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6
Chapter 5 - 천재 위의 괴물 (4)
딱!
유성에게 날아든 공은 막판에 변화를 보였고, 유성은 기다렸다는듯 그 공을 때려냈다.
녀석의 투심은 유성에게는 그렇게 어려운 공이 아니었다.
그렇게 빠른 속도로 날아가기 시작한 타구는 담장에 그대로 직격했다.
2루에 있던 철민은 외야수가 못 잡는다는 것을 깨닫고 이미 3루를 돌고 홈으로 향하고 있었다.
유성도 무리할 필요가 없었기에 1루를 지나 2루에서 머물렀고, 전날과 달리 선취점은 미래고가 뽑아내게 되었다.
"나이스."
"시작이 좋네."
박수가 나올 수 밖에 없었다.
오늘 미래고는 유성이 이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런 말이 있지."
"?"
"답답해서 내가 친다."
"하하하. 그거 명언이로군."
그 말대로 유성은 직접 점수를 뽑아냈다.
이후 세명의 타자가 타석에 들어섰음에도 유성을 3루로 보내는 것 외에는 마땅한 모습도 보이지 못하면서 더 의미가 있는 점수였다.
1대0의 리드를 잡게 된 가운데 이닝은 3회 초로 넘어가게 되었다.
그러나 하위타순이 나오는 상황이었기에 유성의 공은 난공불락과 같은 모습을 보여주었고, 잊을만하면 나오는 변화구들로 인해 삼진 2개를 더 내주고 말았다.
"투구수가 어떻지?"
"이제 34개입니다."
한계 투구수는 100개.
다행스럽게도 유성은 그 중 1/3의 공으로 3이닝째를 마무리했다.
"오늘도 투수전이겠군."
"그러게요."
실제로 3회 말 미래고의 공격도 삼자범퇴로 가볍게 막히고 말았다.
그나마 다음 이닝에 3번부터 타순이 시작하기에 그나마 노려볼만하다는 점이 걸어볼만한 희망이었다.
"중요한건 이번 이닝이지?"
"그렇지."
2번째 타석을 맞이하는 일본팀.
150km의 공은 4번부터 상대해보았기에 이번 이닝에 상대할 1,2,3번은 적응이 쉽지 않을 것이다.
그래도 신중하게 파고 들어가는게 좋았다.
'하나라도 놓치면 바로 저녀석에게 이어진다.'
머리로는 150km를 공략하기 힘들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저녀석들의 재능은 분명히 진짜였다.
그렇기에 방심은 금물이었다.
'여기.'
강혁도 그 부분을 염두에 두었는지 쉬운 코스는 절대 요구하지 않았다.
팡!
그동안 140 초중반의 공을 보다가 140 후반의 공을 보게 되었으니 녀석들은 공략을 힘들어했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최대한 공을 보려고 노력하고 있었다.
2구째를 연달아 찔러 넣으며 2스트라이크를 만들었을때도 타자는 아직이라는 표정이었다.
거슬리는 표정이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3연속 포심을 던질 생각은 없었다.
'이렇게 구속이 올라갔을때 더 효과를 보는 공이 있지.'
체인지업이 타자의 배트를 유도해내며 헛스윙 삼진을 뽑아낸 것이었다.
첫 타자를 처리했다면 다음부터는 편하다.
노아웃과 1아웃은 병살로 예를 든다면 단번에 이닝이 종료되느냐 종료되지 않느냐의 차이라고 할 수 있었다.
물론 병살을 위해서는 주자의 존재가 필요했는데 일본에게는 아쉽게도 유성이 주자조차 허용하지 않았다.
150km를 던지기 시작했으나 유성은 간간히 140 초반의 공을 던지며 완급 조절과 동시에 타자의 타이밍을 흔들어놓았다.
억지로 맞추더라도 정타가 되기 어려운 코스거나 예상 외의 타이밍에 튀어나오는 변화구로 인해 결국 4회마저 무실점으로 마무리 되었다.
"어제 그렇게 고전했던 팀이 맞나 싶을 정도로군."
"투수 혼자서 경기를 이길 수는 없죠. 하지만 흐름을 바꾸기에는 충분하네요."
"그렇지."
관중석 사이에 숨어들었던 기자들도 오늘 기사 제목을 어떻게할지 이미 정해두고 있었다.
150km라는 구속은 그만큼 큰 상징성을 가지고 있었기에 그들은 이대로 승리를 거두기를 빌고 있었다.
"그 어떤 선수도 완벽이라는건 없어. 하물며 프로도 아니고 아마추어 단계의 선수에게 완벽이라는건 말도 안되는 일이야."
"하지만 제구, 구위, 변화구에 구속까지 빠지는 부분이 없습니다."
"아직 확인 안 한 부분이 있지."
"네?"
"스테미나를 체크하기에는 우리가 끌려가고 있어서 무리야. 하지만 수비는 어떨까?"
과거 유성은 국가대표 경기를 치룰때마다 일본 대표팀을 이렇게 평했다.
'속에 구렁이 수백마리는 들어있는것 같은 사악한 놈들'
그 말이 지금도 들어맞을지도 몰랐다.
하지만 그들이 모르는 것이 있었으니 유성은 회귀 전에 외야수를 주로 보았지만 내야수도 가능했다는 것이었다.
딱!
"아웃!"
"후... 안 풀리네."
"정 안되겠으면 또 2루타 치던가."
"그게 쉽겠냐. 특히 나랑 너한테는 좀 더 신중하게 던질텐데."
"그래도 되는 곳까진 해봐야지."
"하긴..."
철민이 타석에 들어선 가운데 유성은 뒤에 준비를 시작한 강혁에게 상대 투수의 패턴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철민의 말대로 투수가 자신과 철민을 집중 공략할테니 아마 둘 중 한명만 출루가 가능할 것이다.
그렇다면 그 뒷타자가 해결을 해줘야한다.
"그런가?"
"저런 녀석이 겨우 포심과 투심 뿐이라고 하기에는 좀 믿기 어렵거든."
물론 그 두개의 구종이 끝이면 다행이겠지만 유성이 봐왔던 일본 선수들을 떠올려 보았을때 저녀석도 이번에 뭔가 하나 더 꺼낼게 분명했다.
실제로 또 다른 구종이 튀어나왔다.
"뭐였어?"
"갑자기 확 떨어지던데 뭔지 모르겠다."
"확 떨어져?"
"생각 좀 해봐. 난 갔다 올게."
"어."
타석에 들어서며 유성은 생각을 시작했다.
확 떨어지는 구종과 일본 투수라는 2가지 조합이라면 떠오르는 구종이 있었다.
포크볼과 스플리터.
"더 떨어지는지 덜 떨어지는지가 관건인데..."
더 급격하게 떨어진다면 포크.
덜 떨어진다면 스플리터.
모든 공이 그런 것은 아니지만 대체로 저런 움직임을 보였다.
그러면서 잊으면 안되는 것이 있었다.
'가능성은 낮지만 제4의 구종의 존재.'
포심과 투심은 이제 충분히 공략이 가능했다.
하지만 포크인지 스플리터인지도 확실하지 않은 구종은 아직이었다.
거기에 예상 외의 구종이 또 나온다면 오늘 점수는 여기서 끝날게 분명했다.
그렇기에 유성은 일부러 공을 지켜보며 적당한 볼카운트가 되기를 기다렸다.
상대 배터리도 신중에 신중을 기하는 것인지 철민을 상대할때보다 더 신중한 피칭이 이어지면서 유성은 단 한번도 스윙을 하지 않고 2스트라이크 2볼이라는 볼 카운트를 얻어낼 수 있었다.
'이젠 온다.'
꽤나 정직하다고 해야할까 투수의 표정에서 포심과 투심이 아닌 구종이 날아온다는걸 알아차릴 수 있었다.
그리고 녀석의 공은 포심처럼 날아오다가 확 떨어졌다.
'포크볼.'
이걸로 확실해졌다.
동시에 이렇게 떨어지는 구종들은 대체적으로 볼이 되는 구종들이기에 유성은 가만히 지켜보는 것으로 풀카운트까지 승부를 이어갈 수 있었다.
"타임이요."
"타임!"
잠시 타석에 벗어난 유성은 뒤에 있던 강혁이 눈치껏 달려와서 건내준 로진을 배트에 바르며 강혁에게 전달했다.
"포크볼이야."
"포크? 알았어."
이제 녀석의 밑천은 거의 다 털어냈다.
그러면서 괜히 웃음이 나왔다.
오늘 경기가 끝나고 나면 유성에게 새로운 별명이 부여될 것이다.
중학교 시절에 4개 구종을 수준급으로 다루는 점으로 인해 이미 천재라고 불리고 있었는데 150km까지 추가된다면?
'괴물이라고 불릴지도 모르겠군.'
지금 프로를 초토화 시키고 있는 99번을 달고 있는 원조 괴물에 비견되는 투수로 말이었다.
적당히 시간을 끌었기에 유성은 다시 타석에 들어서며 투수를 보았다.
'넌 단순한 천재냐 아니면 나와 같은 괴물이냐.'
유성이 4번째 구종을 염두에 둔 것은 녀석이 자신과 같은 괴물일지도 모른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어서 날아든 공에 유성은 투수의 한계를 실감했다.
딱!
"괴물의 경지에는 못 들어갈 놈이군."
내야를 훌쩍 넘기는 타구는 외야에 떨어졌고 빠르게 담장을 향해 굴러갔다.
이번에도 유성은 무리하지 않고 1루를 지나 2루에서 멈추는 것으로 안타를 완성 시켰다.
"대단하군."
"이번에는 147km인걸 보니 포심을 때렸군."
"147km짜리 공을 저렇게 때려낸다는건 당장 프로로 와도 먹힐만한 타격 능력이라고 할 수 있지."
"아쉽게 녀석은 투수네요."
"그것도 괜찮아. 겨우 고1인 녀석이 150km를 던지고 있어. 그것만 봐도 이미 프로급이라고 할 수 있지."
147km의 포심을 때려내는 타격 능력에 150km를 던지는 투구 능력.
2번의 2루타에서 알 수 있듯 주력도 좋은 편이었다.
남은건 단 2개 밖에 없었다.
긴 시즌을 치루는 프로에서 뛸 수 있는 스테미나와
'수비'
유성이 2루에 나간 사이 강혁은 타격 코치에게 포크볼에 대한 공략을 속성 강의 받았다.
하지만 강혁의 입장에선 어깨가 무거울 수 밖에 없었다.
포심이나 투심도 힘든데 포크볼까지 신경 써야한다.
작년부터 실력이 확 올라왔지만 여전히 부족한 점을 느끼고 있는게 지금의 강혁이었다.
하지만 계속 불안해 할 수도 없었다.
팡!
148km
구속은 아직도 유지되고 있었다.
평소 140 초반의 공에 초점을 맞춰서 연습하고 있었기에 강혁은 스윙 템포를 한박자 빠르게 가져가기로 생각했다.
지켜본 바에 따르면 포크볼은 2스트라이크라는 선행 조건이 필요했다.
그 전에 승부를 본다.
딱!
제대로 맞춘 타구가 순식간에 3루수 키를 넘기고 떨어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강혁은 제대로 뛰지 못하고 타구에 눈을 때지 못했다.
'제발 인! 인! 인!'
빠르게 날아간 타구가 떨어졌고, 3루심은 순간 판정을 망설였다.
그러나 곧 바로 판정을 내렸다.
세이프 동작을 취한 것이었다.
"와아아아!"
"안타다!"
절묘하게 파울 라인 안쪽에 떨어지며 강혁의 타구가 안타가 되었으나 빠르게 움직였던 좌익수의 수비로 인해 강혁은 1루에 멈추는 것에 만족해야했다.
대신 유성이 3루를 돌아 홈에 들어왔기 때문이었다.
이것으로 스코어 2대0.
리드를 유지하다못해 더 격차를 벌린 것이었다.
"아이고 이놈아 혼자서 다 하면 어쩌냐!"
"운이 좋았지."
"운은 무슨 솔직히 말해서 니가 제일 잘 치잖아."
"그렇게 생각해주면 좋고."
강혁이 1루에 머물러 있는 가운데 2사 1루의 상황으로 미래고의 공격은 계속해서 이어졌다.
그러나 이 이상은 허용하지 않겠다는듯 포심보다 공략이 힘든 투심의 비중을 끌어 올리며 상대 투수는 7번 타자를 범타로 처리하며 이닝을 마무리했다.
치열하게 펼쳐질것 같았던 경기는 어느덧 5회로 접어들었다.
미래고의 리드와 함께 말이었다.
"지금부턴 150km를 경험해본 녀석들이네."
"좀 성급하게 꺼냈던게 아닐까?"
"그렇기는 해. 원래라면 변화구 비중을 올려서 2번째 타석을 넘길 생각이었거든."
"그러면..."
"일단 클린업이니깐 변화구 비중을 올리자."
"알았어."
분기점을 지나는 이닝이라고 할 수 있었기에 이제부터는 좀 더 신중한 플레이가 필요했다.
그 시작이 되는 공이 그래서 중요했다.
'커브'
"크... 내가 이래서 저녀석을 좋아한단 말이지."
앞선 4이닝 동안 유성이 던진 공에서 포심의 비중이 2/3를 넘어갔다.
게다가 초구는 모두 포심이었다.
그런 흐름을 이번 이닝에 깨버린다면 녀석들은 혼란에 빠질 수 밖에 없었다.
"재미 있거든."
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