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3
Chapter 8 - 대회의 시작 (1)
충격적인 패배.
그 이후 며칠이 흘렀다.
"애들 상태는 어때?"
"제법 회복해서 평소처럼 돌아왔습니다. 지훈이는 시간이 조금 더 필요하겠지만요."
"어차피 첫 경기는 유성이가 나갈테니 문제 없겠지만 그 다음 경기까진 맞춰야할텐데..."
"훈련은 계속 진행 중이니 멘탈에 조금 더 신경 쓰죠."
"그래야겠어."
세이슈와의 연습 경기에서 초반부터 2실점을 기록했던 지훈은 어찌어찌 5회까지 경기를 이끌고 갔으나 분석이 끝나면서 그대로 5실점을 추가로 하며 4.1이닝 7실점이라는 성적을 기록하며 강판 당하고 말았다.
그로부터 며칠이 흐른 지금 봄 고시엔이 시작할 시기가 다가왔다.
그날 경기의 패배를 지켜봐야했던 유성은 대회에서 다시 세이슈와 만나게 될때를 위해 만전의 준비를 하고 있었다.
"어때?"
"우승까지 5경기를 치뤄야하는데 그 중 2경기를 저녀석이 해결해줘야해."
"대진이 나와야 알겠지만 까딱하면 하루만에 다음 경기를 하는 경우도 생길꺼야."
"그러고보니 이쪽은 주장이 직접 가야한다던가?"
"그러고보니 그런 시스템이라지."
이야기가 이렇게 진행되자 유성과 강혁은 서로를 쳐다보기 시작했다.
이야기는 간단했다.
"누가 주장이냐."
"포수인 니가 해야지."
"자꾸 부담줄래?"
"음... 그러면 어쩔려고?"
"일단 니가 주장해라."
"괜찮겠냐?"
"포수인 내가 지지하는데 뭐 어떻게든 될꺼야."
"정 안되면 부주장은 강혁이 니가 해라."
"...왠지 불안하지만 그럴게."
마침 코치들도 그 문제를 이야기 하고 있었다.
"솔직히 주장은 유성이 너나 강혁이가 했으면 싶다."
"저희가 그래서 좀 이야기를 해봤습니다."
"뭔데?"
"유성이가 주장을 하고 제가 부주장을 하기로요."
"끝났네?"
"그러게요. 당사자들끼리 이야기했으니 뭐..."
그렇게 이번 일본 원정팀의 주장은 공식적으로 유성이 담당하게 되었다.
그리고 대진표를 짜기 위해 다음날 유성과 코치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좋은 대진표 뽑아와라."
"그래."
남은 선수들은 마저 훈련을 재개했는데 이전과 다름점이 있다면 세연과 몇몇 여학생들이 미래고 선수들의 훈련을 도와주고 있다는 점이었다.
"유성이가 질투할려나?"
"저 둘 생각을 모르는데 어찌 알겠어."
"그런가?"
"그렇지."
"그렇군."
"말 장난 그만하고 훈련이나 계속해라."
"네."
강혁과 철민의 실 없는 대화는 그렇게 끝났고, 다시 시선을 돌려서 유성은 대진표를 뽑는 학교에 도착한 상태였다.
"이번 봄 고시엔의 특별함은 다들 아실겁니다. 전국 각지에서 선발된 28개 팀과 21세기 전형으로 뽑힌 4개 팀을 합해 32개 팀이 겨루는 대회가 봄 고시엔이지만 이번 대회는 4개 팀 중 1자리를 한국에서 초청 받아서 온 미래고가 가져가게 되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가장 먼저 대진을 뽑는 학교는 미래고가 되겠습니다."
"어쩐지 우리 이야기를 길게 하더니 이런 목적이었군."
"그러게요. 일단 다녀올게요."
"그래."
흔히 보는 토너먼트 대진표.
위와 아래로 나누어진 대진표는 중앙으로 갈수록 높은 단계였고, 정 중앙은 결승전을 의미했다.
'이왕 참가한거...'
잠시 뒤에서 자신을 보고 있는 일본 선수들을 슥 훑어본 유성은 번호를 뽑았다.
'일본 녀석들 표정 일그러지는걸 볼 겸 좀 무리하더라도 우승 해야겠지.'
"1번! 1번이 나왔습니다."
"가장 먼저 경기를 치루게 되었군요."
"그러게요. 게다가 앞번호가 먼저 경기를 치루기에 뒷번호 팀들에 비해 일정에도 여유가 있습니다."
자리로 돌아온 유성은 1번이 나오면서 생각하고 있던 이야기를 코치에게 전했다.
그리고 그런 사실을 모르던 지훈은 재채기를 하고 있었다.
"에취!"
"어? 너 감기냐?"
"아니, 누가 내 이야기하는거 같아서..."
"몸 조심해라. 너 못 던지면 큰일난다."
"그래. 고마워."
주변이 조용해지자 지훈은 한숨을 쉬며 다시 고개를 숙였다.
아직도 그날의 소리가 들리는듯 했다.
야구를 시작한 이후로 그렇게까지 처참하게 무너진 것은 처음이었다.
만약 조기에 강판 되기 않았다면 더 많은 실점을 하고도 남았을 정도로 그날의 지훈은 불안정했다.
'한계인가...'
유성의 설득에 넘어가서 일본에 왔다.
하지만 한국에서 일본팀과 경기를 치룰때부터 계속 한계를 절감했다.
똑같은 1학년생이라고 하기에는 그 선수들이나 유성이나 멀리 가 있었다.
그것은 일본에 온 이후로 더욱 절실하게 느끼고 있었다.
지훈이 고뇌에 빠져있는 사이에 유성은 완성된 대진표를 보고 있었다.
"이 대진표대로 진행된다면..."
"주변 이야기를 들어보니 1,2차전 상대는 쉬운 편이지만 8강전부터는 어렵다는구나."
"그렇다면 더욱 지훈이가 필요하겠군요."
"그래. 문제는 이 대진표대로 진행된다면 4강 상대는..."
***
저녁이 되어서야 돌아온 유성과 코치가 가져온 소식 덕분에 선수들은 모두 한곳에 모였다.
오늘 하루동안 도와주었던 여학생들도 마찬가지였다.
"잠깐 사이에 무슨 일 있었냐?"
"여학생들이 자청해서 훈련을 도와줬지. 일본쪽은 아직 개학을 안 했으니 가만히 있을 수 없다면서 말이지."
"그거 제법 든든한 이야기로군."
"네. 덕분에 선수들 사기도 제법 좋습니다."
"일단 대진표부터 봐야겠지."
"네."
그렇게 공개된 대진표를 보며 선수들은 잠시 침묵에 빠졌다.
그리고 그 타이밍에 맞춰서 코치가 설명을 시작했다.
"우선 1차전에 만날 상대는 운 좋게도 3개팀 뿐인 21세기 전형 팀이다."
"오... 그러면..."
"콜드로 끝내야한다는거지."
"콜드라..."
"2차전에 맞붙게 될 팀은 이 둘 중 하나인데 이 두 팀은 28개팀 중 전력이 떨어진다고 구분된 팀들이다. 즉, 우리팀이라면 충분히 승리를 거둘 수 있는 팀이다."
"음..."
사실 미래고는 자료가 모자라다는 불안점이 있었다.
그러나 이번 고시엔에 참가하지 않는 한신고가 일전의 일을 사과하면서 적극적으로 도와주었기 때문에 자료는 충분했다.
"한신고쪽에서 그렇게 말하더군. 8강은 이 팀이 유력하다고."
"겐세이 고교?"
"이쪽은 작년 2번의 고시엔에서 연속 8강을 달성하고 가을 대회에는 준우승을 기록한 팀이라더구나."
"과연..."
대진표 분석은 거기서 끝이었다.
4강까지 예측하기에는 반대편 라인의 전력이 보통이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지훈의 시선은 한곳에 향해 있었다.
세이슈 고교.
'만약 4강까지 간다면...'
다시 만나게 된다.
만약에 결승에 진출하면 유성이 결승에 나서야하기에 4강은 지훈 자기자신이 상대해야한다.
하지만 지훈은 세이슈를 보자 자신이 사라졌다.
'아무리 그래도 저 팀은 나로써는 이길 수가 없어.'
그리고 그런 지훈을 계속해서 지켜보고 있던 강혁은 생각보다 지훈의 충격이 오래 갈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신이 굳이 유성에게 주장을 넘기고 부주장을 담당한 것도 선수들을 도와야한다는 일종의 책임감에서 시작된 것이었기에 지훈은 그만큼 더 신경 쓰였다.
'저녀석은 유성이랑 다르니깐.'
아마 작년 겨울이었을 것이다.
유성이 바뀌기 시작한 시점이 말이었다.
그 변화는 놀라울 정도로 유성에게 좋은 효과를 가져다주었고, 강혁은 그 모습을 보며 유성을 인정했다.
하지만 지훈은 아직 유성에 비해 모자란 감이 있었다.
'나중에 이야기 좀 해야겠군.'
실제로 저녁시간 이후 강혁은 지훈과 함께 관중석에 앉아서 작은 대화의 장을 열었다.
이제 대진표가 나왔으니 지훈도 각오를 해야했다.
최적의 로테이션이라면 2차전과 4강전을 지훈이 담당해야했기 때문이었다.
"솔직히 화도 난다. 내 능력의 한계가 보인거 같기도 하고."
"이런 말 해서 미안한데 넌 아직 1학년이야."
"알아. 3학년이 되면 더 나아지겠지. 하지만 그 뿐이야. 그 이상으로 갈 수 있을것 같지가 않아."
'꽤나 그때의 충격이 컸던것 같은데...'
강혁의 머리가 복잡하게 돌아가기 시작했다.
이왕 참가한거 강혁도 우승을 노리자는 입장이었다.
그러기 위해선 중요한 한축을 다시 깨울 필요가 있었다.
"유성이 때문에 그러냐?"
"무슨 소리야."
"유성이는 저 멀리 가고 있는데 넌 얼마 못 가서 그런거야?"
"..."
강혁의 말에 지훈은 순간 말문을 잃고 생각에 잠기는 모습을 보였다.
그리고 잠시 후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걸지도 몰라."
"니가 구속에 왜 그리 집착했는지 좀 알것 같다."
"...면목 없네."
"포수는 마누라라고 하니깐 그 정도 심리는 잘 파악해야지. 아니, 늦게 알아차렸으니 포수 실격일지도 모르겠네."
"그건 아니야. 내가 모자라서 그런거지."
"아, 그거 아냐?"
"뭐가?"
재미 있는 이야기가 떠오른듯 강혁은 잠시 혼자서 실룩이다가 지훈이 다시 재촉하자 입을 열었다.
"유성이가 한 말이 있어. 언젠가 저녀석은 국가대표 에이스가 될꺼라고."
"유성이가 말하는게..."
"그래. 너야."
"..."
지훈은 어느 순간부터 유성을 따라 잡아야할 목표로 보고 있었다.
하지만 유성은 지훈을 보며 그런 이야기를 했다.
물론 이것은 유성이 미래에 지훈이 어떻게 되는지 알고 있기에 한 이야기지만 그것만으로도 지훈에게는 여러 의미가 될 수 있었다.
"먼저 간다."
"...그래."
생각할 시간이 필요했다.
그것을 느끼고 강혁은 먼저 자리를 비웠다.
"크... 유성이 그녀석이 했던 말을 이렇게 써먹네."
"훗."
강혁은 모를 것이다.
유성만큼이나 강혁도 애늙은이 취급을 받는다는 것을 말이었다.
그만큼 두 사람은 미래고 선수들에게 많은 영향을 끼치고 있었다.
"후... 복잡하네."
목표나 다름 없는 유성이 지훈을 높게 평가하는 것은 알고 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아직 불안감이 남아있었다.
게다가 생각에 생각을 이어가다보니 강혁이 자신을 어떻게 평가하는지는 듣지 못했다.
"아. 모르겠다."
아무리 생각해도 결국 그에게 물어보지 않으면 알 수 없다는 진실만 나올 뿐이었다.
결국 지훈은 생각하는 것을 포기하고 하늘을 보았다.
"별이 잘 보이네."
외국이지만 바로 옆나라이기에 아마 한국에서 보고 있는 것도 지금과 비슷할 것이다.
그것은 자신의 방에서 쉬고 있는 유성도 마찬가지였다.
"별 한번 이쁘네."
야구에만 몰두해서 그렇지 유성도 보통의 사람과 비슷한 감성을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유성은 동시에 이번 대회에 대한 생각도 하고 있었다.
"좀 무리해야할지도 모르겠네."
이미 코치와 등판 계획을 상의한 상태였다.
지훈이 심적인 부담을 놓는다면 걱정 없지만 그렇지 않다면 유성이 조금 더 부담을 지기로 했다.
세이슈와의 대결에서 투수들이 처참하게 박살나고 있을때도 아껴두었던 힘을 이번 대회에서 제대로 풀어버릴 생각이었다.
"그러니 빨리 정신 차리라고 친구."
물론 두 사람의 거리가 있었기에 그 말은 들리지 않았지만 숙소로 돌아오던 지훈과 순간적으로 눈을 마주치며 서로의 생각을 알 수 있었다.
'얼른 돌아와라.'
'기다려라.'
봄 고시엔은 그렇게 여러 선수들의 고뇌를 안고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