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1
Chapter 14 - 과거의 에이스, 현재의 에이스 (2)
"늦었네?"
"응? 딱 맞춘거 아니에요?"
"내 기준에선 늦은거야."
"아하하... 저도 준비 할게 많아서 말이죠."
"호오?"
"그러는 선배님은 준비 잘 하셨나요?"
평소에도 그랬지만 오늘은 더욱 자신감이 넘쳐 보였다.
그런 유성의 모습을 보며 세혁은 오늘 경기에 대한 기대감이 커졌다.
"나야 평소처럼 준비했지. 마침 오늘 컨디션은... 100%거든."
"그거 기대 되네요."
"너야말로 다 못 보여줬다고 징징 거리지말라고."
"진짜 다 쓸려면 12이닝쯤 던져야할텐데요."
"?!"
세혁은 유성에 대한 자료를 확인하지 않았다.
애초에 유성을 지목할 생각이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가 아는 바에 따르면 유성의 구종은 4개.
'녀석의 재능이라면 더 늘어났을 가능성도 있지만...'
고등학생에게는 4개도 많은 편으로 취급 받는다.
마침 투수 코치가 일본행을 지휘했으니 구종을 더 늘렸더라도 사용하는 것은 4개 뿐일 것이다.
'코치님이 은근히 제한을 많이 걸으셔서 말이지.'
경기를 위해 몸을 풀기 시작한 선수들과 어느새 관중석에 도달한 메이저리그 스카우터들은 절묘한 시기에 왔다는 것을 알고 웃을 수 있었다.
"조금 빨랐나보군."
"그래도 덕분에... 훈련 장면을 볼 수 있군."
기록, 분석, 보고.
스카우터들의 업무를 간단하게 이야기한다면 이렇게 말 할 수 있었다.
기록을 위해 여러 장비들을 동반하였고, 그 모습을 확인한 감독은 드디어 확신 할 수 있었다.
"외국인이라..."
"외국인이네요?"
"MLB로군."
"...메이저요?"
"그래, 목표는... 유성이일려나?"
세혁은 이미 넥스 히어로즈의 지명을 받아서 입단 계약을 진행 중이었다.
그렇다면 남은 선수 중에서 메이저리그의 관심을 받을만한 선수는 유성이 유일했고, 소식을 들은 코치진은 각자 스카우터들의 위치를 확인하고는 임시 회의를 진행했다.
"방해는 딱히 없을겁니다. 저렇게 장비를 달고 온걸 보면..."
"유성이가 1학년이라서 지금 시점에서의 접촉은 딱히 의미가 없습니다."
"자퇴 카드가 있기는 한데..."
"지금의 유성이라면 그럴 가능성은 없다고 봐야죠."
대부분 지금 시점에선 걱정할 필요가 없다는쪽이었다.
그것은 유성을 가장 오래 지켜보았던 투수 코치도 마찬가지였다.
"좋아. 저쪽도 오늘은 관찰만이 목적인거 같으니깐 우리도 신경 쓰지말자고."
만약 미래고가 투수를 혹사 시키는 팀이라면 저쪽에서 어떻게든 빼낼려고 했을 것이다.
미래가 유망한 유망주를 살리기 위해서라도 말이었다.
하지만 미래고는 그런 팀이 아니었다.
오히려 선수 육성 부분에서는 고등학교 수준을 뛰어 넘은 수준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였다.
아마추어 단계에서 이 이상의 해답이 없다는 것은 지난 몇주간의 관찰로 그들도 충분히 파악했다.
"나이? 잠깐만... 박유성은 아직 15살이야. 아니, 생일을 생각하면 곧 16살이군."
"음... 좀 끌리는데... 15살과 16살은 미국에서도 차이가 많으니깐."
그리고 메이저리그 국제드래프트 계약은 16살부터 가능하다.
스카우터라면 뛰어난 재능을 더 어린 나이에 데려가고 싶은 욕구가 강하다.
하지만 동료의 이야기도 있었기에 지금은 참기로 했다.
"슬슬 시작하나보군."
그말대로 유성에 대한 생각을 1차적으로 단념할쯤 경기 시작이 다가왔다.
일부러 주말로 시작을 잡았기에 미래고 학생들은 물론 넥스 히어로즈 스카우터까지 찾아왔다.
이미 사정은 구단에 이야기를 해두었다.
7월 말 이후로 등판이 없었기에 구단에서도 1경기 정도는 괜찮다며 허가를 내주으나 대신 스카우터가 참관을 하게 된 것이었다.
"누가 선공할래?"
"선배님들에게 넘길게요."
"그렇다는데?"
"...그럼 저희가 선공을 가져가죠."
여러 이야기가 있을줄 알았으나 간단하게 결정이 났다.
3학년이 오늘 경기의 주인공이기에 1,2학년 팀은 전체적으로 그들에게 맞춰주고 있었다.
물론 경기가 시작되면서 그런 분위기는 사라졌다.
"먼저 올라오는군."
"이러면... 3학년 선공에 1,2학년 후공이군."
유성에 대한건 다들 파악해놨다.
세혁이 미리 유성을 지명할 것이라고 이야기했기에 그들은 지명 전부터 유성에 대해 많은 분석을 진행 해두었다.
'한국 고교 최강팀'
올해의 그들은 분명히 이런 찬사를 받을 자격이 있는 선수들이었다.
그리고 유성이 상대할 선수들은 고교 최고의 선수들이었다.
"그러면 시작부터 달려야겠지."
"플레이볼!"
드디어 시작된 경기.
유성의 초구가 정확히 스트라이크 존 중앙에 들어갔다.
그리고 기록된 구속은 유성의 공식전 최고 구속인 151km였다.
"시작부터 전력인가?"
"일본을 정복하고 왔다지만 저쪽 멤버는 한국 최강이나 다름 없으니 방심하는건 금물이지."
초구가 제대로 들어간 것을 보았지만 유성은 아직 안심하지 않았다.
적어도 첫 타자를 처리해야 조금은 숨을 돌릴 수 있다.
곧 바로 이어진 2구째에 타자는 헛스윙을 하고 말았다.
유성이 포심의 비중이 60%가 넘어가기는 했지만 변화구를 쓸줄 몰라서 그러는 것이 아니었다.
"초구로 빠른 공을 각인 시키고 2구째로 흔들었군."
"그러면 결과는?"
"조금 더 뛰어난 쪽이 이기겠지."
"조금 더 뛰어난 쪽이라..."
"올해 처음이라고 해도 미리 준비된 경기이니 각자에 대한건 많이 알아보고 분석 했을꺼야. 그렇게 된다면 결국 남는건 실력뿐이지."
"과연..."
팡!
"스트라이크!"
단번에 2스트라이크로 몰아 넣은 이후로 유성은 볼을 던지지 않았다.
강혁도 유성과 호흡을 맞출땐 일부러 버리는 공은 잘 요구를 안 했기에 의견은 빠르게 교환 되었고, 첫 타자를 그렇게 삼진으로 처리했다.
"정말이지. 저 박유성이라는 선수는 학년 2개 정도는 우습게 보는 선수란 말이야."
"KBO 수준이라면 당장 프로에서도 수준급이겠지."
"그래서 더 무섭지. 고등학교를 졸업할쯤에는 어느 정도 수준이 될지 말이야."
이어진 2번 타자를 기다리며 유성은 오늘 준비 해온 것들을 다시 정리하기 시작했다.
'1-3-1이었으니 이번에는 1-2-4로 갈까나...'
고민도 잠시 바로 강혁의 사인이 들어왔다.
'이번에도 포심 먼저?'
'그래.'
분명 미래고 3학년은 올해 최고의 고교팀이었다.
하지만 150km의 공을 마음대로 때려낼 정도는 아니었다.
게다가 유성은 일본에서의 경험을 통해 구속보다는 구위에 좀 더 힘을 실었다.
"저기..."
"응?"
"스카우터인가요?"
관중석에서 지켜보던 메이저리그 스카우터들은 약간 곤란한 상황에 처했다.
처음보는 학생이 그들이 스카우터라는 사실을 파악했기 때문이었다.
'어쩌지?'
'알아서 해. 귀찮게 만들지는 말고.'
'알아서 하라고 해도 말이지...'
"어디가서 함부로 이야기하지마. 그나저나 여학생이네?"
"네."
"어디서 본거 같은데..."
"일본?"
"아, 일본에 있던 미래고 학생이군."
스카우터들에게 말을 걸은 사람은 세연이었다.
사실 미래고 코치들과 달리 세연은 일본에서부터 스카우터의 존재를 확인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스카우터들이 여기서도 보이자 고민 끝에 접촉한 것이었다.
"넌 이 학교 학생이지?"
"네."
"몇학년?"
"1학년이요."
"마운드 위의 투수에 대해 아는가?"
"네. 약간은..."
영어를 생각보다 잘 한다는 생각이 들었으나 중요한 것은 그녀를 통해 유성의 정보를 파악하는 것이다.
그의 선수로써의 능력은 확실하지만 다른 부분은 잘 모르니 이렇게라도 알아두는게 좋았다.
'정말 뛰어난 선수라면 평소 생활에서 그런 점이 나올테니깐.'
흔히 워크에씩이라고 이야기 되는 것을 알아보기에 좋은 기회였다.
평소에 미래고가 개방 되어 있었다면 문제 없지만 오늘처럼 한정적인 시기에만 가능했기에 그들에겐 이런 정보가 더 중요했다.
어차피 경기 내용은 카메라가 기록 중이었기에 그들은 경기를 보는 것 말고는 할 일도 없었다.
그렇게 스카우터들이 세연을 통해 유성의 평소 모습이나 워크에씩을 확인하는 동안 유성은 2번 타자와 7구 승부 끝에 범타를 유도하고 3번 타자에게 1스트라이크를 잡아두었다.
'역시 분석은 다 되었나...'
유인구에는 속지 않고, 어중간하게 들어간 변화구도 거트 당했다.
결국 포심으로 끝을 봐야했으나 2번 타자에게 이렇게 고전하면 지금부터 상대할 클린업은 더 어려울 것이다.
"내가 이러니깐 부족함을 느끼지."
스플리터도 4구종의 한계를 보았기에 장착한 것이었다.
하지만 지금 시점에선 봉인된 구종이었고, 유성은 그때부터 다른 길을 찾았다.
팡!
일단 포심을 통해 구석으로 몰아 넣는다.
그런 생각으로 던진 포심 덕분에 2스트라이크까진 쉽게 잡아냈다.
'이제부터가 관건인데...'
변화구만 노리고 준비를 해왔나라는 생각이 들정도로 3학년들은 유성의 변화구에 효과적으로 대응하고 있었다.
그러나 포심은 그들에게 힘든지 조금씩 떨어지는 반응이었다.
'그래도 무작정 포심만 쓸 수는 없는데...'
여러 패턴을 준비했지만 타자들이 어떻게 준비를 해왔는지 알게 된 이후로 순식간에 유성은 일부 패턴을 조정했다.
그러면서 문뜩 세혁의 위치를 확인한 유성은 그가 자신을 보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그래... 어차피 저쪽도 힘으로 밀고 오겠지."
1회부터 계획의 일부가 바뀌었지만 유성은 생각을 달리했다.
어차피 경기는 이제 시작이었고, 유성은 힘으로 타자를 찍어누를 능력이 있었다.
팡!
"스트라이크!"
다시 한번 기록된 삼구삼진.
그것으로 1회 초가 마무리 되었고, 이닝을 마무리한 유성은 세혁을 잠시 보다가 마운드에서 내려갔다.
"과감하군."
"149,151,150. 초반은 힘 싸움인가 본데?"
"가장 힘이 넘칠때니 차라리 저게 나아. 그나저나 어디까지 했더라?"
"훈련 이야기요."
"아, 그렇군. 이거 도움만 받는데 미안하군."
"아니요, 괜찮아요."
사촌의 영향으로 야구에 대해선 제법 알지만 메이저리그는 잘 몰랐다.
그러나 스카우터들과 이야기를 나눌수록 그녀도 자주 들어본 익숙한 팀이 보였다.
"평소 생활도 모범생에 워크에씩은 최고 수준이라..."
"잠재력까지 충만하고 정말이지... 흔히 볼 수 있는 유망주는 아니라고 할 수 있겠군."
세연에게 나머지 이야기를 들은 스카우터들은 고민에 빠졌다.
유성은 모든 부분에서 최고라고 할 수 있었다.
이런 선수라면 KBO에서도 눈에 불을 켜고 달려들 확률이 높았다.
"150만불을 어떻게든 이끌어 내야겠군."
"100만불만 되어도 문제 없지 않나?"
"KBO 최고 계약금이 10억원인데 그게 100만불 가까이 되는 금액이야."
"설마 그 금액이 가능하다고 보는거야?"
"우리가 저 선수에 대해 조사를 한게 겨우 몇달이야. 그런데 아직 고1 밖에 안 되었지. 앞으로 한국 스카우터들의 관심을 받을테고 그걸 감안하면..."
뒷말은 말하지 않았지만 만약이라는 것은 언제나 위험한 가정이었다.
게다가 KBO에서 여차하면 100만불을 부를 팀이 나올 가능성도 존재했다.
"게다가... 우리 팀이 돈이 없는건 아니잖아?"
"그렇기는 하지."
작년에 적자 문제로 구단주가 바뀌기는 했지만 그 덕분인지 자금력이 풍족해졌다.
사실 두 사람이 강력하게 요청한다면 구단에서 150만불 이상 받아올 자신도 있었다.
물론 불안 요소는 있었다.
유망주는 어디까지나 유망주였다.
성공 가능성이 높기는 하지만 실패의 가능성도 고려를 해야했다.
세혁이 1회 말을 삼자범퇴로 정리하고 마운드에 내려올때도 그들의 고민은 이어졌다.
왠지 길어질듯한 오늘 경기는 이제서야 2회 초로 접어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