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7
Chapter 21 - 프로의 길 (2)
단 3개의 공에 국가대표 1번 타자인 정근오가 삼진으로 물러났다.
그 모습을 보며 경기를 지켜보던 야구팬들은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 이거... 실화냐?
- 실화다
- 저렇게 쉽게 털릴 타자가 아닌데...
2번 타자인 이영규의 타석에서도 유성은 최고 152km의 포심을 앞세우며 그를 찍어 눌러버리며 순식간에 2아웃을 만들어냈다.
"뭐하는거야?"
"국대 선수들이 신인한테 얻어터진다니 말이 된다고 생각해?"
"절대 아니지. 그런대 지금 현실이 되고 있네."
3번 타자는 두성 베어스의 김현성.
대표적인 별명으로 사못쓰가 있는 선수로 그 별명에서 알 수 있듯 KBO에서 가장 뛰어난 컨택, 선구안과 파워를 모두 가지고 있는 최고의 타자였다.
'조금 더 가볼까.'
이미 사인 교환은 끝났다.
팡!
[154km]
- 더 빨라졌다
- 이러다가 개막하자마자 160 나오는거 아니냐.
- 기대 되는 이야기네.
딱!
2구째는 파울이 되었다.
150 초반을 유지하고 있는 포심을 김현성이 건드려냈기 때문이었다.
"과연..."
메이저리그에서도 많은 운이 따라주기는 했지만 3할을 기록한적이 있던 타자였다.
유성 입장에서는 무조건 넘고 가야할 타자라는 이야기였다.
"그러면... 뭘로 처리해볼까..."
체인지업과 커브는 이미 보여주었다.
그렇다면 자연스럽게 또 다른 구종을 꺼내들면 된다.
팡!
"스트라이크!"
세 타자 연속 삼구삼진.
유성의 전매특허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간결하면서도 압도적인 피칭이 1회부터 나왔다.
그리고 경기를 지켜본 선수들이나 기자들, 팬들은 대단하다는 말 밖에 할 수 없었다.
"이게 15억인가..."
"왜 메이저리그에서 그렇게 노렸는지 알만하군."
경기장 한편에서 지켜보고 있던 외국인도 고개를 끄덕이며 유성의 피칭을 체크했다.
"한국에 괴물이 나타났더니 정말이로군."
"어때?"
"데이터가 전무한것이나 다름 없기 때문에 나왔으면 가장 까다롭고 힘든 상대가 되었을꺼야. 하지만 이번 대회에 참가하는 선수가 아니기 때문에 신경 쓸 필요는 없어."
"그나마 다행이군."
대한민국 대표팀의 WBC 1라운드 상대인 네덜란드, 호주, 대만은 당연한 이야기지만 4연전 중 유일하게 공개된 이 경기를 관찰하기 위해 경기장을 찾은 상황이었다.
이러한 움직임은 대회를 시작하기 전에 데이터를 체크하는 용도이기도 했고, 메이저리그 팀들에게 많은 관심을 받은 유성을 보기 위한 것이기도 했다.
"벌써 154까지 올라왔다라..."
"어쩌면 개막전을 맡겨도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일단 타격도 준비 해야하니 조금 더 지켜보도록 하지."
투수로만 준비 했다면 김강문 감독도 시범경기까지만 지켜보고 개막전에 낙점했을 것이다.
하지만 타자로써도 뛸 생각을 가지고 있는 유성이기에 출전 시간 배분을 잘 해야했다.
"외국인 트리오에 박유성 그리고 5선발까지 채우면 로테이션은 완성이고..."
"등판 다음날에는 쉬게 하고 2,3일간 타자로 나서고 다시 투수로 나서는 식으로 가면 될듯 합니다."
"그정도면 되겠나?"
"풀 로테이션은 무리고 중간에 한번씩 쉬어줘야할겁니다."
"...그렇겠지. 구단에서 다른 이야기는 없던가?"
"최대한 아껴서 기용하라는 말 뿐이었습니다."
"그렇군."
그 사이 1회 말 공격이 마무리 되었고, 유성은 2회 초에 다시 한번 마운드에 올랐다.
대표팀의 4,5,6번 타자를 상대하게 된 유성은 상대 선수들의 면면을 보여 웃음을 보였다.
'이대오, 김택균, 강정오.'
NPB 타점왕, KBO 타격왕, 차기 메이저리거.
상대로써 이 이상의 상대는 없었다.
초구는 스트라이크 존 높은 코스를 정확히 노려 들어간 포심.
팡!
"스트라이크!"
그 공은 아무리 이대오라고 해도 쉽게 칠 수 없는 그런 공이었다.
"점마 뭐꼬?"
"괴물이요."
"괴물?"
팡!
입은 움직여도 유성의 움직임에 집중하고 있던 이대오는 2구째도 그대로 지켜볼 수 밖에 없었다.
"그래, 괴물 맞네. 드릅게 까다로워."
"하하..."
이대오도 160km를 던지는 유망주에 대한 이야기는 들어봤다.
아마추어였기에 어느정도 과장된 것이라고 보았지만 지금 유성이 던지는 공은 진짜였다.
'체인지업, 커브, 슬라이더.'
유성이 던진 변화구.
스카우터들의 말에 따르면 꽤나 퀄리티 높은 스플리터도 던질 수 있다고 한다.
하지만 유성은 오늘 경기에서 스플리터를 꺼낼 생각이 없었고, 이대오도 어렴풋이 그런 느낌을 받았기에 3개의 변화구를 대비하였다.
"박유성이 높은 평가를 받은건 150km가 넘는 공을 마음대로 컨트롤 하며 최대 160km까지 던질 수 있다는 점도 있지만 3개 아니 4개의 변화구가 모두가 뛰어난 잠재력을 가진 수준급 구종들이라는 거지."
"게다가 의외로 녀석은 완투형 투수야. 고교에서는 관리를 위해 적당히 던졌지만 프로에선 심심하면 완투를 하는 모습을 보게 되겠지."
유성이 고교 시절에 기록한 완투는 무려 7번이나 되었다.
놀라운 점은 그 7번 모두 투구수가 100구가 안 된다는 점이었기에 MLB 스카우터들은 그 점을 주목하며 유성의 잠재력이 상상을 초월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더 놀라운 소식이 뭔지 알아?"
"뭔데?"
"박유성 에이전트가 그러던데 아직 성장판이 안 닫혔다고 하더군."
"성장판이?"
작년에 191cm였던 유성은 조금 더 성장하며 193cm까지 자라났다.
그럼에도 성장판이 닫히지 않았으니 190 후반까지도 기대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
"체중도 93kg인가 그정도 된다고 했으니..."
"NPB의 오타니는 어떻게 되었더라?"
"그쪽도 피지컬은 박유성이랑 비슷해. 키는 모르겠다만..."
"아니, 계약금쪽."
"계약금? 아마... 계약금 1억엔, 옵션 5천만엔, 연봉 1500만엔 정도일거야."
"KBO 신인 연봉이 2400만원인걸로 알고 있는데..."
환율을 감안해야겠지만 결과적으로 오타니가 유성보다 1억원 정도를 더 받게 된다.
청대에서 유성에게 패배했던 오타니가 유성보다 많은 금액을 받았다는 것에 의문을 가질 수도 있지만 KBO와 NPB의 격차를 생각하면 오히려 유성이 놀라울 정도로 많은 금액을 받는 것이었다.
그러는 사이에 이대오가 유성의 변화구를 참아내며 연속 삼구삼진 기록을 막아냈다.
하지만 그 다음 공에 제대로된 대응을 하지 못하면서 4타자 연속 삼진을 허용하고 말았다.
- 와...
- 이렇게까지 잘할줄은 몰랐는데.
- 이건 그냥 잘하는게 아니라 걍 압도적인데?
그 말대로 유성의 피칭은 압도적이었다.
곧 바로 타석에 들어선 김택균도 상황은 비슷했다.
4타자 연속 삼진은 막아냈으나 초구를 건드리며 아웃을 당했기에 유성의 투구수를 줄여주고 말았기 때문이었다.
"5타자 상대하면서 4개의 삼진을 잡았는데 겨우 14구만 던졌다라..."
"비현실적인것도 정도가 있는데..."
"어쩌면 박유성이 단순한 유망주를 넘어섰다는걸지도 모르겠군."
"단순한 유망주라... 확실히 아직 프로 데뷔도 안 한 선수가 이정도라면 메이저리그와 비교해볼 수 있을지도 모르겠군."
"아직 시즌은 시작도 안 했어. 성급하게 보지는 말라고."
그러나 유성이 6번 강정오에게 다시 삼구삼진을 잡아내자 점차 할말을 잃어가고 있었다.
압도적이라는 말로나 설명이 가능한 유성의 피칭에 대표팀 감독인 류중인 감독은 박수를 칠 수 밖에 없었다.
"대단하군. 시즌이 시작되면 MC 다이노스가 예상 외의 복병이 될지도 모르겠어."
현역 감독이 국대를 담당하는 규정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대표팀을 담당한 그였으나 제국을 이끌고 있는 감독이었기에 유성의 모습을 냉정하게 지켜볼 수 있었다.
그러면서도 약간의 아쉬움을 느꼈다.
유성 같은 투수의 모습을 2이닝 밖에 못 본다는 생각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는 와중에 대표팀은 MC 다이노스에게 선취점을 내주며 1대0으로 끌려가기 시작했다.
"다음 경기부터 말인가요."
"그래. 시범경기 직전까진 타자로 기용할테니 준비하고 있어라. 그리고 마무리 하고 와야지."
"...그러죠."
- 또 올라오네?
- 하긴 겨우 17개 던졌는데 좀 더 던질 수도 있지.
"또 올라와?"
"WBC 대비로는 최고로군."
앞선 3경기에서 선발로 나선 선수들이 모두 2이닝씩만 소화했기에 오늘도 2이닝만 소화할 것이라고 예상 되었다.
그러나 유성은 3이닝째에도 마운드에 올랐고, 이번 이닝을 어떻게 마무리 할지 결정을 내린 상태였다.
딱!
"아웃!"
앞선 2이닝과 달리 초구부터 슬라이더를 꺼내들며 타자의 배트를 유도한 유성은 좌익수 플라이로 7번 타자인 최성을 처리하였다.
'훗날 홈런왕이 될 타자. 하지만... 아직은 모자라.'
8,9번에 배치된 나머지 타자들도 유성의 공에 마땅한 대응을 할 수 없었다.
왠만한 투수였다면 파울로 만들어내며 투구수를 늘리게라도 만들었을텐데 유성은 그런 행위조차 할 수 없을 정도로 압도적인 구위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큭!"
"스트라이크!"
8,9번 타자에게 다시 한번 연달아 삼진을 잡아낸 유성은 9번 타자에게 스플리터를 던지며 마지막 순간까지 그 존재감을 드러냈다.
순식간에 3이닝이 마무리 되었고, 대한민국 대표팀은 폭풍이 지나간듯한 느낌을 받았다.
[3이닝 무실점 7K 25구]
- 진짜 괴물이네.
- 9이닝 던졌으면 20K 찍을뻔 했다.
- 심지어 이 페이스로 갔으면 80개도 안 던질뻔 했다.
- 마지막 스플리터 봤냐. 왜 KBO 남았는지 의문이네.
- 진짜 왜 KBO 남은거지?
이 부분은 아마 끝까지 의문으로 남을 것이다.
사실 회귀 전 유성의 KBO구단이었던 넥스 히어로즈는 2020년까지 우승을 거두지 못한다.
가장 완벽한 기회였던 2014시즌을 놓친 이후 점차 전력이 약해지더니 2018년에는 구단주 횡령 사건으로 인해 끝내 결정적인 한방을 터트리지 못했다.
결국 유성은 KBO 우승을 위해 잔류한 것이나 다름 없었다.
메이저리그에서 3번이나 우승한 선수가 KBO 우승을 위해 잔류했다니 터무니 없는 이야기였지만 MC 다이노스가 앞으로 거둘 성적을 알고 있기에 역으로 이런 터무니 없는 결정을 내렸다고 할 수 있었다.
"어차피 메이저 직행을 했어도 투타겸업 준비 때문에 1,2년 정도는 무조건 마이너에 있어야했겠지만..."
메이저리그 경험이 많기에 유성은 마이너의 생리도 잘 알고 있었다.
그런 터무니 없을 정도로 혹독한 환경은 유성이 보았을때 선수 성장에 좋다고 할 수 없었다.
물론 그런 환경을 극복하고 올라오는 괴물도 존재하지만 그것은 매년 수백수천명의 유망주가 유입되는 메이저리그이기에 가능한 것이었다.
"뭐 그리 심각한 표정이냐?"
"다음 경기 생각 중이었어."
"아직 경기도 안 끝났는데?"
"어차피 오늘 등판은 끝났으니깐."
메이저리그의 방식이 있다면 난 나만의 방식대로 한다.
그것이 유성의 결정이었고, 한국 대표팀은 MC 다이노스와의 4연전에서 1승 3패라는 처참한 성적으로 패배를 거두었다.
"이제 타격감이나 끌어 올려야겠네."
누군가가 사정을 안 다면 답답해 보일 수도 있고, 이해가 안 갈 수도 있다.
그러나 이것이 유성이 정한 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