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3
Chapter 14 - 과거의 에이스, 현재의 에이스 (4)
주자가 있을때와 없을때의 차이가 있듯 주자가 1루에 있을때와 2루에 있을때도 차이가 존재했다.
특히 2루 주자는 투수 입장에서 투수의 등뒤에 주자가 위치한 것이기에 신경쓰고 싶지 않아도 신경 쓰이게 되는 위치였다.
"더럽게 빠르네."
유성의 도루 기록도 이미 확인했다.
당시 일본 원정을 떠났던 선수들 중 2번째로 많은 성공과 가장 높은 성공확률을 기록한 선수가 바로 유성이었다.
그렇기에 3학년들은 유성이 출루하자마자 유성을 견제 하였던 것이었다.
"역시 데이터로 상정하는건 한계가 있나..."
"아니, 그냥 저녀석이 규격을 벗어난거야."
득점권에 주자가 향했기에 바로 포수가 마운드에 올라왔다.
하지만 세혁은 딱히 신경 쓰지 않았다.
"그래도 저녀석까진 문제 없어."
"...한방 있는 녀석이니깐 그건 주의해."
"알고 있어."
2사 2루 상황에서 타석에 들어선 강혁은 벌써부터 포문을 열어버린 유성의 실력에 감탄하면서도 자신에게 기회가 넘어온 것에 부담을 느꼈다.
'승패가 중요하지 않은 경기지만 유성이는 또 이길려고 덤벼들텐데...'
강혁이 보았을때 오늘 경기는 승패보다는 그 과정이 중요한 경기였다.
물론 좋은 과정들이 이어지면 승리를 거둘 확률이 높기는 하지만 무리할 필요는 없었다.
2개의 볼을 지켜보며 차근차근 타이밍을 맞추던 강혁은 유성이 움직일듯 말듯 하는 것을 포착했다.
물론 그것은 계속해서 2루를 체크하고 있던 포수도 마찬가지였다.
"너도 골치 아프겠다."
"네?"
"나도 세혁이랑 맞추다보니 난감했던적 많았는데 넌 더 힘들겠어."
"뭐... 별 수 없죠."
저정도 선수와 함께 할 수 있다면 그정도는 감수할 수 있다.
3구째가 스트라이크가 되며 볼카운트는 2S-1B로 바뀌었고, 강혁은 이제 승부의 때가 되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다음 공에서 승부다.'
'다음 공은 이거다.'
두 선수의 생각이 교차한 가운데 4구째가 날아들어왔고, 강혁은 배트를 휘둘렀다.
그러나 포심에 타이밍을 맞추었던 강혁은 생각보다 구속이 느리다는 것에 당황하였고, 공에 변화가 보이자 반사적으로 스윙의 방향을 바꾸었다.
딱!
"이런."
팡!
"아웃!"
완벽하게 헛스윙이라고 생각했으나 그 짧은 순간 배트의 방향을 조금이나마 바꾸었다.
그로인해 완전하지 않은 스윙이 되었기에 타구는 유격수 땅볼이 되었고, 유격수가 가볍게 1루로 던지면서 유성이 만든 찬스는 그대로 날아갔다.
"아오..."
"아까웠다."
"미안. 이런 기회는 쉽게 오는게 아닌데..."
"어쩔 수 없지. 저 선배도 작정하고 던지고 있으니깐... 오히려 쉽게 점수가 나왔으면 조금 실망했을지도 몰라."
"허..."
과연 유성은 규격외라고 할만했다.
자신이 만든 찬스가 이렇게 날아갔는데 오히려 더욱 전의를 불태우고 있었으니 말이었다.
아무튼 2회까지 양쪽 합해서 안타가 단 1개만 나온 가운데 3,4회에도 유성과 세혁은 무실점을 넘어 출루 자체를 허용하지 않으며 경기는 단숨에 5회 초로 넘어가게 되었다.
"4,5,6번으로 시작하는 타순이군."
"1,2학년쪽도 이번에 5번부터 시작하던가?"
"그렇지. 변화가 생긴다면 이번 이닝일꺼야."
사실 두 투수의 투구패턴은 타선이 1바퀴 돌은 4회부터 바뀌었지만 양팀 타선의 핵심이라 할 수 있는 타자들은 이번 이닝부터였기에 여기서 변화가 있을 것이 예상 되었다.
그리고 그 예상대로 3학년이 먼저 포문을 열었다.
딱!
"중견수가 후진 수비를 펼치면서 잘 막아둔 덕분에 2루타는 안 줬지만 이쪽도 퍼펙트는 끝났군."
"4이닝이나 퍼펙트였는데 신경 쓰고 있었을려나?"
"겨우 4이닝 퍼펙트 깨진걸로 흔들릴 투수는 아니라고 봐."
딱!
말이 나오자마자 유성은 병살을 유도해냈고, 유격수, 2루수를 거쳐 1루수에게 공이 도달하며 단숨에 6-4-3 병살이 만들어졌다.
"휘유~ 제법인데?"
"역시 쉽지 않군."
구속은 유성이 4km 느리지만 2년의 차이를 생각하면 문제 없다.
게다가 구위 부분에서도 3학년인 세혁과 동급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공에 위력이 실려 있는 것이 보였다.
'우리가 박세혁의 장점으로 뽑은건 구속과 구위였다. 그런 박세혁과 동급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구위라...'
정말 오늘 경기의 결말은 끝까지 모를듯 했다.
그 사이 유성이 6번 타자에게 삼진을 잡아내며 5이닝 무실점을 기록하였고, 경기는 5회 말로 이어지게 되었다.
"양쪽 모두 타격은 영 아니군요."
"양쪽 선발이 워낙 괴물 같으니 별 수 없지. 그리고 타자에겐 최소 3번의 기회가 있어. 2번을 실패해도 3번째에 성공하면 문제 없다는거지. 게다가... 1,2학년팀은 지금 가장 좋은 타순이야."
유일하게 안타를 때려낸 유성이 2번째 타자로 대기 중이고, 앞뒤로 컨택과 파워를 동시에 갖춘 거포들이 있었다.
1점이나마 점수가 나온다면 이 이닝이 가장 가능성이 높았다.
딱!
"바로 휘둘러서 파울이라..."
"감을 잡았나본데?"
"이거 미래고 1학년에 우리 생각보다 재능 있는 선수가 더 많은거 아닌가 몰라."
"더 많으면 좋은 일이지. 드래프트에서 우리가 뽑을만한 재능 있는 선수가 늘어난다는 이야기니깐."
"문제는..."
"응?"
"아까부터 긴가민가 했는데 저쪽의 외국인."
"어디? 어? 정말이네?"
"메이저리그 스카우터 같은데?"
"...그거 골치 아픈 이야기로군. 그나저나 메이저리그가 관심을 가질 정도면... 박유성이겠군."
자신들만 알고 있었다면 좀 더 침착하게 준비를 할 수 있었을텐데 메이저리그 스카우터로 유력한 외국인을 보았으니 시간을 끌기는 힘들었다.
"그렇다고 사전 접촉은 안되잖아?"
"나도 알아. 마침 미래고는 외부인에게 비교적 폐쇄적인 학교야. 우리가 외부에서 조절만 해주면 얼마든지 스카우터들을 차단할 수 있어."
딱!
그러는 사이에 철민이 안타를 때려내며 출루에 성공했고, 그것은 오늘 경기에서 가장 중요한 기회가 될 것이 분명했다.
이어서 타석에 들어선 유성의 존재로 인해 경기장의 긴장감은 더욱 높아지기 시작했다.
'무사 1루. 타자는 가장 위험한 녀석.'
'지금 시점에서 투구수는 51구. 페이스 조절을 해두었기에 체력은 문제 없다.'
'오늘 경기 패턴을 생각하면 초구는 포심일 확률이 높다.'
순식간에 3명의 선수들이 각자의 생각을 마쳤고, 동시에 사인이 교환 되었다.
그렇게 들어온 초구는 예상 외로 변화구였다.
"윽."
'역시 포심을 노렸나...'
작정하고 155km의 포심을 때릴 생각이었던건지 타이밍은 물론 파워까지 마운드에 있는 세혁이 손쉽게 느낄 수 있었다.
일단 1스트라이크를 잡았지만 세혁이나 그의 포수도 생각은 복잡했다.
'범타를 유도하던가 스트라이크를 두번 더 잡아야하는데...'
'일단 하나는 넣자.'
'이건 어때?'
포수가 살짝 움직였다.
투수를 보고 있는 유성이었기에 그 움직임을 보지는 않았지만 정황상 몸쪽으로 들어오는 코스가 분명했다.
초구가 바깥쪽이었으니 2구째가 몸쪽일것이라는 간단한 생각이기는 했지만 유성의 타자로써의 감이 말하고 있었기에 유성은 의심하지 않았다.
'문제는 구종이 무엇이냐인데...'
1루 주자를 살짝 확인한 세혁이 공을 던질때 유성은 선택을 내렸다.
유성과 세혁은 비슷한 스타일에 비슷한 유형의 투수였다.
그렇기에 지금 날아들어올 공이 포심일 확률이 높았고, 유성은 몸쪽으로 들어오는 공에 맞춰서 스윙을 시도했다.
팡!
"스트라이크!"
"큭."
몸쪽 포심까지는 맞추었으나 높은 코스는 예상 외였다.
적당히 높은 코스가 아니라 볼이 되어도 할말이 없을 정도로 높은 코스였다.
하지만 지금 유성은 적극적으로 칠려는 생각을 하고 있었기에 맥 없이 당할 수 밖에 없었다.
그렇게 2스트라이크로 유성이 구석에 몰린 가운데 1루의 철민은 벤치의 사인을 확인했다.
'내 주력을 알고 저런 사인을 내는건가...'
벤치에서 나온 사인은 런앤히트.
철민의 주력이 느리기에 그대로 있으면 병살의 위험성이 높았다.
게다가 바로 앞서서 수비를 할때 지금과 유사한 상황이 병살이 되는 것을 똑똑히 보았기에 이 작전은 충분히 시도할만한 것이었다.
'런앤히트라...'
유성이 먼저 사인을 받아들였고, 이어서 철민도 사인을 받아들였다.
어차피 투수는 철민의 주력이 느린 것을 알고 마땅한 견제도 하지 않고 있었다.
그런 생각으로 가볍게 리드를 넓힌 철민은 순간적으로 죽음을 느꼈다.
"세이프!"
살짝 1루에서 거리가 멀어졌는데 귀신 같이 1루 견제가 들어왔다.
워낙 갑작스러운 견제였기에 송구가 조금 높았고, 철민도 몸을 날리면서 들어왔기에 가까스로 아웃을 당하지는 않았다.
"아깝구만."
"발이 느리지만 뭔가 해볼려고 했던거 같은데..."
사실상 아웃이나 다름 없는 견제였기에 철민은 더 이상 간격을 넓힐 수 없었다.
성급하게 덤벼들었다가 아웃을 당하면 지금 흐름에서는 물을 끼얹는 것과 마찬가지니 조심할 수 밖에 없는 것이었다.
'뭔가 작전이 걸렸나본데...'
그렇다면 이쪽도 수비 시프트를 걸어넣는다.
잠시 자리에서 일어난 그는 유격수에게 2루 베이스에 거의 붙을 정도로 움직이게 하였고, 2루수는 그만큼 1,2루 사이의 공간을 매꾸도록했다.
유격수의 움직임으로 인해 비워진 공간은 3루수에게 한걸음 뒤로 그리고 2루 방향으로 또 한걸음 움직이게 하여 어느정도 매꾸었다.
"이러면 삼유간의 구멍이 커질텐데?"
"아무래도 3루수가 일종의 키인 모양이군."
보통 내야에서 가장 넓은 공간을 담당하는 것이 유격수이다.
하지만 이렇게 3루수가 담당해야할 공간을 넓혀두었다는건 3루수가 유격수에 뒤지지 않는 수비 범위를 가지고 있다는 이야기였다.
'게다가 만약을 위한 직선타를 대비해서 한발 뒤로 움직이게 해놨다.'
딱!
수비 시프트가 실행된 가운데 3구째가 파울이 되었고, 그 타구는 3루수 옆을 지나가는 것이었다.
보통 저런 수비 시프트가 나오면 삼유간 사이를 뚫을텐데 유성은 과감하게 3루수와 3루 베이스 사이를 노린 것이었다.
세혁의 구위가 구위이다보니 쉬운 일은 아니었지만 말이었다.
"너무 빡시게 하는거 아니에요?"
"그럼 후배의 정으로 1점 정도 줬어야지."
"에이... 에이스 자리를 물려 받는데 그건 좀 아니죠."
"그러니깐 우리도 전력으로 하는거다."
"...그렇게 말하시면 저도 할말은 없지만요."
일단 방금의 타구로 3루수의 머리가 조금은 복잡해졌을 것이다.
한곳이 아닌 두곳을 동시에 감안해야하니 말이었다.
그것을 눈치 채고 2루 베이스에 거의 붙어있는 수준으로 있었던 유격수도 조금은 베이스에서 떨어져서 3루수의 부담을 줄여주었다.
'저러면 삼유간도 노리기는 애매한데...'
런앤히트 작전이 걸린 이상 철민을 불러들이는 것은 몰라도 3루까지는 보내줘야한다.
잠시 고민하던 유성은 아래가 아닌 위를 노리기로 했다.
그때 유인구가 하나 들어왔기 유성은 가볍게 그것을 걸러내며 생각을 할 시간을 벌었고, 5구째에서 세혁이 승부를 보기 위해 투구를 하였다.
타닥!
"도루!"
"아니!"
딱!
'런앤히트'
152km가 기록된 강속구지만 유성은 상관 없다는듯 정확하게 때려냈고, 빠른 스타트를 끊은 철민은 순식간에 2루를 지나 3루로 향하고 있었다.
타구도 유성이 원하는대로 내야의 키를 넘겼기에 정확하게 안타로 기록되었고, 외야수의 발빠른 전진에도 불구하고 상황은 무사 1,3루가 되었다.
"하... 오늘따라 더럽게 빡시네."
오늘 경기에서 가장 큰 위기를 맞이한 세혁의 자조적인 말과 함께 경기는 점차 클라이막스로 향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