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기록파괴자-37화 (37/156)

# 37

Chapter 12 - 일본 관광 (3)

오타니를 삼진으로 처리하고 덕아웃에 들어온 유성은 바로 코치에게 불려갔다.

"유성아."

"네."

"아직 쓰지말라고 했을텐데."

"죄송합니다."

유성이 구종을 추가하려고 할때 코치는 최대한 말렸다.

사실 지훈도 구종을 더 추가하기에는 부담스러운 상황이었지만 투심이라면 그리고 지훈이라면 감당이 가능하다는 계산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지훈이 예상 외로 커터까지 익히는 바람에 계산이 틀리기는 했지만 그래도 코치는 커터를 봉인 시키며 사용하지 못하게 만들었기에 지훈은 아직 실전에서 커터를 쓴적은 없었다.

더 많은 구종을 쓰게 하지 않은 이유는 아직 성장기인 몸이 버티기 힘들다는 생각이었기 때문이었으나 구종 습득에서 천재라고 할 정도로 뛰어난 모습을 보인 유성이기에 어느 순간 스플리터를 익혀버렸다.

"골치 아픈데... 그래도 일단 봉인 해둬라. 지금 넌 성장기의 몸이야. 한창 성장할 시기에 무리하는건 좋지 않아."

이렇게 말하면 보통 잘 지켜왔던 유성이었고, 사실 그동안 잘 지켜왔다.

스플리터를 처음 선보였을때가 5월이었으니 2달이나 지난 것이다.

"일단 오늘 경기에선 더 이상 스플리터는 금지다."

"네."

방금 오타니가 예상 외의 모습을 보이기는 했지만 무리하게 스플리터를 꺼낼 필요는 없었다.

그게 경기를 지켜보고 있던 그의 판단이었다.

게다가 유성은 아직 한가지 여력을 더 남겨두고 있었다.

"혹시나 하지만 그것도 안된다."

"아..."

"마음 같아선 무조건 150km 아래로만 던지게 제한하고 싶지만..."

"그건..."

"그래. 그거까진 무리겠지."

사실 조절을 하는게 늦었다.

애초에 유성이 150km를 던질줄 예상도 못한 그의 잘못도 있었다.

그래서 더욱 철저하게 관리를 하기로 했다.

유성은 단지 고등학교 레벨에서 끝날 선수가 아니기 때문에 이러한 관리는 더욱 중요했다.

아무튼 유성이 타석에 나설때가 되었기에 코치는 짧게 이야기하고 유성을 바로 내보냈다.

"스플리터라..."

"벤치 분위기보니깐 한 소리 들은거 같은데?"

"왜?"

"아직 성장기인 선수가 4개의 구종을 던지고 있어. 그런대 부담이 큰 스플리터가 추가되면 5개가 되버리지. 아직 성장기인 지금 시기에 다양한 구종을 던지는건 안 좋거든. 사실 구종 4개도 많은 편이긴 한데..."

"그런가..."

일본 스카우터들 사이에서도 혹사 문제를 인식하고 있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래서 유성이 최고 수준의 관리를 받고 있는 것을 알고 있었다.

등판 간격부터 시작해서 경기당 투구수나 이닝 제한까지 확실했다.

딱!

타석에 들어서자마자 유성은 초구를 공략했다.

다른 타자면 모를까 유성에게 고등학교 투수는 단 1이닝이면 충분히 분석하고 공략할 수 있는 수준에 불과했다.

2회 말에 곧 바로 터져나온 유성의 선제점을 얻어내는 솔로 홈런으로 리드를 잡은 미래고는 이후 흐름을 타기 시작했다.

2회에 더 이상의 점수를 추가하지는 못했지만 3,4회에 1점씩 더 추가하며 스코어를 3대0으로 늘려둔 것이었다.

그렇게 경기는 빠르게 5회 초로 이어지게 되었다.

스플리터가 딱 1번 나오고 봉인 되었으나 타자들의 뇌리에 강하게 각인이 되어있었기에 유성은 손쉽게 이닝을 진행 할 수 있었다.

그래도 이번 이닝은 좀 다르다고 할 수 있었다.

다시 한번 오타니를 만나는 이닝인만큼 3점의 리드가 없다고 생각하며 차근차근 타자를 상대할 준비를 했다.

팡!

앞선 이닝에서 안타를 하나 허용했기에 선두 타자는 5번 타자였다.

즉, 이 타자를 막아야 오타니와 진지하게 승부를 볼 수 있는 상황이었다.

"2회 이후로 구속이 계속 145 아래로 유지되고 있군."

"페이스 배분인가?"

"저번 경기에도 6이닝 밖에 안 던졌는데 페이스 배분을 할 필요가 있나?"

"그는 오늘 경기까지 포함해서 3개월간 12경기에 등판 했어."

"그게 무슨 상관이... 아니군."

NPB는 6선발 로테이션을 사용한다.

이 방식으로 등판을 할 경우 3개월간 15회 안밖으로 등판을 하게 되는데 유성이 3개월간 소화한 그리고 소화하고 있는 일정은 프로에 준하는 일정이었다.

아무리 꾸준한 관리를 해주었다고 해도 고등학생 그것도 1학년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무리한 일정이었다.

"그나마 이 일정 이후로는 한국에 돌아가니 괜찮을려나..."

"응?"

"한국엔 미래고의 2,3학년이 있어. 저쪽의 코치가 생각이 있다면 분명 그동안의 일정을 감안해서 휴식기를 줄꺼야."

실제로 한국과 꾸준히 연락을 주고 받던 투수코치도 한국에서 유성은 물론 1학년 전체에 휴식을 줄 생각을 하고 있었다.

유성이 돋보여서 그렇지 포수인 강혁이나 유성만큼 고생한 지훈도 피로가 누적 되어 있기 때문이었다.

선두 타자를 처리한 유성은 다시 한번 오타니를 만나게 되었다.

팡!

오타니가 타석에 들어서자마자 던진 유성의 초구의 구속은 150km였다.

이 모습에 스카우터들은 지금이 중요한 승부처라는 것을 알수 있었다.

"3회부터 이번 이닝 1아웃까지 140 중반이 유지되던 구속이 다시 150으로 올라왔군."

"왜지?"

"오티니가 두번의 파울을 만들어낸것이 저 괴물의 승부욕을 자극한거겠지."

"흐음..."

뭐가 되었든 스카우터들에겐 좋은 장면이었다.

선수를 파악하는데 있어 이런 승부가 만들어지면 더욱 그 선수에 대해 파악하기가 쉽기 때문이다.

딱!

2구째에 반응한 오타니의 타구가 파울이 되었다.

하지만 구속은 144km로 내려온 상태였다.

"완급 조절?"

"그런거 같은데..."

"결국 스플리터는 안 쓰나보군."

"아아... 미래고에서 지시를 따로 내렸나보군."

딱 1번 밖에 못 봤기에 아쉬운 감이 들었지만 지금의 승부도 중요했다.

3구째는 다시 한번 144km의 구속이 기록 되었지만 살짝 존에서 빠지는 공이 되었다.

2스트라이크 1볼이 만들어지고 유성은 차분하게 다음 공을 준비했다.

3개의 공이 모두 포심이었지만 오타니는 방심 할 수 없었다.

언제 스플리터가 나올지 몰랐기 때문이었고, 아직 상대해보지 못한 변화구도 있었기 때문이었다.

결국 어중간한 포지션을 취할 수 밖에 없었는데 그로인해서 오타니는 유성의 체인지업까지는 참아냈으나 이어서 들어온 150km의 포심까진 걷어내지 못하고 다시 한번 삼진으로 물러나게 되었다.

"아깝군."

"오히려 다행이랄까... 세공이 안 된 원석이라는 이야기니깐."

"그렇게도 볼 수 있겠군."

오타니를 다시 한번 처리한 유성에게 남은 이닝은 문제 없었다.

1차전때 6이닝만 던지고 쉬었던 것을 만회하기 위해서 유성은 단번에 8회까지 무실점 행진을 이어갔다.

물론 8회에 오타니를 다시 한번 만났지만 앞선 타석과 달리 변화구로만 승부를 본 끝에 범타로 처리하면서 유성은 3차전을 8이닝 무실점으로 마무리 할 수 있었다.

유성이 8이닝을 소화하는 사이에 스코어는 6대0까지 벌어진 상태였고, 마지막 1이닝은 주환이 가볍게 틀어 막으며 미래고는 결승에 진출하게 되었다.

"뒤는 맡겨도 되지?"

"그래. 아예 대타로도 나오지 말고 걍 쉬어라."

"그러면 나야 좋지."

반대편 조에서 결승에 올라온 팀은 세이슈였다.

그것을 보니 유성도 약간 아쉬움을 느꼈다.

아직 미완의 오타니와 달리 아마추어 단계에선 완성이나 다름 없는 세이슈를 상대 하는 것도 좋은 경험이 될 수 있기 때문이었다.

어차피 지나간 것이니 어쩔 수 없지만 세이슈 입장에서도 곤란한건 마찬가지였다.

어느덧 3번째로 만나는 지훈이었지만 지난 등판때의 충격이 있다보니 결승전은 쉽게 한쪽이 리드하는 방향으로 진행되지 않았다.

양팀 투수들이 워낙 잘 던지니 그럴 수 밖에 없었다.

'그래도...공략이 불가능한건 아니야.'

이미 2번이나 만나봤기에 미래고 선수들도 제법 투수에게 익숙해진 상태였다.

익숙해진다고 다 칠 수 있는건 아니지만 미래고의 클린업이라면 1점이나마 뽑아낼 능력이 있었다.

평소라면 유성까지 포함해 클린업 쿼텟을 구성했을 그들이지만 유성이 빠진 시점에선 트리오였다.

그리고 트리오일때의 작전은 간단했다.

백현이 어떻게든 출루하면 철민이 안타나 볼넷으로 백현을 득점권으로 보낸다.

이어서 타석에 들어서는 강혁이 주자를 불러들이며 점수를 뽑아낸다.

그것은 타자들의 능력이 그만큼 뛰어나기에 가능한 작전이라고 할 수 있었다.

'사실 작전이라기에는... 그냥 타자들 능력을 믿고 밀어붙이는거지만...'

벤치에서 느긋하게 지켜보고 있던 유성은 그동안의 경기들과 달리 놀라울 정도로 여유롭게 이 경기를 지켜보고 있었다.

평소 같았으면 대타라도 생각하며 지켜보았겠지만 지훈이 경기 내내 무실점 행진을 이어가고 있고, 타선도 필요한 순간에 점수를 뽑아내며 2대0으로 미래고는 리드를 잡고 있었다.

"유성아."

"네?"

"...아무것도 아니다."

"?"

갑작스러운 코치의 모습에 의문이 들었으나 타격음이 들리면서 시선을 돌렸고, 우익수가 타구를 잡아내는 모습과 함께 지훈이 7이닝 무실점을 달성했다.

나머지 2이닝은 승호와 주환이 1이닝씩 해결했기에 유성은 마지막까지 그저 경기를 지켜보기만 했다.

이미 코치가 한가지 이야기를 해주었기 때문이었다.

"한국에 돌아가면 올해는 더 이상 경기 출전을 못할지도 모른다."

"네?"

"올해 입학한 이후 유성이 니가 소화한 이닝을 모두 합하면 100이닝이 넘어. 내년 봄까지 휴식을 취한다고 해도 할말이 없을 정도로 많은 이닝을 소화한거지."

"..."

그 이야기를 듣고 유성이 떠올린 것이 하나 있었다.

이닝에 관해서 유명한 리스트가 있는데 버두치 리스트라는 것이다.

버두치 효과라고 불리기도 하는 이것은 100이닝 이상 던진 만 25세 이하 투수가 전년보다 30이닝 이상을 더 던졌다면 부상 확률이 올라가는 것을 말하고 있었다.

유성의 나이는 만으로 따지면 겨우 15세에 불과했다.

중학교 2학년까진 공을 던지는 것도 얼마 안 되었지만 중학교 3학년부터 고등학교 1학년 여름까지 유성은 빠르게 달려오고 있었다.

거기까지 생각이 미친 유성은 고개를 끄덕이며 휴식을 받아들였다.

"아무튼 이번에도 우승이구나."

"그렇네요."

"그러면... 이제 돌아갈때가 되었군."

여름 고시엔 준비를 위한 친선대회에서마저 미래고는 우승을 거두며 일본을 떠나기 전의 마지막 경기까지 일종의 생태계 교란을 일으켰다.

이 일은 이후 2010년 봄부터 여름까지 이어진 미래고의 반란이라는 이름으로 불리게 되었고, 일본이 회귀 전보다 더 빨리 아마추어 투수 관리 시스템을 도입하게 된 계기가 되었다.

***

"드디어 한국인가..."

"그나저나 유성이 넌 니 여친 안 챙기냐?"

"아직 여친 아니야. 임마."

"그럼 대체 언제 사귀는건데?"

"그걸 내가 어떻게 알아."

한국으로 돌아가는 비행기를 기다리고 있는 가운데 선수들은 잊고 있던 화두를 꺼내들었다.

하지만 유성은 철벽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완강하게 막고 있었다.

"아무튼 니들도 뭐 분위기 괜찮지 않았냐?"

"아니..."

"아쉽게도..."

"우린 실패자야..."

"커플은 분명 나쁜 존재야..."

놀라울 정도로 분위기가 다운이 되었기에 유성도 별 다른 말은 하지 못했다.

그러나 유성은 물론 미래고 선수들은 지금 시점에서 마땅히 할만한 이야기가 없었다.

기간의 차이가 있지만 유성은 물론 다른 선수들도 모두 최소 1달의 휴식이 주어질 예정이었기 때문에 선수들은 그 사이에 무엇을 할지 고민하고 있었다.

"그런대 한국의 선배들은 괜찮을려나?"

"괜찮아. 우리처럼 22명이 열심히 구른것도 아니고 한국에는 50명 정도나 있으니깐 우리보다 훨씬 여유로워."

"아하..."

인원이 많은만큼 더 많은 경기를 치루었겠지만 단순히 2배가 아닌 2배 이상.

즉, 미래고보다 더 많은 백업 자원이 존재했기에 그쪽은 그들이 신경 쓸 필요가 없는 부분이었다.

"네. 돌아가자마자 다시 바쁘겠군요."

다만 투수코치인 그에겐 바쁜 일정이 계속해서 이어질 예정이었다.

그곳에서 시선을 땐 유성은 선수들과 잡다한 이야기를 나누다가 드디어 한국행 비행기에 탑승했다.

"잘 있어라. 일본."

"멋져보일려고 하지마라."

"뭐... 거의 4달간 신세 졌으니 나쁠건 없잖아?"

"그렇기야 하지..."

그렇게 미래고 1학년 멤버들은 한국에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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