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1
Chapter 7 - 도전자 (2)
이어서 타석에 들어선 5번 타자를 보고 유성과 강혁은 바쁘게 사인을 주고 받기 시작했다.
'막상 보니깐 덩치가 더 큰데?'
'그러게. 변화구 위주로 갈까?'
'의외로 컨택이 좋을지도 몰라.'
거대한 덩치에 돼지라고 해도 할 말 없을 정도로 나온 배.
순간 유성은 한 선수를 떠올렸다.
'그러고보니 그 선배님 7관왕 찍던게 올해였던가.'
순간 다른 생각을 할뻔 했으나 강혁의 사인을 확인하며 생각은 끝나게 되었다.
강혁과 의견을 나눈 결과 포심을 먼저 꺼내들기로 했다.
"결국 투수는 포심이 기본이 될 수 밖에 없어. 주환이처럼 언더핸드면 또 모르겠지만."
"저 친구를 생각보다 더 신뢰하시나봅니다?"
"그럴 수 밖에 없지. 투수인데도 주장을 맡기고 싶은 심정이라니깐."
"아, 그러고보니 임시라도 주장을 정하는게 좋지 않을까요?"
"나도 그 부분을 고민하고 있는데 후보군 중에서 누가 좋을지 모르겠어."
코치가 분류해둔 후보는 유성, 강혁, 철민, 백현까지 4명이었다.
그리고 그는 일본에 오기 전이나 온 이후의 모습을 통해 점차 유성의 비중을 크게 두고 있었다.
"유성이가 1순위지만 투수라는 포지션이 관건이군요."
"저쪽팀도 포수가 주장이니깐. 아무래도 강혁이나 철민이 중에서 고르는게 좋을지도 몰라."
"차라리 선수들에게 맡기는건 어떨까요?"
"흠... 그것도 나쁘지는 않지."
임시로 감독을 맡게된만큼 실험적으로 선수들에게 자율권을 주는 것도 나쁘지 않았다.
그렇게 생각할때 유성은 2스트라이크 1볼의 카운트를 만들며 타자를 차근차근 요리하고 있었다.
'바로 승부 보자.'
'그래.'
팡!
다시 한번 기록된 153km의 구속과 함께 타자는 삼진을 기록하며 물러났다.
이걸로 2아웃이 만들어지며 좀 더 여유롭게 다음 타자를 맞이할 수 있게 되었다.
"지금까지는 순조로운데..."
그렇게 중얼거리며 유성은 슬쩍 상대 불펜을 확인했다.
그리고 이미 2명의 투수가 준비 중인 것을 볼 수 있었다.
"역시 그렇게 나오는건가..."
선발이 4실점으로 무너졌으니 다음 투수를 빠르게 기용하며 점수 차를 더 늘리지 않겠다는 이야기였다.
그것을 보며 유성은 마지막 타자에게 단 2개의 공으로 아웃 카운트를 잡아내며 이닝을 마무리했다.
"저쪽 불펜 확인했어?"
"불펜? 어..."
여전히 투수들이 준비 중이었다.
유성처럼 빨리 알아차린 선수도 있었지만 늦게 알아차린 선수도 있었기에 이제서야 상대가 투수 교체를 준비하고 있다는 소식이 퍼졌다.
"보아하니 일단 선발에게 2이닝까진 기회를 줄 모양인가 보구나."
"그러면..."
"여기서 점수를 더 뽑아놔야겠지."
하지만 1회와 전혀 다른 볼배합이 나오면서 타자들은 이전 이닝과 달리 제대로 기회를 잡지 못했고, 그나마 기대할 수 있던 유성도 중견수 플라이로 물러나고 말았다.
"당한거 같은데..."
"갑자기 저렇게 확 바뀔 수가 있나?"
"포크볼 때문이야."
"그러고보니 비중이 올라갔지?"
"그래."
포심과 커브는 평균 혹은 평균 이하의 수준에 불과하다.
그러나 포크볼은 왜 저 선수가 오늘 선발로 나왔는지를 잘 보여주는 수준급 구종이었다.
"덕분에 저쪽도 1명은 쉬고 있네."
"포크볼을 공략해야한단 말이지..."
"일단 막고 생각하자."
1회와 달리 2회는 0의 행진으로 마무리 되었고, 이어진 3회도 마찬가지였다.
하위타순으로 타순이 넘어가고 있었기에 유성은 가뿐하게 삼자범퇴로 다시 이닝을 마무리했고, 3회 말 공격에서 미래고는 포크볼 공략을 시작했다.
딱!
"연속 출루라..."
"슬슬 바꿀까요?"
"조금만 더 보도록 하지."
1사 1,3루의 위기가 다시 만들어졌으나 한신고 벤치는 잠잠했다.
벤치에서 지켜보고 있던 철민은 그런 분위기가 신경 쓰였는지 머리를 긁다가 유성에게 말을 걸었다.
"유성아. 저쪽 조용한데 어떻게 생각해?"
"아마 한번 지켜보자는 의도겠지. 저 투수도 1학년이거든."
"그래? 그건 몰랐는데?"
"나도 처음엔 몰랐어. 그런대 상황을 쭉 보니깐 알겠더라고. 저녀석에게 경험을 쌓게 해줄려고 내보낸거야."
"그거 열 받는 이야기인데?"
"어차피 친선전이니 저쪽은 져도 상관 없다는 생각일꺼야."
"흐음..."
그러는 사이 미래고는 아웃카운트 1개와 1점을 바꾸며 스코어를 5대0으로 바꾸었다.
동시에 2사 2루의 상황이 유지되고 있기에 여전히 추가점을 뽑아낼 수 있는 상황이었다.
"안 바꾸네."
"여유 한번 엄청나게 넘치는구만."
"어차피 우리가 이기고 있으니 크게 신경 쓰지마."
선수들을 진정시키며 유성은 마운드 위의 투수가 마지막 아웃카운트를 잡아내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을 보았다.
만약 자신이 회귀하지 않았다면 저러고 있지 않았을까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지만 유성의 재능은 유성이 생각하는 것보다 거대했다.
타자로써의 재능을 알고 있기에 유성은 투수로써의 재능을 그렇게까지 높게 쳐주지 않았지만 다른 사람들은 달랐다.
"오늘 유성이가 어느정도로 던질꺼 같은가?"
"7이닝 1실점 정도로 하죠."
"어째서?"
"완벽하면 키우는 재미가 없잖아요?"
"그렇군. 그것도 맞는 말이야."
3회가 마무리 되고 이제 이닝은 4회로 넘어가게 되었다.
타순이 한바퀴 돌았기에 유성과 강혁은 타자들이 적응하기 전에 한발 빠르게 볼배합을 조정하기로 했다.
"저쪽 입장에선 정말 끔찍하겠지?"
"그렇겠지."
바뀐 볼배합은 상대 타자들이 적응하기 전까지 유지한다.
앞선 이닝처럼 막아낸다면 아마 3번째 타순이 돌아오기 전까지는 유지가 될 확률이 높았다.
그리고 갑자기 비중이 늘어난 변화구로 인해 한신고 타자들은 쉴틈 없이 헛스윙을 하며 물러날 수 밖에 없었다.
"포심에 익숙해질려고 하니 변화구 위주로 던지면서 흔들어놓고 있군."
"기본기나 피지컬 뿐만 아니라 영리하기도 한 투수네요."
"이렇게 보니 부럽구만."
반면 한신고는 선발 투수가 3이닝 5실점으로 물러난 상태였고, 2명의 불펜 투수가 4회부터 6회까지 무실점으로 틀어막고 있었다.
그렇게 5대0의 스코어가 유지된 상태로 경기는 7회로 접어들었다.
"투구수가 얼마지?"
"78구."
"생각보다 많네."
"타자들이 뭐랄까. 어려운건 아닌데 좀 끈질기다고 해야하나."
"그래. 그런 감이 있지."
한계 투구수까지 여유는 있었다.
하지만 연습 경기에서 무리할 필요도 없었기에 7회가 마지막 이닝이 될 예정이었다.
"투수가 바뀌었네?"
"그러게."
팡!
"헐..."
"갑자기 분위기가 달라지네."
이번에 마운드에 올라온 투수의 초구는 149km.
편하게 있던 선수들마저 갑자기 자세를 바꾸며 긴장할 정도로 저 공은 위력적이었다.
그리고 그 투수의 초구를 상대해야했던 7번 타자는 고개를 저으며 물러났다.
"장난 아니야. 유성이랑 비교해도 될 정도로."
"그 정도라고?"
순간적으로 유성에게 시선이 몰렸으나 유성은 그런 시선을 신경 쓰지 않고, 자신의 배트를 꺼내들고 타석에 나갈 준비를 했다.
준비를 마치고 투구를 지켜보려고 했으나 단 하나의 공 밖에 볼 수 없었다.
"미안. 저녀석 쉴틈 없이 몰아치더라고."
"괜찮아. 여기서 점수를 못 뽑아도 문제 없어. 여전히 우리가 리드를 잡고 있으니깐."
"...그래."
말은 그렇게 했지만 이 투수는 보통이 아니었다.
그러나 리드를 잡고 있는 것은 미래고였기에 무리하게 대타를 기용할 필요는 없었다.
"일단 좀 봐야겠지."
팡!
151km
앞의 타자를 상대할때보다 더 빨라졌다.
자신이 던질때의 구속으로 본다면 이 공은 140 후반 정도의 구속일 것이다.
그렇다면 공략 불가는 아니다.
팡!
"윽... 체인지업?"
앞선 타자에게는 변화구를 하나도 안 쓰더니 유성의 타석에서 변화구를 꺼내들었다.
하지만 유성을 긴장 시키기에는 모자랐다.
'투수일때는 좀 미묘했는데 타석에 서니 알겠네.'
타자로써의 유성은 이미 정점에 도달했던 경험이 있었다.
그러니 투수보다 더 쉽게 올라갈 수 있었다.
딱!
다시 말해 이런 공도 쉽게 칠 수 있다는 것이었다.
"아..."
"파울이네."
파울이 된 것을 보고 유성은 작은 의문을 가졌다.
정확히 포심을 노리고 들어갔는데 파울이 되었다.
하지만 공에 눈에 띄는 변화가 안 보였기에 투심 같은 구종은 아니라고 확신 할 수 있었다.
"뭐지?"
단순 착각이면 다행이겠지만 자신의 타자로써의 감이 말하고 있었다.
이 공은 보통의 공과 다르다고 말이었다.
'보기에는 보통의 포심인데...'
딱!
다음 공을 겨우겨우 걷어냈으나 구속이 더 올라갔다.
그로인해 이젠 유성과 동일한 구속이 기록 되었다.
"저 투수가 저쪽의 에이스인가 본데요?"
"맞아. 그런대 이건 예상 외의 방향이로군."
다음 공은 볼이었다.
유성이 포심에 신경 쓰고 있었기에 변화구는 전부 무시하기로 했고, 덕분에 2스트라이크 1볼로 조금 더 생각을 이어갈 시간을 얻게 되었다.
그리고 저 공이 무엇인지 대략적으로 감을 잡기 시작했다.
'저 움직임과 비슷한 공은...'
흔히 말하는 덜 떨어지는 패스트볼인 라이징 패스트볼.
떠오른다는듯한 착각을 주게 하는 공이지만 실상은 보통의 패스트볼보다 덜 떨어지기에 그러한 이름을 가지게 된 구종이었다.
하지만 확신 할 수는 없었다.
150km의 공으로 라이징 패스트볼을 던질려면 그만큼의 구위가 되어야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유성은 다시 한번 파울을 만들어냈다.
쩌적!
"배트가!"
"박살났어!"
"뭐야 저거."
이것만큼은 유성도 감탄할 수 밖에 없었다.
저 포심은 터무니 없을 정도로 강력한 구위를 가지고 있었다.
"뭔 공이야?"
"조금 더 봐야 알겠지만 라이징 패스트볼."
"라이징 패스트볼?"
"그래. 에휴, 골치 아픈걸 만났네."
다른 배트를 가지고 다시 타석에 들어선 유성은 결국 내야 플라이로 물러나고 말았다.
마지막 순간에 투수의 구속이 다시 올라갔기 때문이었다.
"155..."
"오늘 경기 추가점은 넘어간거 같네."
"그러게."
"일단 유성이 넌 마지막 이닝 나가봐라."
"네."
코치의 입에서 마지막 이닝이라는 이야기가 나왔다.
자신의 투구수를 꾸준히 체크하고 있었던 유성은 예상했다는듯 고개를 끄덕이며 마지막 이닝을 위해 그라운드로 향했다.
"유성아."
"왜?"
"저쪽도 이제 승부를 볼려나봐."
그곳에는 한신고 벤치 앞에 3명의 선수들이 준비하고 있는 모습이었다.
여기서 한꺼번에 대타를 꺼내서 승부를 보겠다는 의도가 뻔히 보였다.
"그렇게까지 걱정하지마. 마지막 이닝이니 나도 힘을 다 쏟아붙고 갈꺼야."
"그래. 알았어."
딱!
유성은 대타로 나온 첫 타자에게 기습한다는 의미에서 초구를 커브로 던졌으나 타자는 망설임 없이 깔끔하게 받아쳤다.
순간적인 상황이었기에 수비수들도 움찔했으나 다행스럽게도 어려운 타구가 아니었기에 2루수가 잡아서 1루로 송구를 했다.
"아웃!"
다행히도 안타를 내주지는 않았지만 마음을 놓고 있던 내야수들은 다시 자세를 다 잡았다.
2루수에게 감사의 사인을 보낸 유성은 다시 자신에게 돌아온 공을 잡고, 다음 구종을 고민했다.
"느린 변화구 정도는 문제 없다는거지?"
그렇다면 원하는대로 포심을 던져준다.
여전히 150km가 유지되고 있는 포심은 함부로 건드리기 힘든 공이었다.
하지만 타자의 행동은 유성은 물론 다른 선수들의 예상마저도 뛰어넘었다.
틱!
"번트?!"
바로 반응해서 유성이 움직였으나 타구는 절묘할 정도로 3루 라인 옆으로 흘러가고 있었다.
순간적으로 놔둘 것이냐 말것이냐로 고민한 유성이지만 공이 바깥으로 나갈듯 하다가 다시 들어올려는 것을 보고 바로 잡아서 1루로 송구를 쐈다.
팡!
"세이프!"
"쳇."
"아깝다."
"괜찮아. 파울이 안 될 수도 있었으니깐 그냥 승부하는게 맞았어."
말 그대로 애매한 타구였기에 선수들은 서로를 격려하며 각자의 자리로 돌아갔다.
하지만 유성과 강혁은 이제 주자를 신경 쓸 수 밖에 없었다.
'생각보다 더 빠른 녀석이네.'
'견제 좀 해야되나...'
다만 두 사람의 이런 생각은 다음 타자에의해서 깨지고 말았다.
딱!
"허..."
"세상에..."
"넘어갔네?"
갑작스럽게 담장을 넘어간 타구를 보고 유성은 한숨을 쉬었다.
"아직 멀었네. 진짜 4번이 나오니깐 한방에 당했잖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