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기록파괴자-15화 (15/156)

# 15

Chapter 5 - 천재 위의 괴물 (3)

전날의 패배는 이미 곱씹어두고 있었다.

유성도 오늘 투수에 집중해야겠지만 그만큼 타자로도 집중할 필요가 있었다.

'불펜은 그렇게 신경 쓸 수준이 아니야.'

문제는 오늘 선발로 나서는 일본팀의 에이스였다.

연습 투수를 마치고 잠시 생각에 빠져있던 유성은 이내 눈을 떴다.

"플레이볼!"

선두 타자는 어제 두 발로 터무니 없는 파괴력을 보였던 그 타자였다.

첫 타석 이후로는 지훈이 최대한 어렵게 풀어가면서 틀어막았기에 출루하지는 못했지만 여전히 위협적인 타자였다.

'어제 녀석은 정말 짜증났는데...'

당연한 이야기지만 녀석도 지훈의 피칭이 짜증나기는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오늘 유성은 지훈과는 다른 패턴의 정확히 말하자면 그가 좀 더 좋아할만한 타입이었다.

그런 낌새를 눈치챈 건지 몰라도 강혁은 유성에게 사인을 보냈다.

그 사인은 유성에게도 고민이 되는 사인이었다.

'아니, 이제 첫 타석일뿐이야.'

'알았어.'

강혁도 나름 불안감이 있었다.

전날 지훈이 던진 140 초반의 공을 녀석들은 손쉽게 공략해냈다.

그렇다면 공식적으로 최고 구속이 145km에 불과한 유성의 공도 불안 요소가 있었다.

물론 공식적인 구속으로 던질 경우였다.

팡!

시작부터 145km가 기록되었다.

어제도 있었던 카메라는 오늘도 이 장면을 촬영하고 있었다.

"생방이 아니라 녹방이라고 했던가?"

덕분에 방송국은 당장의 곤란한 상황을 피했다.

접전 끝에 졌다고 해도 일본팀에게 지는 경기가 중계된다면 미래고의 이미지로도 좋다고 하기 힘들었기 때문이었다.

"오늘 좋은 구경 하시겠네."

딱!

2구째로 곧 바로 슬라이더를 던지며 녀석의 헛스윙을 유도했으나 단순히 발만 빠른건 아닌지 공에 제대로 반응하는 모습을 보였다.

덕분에 볼 카운트는 2스트라이크로 바뀌며 유성에게 유리하게 흘러가기 시작했다.

3구째는 확실하게 빼는 공이었다.

유성의 스타일상 빠른 승부를 보는걸 원했지만 강혁은 어제의 역전패의 이미지가 남아있었기에 아무리 유성의 스타일을 잘 알아도 신중함을 불어 넣을 수 밖에 없었다.

그것은 유성에게도 나쁘지 않은 변화였다.

이미 강혁의 피지컬은 보통의 1학년을 뛰어넘은 상황이었다.

그렇다고 프로급이라는 것은 아니었지만 아마추어 단계에선 최고 수준의 피지컬이었다.

그런 점을 감안한다면 2학년부턴 자신과 함께 팀의 주전으로 올라설게 분명했다.

"자, 2S 1B인데..."

승부를 보느냐 낚아보느냐가 관건이었다.

그러나 아무리 신중해진 강혁이라도 계속 질질 끌 생각은 없었기에 바로 들어오는 공을 요구했다.

"저녀석, 계속 신중하게 할줄 알았더니 제법인데?"

팡!

높은 코스에 정확히 들어가는 144km의 포심.

선두 타자에게 헛스윙 삼진을 잡아냈다.

골치 아픈 타자를 넘겼으니 이후는 한숨 편하게 경기를 이끌어 갈 수 있다.

이어서 타석에 들어선 2번 타자에게 유성은 초구 체인지업으로 범타를 이끌어냈고, 순식간에 2아웃이 만들어졌다.

"발은 좀 빠른거 같지만 딱히 위협적이지도 않은 녀석이니."

오히려 본격적으로 위험한건 지금부터였다.

어제 경기에서도 진루타를 때린다던가 주목은 덜 받았지만 4번을 상대하기에 앞서서 꼭 처리해두고 넘어가야하는 타자였다.

그렇기에 이번에는 강혁에게 다른 사인을 보냈다.

그리고 나서 던진 포심은 바깥쪽 낮은 코스에 140km의 구속과 함께 정확하게 들어갔고, 타자 입장에서는 부담이 갈 수 밖에 없는 공이었다.

"어제 그놈도 그렇고 이녀석도 제구는 짜증날 정도로 좋군."

언어가 달랐기에 알아들을 수는 없었지만 강혁은 녀석이 짜증내고 있다는 것 정도는 알 수 있었다.

그렇다면 좀 더 괴롭혀주면 된다.

2구째가 1구와 비슷한 코스로 향하기 시작했다.

'날 바보로 아는건가!'

같은 코스라는걸 알아차리자마자 녀석은 스윙을 시작했다.

하지만 신중하지 못한 선택은 자멸을 부를 뿐이었다.

체인지업으로 녀석을 제대로 낚았다.

덕분에 볼카운트도 단숨에 2스트라이크.

다음 공은 아슬아슬하게 존에서 벗어나며 볼이 되었다.

그러나 그것은 의도한 공이었다.

다시 한번 144km의 구속이 나오며 녀석들에게 착각 할 것을 강요했다.

'역시 녀석의 구속은 145가 한계다.'

유성은 딱히 그런 부분에 신경 쓰지 않아서 몰랐지만 한국 고교 무대에선 제법 유명인사였다.

덕분에 일본팀은 인맥을 통해 유성에 대한 정보를 얻을 수 있었고, 유성의 한계치를 알 수 있었다.

"뭔가 알고 있다는듯한 표정은 짜증나는데..."

그래서 몸쪽으로 붙여보았다.

화들짝 놀라며 스윙을 했지만 높이가 맞지 않았다.

결국 3번째 스트라이크가 채워졌고, 녀석은 헛스윙 삼진으로 물러나며 1회 초가 마무리 되었다.

"수고했다."

"이제 시작이죠."

타자들은 어제 경기를 통해 데이터가 쌓였기에 문제 없었다.

하지만 상대 투수에 대한 정보가 모자랐기에 그 부분이 조금 거슬렸다.

결국 선두 타자가 탐색을 위해 공을 지켜볼 필요가 있었다.

팡!

제법 소리가 컸다.

그렇기에 순간 시선이 구장 끝에 있는 작은 전광판으로 향했고, 그곳에는 148km라는 구속이 기록되어 있었다.

"아니, 저게 뭐야."

"허... 유성이보다 더 빠른건 예상 못했는데..."

어제 나왔던 일본 투수 3명 모두 140km가 최고 구속이었다.

그런대 오늘 나온 에이스급 투수는 시작부터 148km가 나오고 있었다.

'변화구 확인해봐.'

예상 이상의 구속이었지만 당황하고 있을 수만은 없다.

그렇기에 변화구를 확인해보라는 사인이 나갔지만 녀석은 우직할 정도로 포심만 던졌다.

아니 포심만 던진 것은 아니었다.

딱!

"이건..."

4구째를 건드렸으나 공이 투수 앞으로 굴러가면서 선두 타자인 강호는 그대로 아웃을 당했다.

그러나 유성은 4구째에서 변화가 생긴 것을 포착했고, 덕아웃에 돌아온 강호의 말로 확신할 수 있었다.

"그대로 들어오는거 같았는데 갑자기 휘었어요."

"갑자기 휘어?"

"...투심?"

"잠깐만 방금 구속이 얼마였지?"

"3구까지 140 중후반이 유지되다가 4구째는 140 초반으로 내려갔습니다."

"과연..."

이건 제법 골치 아플지도라는 생각과 함께 일본 투수는 2번 타자인 최성현과 3번 타자인 백현을 연달아 땅볼로 처리했다.

이 과정에서 소모한 투구수는 단 8개.

유성도 9개만을 던졌기에 차이는 딱히 없었다.

하지만 어제 이닝을 나눠 던졌기에 연투의 부담이 적은 일본 불펜과 달리 미래고 불펜은 승호가 2와 2/3이닝이나 던졌기에 오늘 주환이 나머지를 책임져야했다.

'최소 7이닝은 소화해야한다.'

그게 오늘 유성의 최우선 미션이었다.

이닝이 교체 되었기에 마운드로 향하기 시작한 유성이었지만 시선은 상대 벤치로 향할 수 밖에 없었다.

"강혁아."

"응?"

"저녀석 이름이 뭐라고 했지?"

"후쿠야마 신지라던가?"

"그래? 알았어."

기억에는 없는 이름이지만 기억해둘 필요는 있었다.

당장 미래고 투수 엔트리에 변화가 생긴것만 봐도 앞으로 유성이 짐작하기 힘들 변화가 생길지도 몰랐다.

잠시 녀석에 대한 관심을 접어두고 타석에 들어선 4번 타자를 보았다.

이쪽도 사실 들어본적은 없는 이름이었다.

"투수면 모를까 타자는 딱히 기억할 필요 없거든."

팡!

지훈이나 승호에게 미안하지만 자신의 공은 수준이 달랐다.

그럴 수 밖에 없는게 둘에겐 훈련을 도와주는 수준 밖에 안되지만 자신의 훈련은 자신이 알고 있는 지식을 총 동원해서 하고 있는 자신의 몸에 최적화된 훈련이기 때문이었다.

딱!

그때 생각을 멈추게 하는 타구가 나왔다.

파울이 되기는 했으나 딱히 신경 쓸 필요 없다고 생각되던 타자의 발악이었다.

분명 그렇게 생각했으나 이후 2개의 공을 더 커트해내며 생각보다 더 끈질긴 모습을 보여주었기에 유성은 방향을 바꾸기로 했다.

'포심도 변화구도 다 버텼다면...'

녀석들의 분위기를 찍어 누르는것도 좋을듯 했다.

공을 던지는 사이에 자신의 어깨도 최적의 상태로 올라왔다.

그렇기에 다시 한번 강혁에게 사인을 보냈다.

'준비해.'

'뭐? 아니 잠깐만!'

당황한 표정이 보였지만 이미 유성은 자세를 잡았다.

별 수 없이 강혁도 편하게 있던 자세를 제대로 잡아야했다.

'뭐지?'

갑작스러운 움직임에 타자는 물론 일본도 그리고 미래고 선수들도 의문을 가졌다.

그리고 모두가 경악할 수 밖에 없었다.

"크... 아직도 아프네."

손이 얼얼했다.

하지만 이제부터는 꺼릴 것도 없었다.

전광판에 기록된 구속은 그래도 된다고 말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150km

"뭐야 저건?"

"150?"

"헐..."

선수들은 물론 코치들도 당황했다.

"작년 봄 이후로 구속이 안 오르더니 힘을 숨기고 있었나보군."

그나마 감독만이 침착을 유지했으나 그래도 터무니 없다는 생각을 지울 수는 없었다.

그만큼 지금 유성이 던진 공은 대단했다.

4번 타자를 삼진으로 돌려세움과 동시에 148이라는 구속에 동요했던 선수들의 분위기를 끌어 올렸으며 마지막으로 일본 선수들의 기를 꺾는 공이었다.

"적이 아니라서 다행이야."

"이 학교 오길 잘했다."

유성 뒤에서 수비를 하고 있는 선수들도 이 공에는 놀랄 수 밖에 없었다.

만약 이곳에 오지않았다면 저 터무니 없는 공을 상대해야했을테니 말이었다.

그것은 다시 말해 지금 이 공을 상대해야하는 일본팀 입장에서 최악의 상황이었다.

"150이라니..."

"상상도 못했군."

150km의 강속구를 꺼내든 유성은 일본팀이 벤치에서 혼란에 빠져있는 사이 나머지 두 타자들을 빠르게 처리하며 2회 초도 삼자범퇴로 이닝을 마무리했다.

딱히 꺼낼 생각은 없었지만 꺼낸 이상 적극적으로 활용할 필요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이닝을 마무리하고 돌아온 유성은 수 많은 질문을 받아야했다.

공을 받아주던 강혁을 제외하고는 아무도 몰랐기 때문에 더욱 그러했다.

하지만 유성은 그러면서도 타석을 확인했다.

철민이 선두 타자였고, 그 다음이 자신이었기에 그가 어느정도 시간을 끌어주는게 좋았기 때문이었다.

딱!

그리고 철민이 3구째를 받아쳤고 타구는 외야수 사이에 떨어지게 되었다.

덕분에 순간 시선이 그에게 향했고, 철민은 1루를 지나 빠르게 2루까지 노렸다.

"세이프!"

"찬스다!"

"다음 누구지?"

"유성이잖아."

"그랬어?"

선수들이 순간 시선이 돌아갔을때 빠르게 준비를 마치고 타석으로 나선 유성은 시선을 끌어준 철민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하며 타석에 들어섰다.

녀석이 반응을 하지 않으면 어쩌나하고 생각했으나 아직 어린 선수답게 제법 흥분한 상태였다.

"의식하지 않으려고 해도 150은 역시 의식되는가보군."

지금 투수의 어떤 생각을 하는지 충분히 짐작이 되었다.

그렇기에 유성은 차분하게 자세를 잡으며 공을 기다렸다.

팡!

147km

여전히 빠른 구속이었다.

칠 수 있느냐고 묻는다면 솔직히 자신은 없었다.

철민이 저 공을 때려낸건 평소부터 유성의 이전 최고 구속인 145km에 맞춰서 훈련을 진행했기에 가능했던 부분이다.

'경험만 따지면 이것보다 더 빠른 것도 쳐보기는 했지만...'

아직 회귀 후에는 이정도 공을 상대해본적이 없었다.

2구째가 볼이 되자 유성은 빠르게 머리를 굴리기 시작했다.

'슬슬 변화구가 올때가 되었다.'

물론 칠려고 한다면 포심을 칠 수도 있었다.

하지만 유성은 리스크를 줄이기 위해 1회에 보여주었던 변화구를 노릴 준비를 했다.

딱!

파울이 되면서 볼카운트가 2S-1B로 유성에게 불리하게 바뀌었다.

그러나 유성은 오히려 이 공으로 확신할 수 있었다.

'다음은 변화구다.'

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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