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
Chapter 4 - 고등학교 (1)
시간은 빠르게 흘러 2010년이 되었다.
중학교의 마지막 1년때 4개 대회에서 모두 우승을 거두며 4관왕을 완성 시킨 것도 어느덧 수개월 전이 되었다.
"올해 뭐가 있지?"
"월드컵."
"아시안게임."
"지방선거."
"응?"
"아니, 맞는 말이잖아?"
"그렇기는 한데... 우리 아직 투표 못하잖아."
"그렇지."
"쓸때 없는 소리하지말고 슬슬 모일 시간이니깐 가자."
그들이 향한 장소에는 이미 수십명의 선수들이 모여있었다.
그리고 미래중 출신 선수들은 그 중 가장 많은 숫자인 13명에 달하였다.
"니들이 제일 늦었다."
"강호 넌 언제 왔냐?"
"흠... 1시간 조금 넘었나?"
그러면서 폴더폰으로 시간을 확인하는 강호였는데 유성은 그런 강호의 휴대폰을 보고 지금 시기가 어떤 시기인지 깨달았다.
2010년 2월인 지금 시점에서 본다면 바로 몇달 전이 아이폰이 처음으로 한국에 출시가 되었던 시기였다.
'그러고보니 이쯤부터 스마트폰이 보급 되었지.'
주식 같은건 관심이 없어서 모르지만 스마트폰이나 미래에 어떤 기계들이 나오는지 정도는 잘 알고 있었다.
사실 이정도만 알고 있는 것도 대단하다고 할 수 있었는데 회귀 전의 유성은 그야말로 야구에 살고 야구에 죽었던 그런 선수였기 때문이었다.
'이번에도 딱히 관심 가질 필요는 없겠지만...'
기억에 남는 부분을 기록해둘 필요성은 있었다.
야구와 관계된 것도 그렇지 않은 것도 마찬가지였다.
다만 기록을 하기에는 시기가 늦은 것 같지만 정말 큰 사건은 여전히 떠올리면 기억 할 수 있기에 괜찮았다.
"자, 주목!"
"다들 모였나?"
"네!"
생각이 멈춘건 감독과 코치들이 나타나면서부터였다.
이곳에 모인 선수들은 총 23명.
그들이 바로 올해부터 미래고 야구부원으로써 활동하게 될 선수들이었다.
그리고 올해 2,3학년이 되는 학생들이 그들을 지켜보고 있었다.
"일단은... 다들 겨울동안 몸은 제대로 만들어두었겠지?"
"네!"
"중학교 시절은 잊어라. 그리고 우리는 보통의 고등학교와는 다르다. 너희들의 상태를 확인하기 위해 바로 테스트를 시작한다."
이곳 미래 고등학교는 초등학교와 중학교를 거쳐온 선수들이 한단계 더 위로 올라가기 위해 존재하는 가장 거대한 관문이었다.
그렇기에 다소 특이한 시스템을 가지고 있었다.
"오자마자 테스트를?"
"경기라도 치룰려는건가?"
"그러기에는 날씨 때문에 안될텐데?"
"저녀석들 입장에선 의문이겠지만..."
미래중학교 출신들은 달랐다.
그들이 중학교 1학년일때도 이미 거쳐온 과정이기 때문이었다.
"딱봐도 그거지?"
"저기... 니들은 이게 뭔지 알아?"
"어, 사실 말만 거창하고 별거 아니거든."
"응?"
"아니, 진짜야. 어떻게 보면 고전적인 방식이라고 할 수 있는거라서 말이지."
그런 미래중 선수들의 표정을 본 것인지 이내 동요하던 다른 학교 출신의 선수들도 진정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내 선수들은 보았다.
어느새 뒤에 나타난 선배로 보이는 선수들과 각종 설비들을 말이었다.
그들을 보고 알 수 있었다.
미래 고등학교는 초기부터 초,중학교 이상의 설비와 시스템을 자랑하였는데 얼마나 뛰어났으면 프로팀보다 시설이 좋다는 소리가 나올 정도였다.
그만큼 한국에서 가장 시설이 뛰어난 곳이었기에 졸업생들은 물론 프로 선수들도 일부 올 정도였다.
"일단 다들 몸부터 풀도록."
"그리고 투수 먼저 테스트를 시작한다."
올해 입학한 야구부원 중 투수는 단 4명.
23명이라는 인원을 생각하면 모자랄지도 몰랐지만 2,3학년의 존재를 생각하면 적당한 숫자였다.
"그리고 투수들을 테스트 해줄 사람은 저기 있는 선배 둘이 해줄꺼다."
"저 두분은..."
"우리 학교에서 프로 지명을 받은 몇 안되는 선배님들이야."
"프로?"
"1군은 아직 아니겠지만."
잠시동안의 준비가 끝나고 투수들은 실내 훈련장 마운드로 향했다.
준비 중인 프로 2군 타자 두 사람은 각각 우타자와 좌타자.
또한 둘 다 컨택과 선구가 좋은 타자들이라는 정보가 주어졌다.
"시작은 누가 하겠나?"
"지훈아, 니가 먼저 가."
"내가?"
"어."
"그러지, 뭐."
과거에도 지훈이 먼저 시작했다.
자신은 부상으로 투수를 그만두었기에 참가하지는 않았지만 나머지 투수는 의문이 들었다.
한 사람은 회귀 전에도 미래고 소속의 투수였다.
하지만 다른 한명은 기존에 없던 선수였다.
'내가 투수를 계속하면서 변화가 생긴건가?'
아직 확신을 할만한 단계는 아니었다.
그래도 지켜볼 필요는 있었다.
그러는 사이에 지훈은 두명의 타자와 돌아가며 각각 3타석씩을 상대하였는데 역시 프로라고 해야할까 겨울이라 아직 130 후반대가 최고인 지훈의 공을 손쉽게 공략했다.
그나마 다양한 변화구로 어떻게든 허점을 노렸기에 6타석 5타수 3피안타 1볼넷에 머물 수 있었다.
물론 좋은 성적은 아니었지만 이제 고등학교에 올라온 선수가 프로를 2번 막아냈다.
그것만으로 의미 있는 모습이었다.
"다음!"
이어서 마운드에 올라간 투수는 유승호.
과거에도 미래고 선수였고, 그때나 현재나 1학년 중에선 유일한 좌완 투수였다.
구속은 지훈과 비슷하게 130 후반이지만 변화구는 단 하나 슬라이더 밖에 없었다.
과거에도 그 문제로 인해 그는 불펜으로 뛴게 대부분이었다.
좌완이라는 메리트에도 불구하고 적은 구종으로 인해 그도 결국 4안타를 허용하며 물러나게 되었다.
"다음!"
이어서 마운드에 오르는 선수는 박주환.
그는 현 시점에서 변수였다.
하지만 그가 초구를 던지는 순간 모두가 놀랄 수 밖에 없었다.
"언더핸드?"
팔을 최대한 높게 각도로 따지자면 90도 정도에서 던지는 것이 오버핸드.
팔의 각도를 낮추어 45도 정도에서 던지는 것인 쓰리쿼터.
팔의 각도를 0도로 맞추어 거의 누운 1자처럼 던지는 사이드암.
그리고 팔의 각도가 마이너스가 된 투구폼이 바로 언더핸드였다.
유성을 비롯해 대부분의 투수들이 쓰리쿼터였기에 언더핸드는 익숙하지 않은 투구폼이었다.
하지만 그들과 달리 유성은 저 언더핸드 투구폼의 위력을 잘 알고 있었다.
왠지 궁내 채고의 싱카볼 투수라고 말하는 분이 떠오르는것 같았지만 프로에서 상대해보았던 언더핸드는 정말 까다로웠다.
회귀 전의 유성이 메이저리그로 가기 전까지 유일하게 공략을 못했던게 언더핸드였으니 말 다한 것이었다.
구속은 그렇게 빠른 편은 아니었다.
실제로 실내연습장에 있는 소형전광판에도 130 안밖의 구속이 유지되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것으로 충분했다.
언더핸드 투수는 앞으로 메이저리그에서도 희귀한 투수가 된다.
지금도 희귀한데 앞으로는 더욱 그렇게 되는 것이었다.
그리고 이 시기의 언더핸드라고 하면 2명의 선수를 떠올릴 수 있었다.
메이저리그에서 활약하던 BK와 2년 전 베이징 올림픽의 마지막을 장식한 여왕벌이 바로 그들이었다.
좀 더 지켜봐야 알겠지만 주환이라는 선수가 만약 유성의 기대만큼의 실력을 보여준다면 이번 미래고 투수진은 역대급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실제로 주환은 6번의 타석에서 단 2안타만을 허용하며 가장 좋은 기록을 보여주었다.
그리고 이제 유성의 차례가 되었다.
"마지막 박유성."
유성이 마운드에 오르자 뒤에서 지켜보던 선수들은 유성의 존재를 알고 드디어 그 박유성을 볼 수 있다며 기대감을 보이기도 했다.
'기대가 너무 커도 안 좋은데...'
실제로 부담감을 견디지 못하는 선수가 존재했다.
아무리 중학교때 데이터를 받아왔다지만 이곳은 고등학교였고, 눈 앞의 상대는 심지어 프로였다.
'지금 내 실력을 확인하기에는 좋겠지.'
그런 유성을 지켜보는 시선에는 기대감이 있었다.
언더핸드라는 예상 외의 투수가 나오기는 했지만 유성이 작년에 중학교에서 보여준 압도적인 포스는 쉽게 넘어갈 수 있는게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팡!
"빨라!"
"구속은?"
"144km!"
초구부터 최고구속으로 알려진 145km에 근접했다.
그러나 타자 입장에서 열 받는 것은 유성이 초구를 가운데로 던졌다는 것이다.
'제구가 안 좋든 고의로 그랬든 겁이 없구만.'
건방진 후배에게 한방을 먹여주기 위해 타자는 2구째를 바로 휘둘렀으나 유성은 그것을 이미 예측하고 있었다.
애초에 초구를 가운데에 그대로 넣은 이유가 체인지업을 극대화 하기 위해서였기 때문이었다.
딱!
건드려진 공은 그대로 2루수 방면으로 향했고, 정상적인 경기였다면 2루수 아웃이 되는 상황이기에 첫 타석은 유성의 승리로 끝났다.
곧 바로 교대를 해서 이번에는 좌타자가 타석에 들어섰다.
이번에는 바깥쪽 코스에 포심을 찔러 넣으며 스트라이크를 만들어냈다.
그리고 2구째 동일한 코스로 공을 던졌다.
'걸렸다!'
하지만 공이 휘기 시작했고, 이내 아차하는 심정으로 스윙을 멈추려했던 타자였으나 이미 제대로 돌아가기 시작했기에 결국 슬라이더를 건드리고 말았다.
이번에는 투수 앞으로 향하는 공이었기에 다시 한번 2구만에 아웃이 만들어졌다.
"세상에..."
"단 4개로 2아웃이라니..."
뒤에서 지켜보던 지훈도 할말이 없다는듯 중얼거렸다.
"저녀석도 참 대단하단 말이야."
"저게 그 작년 중학교 리그 MVP인가..."
"그래."
"저런 선발이 앞에 있으면 편하겠네."
"...응?"
"지훈이라고 했던가? 난 불펜 그 중에서도 마무리 투수거든."
그때서야 지훈도 이번 투수진 구성을 알 수 있었다.
유성이라는 절대적인 에이스에 주환이라는 철벽의 마무리가 합작한다면 미래고에 승리를 거둘 팀은 사실상 존재하지 않게 되는 것이었다.
그러는 사이에 승부는 계속해서 이어지고 있었다.
첫 타석에 타자를 변화구로 낚은 유성은 2번째 타석에서 변화구를 먼저 던지며 유리한 카운트를 잡아냈다.
"어떻게 보는가?"
"강력하고 영리합니다."
"그리고?"
"당장 우리 팀 2선발로 써도 무방할 정도입니다."
다른 2,3학년 투수들을 제치고 바로 에이스와 함께 원투펀치를 구축해도 될 정도라는 이야기였다.
그러는 사이에 유성은 2번째 타석도 범타로 처리하며 4타석 동안 단 하나의 허점도 보이지 않았다.
이어진 3번째 타석에선 타자들도 머리가 복잡해졌다.
가장 주의하라는 이야기를 들었지만 이정도일줄은 몰랐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또 하나의 구종이라고 들었던 커브는 아직 꺼내지도 않았다.
"2군에서 나름 기회를 받는 두녀석을 상대로 저런 모습을 보이고 있는데도?"
"저 둘에게는 미안하지만 저 둘 정도의 선수를 퍼펙트로 막는건 1학년때의 녀석도 해냈으니깐요."
현 미래고 에이스 박세혁.
최고 153km의 강속구와 명품이라고 불리는 커브 그리고 퀄리티 있는 3번째 구종인 체인지업을 보유하고 있는 현재 프로팀들이 가장 많은 관심을 보이고 있는 투수였다.
"저녀석... 여력을 남기고 있어."
그리고 코치들보다 더 멀리서 보고 있음에도 그는 알 수 있었다.
아직 유성이 여력을 남기고 있다는 사실을 말이었다.
"저런 재미 있는 녀석이 상대가 아니라 후배라니 아쉽군."
"뭘 또 후배한테 호승심을 느끼냐?"
"그런가? 그래도... 졸업 전에 저녀석이랑 붙어보고 싶기는 한데..."
"졸업 경기때 지목하면 되겠네. 그 전에 우승 트로피부터 들고 말이야."
"그래야지."
그때 유성은 아껴두었던 커브로 남은 2번의 타석마저 범타로 처리하며 1학년 중 유일하게 퍼펙트로 테스트를 마무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