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기록파괴자-14화 (14/156)

# 14

Chapter 5 - 천재 위의 괴물 (2)

경기는 이제 6회 말로 넘어갔다.

"공은 충분히 봤지? 이 이상 무득점으로 끌려가는건 안돼."

"이번에도 출루 못하면 차라리 교체 해달라고 할꺼야."

"그래, 그런 의지로 출루 하기만 해라. 우리가 불러들일테니."

지훈의 마지막 이닝을 그들은 지켜보았다.

그렇기에 지훈에게 패배를 안겨주지 않기 위해서 선수들은 결의를 다졌다.

운이 좋다고 해야할까 미래고는 타순이 9번부터 시작했다.

그 말은 1번 타자부터는 3번째 타석을 맞이한다는 것이었고, 그것은 공략의 시작을 알리는 것이었다.

마침 지훈의 등판이 끝났기에 대타가 준비 되었다.

유성을 보낼 생각도 했으나 만약 승부가 연장으로 갈때를 위해 유성을 아껴둘 필요가 있었다.

백동석.

2루, 유격, 3루까지 내야 대부분에서 뛸 수 있는 멀티 플레이어였다.

이 이름을 기억하고 있는건 그가 훗날 프로에서도 멀티 플레이어로 뛰었던걸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다만 저녀석의 가치가 올라가는건 대타로 나왔을때.'

가끔 그런 선수가 있다.

선발로 나설때도 잘하지만 대타로 나설때 조금 더 잘하는 선수가 말이었다.

녀석은 그런 유형이었다.

'공에 얼마나 빠르게 적응하느냐가 관건인데...'

경기 초중반동안 지켜본 것이 있기에 유성은 녀석의 공을 단번에 때려낼 준비가 되어 있었다.

하지만 다른 선수들은 불안한 감이 있었다.

딱!

"쳤다!"

"떨어졌다!"

"안타다!"

물론 그 불안감은 기우에 불과했다.

초구부터 제대로 노려서 안타를 만들어내면서 미래고는 시작부터 기회를 잡을 수 있었다.

'주력이 평균 이상은 되니깐...'

여기서 1번 타자만 나갈 수 있다면 단숨에 사용할 수 있는 전략이 많아진다.

자신이 감독이 아니기에 작전 지시 같은건 불가능하지만 지켜볼 필요가 있었다.

'그러고보니...'

아까 자신이 강혁에게 뭔가 이야기 하는걸 코치들이 봤을텐데 아무런 이야기가 없었다.

자신과 이야기한 이후로 강혁의 볼배합이 바뀌었다는걸 알아차린 사람이 있었을텐데 말이었다.

의문이 드는 가운데 1번 타자인 백강호가 타석에 들어섰다.

이제 3번째 타석이기에 뭔가 변화를 줄법도 했지만 일본측은 변함 없이 이전과 같은 패턴이었다.

딱!

그것은 자만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었다.

오늘 경기 처음으로 나온 연속 안타가 그 증거였다.

문제는 그 다음이었다.

겨우 2안타를 내주자마자 불펜의 문이 열렸기 때문이었다.

생각보다 더 빠른 움직임이었다.

이쪽은 초반 2실점으로 인해 언제 지훈이 무너질지 몰랐기 때문에 준비를 시킨 것이지만 저쪽은 이렇다할 위기조차 없었다.

"3번째 타석이 되는걸 노리고 준비하고 있었군."

"우리랑 다르게 녀석들은 투수가 하나 더 있으니..."

더 골치 아픈 점은 좌완에 적응되어있던 선수들이 갑자기 우완 투수를 상대해야한다는 점이었다.

불행 중 다행으로 주자는 1,3루.

즉, 짧은 단타로도 주자를 불러들일 수 있었다.

그렇다면 여기서 과감하게 대타를 쓰는 방법도 있었다.

하지만 벤치의 생각은 달랐던 모양이었다.

'우완 투수라면... 노릴 수 있다. 우선 초구는 대기.'

1루 주자가 언제든지 뛸 수 있다는듯한 움직임을 보이고 있었기에 투수는 셋 포지션으로 공을 던져야했고, 그 공을 지켜봄으로써 감독은 작전을 펼칠 수 있다는 것을 확인했다.

'도루'

초구를 지켜본 이후 전달된 사인으로 1루 주자는 좀 더 과감하게 움직일 준비를 했다.

그것을 가만히 지켜볼 투수가 아니었기에 견제구가 들어갔지만 가볍게 세이프가 되었다.

"쳇"

여기까지 들리지 않지만 지금 투수의 표정을 보아하니 무슨 말을 하는지 짐작이 갔다.

그렇다면 이 작전이 더 좋을지도 몰랐다.

이미 내려간 선발이나 지금 올라온 투수나 1학년인건 마찬가지니 이런 심리전에는 취약하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2구째 주자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주자의 움직임을 예상하고 공을 살짝 뺐기에 포수는 공을 잡자마자 바로 2루로 공을 던질 수 있었고, 승부가 아슬하게 전개 되는듯 했다.

하지만 그들이 놓친게 있었으니 3루 주자의 움직임이었다.

"더블 스틸?!"

적당한 리드를 잡고 있던 3루 주자는 송구가 2루로 날아가자마자 출발하였고, 그것을 본 2루수가 제대로 태그하지도 못하고 다시 홈으로 공을 던졌다.

그러나 절묘할 정도로 잘 맞추어진 타이밍은 그들에게 작은 희망조차 주지 않았고, 결국 3루 주자는 홈에 들어오게 되었다.

"좋았어! 드디어 점수 뽑았다!"

"이제 1점차야! 할 수 있어!"

스코어 2대1.

여기서 유성은 감탄 할 수 밖에 없었다.

단 1개의 공으로 투수의 주자 견제 능력을 확인하고, 곧 바로 더블 스틸을 지시한 감독의 전략과 경기를 보는 눈은 그럴만한 가치가 있었다.

미래고가 1점을 만회하자 일본팀은 표정이 굳어졌다.

6회까지 겨우 2점에 묶여 있던 것도 짜증날텐데 이젠 단번에 동점 위협까지 받게 된 것이었다.

그나마 2번 타자를 처리했지만 주자가 3루로 이동하면서 1사 3루의 위기는 계속해서 이어지고 있었다.

"거기다가..."

미래고는 3,4번 타자가 연달아 나올 수 있었다.

확실한 동점 찬스였다.

게다가 저쪽은 다음 불펜 투수의 준비가 안 끝났을 것이다.

지금 교체를 한 것도 빠른 타이밍이었으니 분명 이 투수는 2이닝 이상을 담당해줘야 하는 역할일 것이다.

그걸 노리고 들어가야한다.

백현과 철민도 그런 생각을 했는지 타격 코치와 잠시 이야기하더니 타석으로 향했다.

어쩌면 마지막 기회일지도 모른다.

그런 생각으로 백현이 먼저 타석에 들어섰다.

팡!

구속이나 구종은 선발 투수와 비슷하다.

차이는 좌완이냐 우완이냐였는데 이미 선수들은 지훈과 유성을 통해 우완 투수에 대한걸 충분히 체득한 상태였다.

'지훈이랑 비슷한듯 하지만...'

딱!

"좀 떨어지는군."

단숨에 타구가 유격수 머리 위를 넘기는듯 했으나 유격수가 화려하게 몸을 날리면서 타구를 잡아냈고, 그걸 보고 베이스에서 살짝 떨어져 있던 3루 주자가 급하게 귀루하며 겨우겨우 병살을 당하지는 않게 되었다.

"아오!"

매우 잘 맞은 타구였고, 안타가 될 확률이 더 높은 타구였다.

이건 적이라지만 일본 유격수가 뛰어났다고 할 수 밖에 없을 정도의 타구였다.

그와 동시에 시선은 철민에게 향했다.

오늘 앞선 두번의 타석에서 모두 범타로 물러나고 말았지만 4번 타자라는 중책을 받은 이상 철민은 자신의 역할을 해주었다.

아무리 유성의 타격이 뛰어나도 4번을 안 했던 이유도 철민이라는 4번 타자에 걸맞는 장거리형 타자가 존재했기 때문이었다.

"후..."

차분히 심호흡을 하며 상대의 공을 지켜보았다.

동시에 하나, 둘, 셋 하며 타이밍을 계산했다.

'하나'

팡!

'둘'

팡!

'셋'

딱!

"크...크다."

"안 보여."

"외야... 좌익수가 뛴다!"

큼지막한 타구는 순식간에 날아갔고, 타구의 크기를 본 유성은 순간 외야쪽에 달려있는

깃발을 보았다.

펄럭~

"바람도 우릴 돕고 있군."

그 말이 끝남과 동시에 멀리 날아가던 공은 아래로 떨어졌고, 그 종착점은 바로 담장 너머였다.

텅!

"와아아아아아!"

"역전이다!"

필요할때 한방을 때려줄 수 있는 타자가 바로 4번 타자.

철민은 그 중압감을 잘 이겨내고 있었다.

그리고 이것으로 스코어는 3대2로 미래고가 역전에 성공한다.

아쉽게 5번 타자인 강혁이 아웃을 당하며 이닝이 마무리 되었지만 7회부턴 미래고도 지훈 대신 승호가 마운드에 오르며 흐름을 이어갔다.

하지만 7회를 막아냈던 승호가 8회 동점을 허용하며 스코어는 3대3이 되었고, 경기는 9회로 넘어가게 되었다.

"역시 쉽지는 않네."

"미안, 점수를 지켜야했는데..."

"걱정마. 아직 우리에게 기회는 남아있으니깐."

걱정되는 부분이라면 연장전으로 넘어갔을때였다.

이 상황은 예상하지 못했는지 9회가 시작되기 전 양팀의 감독들이 급하게 연장전에 대한 상의를 시작했다.

"만약 연장전으로 간다면 12회까지만 하고 그래도 승부가 안 나면 무승부로 합시다."

"글쎄요. 투수 소모를 생각하면 9회에 끝내는게 좋을텐데요."

"...그러면 10회까지만 가는건 어떻습니까?"

"좋습니다."

만약 9회에도 동점일 경우 10회로 진입한다.

그리고 10회마저 동점일 경우 무승부로 경기를 그대로 종료 시킨다.

이미 일본의 3번째 투수가 마운드에 올라왔기에 사실 일본도 12회까지 가기에는 제법 큰 리스크가 존재했다.

그래서 더 버티지 않고 10회로 마무리한 것이었다.

"일단... 승호를 더 끌고 가는 수 밖에 없겠군."

주환이 준비를 끝낸 상황이었지만 10회로 넘어간다면 그때 그를 기용하는게 좋았다.

이렇게까지 주환의 기용을 미루는 것은 언더핸드 투수는 철저하게 관리를 해줘야한다는 인식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지금이 고비가 되겠군."

타순은 나쁜건 아니지만 좋은 편도 아니었다.

게다가 3이닝째를 소화하고 있기에 불안 요소는 더욱 커졌다.

첫 타자는 무난하게 막아냈다.

남은 아웃카운트는 2개.

다음 타자도 순조롭게 상대하는듯 했으나 2루타를 허용하며 1사 2루의 위기가 만들어졌고, 연달아 안타를 허용했으나 짧은 단타였기에 주자를 묶어 둘 수 있었다.

그래도 1사 1,3루의 위기가 끝난 것은 아니었다.

"어쩌죠?"

"마음 같아선 주환이를 바로 올리고 싶지만..."

그러면 내일 유성이 부담해야하는게 너무나 크다.

특히 저쪽에서도 에이스가 나오기에 내일 경기에서 9이닝 안에 경기가 끝날 수 있을지부터가 의심이 될 정도였다.

하지만 과도한 고민은 때로는 시기를 놓치게 만들기도 한다.

딱!

"이런..."

"너무 망설였군요."

"바로 바꾸도록 하지."

"네."

3대4

다시 일본이 리드를 잡고 말았다.

그래서 미래고는 뒤늦게 투수 교체를 단행했고, 그때서야 주환이 연속으로 삼진을 잡아내며 이닝을 마무리 할 수 있었다.

"완전한 실책이군."

"어쩔 수 없었습니다. 다음 경기까지 간격이 하루라도 있었다면 이렇게까지 고민할 필요는 없었을테니깐요."

"후... 이것도 노린거라면 노린거로군."

투수의 숫자가 부족할때 이미 감안을 해야했던 부분이었다.

그럼에도 정말 간발의 차이로 모자랐기에 더욱 아쉬웠다.

결국 9회 말 공격에서 미래고는 대타로 나선 유성이 안타를 뽑아내며 마지막 기회를 잡는듯 했으나 1점차를 끝내 따라잡지 못하며 최종 스코어 4대3으로 1점차 아쉬운 역전패를 당하게 되었다.

"괜찮아, 아슬아슬했어."

"내일 이기면 되니깐 기운 차리고."

바로 내일 다시 한번 맞붙는다는 점에서 선수들에겐 리스크가 존재했다.

하지만 이런 것들을 넘겨야 프로에 도달 할 수 있다.

그래서 이번에는 가만히 지켜보기로 한 유성이었다.

어차피 자신도 내일을 위해 준비를 할게 있었기 때문이었다.

***

"저기..."

"응? 세연아 언제 왔어?"

"아까 경기 막판에 왔어."

"아..."

"진건 아쉽지만 안타 친건 잘 봤어."

"고마워."

자신이 뛰었던 경기는 아니지만 팀의 패배를 보여주었다는 점에서 유성은 그녀에게 면목이 없었다.

지난 1년간 유성과 세연은 제법 많이 친해졌다.

오죽하면 친구들이 사귀는거 아니냐고 할 정도냐고 이야기할 정도였는데 둘 다 아직 그런 상황은 아니었다.

'이런걸 친구 이상 연인 미만이라고 하던가...'

"내일은 유성이 니가 선발로 나가지?"

"어, 그래. 지훈이 복수도 해줘야해."

"후훗, 응원할테니깐 잘해."

"그래."

이전 생에서 유성은 몇몇 여자를 만나보았다.

그러나 이렇게 심적으로 편했던 여자는 처음이었다.

물론 아직 여자를 만날 생각은 없었다.

그래도 세연과의 시간은 유성에게 나름 충전의 시간이 되기도 했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복수의 날이 되었다.

"어제 많은 공을 던져서 승호도 등판이 힘들다. 결국 너랑 주환이 둘이서 9이닝을 책임 져야한다는거지."

"걱정마세요. 그동안 이런 날을 위해서 준비를 해왔으니깐요."

"...그래. 믿고 있으마."

경기 전 감독과의 마지막 이야기가 끝났다.

그리고 유성은 오늘 선발로 나서는 선수들을 불러모았다.

"별 다른 말은 필요 없을꺼 같지만... 오늘은 무조건 이긴다."

"어제처럼 정신줄은 안 놓을테니 걱정마."

"그래, 우리도 어제 경기 덕분에 감 잡았으니 빠르게 점수를 뽑아줄게."

"저기 침울하게 있는 지훈이를 생각해서라도 이겨야지."

"가자!"

선수들은 그라운드로 흩어지기 시작했고, 유성도 마운드 위로 향했다.

그리고 선수들이 위치를 잡고, 유성이 준비를 마치자 경기가 시작되었다.

"플레이볼!"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