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기록파괴자-17화 (17/156)

# 17

Chapter 5 - 천재 위의 괴물 (5) (수정)

"스트라이크!"

삼진이 나오고

"아웃!"

또 아웃이 나왔다.

유성의 생각대로 볼배합을 바꾼 것은 큰 효과를 불러왔다.

제법 많다고 느껴지던 투구수가 바뀐 배합 덕분에 줄어들기 시작했고, 유성은 단숨에 7회까지 무실점을 이어갔다.

아쉽게도 안타를 하나 허용하기는 했으나 그것을 역으로 이용하며 병살을 만들기도 했기 때문에 7회가 끝난 시점에서 유성의 투구수는 아직 70구도 안되는 상황이었다.

"이것도 저것도 안 먹히는군..."

"그러게요."

유성을 흔들기 위해 기습번트를 시도하는건 물론 주자가 나갔을때 도루 시도를 하며 유성을 흔들려고 했었다.

하지만 유성은 기습번트가 별 것 아니라는듯 잡아서 처리했고, 주자도 도루 시도를 하기도 전에 병살로 처리하며 정리해버렸다.

"여기까지 온 이상 이제는 최악의 상황을 가정해야겠군."

"감독님."

"타순이 3번이나 돌고 있는데 단 1점도 만회를 못했어. 아무리 150km라는 예상 외의 공이 나왔다지만 이건 굴욕이야."

감독의 그런 모습을 본 코치는 마운드에서 내려오고 있는 유성을 보았다.

투구수의 여유가 있기에 8회는 물론 9회에도 나올 확률이 높다.

'박유성이라... 돌아가면 보고를 올려야겠어.'

그러면서 다시 감독을 슬쩍 보았다.

'이 양반은 여기서 끝이겠고 말이야.'

선수들이나 감독은 모르겠지만 그는 일본 고교야구 협회에서 심어둔 일종의 정보요원이었다.

그리고 일본에서 논의 했던 한가지 계획을 그는 떠올렸다.

그렇기에 감독을 뒤로 하고 잠시 덕아웃에서 벗어난 그는 웃으며 계획을 구상할 수 있었다.

"재미 있겠군. 허나 일본의 저력은 여기서 끝이 아니야."

그 사이에 미래고는 7회 말에 결정적인 찬스를 잡으며 점수를 다시 추가했다.

그것도 1점이 아닌 2점이나 말이었다.

"이제 스코어 4대0."

"이쯤되면 유성이도 더 던질 필요가 없을듯 합니다. 교체하시죠."

"아니, 아직 유성이의 투구수에 여유가 있어. 그러니 주환이는 9회에만 던지도록 한다. 짧은 이닝이라도 2일 연속으로 던지는건 부담이 가니깐."

"네."

솔직히 1학년 선수에게 8이닝이나 담당 시키는 것은 무리라는 생각도 들었다.

그러나 이미 중학교 3학년때 퍼펙트라는 대 기록을 작성하면서도 유성은 100구 이하의 투구수를 유지했다.

"공격적이면서도 효율적이라는건가..."

"솔직히 이 경기를 잡는 것은 어렵다고 봅니다. 이미 1승을 거두었으니 소기의 성과를 거두기도 했고요."

"끙..."

결국 일본은 투수 교체를 준비했다.

준비가 이루어지는 걸 보며 그는 다시 유성을 보았다.

저런 선수가 한국에서 나왔다는걸 생각하면 아쉽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더 위로 올라갔을때 어떤 모습을 보일지 궁금했다.

그렇다면 좀 더 큰 무대로 녀석을 끌어들인다.

"기대 되는군."

교체된 투수가 어찌어찌 이닝을 마무리한 가운데 유성은 8회에도 마운드에 올랐다.

안타를 허용했으나 병살로 처리했기에 이번 이닝의 선두 타자는 4번 타자였다.

하지만 이젠 녀석에게 관심이 없었다.

남은 이닝에서 유성은 오로지 힘으로 타자들을 박살낼 생각이었다.

4대0이라는 스코어와 70구도 안된 투구수가 그것을 가능하게 했다.

140km

145km

150km

코스를 조금씩 조절하기는 했지만 구속은 정직하게 올라갔다.

이쯤되니 유성도 느끼는 바가 있었다.

자신의 최고의 무기는 완급조절일지도 몰랐다.

"그렇군."

완급조절이 만능은 아니다.

힘 조절을 하다가 실투가 나올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무작정 150km를 던지는 투수보단 상황에 따라 140km를 던질줄 아는 투수가 더 좋은 성적을 낼 수 있었다.

'10km 정도의 차이가 난다면 그건 다른 투수를 상대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또한 메이저리그 레전드인 웨렌 스팟의 말도 이런 상황에 적합했다.

타격은 타이밍이고, 피칭은 타이밍을 빼앗는 것이다.

그래서 오늘 유성은 150km를 꺼내들었음에도 140과 145의 공을 자주 던지며 상대 타자들에게 150의 이미지를 희석 시켰다.

변화구 구속 조절은 체인지업을 제외하면 하지못하고 체인지업도 완급조절이 불완전했기에 안타를 하나 허용했지만 그렇기에 유성은 만족할 수 있었다.

"스트라이크!"

어느새 나머지 둘마저 처리하며 유성은 이닝을 마무리했다.

그렇게 덕아웃에 들어와서 휴식을 취하기 시작한 유성은 이 경기 이후의 훈련 계획을 구상했다.

아직도 발전 시켜야할 부분이 많다는 것은 그에게 큰 의욕을 불어넣었다.

그러다보니 과거에 훈련을 너무 많이 한다고 연쇄훈련마라는 별명까지 붙었던 것이 떠오르기도 했다.

그와 동시에 떠오른 이야기도 있었다.

"천재는 노력하는 자를 이길 수 없고, 노력하는 자는 즐기는 자를 이길 수 없다고 했던가?"

천재가 노력을 즐긴다면 어떻게 되는지는 메이저리그에서 이미 보여준적이 있었다.

지금 시기에서는 아직 마이너리거에 불과하겠지만 유성은 과거 그와 경쟁을 펼쳤던 기억이 생생했다.

"아, 다른 괴물도 하나 더 있었지."

"뭔 소리야?"

"아니, 아무것도 아니야."

2010년대의 메이저리그에서 가장 뛰어난 타자 둘을 뽑으라고 하면 유성은 당당하게 그 둘을 뽑을 수 있었다.

물론 회귀 전을 기준으로 한다면 자신도 포함이 될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번에는 투수로 뛰고 있기에 유성은 그 둘을 마운드에서 상대하는 것을 기대하고 있었다.

'그럴려면 우선 구속을 더 끌어 올려야겠지.'

구종은 당장 4개만으로도 충분하다.

차후에 조금 더 추가해야할지도 모르지만 지금은 이 구종들의 완성도를 올리고 구속을 더 끌어 올리는게 우선이었다.

8회 말 공격은 제법 길게 이어졌다.

그래서 유성은 쉬다말고 타석에 들어섰고, 볼넷을 얻어내며 출루에 성공했다.

"좋지 않군."

"그러게요."

경기 초중반이면 오히려 점수를 뽑기 위해 필요했겠지만 경기 후반의 출루는 부담이 될 수 밖에 없었다.

게다가 유성은 올해 첫 선발 등판에서 80구 이상을 던진 상태였기에 체력적 부담도 제법 있었다.

"주환이는?"

"준비 끝났습니다."

"녀석이 9회에도 던진다고만 안 말하면 되겠군."

만약을 위해 다음 투수를 준비를 해두기는 했지만 그는 기본적으로 선수를 좀 더 믿고 가는 스타일이었다.

물론 그 생각을 유성이 알리는 없었지만 여기서 추가점을 낸다면 더 던질 필요가 없다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어차피 1이닝만 남았으니 뒤를 걱정할 필요도 없고 말이지.'

딱!

그렇게 유성이 생각을 정리하고 있을때 터져나온 안타 덕분에 유성은 빠르게 2루를 지나 3루로 향했다.

그러나 3루에서 멈추려고 했던 유성은 코치가 팔을 맹렬하게 흔드는 것을 보고 속도를 늦추지 않고 더 끌어 올려서 움직이기 시작했다.

"세이프!"

공이 빠지며 한 베이스씩 더 움직일 수 있게 되었고, 유성과 그 앞에 있던 주자가 들어오며 2점을 추가하게 되었다.

이것으로 스코어는 6대0.

"쐐기점이로군."

"어제의 복수를 완벽하게 했어."

"어제도 간발의 차이였으니깐."

기자들도 이제 쓸만한 내용을 모두 적었기에 경기가 종료되는 것만을 기다렸다.

그리고 기자들 중 일부는 경기 후에 인터뷰를 따내기 위해 움직일 준비를 하고 있었다.

"유성아, 이만 쉬거라."

"네."

완봉까지 던지지 못하는건 아쉬웠지만 이미 80구 이상을 던지기도 했고, 8이닝 무실점에 12K라는 성적도 기록했으니 충분했다.

남은건 편안하게 앉아서 미래고의 승리가 마무리 되는 것을 지켜볼 뿐이었다.

"투수가 바뀌었군."

"그러게. 어제의 언더핸드 투수야."

"확실하게 처리하겠다는 생각인가보군."

언더핸드 특유의 투구폼으로 인해서 나오는 변화가 심한 패스트볼과 그런 패스트볼을 보조하는 변화구는 상대 타자들을 연달아 헛스윙으로 돌려세웠다.

그 결과는 세 타자 연속 삼진이었고, 3번째 아웃 카운트가 만들어지는 순간 경기는 그대로 종료 되었다.

최종 스코어 6대0.

전날 3대4의 아쉬운 패배를 거두었던 미래고는 다음날 압도적인 차이를 만들어내며 승리를 가져왔다.

"젠장..."

"감독님."

"뭔가?"

"본국에서 연락이 왔습니다."

"뭐?"

"네. 당신은 경질입니다."

승리를 거두며 분위기를 회복한 미래고와 달리 일본팀의 분위기는 최악이었다.

그리고 다른 선수들이 보는 앞에서 감독이 경질 당하며 제대로 망신까지 당하게 되었다.

다만 유성은 이런 상황에서도 흘러가는 분위기를 지켜보며 침착하게 관망했다.

'이 정도 강수를 둔다는건... 뭔가 수가 있다는건가?'

일단 자세한건 학교 차원에서 조율을 하겠지만 유성은 이 경기가 단발성이라고 생각 하지 않았다.

애초에 유성이 아는 과거에서는 이 대결은 치루어진적이 없었던 대결이었다.

그렇다면 무엇인가 유성이 모르는 일이 생길게 분명했다.

"유성아."

"응?"

"저기 기자님이 부르신다."

"기자...?!"

거의 10명 가까이 되는 기자들이 유성을 보고 있었다.

그나마 학교 관계자들이 막고 있었으나 이대로 놔둔다면 뭔 일이 생길지도 몰랐다.

"휴... 별 수 없구만."

기자들에게 유성이 다가오자 기자들은 기다렸다는듯 질문을 퍼부었다.

하지만 유성은 오히려 기자들의 말을 끊고는 자신의 말을 전했다.

"소란 부리시는 분과는 어떤 이야기도 하지 않겠습니다."

오늘 경기를 평범하게 마쳤다면 이런 상황이 생기지는 않았겠지만 유성이 150km를 던진 것으로 인해 기자들은 유성을 최고의 기사거리로 보고 있었다.

그런 기자들의 생리를 잘 알고 있기에 조금 불편함을 느꼈지만 언론을 능숙하게 다루는 것 정도는 충분히 할 수 있었다.

'한때 클럽하우스 리더까지 해서 이정도 숫자의 기자는 거뜬하다고 해야하나.'

침착하게 기자들을 조율한 유성은 기자들에게 질문을 받으며 그렇게 생각했다.

다행스럽게도 기자들이 할 질문의 예상 범위가 보였기에 유성은 다른 사람들이 보았을때 생각 이상으로 능숙하게 인터뷰를 진행했다.

"자, 이만 하시죠. 유성이는 이제 쉬어야합니다."

"그러면 감독님! 질문 좀 받아주시죠!"

"!?"

유성이 꽤나 오래 시달리는듯 해서 중재하려고 끼어든 감독이었으나 오히려 포화를 자신에게 돌려버리게 되었다.

그만큼 기자들은 끈질긴 종족들이었다.

"이번에도 적당히 상대 해줘야겠네."

그렇게 유성이 휴식을 위해 그라운드에서 떠났고, 패배한 일본팀은 떠났다.

기자들은 감독을 계속 잡으려고 뛰어다니고 있었고, 방송국에선 이사회와 방송 일정을 조율했다.

경기는 평화롭게 종료 되었다.

아니, 분명히 그렇게 되어야했다.

"네?"

"다시 이야기해주마. 너희는 다음달에 일본으로 간다."

"감독님. 정확히 무슨 일이 일어난거죠?"

"한일 야구협회가 새로운 협약을 했는데 한국 고교팀이 일본으로 가서 경기를 치룬다고 하더구나."

한국 고교팀이 일본으로 간다.

그 말을 듣자 이번 친선전에 생각이 미쳤다.

"설마... 이번 친선전은..."

"그래. 협회에서 말하길 우리 학교가 한국 대표로 내정되었고, 이번 친선전은 우리의 실력을 확인하기 위해 일본이 준비한 경기라더구나."

"...그러니깐 일본놈들이 우리 실력을 볼려고 정찰대를 보낸거란 말이죠?"

"그렇다."

선수들은 분노를 표출했다.

유성마저 순간적으로 화가 날 정도였다.

하지만 여기서 화를 내도 소용이 없었기에 유성은 침착하게 이야기를 이어갔다.

"그런대 나중에도 아니고 왜 바로 다음달에 일본에 간다는거죠?"

"고시엔이라는 대회를 알고 있겠지?"

"네. 일본 고교야구 전국대회죠."

"이번 협의 내용이 바로 그거다. 한국 대표팀이 고시엔에 참가 하는 것."

"우리가 고시엔에요?"

한국대표가 고시엔에 참가한다.

꽤나 당황스러웠지만 이제 슬슬 상황이 파악 되기 시작했다.

'뭐가 되었든 협의를 했으니 협회 차원에서는 한국을 대표할만한 팀이 필요했고, 마침 우리 학교가 선진 시스템과 꾸준한 성적 덕분에 독보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여기에 유성이 150km를 던진 것이 쐐기가 되었을 것이다.

아마 협회도 본래는 거절할 생각이었을 것이다.

회귀 전에 이런 일은 없었으니깐 말이었다.

하지만 유성의 등장으로 방향이 바뀐 것이다.

'그래도 이 과정에서 돈 받아먹은 놈이 있겠지.'

생각이 끝날쯤에는 상황이 정리 되어있었다.

그렇다면 누가 갈것인가를 정해야했다.

"고시엔은 18인 엔트리라는 매우 한정적인 엔트리로 운영된다. 부상을 감안해도 20명 정도만 갈 수 있지."

"그러면 누가 가는거죠?"

"아까 2,3학년들에게 미리 이야기를 전달했는데... 모두 잔류를 선택했다."

"그러면..."

"너희까지 거절하면 학교 입장은 곤란해지겠지. 물론 강요는 하지 않겠다."

그 말을 듣고 유성은 감독의 의중을 알 수 있었다.

2,3학년이 잔류를 선택했는데도 왜 따로 1학년을 불렀겠는가.

'이건 어떻게 보면 기회다.'

2,3학년 인원을 다 합하면 50명에 근접한다.

아마 1학년인 그들이 경기 출전을 할려면 3학년이 빠지는 드래프트 이후가 될 것이다.

기본적으로 미래고의 방침도 1학년때는 육성에 초점을 맞추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유성은 그때까지 기다릴 인내심이 없었다.

특히 일본팀을 상대해보았기에 더욱 그러했다.

고시엔은 일본에서도 손꼽히는 팀들이 대결하는 최고의 아마추어 대회였다.

이런 대회에 참가를 하지 않는 것도 손해라는 생각이었다.

결국 선택지는 둘 중 하나였다.

'단기간에 많은 공을 던져야하는 리스크를 감수해서라도 나가야하는가 아니면 몸을 사리며 가을을 기다리는가.'

유성은 공을 던지면 던질수록 팔의 내구성이 떨어진다고 믿는 쪽이었다.

아니 훗날에는 혹사의 대명사이던 일본 아마야구에서도 그 이론을 받아들였다.

하지만 동시에 월드시리즈때 동료의 이야기도 떠올랐다.

'관리를 받는 것도 좋지만 월드시리즈에서도 관리나 받고 있으면 우승은 못해.'

아직 다른 선수들은 고민 하고 있다.

그것을 보며 유성은 생각을 끝냈다.

이제 선택의 때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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