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6
Chapter 9 - 4강전 (1)
행운이 따라주기는 했지만 미래고는 8강전에 콜드승을 거두었다.
그러다보니 유성이 4강전에 잠깐이나마 등판할 수 있는 여력이 생겼다.
그러나 투수 코치는 굳이 무리 시키지는 않기로 했다.
"아무리 적은 이닝과 적은 투구수였다지만 1주일만에 3번의 등판을 했어. 4강전에선 대타 외에는 기용할 생각이 없으니 쉬고 있어라."
"네."
"그러니 지훈이 너의 역할이 중요하다."
"하지만..."
"괜찮다. 우승을 거두지 못한다면 우리가 아직 부족했다는 이야기니깐."
괜찮다는 이야기를 들었지만 지훈은 큰 부담감을 안고 있었다.
세이슈전에서의 충격을 떨쳐내기에는 시간이 모자랐기 때문이었다.
"어떻게 하지?"
대답은 없었다.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했기에 지훈은 지금 혼자였기 때문이었다.
"저대로 놔둬도 되냐?"
"일단 자기만의 시간이 필요할꺼야."
"그래. 오늘은 놔두는게 좋겠다."
강혁, 유성, 철민는 멀리 떨어져서 그런 지훈의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
하지만 마땅한 방법은 없었다.
다른 팀이라면 어떻게든 던지겠지만 최악의 경기를 펼쳤던 상대를 다시 상대해야했기에 아직 어린 지훈으로써는 큰 난관에 해당했다.
'이 고비를 넘기면 기대 이상으로 성장할꺼야.'
프로에서 활약하던 지훈은 애초에 이런 대량 실점 자체를 한적이 없지만 1,2실점에도 민감하게 반응하지 않았다.
그 모습을 기억하고 있기에 유성 입장에서 지훈은 아직 더 성장할 수 있었다.
"그만 가자. 좀 더 놔두고."
"...그래."
그 사이 지훈은 자신 나름대로 계속해서 고민을 이어가고 있었다.
그러다가 결단을 내렸다.
"일단 최대한 준비는 해놔야겠지."
최소한 연습경기때보단 잘 던질 필요가 있었다.
그렇기에 밤 늦게 다시 훈련에 매진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선수들과 달리 그 모습을 계속 지켜보던 또 다른 시선이 있었는데 4강전에 대해 대비하고 있던 두명의 코치들이었다.
"보통 지금 시간의 훈련은 금지 아닌가요?"
"그렇지."
"그러면 말려야하지 않나요?"
"지금은 예외야. 지훈이도 당장 4강이 코 앞이니깐 그 공을 최대한 완성 시키고 싶은 생각이겠지."
지훈이 몰래 하고 있는 훈련은 무작정 공만 던지는 것이 아니었다.
공을 던지고 감각을 천천히 몸에 새겨 넣으며 동시에 공을 어떻게 던질지 생각하고 다시 공을 던졌다.
"경기가 코 앞이니 최대한 적은 공을 던지면서 완성도를 올릴 생각이야."
"그게 마음대로 될까요?"
"될지 안될지는 경기 날에 보면 되겠지."
"그래야겠죠."
지훈도 지훈 나름대로 복잡했다.
'이게 아니야.'
코치님이 알려준 감각대로 던지는 것은 가능하지만 만족할만큼의 퀄리티가 나오지 않았다.
다시 한번 던져 보아도 답이 나오지 않았다.
"그렇다면..."
조금 다르게 던져보는건 어떨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계속해서 하나하나 던져보며 지훈은 확신을 얻을 수 있었다.
"이거라면..."
해볼 수 있다.
***
그렇게 다가온 4강전.
지훈은 마운드에 오르기 전 심호흡을 하고 있었다.
먼저 마운드에 오른 세이슈의 투수는 에이스가 아닌 2선발이었다.
아무래도 결승이 코 앞이었기에 세이슈라고 해도 2선발을 내세울 수 밖에 없었다.
"그나마 다행이네."
"저쪽도 우리랑 같은 생각을 했다는거지."
그동안 좋은 일정 덕분에 3일간의 휴식이 주어졌으나 준결승 이후 결승까지는 단 2일의 시간 밖에 없었다.
그러다보니 이전과 달리 에이스를 아껴야했다.
"저쪽도 혹사를 시키지는 않는군요."
"그래도 위험해지면 나올꺼야. 우리와 달리 일본팀에게 고시엔은 남다른 의미를 가지고 있으니깐."
"그렇겠죠."
선두 타자인 백강호가 차분하게 공을 지켜보고 있는 가운데 지훈은 마지막 준비를 하며 기다리고 있었다.
"아직도 떨리냐?"
"그만해."
"알았어."
"...진짜 그만하냐?"
"그러면 내가 뭘 어째야하냐? 너도 오늘을 위해서 가능한 모든걸 준비 했잖아? 그러면 그걸 경기에 쏟아부어. 그거면 되는거야."
"유성아. 저녀석 내가 알던 강혁이 맞냐?"
"맞을꺼야. 아마도..."
"무슨 아마도야!"
딱!
"어이쿠."
파울 타구가 불펜을 향해 날아들었으나 앞에서 대기하고 있던 유성이 가볍게 잡아냈다.
그 모습을 슬쩍 본 임시 코치는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유성은 오늘 5번 좌익수로 경기에 출전할 예정이었다.
8강이 끝난 이후 유성이 직접 외야 수비가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주었기에 급하게 정해진 것이었다.
"유성이가 외야까지 될줄은 몰랐네요."
"덕분에 살았어. 타선도 강화되었고, 투수진에게도 일종의 보험이 될 수도 있으니깐."
"그러게요."
물론 그들은 유성이 메이저리그에서도 평균 이상의 수비를 펼치던 외야수라는 사실은 몰랐다.
유성도 비록 부상으로 인해 공은 제대로 못 던졌지만 빠른 발과 천재성으로 넓은 수비 범위를 과시했던 전적이 있었다.
그때는 그때였고, 지금은 지금이었지만 유성에게 부담은 없었다.
중학교 시절에도 매우 가끔이지만 좌익수로 나선적이 있었고, 고등학교에 들어온 이후에도 만약을 위해 잊을만 하면 수비 연습을 해두었기 때문이었다.
딱!
"아웃!"
"아오... 저게 땅볼이 되네."
"괜찮아. 이제 시작이니깐 차근차근 하자고."
3경기 연속 콜드 승으로 올라왔기에 선수들의 분위기도 좋은 편이었다.
덕분에 1회 초 미래고는 점수를 얻어내지 못했으나 아직 할 수 있다는 생각으로 수비를 준비했다.
"준비 끝났지?"
"네."
"좋아. 가봐라."
1회 초 공격에서 무득점으로 막히고 말았지만 상대 선발에게 15구나 던지게 만들었기에 미래고는 상대 선발에 대한 정보를 제법 쌓았다.
게다가 다음 이닝 공격이 철민, 유성, 강혁으로 이어지는 라인업이었기에 1회 말 수비만 잘 막는다면 바로 선취점으로 이어갈 수 있었다.
그런 짐이 지훈에게 주어졌다.
막아낸다면 높은 확률로 선취점.
그렇지 않다면 지난 연습경기의 재현이었다.
"후..."
마운드에 오른 지훈은 심호흡을 하며 강혁과 사인을 교환했고, 초구를 결정했다.
초구는 143km의 포심이었다.
"시작부터 전력이군."
"길게 던질 생각이 없다는건가?"
"뒤에 남아있는 투수가 3명이니 6이닝 정도를 목표로 잡고 있는듯 합니다."
"이닝을 나눠먹을 생각이라는거로군."
4강전에 당당히 선발로 나선 투수였다.
유성에 비해 인지도가 떨어지더라도 스카우터들은 어떻게든 지훈의 자료를 찾아서 가져왔다.
그래서 조금은 복잡하게 지훈을 지켜보고 있었다.
"세이슈와의 연습경기에서 4.1이닝 7실점이던가?"
"4.2이닝이었던거 같은데... 아무튼 대충 그 근처일꺼야."
"아예 못 쓸 정도는 아니라는거로군. 그러면 짧은 시간동안 얼마나 준비를 해왔을지 한번 봐줘야겠군."
그 사이 2구째 슬라이더가 살짝 빠지며 볼이 되었으나 3구째 커브가 다시 스트라이크를 잡아내며 2스트라이크 1볼을 만들어냈다.
거기서 멈추지 않고, 지훈은 곧 바로 4구째 포심을 다시 던져서 선두 타자에게 삼진을 얻어냈다.
"좋아!"
"잘했다!"
"이대로 가자!"
작은 불안감을 안고 지켜보고 있던 선수들도 지훈이 선두 타자를 잡아내자 서로를 격려하며 분위기를 끌어 올리기 시작했다.
딱!
2번 타자가 바로 초구를 노렸으나 체인지업이었기에 잘못때리고 말았고, 유격수가 가볍게 잡아서 1루로 송구를 했다.
순식간에 만들어진 2아웃.
그리고 3번 타자가 타석에 들어섰다.
"이전과는 다른 모양이군."
'뭔 소리야.'
학교 일정상 대회가 끝나더라도 바로 한국에 돌아가는 것이 아니기에 강혁도 약간의 일본어를 공부하고 있었다.
하지만 겨우 몇주간 배운 것으로는 알아 들을 수 없었기에 타자가 중얼 거리는 것을 무시하고 다음 사인을 냈다.
팡!
"커브라..."
'이건 알아 듣겠네.'
초구로 커브가 날아온 것을 보며 타자가 중얼거리는 것을 캐치한 강혁은 잠시 머리를 굴리다가 사인을 보냈다.
"응? 또?"
사인을 기다리던 지훈도 순간 당황했으나 2사 주자 없는 상황이었기에 고개를 끄덕이며 다시 한번 커브를 던졌다.
그 결과는 헛스윙이었다.
"이런 젠장..."
'또 들린다.'
사실 표정이 일그러진것만 봐도 알 수 있는 것이지만 강혁은 몇주간 공부한게 효과가 있다는 것을 깨달으며 소소한 기쁨을 느꼈다.
그렇기에 마지막 공을 요구했다.
"바로 쓴다고? 저녀석도 성급하네."
그래도 확인해둘 필요가 있었다.
저 뒤에 있는 괴물 같은 4번 타자를 상대하기 전에 말이었다.
그렇게 날아가기 시작한 공은 포심이었다.
그것을 보고 타자도 스윙을 시작했다.
"뭐야?"
포심인줄 알았다.
그러나 공이 변화하기 시작했다.
팡!
전광판에 기록된 구속은 138km.
포심보다 느린 구속이었다.
하지만 그것은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대체 무슨 공이야?"
"마지막에 변화했어."
"마지막에?"
"...투심이군."
세이슈전 패배 이후 준비해오던 구종인 투심 패스트볼을 지훈이 경기에 앞서 극적으로 완성 시킨 것이었다.
그렇게 지훈은 첫 이닝을 무실점으로 틀어막으며 이전과는 다르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호... 투심이라."
"이러면 구종이 5개가 되는군요."
"이거 평가를 좀 더 높게 잡아야할지도 모르겠군."
"그러게 말이야."
지훈이 예정대로 1회를 막았으니 이제 2회 초 미래고의 4번부터 시작되는 타순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유성이가 수비가 됬으면 3번 두는게 좋았을텐데 말이죠."
"애매하지. 백현이도 잘 치는데 수준급 투수를 만나면 안 좋아지니깐."
"그렇죠. 애매하네요."
딱!
타석에 들어선 철민은 2구째를 바로 공략했다.
하지만 빠져나갈듯 하던 타구를 2루수가 몸을 날려서 잡아냈다.
그래도 2루수가 쓰러진 상태였기에 철민이 급하게 1루로 뛰었으나 어느새인가 공이 1루에 도착해있었다.
"뭐...?"
다시 2루쪽을 확인해보니 유격수가 공을 던진듯한 모습을 취하고 있었다.
주루에 집중했기에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확인 못했던 철민은 들어가면서 강혁에게 물어보았다.
"2루수가 뭘 했던거야?"
"공 잡고 나서 일어나지 않고 바로 유격수한테 던졌어. 그리고 유격수가 글러브가 아닌 맨손으로 잡아서 릴레이 하듯 1루로 던졌어."
"뭐 그런... 플레이가 있냐."
"보는 나도 감탄했어."
세이슈에는 생각도 못한 키스톤 콤비가 존재했다.
그러나 당시의 미래고는 세이슈의 에이스에게 제대로 틀어막히며 별 다른 타구를 날리지 못했고, 덕분에 키스톤 콤비의 실력이 어느정도인지 제대로 볼 수 없었다.
타석에 들어선 유성도 그 키스톤 콤비를 경계하고 있었다.
과연 작년 고시엔 우승때의 핵심 멤버들이라더니 그에 걸 맞는 실력을 보여주고 있었다.
"발도 빠르니..."
어중간하게 낮게 빠져나가는 타구보다는 키를 확실히 넘기는 타구를 날리는게 좋을듯 했다.
생각을 정리한 유성이 자세를 잡았으나 투수는 아슬아슬하게 볼이 되는 공을 던지고 있었다.
'이렇게 쉽게 볼넷을 줄리가 없는데...'
아무리 자신이 투수라서 도루가 어렵다지만 발이 느린 것이 아니다.
오히려 매우 빠르다고 자신 할 수 있을 정도였다.
결국 유성은 볼넷으로 출루를 하게 되었고, 강혁의 타석이 되었다.
아무래도 미래고는 코치가 모자라다보니 주루코치는 별도로 존재하지 않았다.
그러나 세이슈도 1루 코치는 있지만 3루 코치가 없었기에 별 다른 문제는 없었다.
'그러면... 응? 런앤히트?'
유성이 루상에 나가자마자 사인이 나왔다.
그것도 병살을 대비하기 위한 사인이었다.
일단 두발만 늘려두었던 리드를 한발 더 늘렸다.
그러면서 강혁의 스윙을 기다렸다.
런앤히트.
그것은 주자가 도루를 시도하는 동시에 타자가 타격을 하며 주자가 더 멀리 움직일 수 있도록 하는 작전이었다.
예를 들어 주자가 1루에 있다면 주력에 따라 3루나 아예 홈까지 노릴 수 있게 되는 것이었다.
초구가 볼이 되었고, 확실하게 빠지는 공이었기에 유성도 가만히 있었다.
그리고 2구째 유성이 달리기 시작했고, 강혁도 스윙을 시작했다.
딱!
"2루!"
팡!
"1루!"
팡!
하필 철민의 타구가 유격수 정면으로 향했고, 유성의 움직임을 눈치 채고 2루 베이스에 붙어있던 2루수가 공을 받아서 2루 베이스를 밟고 바로 1루로 던졌다.
순식간에 완성된 6-4-3 병살로 이닝은 그대로 마무리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