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
Chapter 7 - 도전자 (1)
일본에 도착한 다음날.
미래고는 약간 난감한 상황을 맞이했다.
"플레이볼!"
주심이 경기 시작을 선언했고, 마운드 위에 있던 유성은 한숨을 쉬어야했다.
'어쩌다가 이렇게 된걸까...'
***
전날 기숙사에 도착한 선수들은 곧 바로 기숙사로 들어갔다.
아무리 연관이 있더라도 다른 나라라는 인식 때문에 차이점이 있을 것이라 생각했으나 예상과 달리 기숙사는 동일했다.
"이것만 보면 똑같지?"
"그러게."
도착한 오늘은 휴식이 주어졌지만 선수들은 가만히 있지 못했다.
그렇게 일부 선수들은 먼저 그라운드로 향했고, 유성도 짐 정리를 끝낸 뒤 뒤늦게 움직였다.
그러나 그라운드 상황은 좋지 않았다.
"유성아!"
"저게 무슨 일이야?"
"말이 안 통해서 뭔가 오해가 생긴거 같은데 정확히는 모르겠어."
"알았어."
미래고 선수들과 일본 선수들 사이에 뭔가 분쟁이 생겨있었다.
주위를 둘러보니 코치나 감독도 보이지 않았다.
그렇다면 현재 말이 통하는건 자신 밖에 없다는 이야기였다.
"철민아. 무슨 일이야?"
"아, 왔냐? 우린 잘못한거 없어."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아야 뭘 이야기하든 말든 할꺼 아니야."
"그게 우린 그냥 저기 관중석에 앉아있었는데..."
자신들에게 날아온 공을 다시 던져 주었을뿐인데 이 난리가 일어났다는 것이다.
매우 단순한 일이었다.
그러나 왜 그렇게 격한 반응이 일어났는지 몰랐기에 선두에 있는 일본 선수에게 말을 걸었다.
"일단 이야기는 들었을텐데 우린 당분간 이 학교에서 머물게 된 한국의 미래고 학생들이야."
"그래?"
"오, 드디어 말이 되는 녀석이 왔네."
"조용히 해."
"네."
그러고보면 미래고와 달리 이쪽은 2,3학년도 존재한다.
이야기가 잘 통하길 빌며 유성은 대화를 이어갔다.
"아무래도 오해였던거 같아. 갑자기 덩치 있는 녀석들이 몰려오니깐 후배가 민감하게 반응했나봐."
"오해였다면 다행이네요. 신세 지는 입장에서 소란을 피웠으면 죄송했을테니깐요."
"그나저나... 전부 1학년이라고 들었는데 진짜야?"
"네. 아시고 그렇게 편하게 이야기하시는거 아닌가요?"
"이런... 나도 모르게 그만..."
유성에게는 그들의 의도가 뻔히보였다.
미래고가 1학년 뿐이라는 점으로 인해 은연중에 깔보는듯한 눈빛이었다.
'이녀석들과 경기를 치룬다고 했던가...'
어느정도 실력인지는 모르지만 한번 찍어 눌러둘 필요성을 느꼈다.
하지만 그 감정을 표현하는건 아마추어나 할 일이었다.
그렇게 다른 선수들에게 사정을 이야기하고 물러나려고 했던 유성이었으나 일은 그때 벌어졌다.
"바보 같은 녀석들이네."
"그러게."
말이 안 통한다고 분위기까지 안 전해지는 것은 아니었다.
특히 저런 단어는 더욱 알아보기 쉬웠다.
"어이, 지금 바보라고 했냐?"
"멈춰!"
급하게 유성이 때어놨으나 분위기는 다시 험악해졌다.
그때 뒤늦게 코치님이 저쪽의 감독도 같이 나타났다.
"이거 죄송합니다. 우리 애들이 거칠어서..."
"아니요. 저희도 제대로 가르치지 못했습니다."
그 모습을 보고 누군가는 생각했을 것이다.
'코치님. 일본어 못한다면서 잘 하시네.'
아무튼 이제 사건이 정리될 것이다.
그렇게 생각했으나 저쪽의 감독은 꽤나 특이한 사람이었다.
"이런게 된거... 예정된 경기를 앞당기도록 하죠."
"네?"
"큰 문제는 아니지만 양쪽 다 잘못이 있으니 경기로 풀어보도록 하죠."
'진팀에 책임을 물게 하겠다는건가...'
그만큼 팀 전력에 자신 있다는 의미일 것이다.
요즘 시대에 저런 감독이 아직도 있다는 사실에 의문이 들었으나 이곳이 일본이라는 점을 떠올리니 납득이 되었다.
결국 미래고 선수들은 저녁부터 경기 준비를 시작해야했다.
한국에서 꾸준히 훈련을 진행했기에 몸 상태는 문제 없지만 그라운드 적응을 위한 시간이 필요했기 때문이었다.
"지훈이는 아직 시간이 필요하니 유성이 니가 던진다."
"네."
이 고생을 하게 했으니 유성도 이번 경기를 쉽게 넘어갈 생각은 없었다.
그렇게 도착 다음날에 바로 경기를 치루게 된 것이었다.
"오늘은 어떻게 할꺼야?"
"번거롭게 했으니 박살내줘야지."
컨디션은 문제 없었다.
유성도 왠만하면 이성적으로 풀겠지만 이렇게 판이 깔린 이상 봐줄 생각은 없었다.
그렇게 강혁이 내려가고 마운드에 홀로 남게 된 유성은 주심의 선언을 기다렸다.
***
팡!
시작부터 148km의 구속이 기록되었다.
미래고만큼은 아니지만 비슷한 설비가 구축 되어 있기에 구속을 확인 하는 것은 쉬웠다.
'내가 저렇게 힘을 썼나?'
완급 조절을 위해 유성은 힘을 세밀하게 조절하는 훈련을 꾸준히 받아왔었다.
그래서 자신이 던진게 어느정도 수준인지 짐작할 수 있었다.
"그러고보니 일본은 구속 뻥튀기가 좀 있다던가?"
기선 제압에는 좋은 용도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상대팀은 벌써부터 당황한 기색이었다.
"뭐 저리 빨라?"
"1학년 맞아?"
대충 어떤 상황인지 알만했다.
그러나 많은 관심을 줄 필요가 없었기에 유성은 2구째를 준비하기 시작했다.
"한신이라..."
근처에 한신이라는 이름의 프로팀이 있는걸 생각하면 그쪽과 연관이 된듯 했다.
그 사이 사인 교환이 끝났고, 유성의 2구째가 다시 스트라이크 존에 들어갔다.
"슬라이더 한번 죽이네."
"그렇지? 우리 학교의 차세대 에이스니깐."
유성에 대한 신뢰감이 있었기에 미래고 벤치는 차분하게 지켜만 보고 있었다.
그리고 유성은 쉴틈 없이 한신고 타자들을 몰아쳤다.
마지막 공으로 체인지업을 던졌고, 타자는 헛스윙 삼진으로 물러났다.
2번 타자는 나름 발악이라도 할려는건지 번트를 시도했으나 유성의 수비가 좋다는건 생각 못했는지 손쉽게 1구 아웃이라는 기록을 만들어주었다.
그나마 클린업이라고 할만한 3번 타자도 140 중후반을 오가는 구속의 포심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면서 결국 삼진으로 물러나게 되었다.
"빠르고 깔끔하군."
"거기다가 수비도 좋습니다."
"스테미나는... 말할 것도 없겠군."
유성이 한국에서 일본팀과 맞붙었을때의 경기 결과는 그들도 알고 있었다.
최고 150km의 강속구에 3개의 수준급 변화구 그리고 8이닝을 말끔하게 소화하는 스테미나와 방금의 번트 수비까지 하나 같이 쉬운게 없었다.
"뭐, 이기든 지든 손해는 없지만요."
그렇다.
말 그대로 친선전이기에 한신고는 일부러 2군에 가까운 라인업을 꺼내들었다.
그러면서 어제 사건의 발단이 된 선수들을 보며 웃었다.
"저쪽은 평생 모르겠지. 우리가 의도했다는걸 말이야."
"그래도... 모기업의 입장이 있는데 이렇게 해도 될까요?"
"이사회의 결정이니 정보를 내주는 것 정도는 상관 없네."
한국팀이 고시엔에 참가한다는 것은 일본팀에게 여러 의미를 가져다 주었다.
환영의 의사를 표한 곳도 있으나 반감을 표하는 곳도 있었다.
지금 관중석 곳곳에 존재하는 다른 학교의 전력분석원들이 그 증거였다.
"거기다가 우린 봄 고시엔에 초대를 못 받았으니깐 말이야."
지금 마운드에 오르는 투수도 여름 이후를 위해 준비 중인 신입생이었다.
물론 미래고 선수들은 그 사실을 몰랐으나 구속을 보며 분석을 했다.
"140km라..."
"그렇게까지는 안 빠른데?"
"방심하지마. 뜬금 없이 이상한 변화구가 나올지도 몰라."
"그렇네."
그렇게 그들은 조용히 선두 타자에게 명복을 빌어주었다.
결국 선두 타자의 희생으로 그들은 투수의 구종을 대략적으로 알 수 있었다.
"커브랑... 뭐였지?"
"포크볼 같은데?"
"포크는 일단 좀 더 보고 다른 둘은 할만해."
"좋아. 빠르게 정리하자고."
포크볼 때문에 빠르게 점수를 뽑아내지는 못했지만 미래고는 차근차근 점수를 뽑아내는 방법을 선택했다.
2,3번 타자가 연속해서 출루에 성공하였으나 4번 타자가 포크볼에 당하면서 잠시 흐름이 흔들렸다.
'철민이었으면 하나 때렸을텐데...'
오늘 철민은 배탈 때문에 빠진 상태였다.
유성도 무리할 필요가 없었기에 9번에 배치된 상태였다.
그래서 현재 타석에 들어서 있는 선수는 강혁이었다.
딱!
"쳤다!"
"크다!"
"넘어가나?"
"아슬하겠는데..."
"넘어갔다!"
1회부터 터져나온 쓰리런 홈런.
그걸로 리드를 잡은 미래고는 이후 1점을 더 추가하며 4대0이라는 스코어로 2회를 맞이했다.
"4번 타자는 보통이 아닌거 같네."
"5번 타자도 장난 아니야."
"딱 봐도 3학년이지?"
"그래."
일본에 넘어온 이유도 이런 선수들을 상대하기 위해서였다.
그렇기에 유성은 바로 페이스를 끌어 올렸다.
팡!
"151이다!"
"와, 갱신했어!"
벤치가 잠시 소란스러워졌지만 유성은 신경 쓰지 않았다.
무덤덤하게 지켜보고 있는 타자에 집중해야했기 때문이었다.
2구째는 전력으로 들어갔다.
딱!
"파울!"
153km.
다시 한번 최고 구속을 갱신했다.
하지만 녀석은 이 공에 반응했다.
'전광판을 얼마나 뻥튀기 시켜둔거야?'
한국에서 제법 많은 공을 던졌으나 150이 최고 구속이었다.
그런대 여기선 153km까지 올라왔다.
'대충 3km 정도인가?'
그러고보니 일본의 전광판에 대해 들어본것 같았다.
일본의 경기장은 보통때보다 2,3km 정도 높게 측정되는 곳이 제법 많다는 것이었다.
"여기도 그런 곳인가 보군."
그렇다면 실상은 여전히 유성의 최고 구속이 150km라는 이야기였다.
굳이 따로 이야기해줄 필요는 없었지만 강혁에게는 전달해둘 필요가 있었다.
'그건 이닝이 끝난 뒤로 미루고.'
2스트라이크까지 몰아둔 눈 앞의 상대를 어떻게 마무리하느냐가 관건이었다.
유성에겐 3가지 선택권이 있었고, 상대는 그 3가지 중에서 골라야하는 입장이었다.
단순하게 보더라도 유성이 승리할 확률이 66.6%였다.
'왠지 찜찜한데...'
일단 강혁의 사인은 체인지업이었다.
두번의 강속구를 보여주었으니 이번 공은 적절한 선택이 될 수 있었다.
딱!
하지만 유성이 일부러 볼이 되도록 던졌음에도 녀석은 그걸 건드려서 파울로 만들어냈다.
그러자 강혁은 연달아 커브와 슬라이더를 요구했고, 타자는 계속해서 그 공을 걷어냈다.
순식간에 승부는 6구째로 접어들었고, 이쯤되자 강혁도 막막했는지 다시 포심을 꺼내들었다.
다만 이미 전력투구를 보여주었기에 무작정 강속구를 던지기는 힘들었다.
'140으로.'
유성의 생각을 빠르게 알아차린 강혁이 추가 사인을 보냈고, 유성은 녀석이 치기 애매한 코스로 던졌다.
이번만큼은 녀석도 애매했는지 배트를 휘두르지 않았다.
이번 공은 볼이었기에 볼카운트는 2스트라이크 1볼로 바뀌었다.
이제 다음 공이면 7구째였다.
'더 이상 투구수를 소모하는 것도 안 좋아.'
승부를 볼때였다.
그런 유성의 분위기를 읽었는지 타자도 자세를 다 잡았다.
'140대 공을 보여줬다는건 다음은 150이라는 소리로군.'
다른 타자들이었다면 이 뻔하다면 뻔한 패턴에 당했을 것이다.
150km라는 공은 쉽게 건드리기는 커녕 보는 것도 쉽지 않은 공이었으니 말이었다.
하지만 고시엔 경험이 있는 그에게 150km는 공략 불가의 공이 아니었다.
그렇게 생각을 마친 타자는 유성이 공을 던지자 스윙을 시작했다.
그리고 똑바로 날아오는 공을 보며 녀석은 승리를 직감했으나 공이 가라앉기 시작했다.
"큭!"
헛스윙 삼진.
마지막 순간에 유성은 방향을 바꾸어 체인지업을 꺼내들었다.
"휴~ 잘 속아줬구만."
"젠장."
칙쇼라는 말과 함께 타자는 물러났다.
하지만 유성도 안심 할 수는 없었다.
경기는 아직 초반에 불과했기 때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