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2
Chapter 14 - 과거의 에이스, 현재의 에이스 (3)
1회에는 서로의 전력을 가볍게 확인해보았다.
그렇다면 2회부턴 봐줄것 없는 정면 승부를 펼치면 된다.
"보통 이런 경기는 1회에 1,2점씩 나오면서 시작부터 승부의 추가 기우는 경우가 많은데 1회에 잠잠했으니 투수전 확률이 높겠군."
"그래. 피칭 내용이 나빴다면 모를까. 둘 다 1회부터 삼진 2개씩 잡아냈고, 투구수도 13,11구로 비슷해."
그에 대한 확신은 2회 초 3학년 4번 타자를 상대하게 된 유성의 피칭에서 알 수 있었다.
피지컬만 본다면 철민과 비슷한 아니 그 이상일지도 모르는 선수였기에 다른건 몰라도 주력이 느리다는건 알 수 있었다.
'데이터에 따르면 여러 가지로 철민이의 상위 호환. 대신 딱봐도 알 수 있듯 철민이보다 더 느린 주력이 약점.'
선구안도 좋았다.
이런 타자라면 어중간하게 유인구를 던질바에 힘으로 찍어 눌러서 땅볼을 유도하는게 좋았다.
팡!
물론 첫 타석이기에 유성은 여전히 포심일변도에 가까운 피칭을 이어가고 있었다.
힘이 넘치는 초반에 무리하게 도망갈 필요가 없다는 생각이었기 때문이었다.
'이거 생각보다 더 과감한데...'
물론 공략이 쉬울꺼라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시작 전부터 경기가 투수전으로 흘러갈 것이라는 예상이 나왔고, 실제로 초반은 그런 분위기로 가고 있었다.
하지만 4번 타자의 자존심이 있었다.
딱!
"올해 5개 대회에서 우승을 거둔 팀의 4번답게 포심에는 제대로 반응하는군."
"이러면 변화구가 관건인데..."
볼은 의미 없다.
그렇기에 유성은 3구째에 변화구 대신 다시 한번 포심을 선택했다.
딱!
다시 한번 파울이 되었다.
곤란한건 유성도 마찬가지였다.
상대가 상대이다보니 완급 조절 같은 생각은 전혀 못하는 상황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동안의 데이터에 따르면 클린업에 더 강하게 특히 4번 타자에겐 전력으로 던지더군."
"대신 6번이나 7번부턴 구속을 조절하면서 체력을 비축하고."
"박유성 나름의 효율적인 방법이라고 할 수 있지."
"그래, 상대에 따라선 1,2번 타자도 그렇게 처리하기도 하지만..."
"오늘 경기는 서로가 서로를 잘 알고 있어서 쉽게 가기도 힘들꺼야."
"그래."
팡!
"스트라이크!"
"응?"
살짝 빠지는 공이었기에 볼로 판단했다.
하지만 예상과 달리 스트라이크 판정이 나왔다.
"무슨 문제 있나?"
"아니요. 아무것도 아닙니다."
지금 주심 위치에 있는 코치는 미래고 코치들 중 가장 정확한 판정을 내리고 있는 배터리 코치였다.
게다가 다른 팀과 붙는 경기라면 모를까 미래고 선수들끼리의 경기였기에 편파 판정을 할 이유가 없었다.
그렇기에 그가 맞다면 의문이 들어도 뭐라고 할 수는 없었다.
대신 다른 부분에서 해답을 찾았다.
"투수만 조심할게 아니었군."
"뭔데?"
"프레이밍."
"어? 분명히... 적혀있기는 했는데."
시간 관계상 바로 뒤의 5번 타자에게는 프레이밍이라는 단어만 이야기 해야했으나 덕아웃의 선수들은 달랐다.
게다가 타석에 들어선 타자도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을 깨닫고 최대한 버티는 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그럼에도 4구만에 삼진으로 물러나며 유성에게 4번째 삼진을 헌납하고 말았다.
그래도 그정도면 충분했다.
유성이 빠른 템포로 던지기는 하지만 4개의 공에 타자도 조금씩 천천히 준비를 했기에 3분 가까운 시간을 벌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벌써부터 머리 싸움 엄청나구만."
"우리 학교가 추구하던 방식이니깐요."
오늘 경기에서 감독은 물론 코치들도 반쯤은 관망하는 자세로 경기를 보고 있었다.
선수 교체와 같은 정말 필요한 경우에만 개입하기로 했기에 오늘 경기에서 전술과 전략을 생각하는건 온전히 선수들의 몫이었다.
"프레이밍이라..."
"지명하길 잘했네."
"넌 할줄 아냐?"
"당연하지. 아무리 그래도 포수는 수비가 최우선이니깐."
숙련도 싸움으로 넘어가면 1,2학년보단 3학년이 유리하다.
누적된 훈련 시간이 다르기 때문이었다.
"아오... 미안. 투구수 줄여주고 말았다."
"괜찮아. 딱히 차이는 안 날테니깐."
6번 타자에게 단 2구만에 범타를 유도한 유성은 그대로 이닝을 마무리했고, 이닝은 2회 말로 넘어가게 되었다.
유성과 달리 타격이 좋은 편이 아닌 세혁은 8번 타자였기에 글러브를 들고 있다가 이닝 교체가 되자마자 다시 마운드로 나섰다.
"겨우 고등학생 경기인데 분위기가 보통이 아니군."
"둘 다 아마추어 수준을 뛰어넘었다고 할 수 있으니깐. 이런 경기는 실투나 실책에서 갈리겠지."
그나마 기대 할 수 있는 것은 3학년에 비해 경험치가 모자란 1,2학년에서 실책이 나오는 것인데 지금 분위기라면 0대0의 스코어가 경기 후반까지 갈 확률이 높았다.
그의 생각대로 경기 후반까지 0대0의 스코어가 유지 된다면 수비수들은 단 1점도 허용하면 안된다는 부담감이 생길 것이고, 거기서 차이가 발생할 가능성이 높았다.
물론 예상이기에 따로 거론하지는 않고 생각만 한 그였지만 경기의 분위기는 정말로 경기 후반까지 0대0의 스코어가 이어질 기세였다.
4번 타자로 나선 2학년 타자가 범타로 물러났고, 5번 타자부턴 1학년들이 대기하고 있었다.
"1아웃 상황에서 이철민, 박유성, 김강혁이라..."
"셋 다 1학년이군."
메이저리그 스카우터들이 1학년을 집중적으로 보고 있다면 세혁의 몸 상태를 보기 위해 온 넥스 히어로즈 스카우터들은 데이터에 없던 1학년을 확인하기 위해 경기에 집중하고 있었다.
"미래고가 당분간 고교 무대에서 계속 거론 되겠군요."
"그래, 박세혁이 나갈때가 되자마자 다시 150km를 던지는 괴물이 나왔으니..."
"잡을 수 있을까요?"
"내가 어떻게 알겠어. 이글스가 유청식에게 7억이나 쓰는 바람에 박세혁한테 2억 주려던거 2억 5천으로 올렸으니깐. 그리고 우리가 1순위가 될지부터 걱정을 해야되지 않냐?"
"아... 그러고보니 그렇군요."
히어로즈는 여전히 하위권에 아직 선수풀이 미완성이라고 할 수 있는 단계였다.
눈에 띄는 선수는 있지만 구멍이 더 많은 실상이라고 해야할까?
아무튼 히어로즈 입장에서는 세혁이라는 차기 에이스를 얻었기에 무리하게 유성을 잡겠다고 하위권에 내려갈 이유는 없었다.
팡!
어떻게 버티고 있던 철민은 154km가 기록된 포심에 그만 반응을 하지 못하였고, 삼진으로 물러나게 되었다.
그리고 이어서 타석에 들어선 선수는 유성이었다.
"6번이라... 2학년 애들 타격이 좋은 편은 아니었다만..."
일본에선 아예 5번 타자였다고 들었다.
그러면서 외야수 수비까지 가능했기에 투수가 아닌 날에는 타자로 나서기도 했다는 이야기도 확인했다.
지금 홈플레이트 뒤에 앉아 있는 마누라의 입담 덕분에 알기 싫어도 알 수 밖에 없었지만 나름 기대감이 들었다.
일본에서 타격으로 뛰어난 모습을 보여주었다는 것도 알기에 전력으로 맞붙을 수 있는 것이다.
팡!
"스트라이크!"
시작부터 152km가 기록되며 유성에게 정면 승부를 요청하였고, 유성은 그 공을 보고 천천히 힘을 끌어 올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2구째에 바로 배트를 돌렸다.
딱!
"바로 반응하네?"
"심지어 전력인 155km가 나왔는데 말이지."
"단순히 투수로 뛰어난걸 넘어서 타자로도 뛰어나군."
"투타 모두 최고 수준이라니 우리 구단 자금 사정으로는 감당 안 되겠는데?"
"어차피 우리가 1번이면 그게 최고 금액의 기준이 될테고, 2번이면 그 나름대로 조절할 수 있으니 문제는 딱히 없어."
"그렇군요."
히어로즈 스카우터들이 유성의 드래프트까지 2년이나 남았음에도 김칫국을 마시고 있을때 유성은 3구째를 참아내고 4구째를 다시 파울로 만들어냈다.
"이거... 오래 가겠는데..."
2회가 끝난 시점에서 유성의 투구수는 22구.
벌써 19개를 던진 그였기에 잘못하면 투구수에서 역전 당할 가능성이 보이기 시작했다.
유성도 마찬가지겠지만 그에게도 9이닝 100구 제한이 걸려있기에 투구수를 아끼는 방법을 생각해봐야했다.
'나도 하위타순은 맞춰 잡아야하나...'
유성의 완급 조절은 단순히 체력을 아끼는 것뿐만 아니라 하위 타순의 배트를 유도해내서 투구수를 줄이는 역할을 했기에 그 기록을 들었던 세혁은 유성을 상대하다말고 다른 생각을 하였다.
어차피 지금 사인을 내고 있는 것은 그가 아니라 그의 전담 포수가 하고 있기에 세혁은 사인대로 공을 제대로 던지기만 해도 충분했다.
팡!
살짝 빠지는 공을 요구했으나 예상보다 조금 더 빠지고 말았다.
덕분에 프레이밍은 시도조차 하지 못했고, 길어지고 있는 승부와 달리 볼카운트는 이제 2스트라이크 1볼이 되었다.
"배 아프다."
"뜬금 없이 무슨 소리야."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긴장되거든."
지켜보고 있던 강혁은 그동안 보아온 유성의 타격을 통해 한가지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유성이 투수가 아니었다면 4번 타자는 유성의 자리였을 것이라고 말이었다.
아니 어쩌면 다음 시즌에 바로 4번 타자 자리를 차지할지도 모른다.
확신은 아니지만 지난 몇달간 보아왔던 유성의 모습을 알기에 할 수 있는 생각이었다.
유성은 놀라울 정도로 빠르게 성장하고 있었다.
'슬슬 KBO 시절 폼은 찾아가고 있는건가...'
단순히 경험만으로 뛰어난 선수가 된다면 유성은 진작에 메이저리그로 넘어갔을 것이다.
하지만 유성이 회귀한 시점은 중3이 되기 직전의 겨울이었다.
아직 몸부터가 완성이 되지 않은 상태였다.
그래서 유성은 장기적인 계획을 구상하면서 천천히 진행을 하기로 결정했다.
그래도 두가지를 같이 하기는 힘들었고, 과거에 이루지 못했던 투수로써의 길을 더 중요하게 보고 있었던 유성이었기에 이미 가보았던 타격이라는 길에 상대적으로 소홀했던 감도 있었다.
하지만 일본에서의 경험과 최근 훈련 덕분에 유성은 점차 그 시절의 모습을 찾아가고 있었다.
딱!
그 결과가 지금 때려낸 안타였다.
오늘 경기 첫 안타이자 153km나 되는 공을 깔끔하고 정확하게 받아치며 스카우터들은 유성의 투수로써의 능력 뿐만 아니라 타격도 높게 평가하기 시작했다.
"과거가 되어가는 에이스를 상대하는 새로운 에이스는 이정도인가..."
"감독님, 어떻게 보십니까?"
"대단하다는 말 밖에 못하겠군. 대체 일본에서 뭘 했던거지?"
"그냥 가능한 선에서 경기를 준비 했죠. 사실 생각보다 공을 많이 던지는 바람에 보호 차원에서 시즌 아웃 판정을 내린거고요."
"타격 재능도 가지고 있다는건 알았지만... 지금 수준은 3학년과 비교해도 되겠어. 아니, 그 이상일지도."
2아웃 상황에서 안타를 때려내며 출루한 유성.
타석에는 강혁이 들어섰다.
자연스럽게 셋포지션을 잡으며 만약을 대비한 세혁은 주자따위 신경 쓰지 않겠다는듯 연달아 포심을 찍어 넣었다.
그에 대한 대비는 이미 2루수와 포수가 사인을 주고 받으며 하고 있었기에 더더욱 세혁은 유성을 신경 쓸 필요가 없었다.
그렇게 만들어진 2스트라이크 상황에서 완전히 끝을 낼지 한번 골라낼지 배터리는 사인을 교환하고 있었다.
'리드가 넓어. 하나 빼.'
"음..."
사인은 확인했다.
보통 같으면 슬쩍 확인하겠지만 유성이었기에 세혁은 일부러 확인하지 않았다.
고민 끝에 사인을 받아들인 그는 그대로 유인구를 하나 던졌다.
그때 유성이 움직였다.
"도루!"
"2루로!"
유인구이기는 하지만 포심이었기에 공을 가장 빠른 타이밍에 도달했다.
그 공을 받은 포수는 바로 2루로 송구를 하였고, 승부는 아슬아슬한 접전 끝에 승자가 가려졌다.
모두가 2루심에게 시선이 향한 가운데 유성은 아무일 없다는듯 먼지를 털었다.
그럴 수 밖에 없는게 2루심이 세이프 판정을 내렸기 때문이었다.
"세이프!"
경기는 이제 또 다른 국면으로 넘어가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