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1
Chapter 10 - 결승 (1)
치열할 것이라 생각 되었던 경기는 예상보다 싱겁게 종료 되었다.
그러나 아직 끝난 것이 아니었다.
"이 경기의 승자가 우리 결승 상대가 될꺼다. 잘 지켜봐라."
"네."
4강에서 맞붙는 두 팀은 아신고와 와라모토고.
아신고의 선발은 좌완에 최고 151km를 던지는 흔히 말하는 지옥에서 데려온다는 좌완 파이어볼러였다.
반대로 와라모토고의 선발은 최고 구속이 143km에 불과했지만 포심, 투심, 커브, 슬라이더, 체인지업, 스플리터까지 6개나 되는 구종을 다루는 선수였다.
완벽하게 스타일이 다른 두 투수의 대결은 뒤를 생각하지 않겠다는듯한 모습이었다.
2선발을 내세우며 결승에 여유를 두었던 미래고와 세이슈와 달리 그 둘은 모두 에이스 카드를 꺼내들었기 때문이었다.
"뭐, 특징은 없나요?"
"아신고는 저 선발의 비중이 매우 큰 학교야. 그래서 4강에 올라온 팀 중 유일하게 투수가 3명 뿐인 팀이기도 하지."
"그렇군요."
"와라모토는 저 선발이 에이스지만 나머지 3명의 투수의 비중이 비슷해."
"비중이 비슷해요?"
"전원이 선발 투수이면서 불펜 투수야."
"전원이요? 그러면..."
와라모토는 1차전 5회 콜드를 제외하면 모두 9회까지 경기를 치루고 4강에 올라왔다.
고시엔 일정상 매일 공을 던진건 아니겠지만 1,2명 정도는 전경기 출전을 하고 있다는 이야기였다.
"대충 이해한거 같구나. 4강에서 쉬었던 너랑 주환이와 달리 저쪽은 쉬었던 선수가 1명도 없다는거지. 소화한 이닝이 적기 때문에 부담이 크지는 않겠지만 말이야."
"그럼 코치님은 와라모토가 올라오는게 좋겠네요?"
"아니, 등판 기록을 봤는데 와라모토는 투수를 효율적으로 기용해왔어. 결승에 올라와도 여전히 뛰어난 모습을 보일 확률이 높다는거지. 그래서 차라리 투수 숫자가 모자란 아신고가 올라오는게 더 좋아."
물론 유성이 버티고 있기에 둘 중 누가 올라와도 상관 없다.
절대적인 에이스의 존재감은 그런 것이었다.
'아신고라...'
유성이 눈여겨볼만한 투수이기는 했다.
이전까지 상대한 팀들의 에이스는 우완투수였는데 이번에 처음으로 좌완투수를 만날지도 모르게 된 것이었다.
물론 세상을 살다보면 원하는대로 안 되는 경우가 많았기에 유성은 그렇게 기대하지 않았다.
대신 누가 올라와도 대응할 수 있도록 양팀의 정보를 모두 확인했다.
이날 경기는 빠르게 진행 되었다.
그럴 수 밖에 없는게 양팀 투수들 모두 뛰어난 투수들이었기에 양팀 타선이 모두 맥 없이 막혔기 때문이었다.
그래서인지 불펜 비중이 큰 와라모토도 예외적으로 선발을 6회까지 끌고 가며 연장전을 대비했다.
하지만 그것이 실책이었다.
8강까지 모든 경기에서 5이닝씩만 소화했던 와라모토의 선발이 6이닝째를 감당하지 못하고 실점을 하고만 것이었다.
불펜을 투입하며 불을 진압했지만 2점이나 허용하며 패색이 짙어지고 말았다.
겨우 2점이라고 하기에는 아신고의 에이스의 피칭이 매우 뛰어났기에 1점을 만회하는 것조차 확신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결국 아신고의 에이스가 8이닝 무실점을 기록하며 완벽하게 승기를 가져왔고, 와라모토는 9회에 겨우 1점을 만회했으나 다시 1점을 내주며 결국 패배하고 말았다.
최종 스코어는 3대1로 미래고가 원하던대로 아신고가 결승 상대가 되었다.
"이번 고시엔 투수진은 정말 좋군."
"미라이(미래), 세이슈, 아신, 와라모토까지..."
"이렇게 나열하니 더 눈에 띄는군."
일본 선수들에게 가산점을 더 주고 싶어도 전원 1학년인 팀의 업적은 결코 지워지는 것이 아니었다.
스카우터들 중 하나가 기록해둔 미래고 투수진의 기록만 봐도 그들은 결승 진출은 물론 우승의 자격이 있는 팀이었다.
박유성 3경기 12이닝 무실점
박지훈 2경기 10이닝 3실점
유승호 2경기 3이닝 무실점
박주환 2경기 2이닝 무실점
유성이 에이스이다보니 가장 많은 경기수와 이닝을 소화한 상태였으나 다른 3개팀에 비교하면 훨씬 적은 이닝이었다.
4강까지 4경기를 치루며 2선발인 지훈만 유일하게 실점을 했을 정도로 미래고 투수진은 퀄리티마저 높은 편이었다.
그렇다고 타선이 약한 것도 아니었다.
3경기 연속 콜드 승은 물론 4경기 연속 10득점이라는 괴물 같은 화력까지 과시하고 있었다.
실제로 스카우터들 사이에서도 미래고의 승리가 점쳐지고 있었다.
4강에서 에이스는 물론 마무리 투수 취급을 받는 언더핸드 투수까지 아껴둔 미래고와 달리 아신고는 에이스가 대부분의 체력을 사용했기에 2명의 불펜에게 큰 부담이 주어진 상태였다.
"미래고가 유리하기는 하지만 결론은 모레 나오겠지."
"그렇기는 하지."
결승 상대가 정해지자 미래고는 결승전을 위한 마지막 준비를 시작했다.
타선이 강한 팀이라고 하기는 힘들었지만 필요할때 1,2점을 뽑아낼 정도의 능력이 있는 팀이었다.
"최소 3점 정도는 뽑아야한다는거네."
"그정도면 할만하지 않냐."
"그렇지."
4강에선 유성이 예상 외의 좌익수 수비를 보여준 덕분에 중심 타순은 막강한 화력을 과시했으나 지훈이 있던 8번 타순이 큰 구멍을 내고 있었다.
그러나 결승전에선 유성이 투수로 나서기에 기존 좌익수인 강선호가 나설 수 있게 되었고, 타선에도 변동이 생겼다.
1번 우익수 백강호
2번 중견수 김진표
3번 3루수 민백현
4번 1루수 이철민
5번 투수 박유성
6번 포수 김강혁
7번 좌익수 강선호
8번 2루수 김유신
9번 유격수 최성현
"변했다고 해도 하위타선뿐이네."
"그러게."
선수들은 라인업을 보면서 마지막 조율을 시작했다.
그래도 지금의 라인업이 최적이라는 것을 알았기에 금방 조율을 끝낼 수 있었다.
"내일은 뭐 최고 구속 갱신 같은거 없냐?"
"그런게 있겠냐."
"그쪽 선발 151km 나오던데 너도 1km 더 올려봐."
"아니, 그게 쉬운게 아니잖아."
쓸때 없는 이야기 같았지만 마음을 편하게 잡기에는 좋았다.
은연중에 결승전이라는 긴장감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자, 내일 결승인데 주장이 한마디 해봐."
"응?"
"에이, 그래도 주장인데 뭔가 한마디는 해봐."
"이럴 의도로 시킨거였냐?"
"아니. 그냥 주장 뒀다가 뭐하겠나 싶어서 말이야."
"..."
맞는 말이기는 했다.
그래서 유성은 선수들을 불러모았다.
"이제 마지막 경기만 남았어. 그러니..."
그동안 활약해준 동료들의 얼굴을 보며 유성은 말했다.
"이기자."
"미래고 파이팅!"
"파이팅!"
***
드디어 시작되는 결승전.
4강전에 첫 만원관중을 달성하였던 고시엔은 결승전에서도 만원 관중을 달성하며 모든 시선이 한곳에 쏠리게 했다.
"선수비 후공격이다."
"OK. 나쁘지 않아."
선수들이 수비를 준비하기 시작한 가운데 유성도 강혁과 함께 마지막 조율을 준비하고 있었다.
팡!
"좋아. 4강에 쉰 덕분에 최고야."
겨우 하루 밖에 못 쉰 아신고의 에이스와 달리 유성은 5일이나 쉬었기에 컨디션은 최고조에 달하고 있었다.
그러나 아신고의 투수도 최대한 페이스를 끌어 올려둔 상태였기에 구속은 그대로 유지되고 있었다.
"겨우 하루 쉬고 구속이 나오나본데?"
"저걸 미련하다고 해야하나 혈기가 넘친다고 해야하나."
아마추어 야구는 혹사가 없다면 굴러가지 않는 환경이었다.
그래서 유성도 별 수 없다는 생각이 들면서도 아쉽다는 생각이 들었다.
수 많은 투수들이 혹사로 사라져갔다.
저 선수도 그렇게 될 확률이 높았기에 아쉬움이 들었으나 강혁이 부르는 소리에 유성은 그 생각을 접어야했다.
"이제 시작한데."
"알았어."
이제 집중을 해야할때다.
다른 선수들은 이미 각자의 자리로 향하고 있었다.
그렇기에 유성도 천천히 자신의 자리로 향했다.
고시엔 결승전의 마운드에 올라서면서 유성은 이 느낌이 어떤 느낌인지 알 수 있었다.
"플레이볼!"
이것이 정점이었다.
그리고 유성이 던진 초구는 정확히 한가운데로 들어가며 150km를 기록했다.
[초구부터 과감하게 한가운데로 찔러 넣는 박유성 선수입니다.]
[150km가 나왔네요.]
[과연 이번 대회 최고의 투수다운 피칭입니다.]
유성은 지훈처럼 변화구의 비중을 높일 필요가 없었다.
쉴틈 없이 몰아치는 150km의 강속구가 있기 때문이었다.
팡!
"스트라이크!"
팡!
"스트라이크!"
[삼구삼진! 단 3개의 공으로 선두 타자를 돌려세우는 박유성!]
[압도적이네요. 150,148,149로 평균 149km가 유지 되었습니다.]
[변화구를 하나도 안 쓴점도 인상적인데요.]
[그만큼 직구에 자신이 있다는거겠죠.]
"역시 4강때 쉬게 한건 잘한 선택이었어."
"잘못하면 주환이는 4강때 쉬고도 결승에 못 나가겠는데요?"
"그거 참 기분 좋은 고민이라니깐. 승호도 하루 쉬었기 때문에 등판이 가능하거든."
유성과 지훈 이상으로 관리 받았던 승호와 주환이었다.
그래서인지 결승전에서 등판 하고 싶다는듯한 모습을 계속 보여주고 있었다.
"유성이가 과연 7이닝 정도만에 내려올지 의문이군."
2번 타자에게 다시 한번 연속 포심으로 2스트라이크를 만들어낸 유성은 커브로 헛스윙을 유도하며 다시 한번 삼진을 잡아냈고, 3번 타자에게는 본격적으로 변화구를 꺼내들었다.
팡!
초구 체인지업에 헛스윙을 한 타자는 표정을 찌푸렸으나 유성은 빠르게 피칭을 이어갔다.
곧 바로 들어오는 145km의 완급 조절이 된 포심과 연달아서 들어온 150km의 전력의 포심으로 다시 한번 삼구삼진을 기록하며 유성은 그대로 이닝을 마무리했다.
[놀랍습니다. 단 9개의 공으로 세 타자 모두에게 삼구삼진을 잡아냈습니다.]
[그렇습니다. 아신고가 타격이 강한 팀은 아니지만 결승까지 올라온 팀인데도 박유성 선수는 너무나도 압도적이네요.]
편파해설 같은걸 생각할 틈이 없었다.
유성의 압도적인 피칭에 그들도 감탄이 나왔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유성이 단번에 이닝을 마무리하며 내려온 가운데 코치들은 오늘 불펜 기용이 어렵다는 것을 깨달았다.
"저런 기세로 던지고 있는데 말릴 수 있을까?"
"이거 저쪽 타선이 힘내주기를 빌어야할지도 모르겠네요."
겨우 1회가 끝난 시점이지만 지금의 페이스라면 유성은 제한투구수인 100구 이전에 완봉을 해버릴게 분명하다.
두 불펜 투수에게 조금 더 기회를 주고 싶던 그들 입장에선 왠지 모르게 기쁜 난해함이라고 할 수 있었다.
유성이 워낙 빠른 템포로 투구를 이어갔기에 1회 초는 겨우 4분만에 마무리 되었다.
순식간에 이루어진 공수 전환으로 인해 당황할법도 했으나 아신고의 에이스인 사토는 침착하게 마운드에 올라섰다.
"후..."
여러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졸업하기 전에 고시엔 결승 무대에 서게 되었다.
여름이 아닌 봄이라는 점이 아쉬웠지만 그래도 고시엔 결승이라는 것은 변하지 않았기에 그는 집중력을 끌어 올리기 시작했다.
미래고의 1번 타자인 백강호는 어제 보았던 피칭을 떠올리며 타격을 준비했다.
다만 강호가 좌타자였기에 상대 투수가 좌투수라는 점이 거슬렸다.
팡!
"헐..."
시작부터 149km가 나왔다.
바로 2일 전에 8이닝을 던졌던 투수가 맞는가라는 생각이 들정도의 괴력이었다.
하지만 승리를 거두기 위해서는 이 투수를 넘어야했다.
딱!
2구째도 다시 포심이 들어왔으나 가까스로 건드리며 파울을 만들어냈다.
구속은 147km로 약간 떨어진 구속이었다.
'다음은 더 빠른 공이나 변화구겠군.'
뻔한 예상이었다.
2번의 포심이 날아왔고 2번째가 더 느린 공이었다.
속도 차이를 이용한 포심과 타이밍을 흐리기 위한 변화구 중에서 강호는 포심을 선택했다.
방금의 파울 덕분에 얼마나 빠른 타이밍을 잡아야하는지 짐작했기에 강호는 스윙 타이밍을 조금 더 빠르게 가져갈 준비를 했다.
하지만 예상과 달리 아신고의 에이스 사토는 변화구를 꺼내들었다.
"스트라이크 아웃!"
예상 외의 스플리터였다.
강호가 맥 없이 물러난 가운데 2번 타자인 진표가 타석에 들어섰다.
'녀석의 구종은 포심, 체인지업, 스플리터.'
전부 떨어지는 수준이 다른 구종들이었다.
그래도 저 3개의 공으로 와라모토에게 8이닝 무실점을 기록했으니 무시할 수는 없었다.
정상 컨디션이 아니라고 해도 말이었다.
딱!
"아웃!"
"아..."
작정하고 노려봤던 초구가 제대로 맞지 않으면서 2루수 땅볼이 되었다.
순식간에 2아웃이 만들어졌고, 이제 클린업으로 타순이 이어지게 되었다.
경기는 점차 치열해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