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8
Chapter 13 - 앞서가는 자 (1)
드디어 한국에 돌아온 유성을 비롯한 1학년 선수들은 그대로 미래고로 향했다.
"드디어 돌아왔다."
"우리 방은 그대로 있겠지?"
"아마도?"
일본에서 휴식을 취하기는 했지만 3개월간의 일정을 생각하면 편했다고 하기도 힘든 일정이었기에 선수들에게 며칠간의 휴식이 주어졌다.
물론 기본적인 훈련은 계속 진행 될 예정이었는데 방학이 다가왔기 때문에 일부 선수들은 집으로 돌아가기도 했다.
"네. 아무래도 지금은 좀 더 집중하는게 좋을거 같아서요."
유성은 학교에 잔류하는쪽으로 가닥을 잡았다.
그래서 먼저 부모님에게 연락을 드리고 있었다.
"죄송해요."
"후... 이번 겨울에는 꼭 와야한다. 너도 알고 있겠지만 프로 선수도 겨울에는 쉰다."
"네. 겨울에는 꼭 갈게요."
한숨이 나올듯 했지만 아버지는 이해한다는듯 유성의 잔류를 다시 한번 이해해주셨다.
그리고 이제 겨울까지 유성은 몸상태를 더 끌어 올릴 필요가 있었다.
"공도 못 던지는데 어쩔려고?"
"기초 체력부터 다시 잡아야지. 마침 여름이잖아?"
"그래. 더운 여름이지."
"이럴때 체력 단련을 해두면 나중에 도움이 될꺼야."
"같이 하자는 이야기지 그거?"
"어."
유성의 말을 들은 강혁은 잠시 고민하더니 미안하다는 표정으로 자신의 사정을 이야기했다.
"미안. 난 코치님이 따로 하체 보강 훈련을 준비 해주셔서 게다가 내년부터 주전 자리 잡을려면 나름 바쁘거든."
"아... 하긴 그럴 수도 있겠네."
"지훈이나 다른 녀석이랑 하던가."
"그래야겠다."
그렇게 유성을 보낸 강혁은 자신에게 주어진 자료를 차근차근 분석하기 시작했다.
강혁이 보고 있는 자료는 현재 한국에 존재하는 다른 모든 고등학교 1,2학년 학생들의 자료였다.
"진짜 내년에나 출전하게 생겼네..."
같이 훈련할 사람을 찾아서 돌아다니던 유성은 여러 선수들에게 말을 걸어 보았다.
하지만 지훈은 물론 다른 선수들도 모두 각각의 훈련이 예정 되어 있었기에 유성은 고민 끝에 혼자서 훈련을 진행하기로 했다.
그러나 유성에게는 그마저도 어려웠는데 감독이 직접 찾아와서 당분간 유성에게 휴식만 취하라고 이야기 했기 때문이었다.
'투수로 100이닝씩이나 소화한걸로 모자라서 외야 전 포지션까지 가능하다라...'
일본에서 돌아온 투수 코치의 보고서는 믿기 힘들었지만 코치가 그동안 쌓아온 신뢰감이 있었기에 감독은 코치의 보고서에 적힌대로 유성에게 당분간 휴식만 취하게 만들었다.
물론 지훈도 제법 무리했지만 유성처럼 외야수 출전을 감행하면서까지 나서지는 않았기에 가벼운 훈련을 진행 할 수 있었다.
결국 유성만 혼자 기숙사에서 틀어박힐 수 밖에 없었다.
"진짜 할거 없네..."
설마 훈련까지 금지 될줄은 몰랐다.
그래서인지 이런 상황이 되자 유성도 대략 멍해지는 느낌이 들었다.
'여긴 어디 난 누구'
결국 유성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 대신 생각을 하기 시작했다.
아무것도 할 수 없다면 시뮬레이션으로 연습을 하면 된다.
그런 생각으로 유성도 유성 나름대로 시간을 보내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런 상황이 며칠을 넘어 1주일 이상 이어지자 일부 선수들이 우려를 보내기 시작했다.
"유성이를 저렇게 놔두는건 좀 너무하지 않냐?"
"며칠 정도는 납득할만한데 저렇게 길게 쉬게 하는 것도 안 좋지 않나?"
"그러게. 부상이 있는 것도 아니던데."
물론 그런 선수들의 생각과 달리 유성은 무엇인가를 떠 올리고 있었다.
딱!
계속 생각만 하다보니 이젠 생생하다.
한창때 유성이 타자로써 활약하던 모습이 말이었다.
'첫 시즌부터 우여곡절 끝에 월드시리즈 갔었지.'
제법 거액을 투자하며 타선을 강화하려던 팀과 마침 주전을 잡을 수 있을듯 한을 원하던 유성은 서로 손을 잡았고, 여러 IF 요소들이 폭팔하며 메이저리그에 건너가자마자 월드시리즈에 진출 할 수 있었다.
자신의 방으로 돌아온 유성은 월드시리즈 진출 이후를 떠올렸다.
시작부터 밀리기 시작했던 유성의 팀은 기적을 연출했다.
"그렇군."
이 휴식은 생각보다 귀중한 것이 될지도 몰랐다.
미래를 보고 온 유성은 과거의 자신을 통해서 자신이 앞으로 가야할 길을 찾았기 때문이었다.
"거의 10일 정도 쉬었나..."
이정도면 훈련을 다시 시작해도 문제 없을 것이다.
그런 생각으로 그날 감독을 찾아간 유성은 다음날부터 훈련을 재개하였다.
***
"그런대 우리 언제까지 이렇게 뛰어야하냐?"
"말 할 체력도 아껴..."
유성은 평소에도 많은 훈련을 소화하며 체력을 늘려놨기에 10일 정도의 휴식은 문제 없었다.
또한 다른 1학년 선수들도 그동안의 일정을 소화하며 체력이 제법 늘어난 상태였다.
그래서 선수들의 성장을 확인한 코치들은 좀 더 높은 단계의 훈련을 준비 해왔다.
"엄청나게 하드한데?"
"놀라운건 저걸 또 소화하고 있는 녀석들이지."
"우리도 1학년땐 저거 제대로 따라간 선수가 1명 뿐이었던가?"
"2명이었지. 우리 핵심 배터리들."
"아차, 그랬지."
마지막 대회를 준비 중인 3학년들은 1학년과 달리 제법 여유롭게 훈련을 진행하고 있었다.
그래서 여유가 있던 몇몇 선수들은 그 모습을 보며 자신들이 1학년일때를 떠 올리고 있었다.
"아무튼 우리 졸업 이후는 걱정 없겠다."
"오히려 우리보다 더 많이 우승하는거 아닌가 몰라."
"그럴려나? 흐음... 선배보다 잘 나가는건 조금 곤란한데..."
"진짜?"
"아니, 왜 농담을 진담으로 만들려고 하냐."
잠시 떠들던 그들은 이내 다시 집중을 시작했다.
마지막 대회 일정이 7월과 8월에 걸쳐 있었기에 막판 스퍼트를 끌어 올릴 필요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분위기가 좋군요."
"무서운 기세로 치고 올라오고 있는 1학년과 마지막을 준비하는 3학년인가... 2학년은?"
"중간에 있다보니 조금 애매하기는 합니다만... 전체적으로 좋은 편입니다."
"그런가... 이제 드래프트가 멀지 않았군."
"네. 멀지 않았네요."
그동안 꾸준히 키워온 제자들이 냉정한 평가를 받게 될 것이다.
확신 할 수 있는 몇몇 선수들이 있다면 확신 할 수 없는 몇몇 제자도 존재했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다음 세대로 바통을 넘겨줘야한다.
"앞으로 더 바쁘겠군."
"남은 대회 일정도 딱히 없어서 그렇게까지는 안 바쁠것 같지만요."
3학년들의 마지막 대회 이후로는 2개의 대회가 더 남아있지만 그 대회들은 올해 제대로 뛰지 못한 1,2학년 중 백업 멤버들 위주로 나설 예정이었다.
결국 유성과 나머지 선수들은 내년을 위해 준비를 할 수 밖에 없었다.
"그나저나 1학년들은 일본으로 넘어가기 전에 있던 2번에 일본에 넘어간 이후 치룬 35번의 경기까지 4개월간 37번의 경기를 치룬건가... 시즌 아웃을 시켜도 할말이 없을 정도로 굴렸군."
"면목 없습니다. 선수들의 성장을 지켜보다보니 그만..."
"별 수 있겠나 성장할때는 확실하게 밀어주는게 좋으니 나쁘지 않았어."
다시 훈련이 시작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 3학년들의 마지막 대회가 시작되었다.
일본에서 유성이 미래고 에이스로 이름을 떨쳤다면 한국에선 미래고의 진짜 에이스인 박세혁이 고교 무대를 장악하고 있었다.
관리 야구를 지향하는 미래고였기에 2선발도 그만큼 뛰어난 실력을 갖추고 있었으나 박세혁만큼은 아니었다.
게다가 세혁도 마지막 대회이기에 짧은 이닝이라도 거의 대부분의 경기에 출전하면서 팀을 이끌었다.
그 모습을 보며 유성은 대회 전의 일을 잠시 떠올렸다.
***
"이봐, 후배."
"아, 선배님."
"일본에서 엄청났다지?"
"뭐... 하던대로 했을 뿐이죠."
"그거면 충분해. 미래고의 이름에 먹칠하지 않았다는거니깐."
그러고보니 미래라는 이름의 학교를 나온 사람들은 이상할 정도로 이 미래라는 이름에 충성심이 강했다.
물론 유성도 충성심이 강하면 강했지 약한 것은 아니었다.
그만큼 미래라는 이름을 가진 학교들은 하나 같이 최고라고 할 수 있는 학교들이었다.
"그런대 어쩐 일로..."
"아차, 깜빡할뻔했네. 내일 결승전 제대로 지켜보라고."
"??"
유성으로써는 이 뜬금 없는 이야기에 의문이 들었다.
그러나 다음 이야기에 유성은 고개를 끄덕일 수 밖에 없었다.
"내일 내가 보일 모습은 내년부터 니가 이어가야한다."
"...네."
"그럼 잘 부탁한다. 뉴 에이스."
팡!
"스트라이크!"
초구부터 전광판에 기록된 구속은 155km.
그것은 박세혁의 전력 투구였다.
시작부터 전력을 다하기 시작한 그의 모습은 마치 불타오르는듯한 화신의 모습이었고, 유성은 그 모습을 똑똑히 지켜보며 기억했다.
이날 그가 보여준 모습은 그야말로 미래고의 에이스 그 자체였다.
"경기 종료!"
결국 미래고 3학년은 마지막 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하며 다시 한번 미래고의 이름을 빛냈다.
경기가 끝난 후 감독은 1,2학년을 불러 모았다.
"이제 3학년의 시대는 끝이다. 그리고 다음은 너희의 시대다."
그것은 혹독한 경쟁을 예고하는 이야기였다.
하지만 유성은 긴장 되지 않았다.
자신이 정점에 오른다는 자신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런대 아직도 공을 못 던지네."
"일본에서 너무 많이 던졌나봐. 승호도 일본에서 나름 던졌던거 때문인지 지금 1학년 중에 공 던질 수 있는 사람은 주환이 말고는 아무도 없어. 그마저도 언더핸드라서 관리 받고 있지만."
"슬슬 던지고 싶은데 언제쯤 가능할까..."
1학년 멤버들이 한숨을 쉬고 있을때 마지막 대회를 마무리한 세혁은 감독과 면담을 진행 중이었다.
프로로 향할지 대학으로 향할지 아니면 야구를 그만둘지에 대한 주제로 3학년 전원과 이야기를 나누었고, 그가 마지막 면담 대상이었다.
"역시 프로로 가는구나."
"네. 감독님도 원하셨잖아요?"
"그렇기는 하지만 니 의사를 존중해줄 생각이었지."
"저도 고민이 되기는 했는데... 후배한테 도발을 좀 했거든요."
"무슨 도발?"
결승전 전날에 세혁이 유성에게 했던 이야기를 들은 그는 웃을 수 밖에 없었다.
새로운 전통이 만들어지는게 아닌가라는 기대감과 함께 말이었다.
"그러면 하나 더 하자꾸나."
"네?"
"고별전이라고 해야하나? 고교 무대를 은퇴한다는 의미의 마지막 경기지."
올해의 세혁은 전체 드래프트 1번이 유력한 픽이었다.
늦어도 전체 3번 안에 들어갈 수 있다는 평가였기에 1,2,3번을 받은 프로 하위 3개팀에선 눈에 불을 켜고 세혁의 행보를 지켜보고 있었다.
광주일고 유청식과 함께 올해 드래프트에서 2대장 소리를 들을 정도의 평가가 있었으니 어느정도 수준을 기대하는지 잘 알 수 있었다.
아무튼 감독이 세혁에게 제의한 고별전은 이러한 것이었다.
세혁이 지목하는 투수와의 대결.
다시 말해 세혁이 인정한 내년 에이스를 선정하는 경기였다.
물론 이것은 감독도 유성을 내년부터 기용할 에이스로 생각하고 있었기에 맞아 떨어진 것이었지만 고민하던 세혁은 이내 고개를 끄덕이며 승낙의 의사를 밝혔다.
그리고 그 소식은 다음날 바로 알려지게 되었다.
"고별전...?"
"선배님들이 지목한 선수들이라..."
단순히 에이스만 지목할 생각이었으나 기존 주전 멤버들의 이야기까지 들어본 결과 각 포지션의 주전들도 각자의 포지션에서의 후계자를 지목하도록 범위를 더 넓혀주었다.
"이 고별전은 세대 교체의 의미도 가지고 있다. 드래프트가 있기 때문에 경기를 치루는 시기는 9월이다."
"그동안 다들 최상의 몸상태를 만들어두도록 해라. 명단 발표는 경기를 치루기 1주일 정도 전쯤에 발표하겠다."
"네!"
그렇게 3학년의 마지막이 준비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