔지만 그것은 단 1번에 불과한 일이었고, 고교 시절 평균 구속은 150km를 오가는 수준이었다.
'그래도 150 후반까지는 각오를 해야겠지.'
2구째 조금 먼 코스로 들어가는듯 했지만 유성은 다시 한번 스트라이크 판정을 받아내며 단숨에 2스트라이크로 배영선을 구석에 몰아 넣었다.
[이번에는 152km가 나왔는데요.]
[쉽게 건드리기 힘든 빠른 강속구를 가지고 있으니깐요. 아껴둘 필요가 없기는 하죠.]
연속으로 포심으로 카운트를 잡았다.
이렇게 나온다면 타자의 뇌리에는 포심의 이미지가 강해질 것이다.
그렇기에 포수인 김태곤은 변화구 사인을 보냈으나 유성은 거부하였다.
'뭘 던질려고?'
그의 수신호에 유성은 주먹을 꽉 지는것으로 답변하였다.
이러한 움직임을 본 배영선은 설마하는 심정으로 지켜보았고, 3구째도 포심이 날아왔다.
팡!
[헛스윙 삼진! 첫 타자에게 삼구삼진을 잡아내는 박유성!]
[게다가 지금 구속이 바로 157km까지 올라왔습니다.]
"저 구속을 환산하면..."
"97.5마일이 나오지."
"94마일 정도로 카운트를 잡고 바로 3마일 정도를 끌어 올려서 삼진이라..."
"공격적이지?"
"하지만 KBO 수준에선 매우 강력한 패턴이야."
칭찬이 나올 수 밖에 없었다.
유성의 피칭은 그만큼의 자신감과 파워를 겸비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빨리 다음 타자나 나오면 좋겠네."
이미 삼진으로 처리한 타자에게는 관심이 없었다.
지금 유성은 초반에 기세를 가져오려고 하고 있었기 때문에 2번 타자에게도 2개의 포심으로 단숨에 볼카운트를 만들어내고는 처음으로 변화구를 꺼내들었다.
그리고 그 변화구는 예상 외의 구종이었다.
[헛스윙 삼진! 여기서 스플리터가 나오는군요.]
[다시 한번 3연속 포심인가 했더니 스플리터로 완벽하게 타자를 농락했습니다.]
[두 타자 연속 삼진을 잡아낸 가운데 이승연을 상대하게 되는 박유성입니다.]
앞선 두 타자를 빠르게 잡아낸 유성이었으나 이 상대는 조금 이야기가 달랐다.
먼 훗날에는 유성의 위상이 더 커졌지만 그것은 미래의 이야기였다.
지금의 이 대결은 그저 신인과 레전드의 대결이었다.
그렇기에 유성은 초구에 떡밥을 던져두었다.
팡!
[초구 체인지업을 과감하게 스트라이크 존에 꽂아 넣는 박유성 선수입니다.]
[꽤나 뜬금 없는 공이지만 바로 앞선 타자에게 포심, 스플리터를 던졌던걸 생각하면 또 납득이 되는 공이네요.]
[그 말은 박유성 선수가 다음 타자에게 던질 공까지 감안해서 던지고 있다는 건가요?]
[아무래도 그렇죠. 박유성 선수의 포심은 매우 뛰어납니다만 계속 그것만 던질 수는 없으니깐요.]
[네, 게다가 박유성 선수는 아직 커브와 슬라이더를 사용하지 않았죠.]
- 머리 터지겠네. 선택지가 5개나 되니...
- 막 빠른거만 던져도 되는데 수준급 변화구가 4개나...
"어떻게 마무리할까..."
체인지업으로 1S를 잡아낸 유성은 다시 한번 포심을 꺼내들며 바로 2S로 볼카운트를 바꾸었다.
그렇기에 남은 선택지는 어떻게 이 이닝을 마무리 할 것인가 였다.
'좌타자니깐...'
아무래도 슬라이더는 애매하다.
물론 보통의 슬라이더라면 그럴 것이다.
하지만 유성의 슬라이더는 조금은 다른 형식이었다.
그렇기에 유성이 슬라이더를 던질 코스는 존재한다.
유성의 슬라이더가 단순히 떨어지는 것이 아닌 횡으로 휘어들어오는 슬라이더이기 때문에 이승연이 보기에 바깥쪽으로 빠지는듯한 공이 갑작스럽게 휘어 들어오며 스트라이크 존 바깥쪽에 정확하게 들어왔다.
"스트라이크!"
[가만히 서서 삼진! 세 타자 연속 삼구삼진을 기록하는 박유성!]
[지금 슬라이더 변화가 엄청났는데요.]
[네, 잘못 보면 마구인줄 알았겠습니다.]
- 딱 9개로 끝내버리네.
- 시작부터 완봉 페이스 쩌네.
"좋아. 시작은 나쁘지 않아. 그러니깐 어떻게든 1점만 따내자고."
앞선 경기들처럼 유성의 피칭에서는 안정감이 느껴졌다.
심지어 지금의 유성은 타자들을 압도하는 그런 기세까지 보이고 있었기에 MC 다이노스 타자들은 한결 편안한 마음으로 타격에 집중했다.
확실히 1회와는 다른 공격이 전개 되었다.
하지만 그것이 끝이었다.
"점수 날려면 좀 걸리겠네."
"한 7회까지 던질듯 하니 그 전에 내주시면 문제 없을껄요."
"7회라..."
여유롭다면 여유롭다고 할 수 있지만 반대로 아슬했다.
그런 상황에서 유성은 2회 말 수비를 위해 마운드에 올랐다.
"제일 위협적인 타자로군."
라이온즈의 4번 타자 최영우.
FA에서 120억을 받겠다고 이야기 하며 논란이 생기기도 했으나 실력으로 그 가치를 증명한 KBO 최고의 타자 중 하나였다.
팡!
그런 의지가 반영 되었기에 초구부터 구속은 155km로 상승하였다.
[박유성 선수가 한층 페이스를 끌어 올렸습니다.]
[아무래도 최영우 선수가 보통 타자는 아니니깐요.]
[작년에 부진하기는 했지만 2년 전에는 3관왕을 기록했던 거포니깐요.]
팡!
좌타자이기에 바깥쪽으로 빠지는듯 하다가 존에 걸쳐 들어오는 슬라이더의 위력은 더욱 극대화 되었다.
'이 슬라이더... 공략 방법이 아예 없지는 않겠군.'
팡!
하필 그 다음에 아직까지 나오지 않았던 커브가 나오며 헛스윙 삼진으로 물러나고 말았지만 최영우는 다음 타석을 노리고 있었다.
그런 최영우의 시선을 느낀 유성은 다음 타석이 좀 더 힘들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다음은..."
겉보기에는 단순히 장타자로 보이지만 그의 진가는 3-4-5로 이어지는 환상적인 슬래쉬 라인에서 알 수 있는 뛰어난 컨택, 선구, 파워였다.
상대로써 최영우와 함께 가장 까다로운 타입이라고 할 수 있었다.
딱!
[초구 바로 반응했습니다만 파울이 되었네요.]
[연속 삼진 기록이 나오다보니 박선민 선수도 적극적으로 공략을 하고 있네요.]
이미 4타자 연속 삼구삼진이라는 기록을 허용하였다.
들어본적은 없지만 이런 기록이 쉽게 가능한 기록은 분명히 아니었다.
[네, 지금 들어온 소식에 따르면 4타자 연속 삼구삼진은 KBO 역사상 2번째 기록입니다. 하지만 종전의 기록은 2경기에 걸쳐서 기록한 것이기 때문에 단일 경기로는 처음인데요. 박유성 선수가 박선민 선수까지 삼구삼진으로 잡아낸다면 KBO 역사상 최초의 기록을 작성하게 됩니다.]
[놀랍군요.]
투수로써의 데뷔전을 시작하자마자 5타자 연속 삼구삼진이라는 대기록에 도전하게 생긴 유성이었기에 순간적으로 시청률이 상승하기 시작했고, 유성은 체인지업으로 2스트라이크를 만들어내며 마지막 공을 고민하기 시작했다.
'어중간한 공으로는 무리야.'
선택지는 여러가지가 있었지만 확실하다는 느낌이 오는 것은 없었다.
'더 빠른 공? 아니, 무리할 필요는 없지.'
'어쩔꺼냐?'
아직 우타자에게 슬라이더를 보여준적은 없지만 좌타자에게 연속으로 사용하는 것을 보여주었기에 차라리 커브나 스플리터가 나을 것이다.
'준비하세요.'
'그거로군.'
유성의 구종 중 준비를 해야하는 공은 단 하나.
어차피 주자가 없으니 공을 받는 것에만 집중을 하면 된다.
그리고 3구째 포심처럼 빠르게 날아오는 구종을 보고 박선민은 스윙을 시작했다.
'여기서 포심? 아니면...'
살짝 느리게 움직인 배트에는 약간의 망설임이 담겨 있었고, 빠르게 날아오던 공이 떨어지기 시작하자 박선민은 급하게 방향을 조정했다.
그러나 유성의 스플리터는 생각 이상으로 빨랐다.
팡!
[헛스윙 삼진! 5타자 연속 삼구삼진이라는 대기록을 세우는 박유성!]
[정말 대단하네요. 거기서 스플리터를 꺼내들줄은 몰랐는데 과감한 피칭이 성공하였습니다.]
- 와 대기록이네.
- 뭔 일이냐?
ㄴ 딱 15개로 5타자 쓸어버림.
ㄴ 그것도 정확하게 3개씩 던져서.
사람들의 놀라움을 뒤로 한채 유성은 2회 말의 마지막이 될 유력한 타자인 박하인의 준비 자세를 보고 조금은 돌아가기로 했다.
'그러고보니 준비 시간이 쓸때 없이 긴걸로 유명했지.'
메이저리그에도 그런 선수들은 제법 있었다.
시간이 흐를수록 추가되는 시간 제한 룰로 인해 점차 사라졌지만 말이었다.
"아무튼..."
팡!
[147km로 구속이 약간 내려왔네요.]
[위기 상황도 지나갔고, 대기록도 작성했으니 부담감이 줄어들었죠.]
[그래도 기록이 현재 진행형인데 말이죠.]
딱!
[파울! 이거 오늘 박유성 선수가 운이 많이 따라주는듯 합니다.]
[그러게요. 순식간에 2S를 만들어내며 기록을 더 늘릴 기회를 잡았습니다.]
'체인지업에 반응을 했다... 그렇다면 간단하지.'
팡!
[헛스윙 삼진! 다시 한번 삼구삼진을 잡아내며 6타자 연속 삼구삼진이라는 대기록을 완성하는 박유성입니다!]
[게다가 156km까지 구속이 다시 올라왔습니다.]
[네. 완벽하게 페이스 조절을 하고 있네요. 그러면 잠시 광고 보고 오시죠.]
유성의 압도적인 파괴력은 많은 야구팬들에게 그리고 상대 팀에게 각인 되었고, 경기는 이제 3회로 넘어가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