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
Chapter 3 - 천재의 등장 (3)
유성의 선제 투런이 터지며 스코어 2대0으로 미래중이 앞서가기 시작했다.
상대 투수는 잠시 흔들렸는지 주자를 출루 시키며 추가 찬스를 허용하는가 했더니 이내 정신 차리며 3번째 아웃카운트를 잡아냈다.
그렇게 2회 말이 마무리 되었지만 유성이 마운드를 지키고 있는 한 2대0의 스코어는 깨기 힘든 차이였다.
그래서인지는 모르겠지만 3회 초 타격 스타일이 바뀌었다.
7번 타자에게 빠르게 2스트라이크를 잡아냈고, 한번 간을 보기 위해 체인지업을 던졌으나 타자는 반응하지 않았다.
그것으로 알 수 있었다.
타격 스타일을 바꿔서 이제는 유성의 투구수를 늘리기로 결정했다는 것을 말이었다.
"시작부터 그랬으면 까다로웠겠지만..."
이미 2이닝이나 지났다.
유성은 그 사이에 적절하게 투구수를 아껴두기도 했고 말이었다.
결국 4구째로 선두 타자를 삼진으로 잡아낸 유성은 다음 타자를 잡기 위해 떡밥을 뿌릴 필요가 있다는 것을 느꼈다.
"약 좀 올려볼까."
상대팀의 의도가 파악된 이상 일부러 140km를 던지며 힘을 낭비할 필요는 없었다.
그래서 130km의 공을 한가운데로 던지며 유성은 힘을 아끼는 동시에 상대 타자를 유혹했다.
8번 타자가 140km를 치기는 힘들지만 130km 그것도 한가운데의 공이라면 칠 수 있을 것이라는게 유성의 생각이기 때문이었다.
예상대로 그 공을 본 8번 타자는 2구째에 똑같은 공이 날아들자 바로 스윙을 했다.
하지만 날아오는 공에 변화가 보이자 타자는 아차하는 표정으로 바뀌었고, 그대로 공의 윗부분을 때리고 말았다.
딱!
제법 빠른 타구였으나 유격수가 안정적으로 잡아서 1루로 던지며 아웃카운트는 단숨에 2개로 늘어났다.
이런 유성의 피칭을 보고 일부 관계자들은 감탄을 표하기도 했다.
"제대로 타자를 낚았어."
"한가운데 130km 포심 이후 체인지업이라..."
"이정도 과감한 플레이는 자신의 공에 대한 자신감 뿐만 아니라 수비진에 대한 신뢰도 필요한데..."
보면 볼수록 유성은 특별했다.
단순히 대단하다고 생각 되는 선수들은 많았다.
하지만 이렇게 특별하다고 느끼는 선수들은 없었다.
"어쩌면 오늘 경기를 통해 박유성에 대한 평가가 올라갈지도 모르겠군."
9번 타자를 가볍게 삼구삼진으로 처리하며 유성은 3회마저 삼자범퇴 무실점으로 마무리했다.
상대의 타순이 하위타순이기는 하지만 3회까지 계속 틀어막히며 승기는 조금씩 미래중에게 넘어가기 시작했다.
"2점 차이라..."
"따라 잡을 수 있을까?"
"못해도 해야지."
슬슬 상대 벤치에서도 반응이 나올때가 되었다.
겨우 1바퀴 돌았지만 유성에게 점수를 뽑기 힘들다는 쪽과 아직 할 수 있다는 쪽이었다.
하지만 데이터는 말하고 있었다.
그들은 유성에게 2점을 뽑아낼 수 없다는 사실을 말이었다.
그래도 야구는 끝까지 가봐야 안다고 자주 이야기 되는 스포츠였기에 경기는 계속해서 진행 되었다.
'끝까지 가도 못 이길꺼 같지만...'
힘들게 클린업 트리오를 정리했더니 6,7번에게 연속으로 얻어맞았다.
이런 사실을 떠올리면 투수 입장에서도 표정이 좋지는 않았다.
"흐음... 저 투수 괜찮은듯 하지만 아직 멘탈이 약해."
"뭘 보고?"
"꾸준히 관찰한 결과를 바탕으로 한 내 감."
"좀 빈약하지 않나?"
"저걸봐."
스트라이크 없이 2볼만이 기록 되어있었다.
그리고 3구째에 어떻게 스트라이크가 나왔지만 4구째가 다시 볼이 되며 단숨에 1스트라이크 3볼로 카운트가 몰리게 되었다.
"흔들리는군."
"그렇지? 이제 미래중에서 움직임이 나올꺼야."
결국 5구째도 다시 볼이 되며 선두 타자는 볼넷으로 출루하게 되었다.
다른 타자도 아닌 1번 타자의 출루는 투수에게 가장 골치 아픈 상황이었다.
퍽!
1루로 향한 선두 타자는 그대로 리드를 넓히며 땅에 강하게 발을 굴렸다.
그것은 언제든지 달릴 수 있다는 투수에게 보내는 경고였다.
당연히 투수도 주자가 그렇게까지 도발을 하면 신경을 안 쓸 수가 없었다.
타자를 상대하기 전에 투수는 먼저 주자의 발을 묶기 위해 견제구를 하나 던졌다.
물론 투수가 우완투수였기에 몸을 돌리는게 보였기에 주자는 빠르게 귀루를 할 수 있었다.
"본격적으로 흔드는군."
"결승전이라 콜드게임이 없는게 아쉽겠어."
"그래도 콜드게임 스코어까지는 안 갈꺼야."
쉽게 올라오든 힘들게 올라오든 결승전까지 올라온 팀이었다.
초반부터 미래중에게 리드를 내준 상태이지만 여기까지 올라온 상대라면 충분히 숨겨둔 저력이 남아있을 것이다.
그러한 가운데 2번 타자인 백강호는 초구를 가만히 지켜보았다.
어차피 투수는 주자 때문에 완전히 타자에게 집중하지 못하는 상태였고, 지켜보았던 공은 볼이 되었다.
동시에 벤치에서 사인이 나오기 시작했다.
'다음에 뛴다.'
2구째를 던지기 위해 투수가 자세를 잡자 주자와 타자 모두 투수에게 이목을 집중했다.
그리고 2구째를 던지는 것과 동시에 주자는 출발했고, 타자는 절묘하게 헛스윙을 하며 포수의 움직임을 제한했다.
그렇게 만들어진 무사 2루의 찬스.
여기서 1,2점만 더 뽑아도 미래중은 확실하게 승기를 잡을 수 있었다.
"번트?"
"뒤에 3,4번 타자가 있다지만 어째서?"
의도는 모르겠지만 아웃카운트를 준다면 받는게 맞았다.
상대 배터리도 짧은 의견 교환 끝에 번트를 대주기 위해 포심을 던졌다.
하지만 공이 날아오자마자 강호는 배트를 뒤로 뺐고 자세를 잡아서 스윙을 시작했다.
딱!
"페이크 번트 앤 슬래시!"
타구가 가볍게 1,2루 사이를 갈랐고, 2루 주자는 순식간에 3루를 지나 홈으로 향했다.
우익수가 빠르게 커버를 했으나 이미 타자는 2루에 도달한 상태였다.
이것으로 스코어 3대0.
무사 2루의 찬스는 여전히 이어지고 있었다.
"위태롭군."
"클린업의 시작이라서 더 힘들겠어."
그때 투수가 갑자기 무엇인가 눈을 뜨기라도 한것인지 5개의 공을 연달아 던졌고, 5번째 공은 미래중에게는 예상 외라고 할 수 있는 결과를 만들어냈다.
2스트라이크 2볼의 상황에서 3번 타자가 공을 건드렸고, 공은 빠르게 투수에게 향했다.
퍽! 팡!
자신에게 날아온 공을 그는 순간적인 반응으로 잡아냈고, 이후 반사적으로 몸을 돌려서 2루로 공을 던졌다.
투수에게 공이 가려지는 바람에 베이스와 조금 떨어진 상태였던 강호는 2루에 돌아가지 못하고 그대로 아웃을 당하고 말았다.
분명히 밀리고 있는 상황이었으나 눈깜빡할 사이에 주자는 사라지고 상황은 2아웃으로 바뀌었다.
"하?"
"와..."
"저걸 잡았어?"
벤치에 있는 선수들은 환상적인 수비에 감탄을 보냈으나 타석에 들어설 준비를 하고 있던 철민은 주자가 사라진 것을 보며 한숨을 쉬었다.
1점을 추가하기는 했지만 갑자기 바뀐 투수의 패턴으로 보았을때 이번 이닝은 여기서 끝내야할듯 했다.
실제로 철민이 이번에는 7구까지 가는 접전을 펼쳤지만 중견수 플라이 아웃으로 물러나며 3회 말 공격이 마무리 되었다.
"이제 3점차다. 편하게 던져라."
"물론이죠."
그때부터 양팀의 팽팽한 투수전이 이어지기 시작했다.
4회 초 상대팀도 타순이 1바퀴 돌았지만 유성의 공은 여전히 건드리기 쉽지 않은 공이었다.
결국 다시 한번 삼자범퇴로 물러나게 되었고, 4회 말에는 강혁과 유성의 타석이 돌아왔지만 유성의 볼넷 출루를 제외하면 철저하게 틀어막혀지며 추가점을 뽑아내지 못하였다.
5회 초가 되자 유성은 다시 상대 4번 타자를 상대하게 되었다.
"130km에서 143km까지 구속을 계속 바꾸고, 체인지업을 통해 상대 타자의 타이밍도 빼앗아 왔오는 방식이 4회까지는 통했어."
"이제는 안 통할꺼라고 보는건가?"
"저 4번이 어떻게 하느냐가 관건이지."
타석에서 직접 상대하기도 했고, 수 없이 지켜보기도 했다.
이쯤되면 감을 잡고도 남을 시간이었기에 유성이 어떻게 대응하느냐가 관심사였다.
초구로 무엇을 던질지 강혁과 사인을 교환하던 유성은 이 타자에 한해서는 변칙을 사용하기로 했다.
그렇게 날아간 초구는 바로 체인지업이었다.
하지만 타자는 체인지업이 날아들자마자 공을 저 멀리 날려보냈다.
딱!
"파울!"
정말 간발의 차이로 파울 라인 밖에 떨어졌으나 조금만 안으로 들어왔다면 최소 2루타가 되는 타구였다.
파울이 되었지만 절대 무시할 수 없는 그런 한방이었다.
그렇기에 유성은 강혁을 마운드로 불러 올렸다.
"어휴 저거 뭐 저리 쎄냐?"
"그렇지? 아껴둔거 쓸때가 됬어."
"오? 그거?"
"그럼 이걸 쓸까?"
"아니. 그거로도 충분해."
"그러면 2스트라이크 잡는게 문제인데..."
"도박 좀 해야겠지."
"원하는 곳에 던져줄테니 머리 잘 굴려봐."
"알았어, 임마."
강혁은 그대로 마운드에 내려와서 다시 홈플레이트 뒤에 앉아서 유성에게 사인을 보냈다.
주자가 없기에 신경 쓸 필요가 없지만 강혁은 신중을 기하기 위해 2개의 사인을 보냈다.
'첫번째는 페이크. 두번째가 진짜.'
그리고 진짜 사인으로 나온 구종은 괜히 유성에게 웃음이 나오게 했다.
볼것 없이 강혁은 바로 아껴두었던 무기를 요구했기 때문이었다.
"그래. 괜히 머리 굴릴 시간에 빠르게 끝내면 되지."
그렇게 독백하며 유성은 잡고 있던 공의 그립을 바꾸었다.
이 공은 보기에는 체인지업과 비슷해 보일지도 몰랐다.
하지만 이 공은 엄연히 체인지업과는 다른 공이었다.
그것을 타자는 공이 변화할때가 되어서야 알아차릴 수 있었다.
'체인지업이... 아니야?!'
틱!
다시 한번 체인지업이 날아오는줄 알고 스윙을 시작했던 타자는 공을 건드리기는 했으나 높은 위치에서 갑자기 아래로 떨어져 내리는 공으로 인해 제대로 건드리지 못하였다.
그렇게 어중간하게 건드린 공은 원바운드로 튕겨나갔고, 뒤에서 전진한 2루수가 잡아서 1루로 던지는 것으로 상황이 종료 되었다.
"저게 뭐야?"
"저 궤적이라면... 커브?"
"커브라고?"
지켜보던 고교 관계자들은 충격에 빠졌다.
포심과 체인지업만으로 상대팀을 4이닝 무실점으로 틀어막아놨다.
그런대 이제와서 커브까지 나오고 말았으니 이제는 유성이 실점한다고 생각하기도 힘들어지고 말았다.
"놀란 모양이네."
관심 없어도 관중석을 쓱 훑어보면 그들이 학생이 아니라는 것 정도는 알 수 있었다.
그 중에 기자가 있다는 것은 몰랐지만 유성은 자신을 보러온 고교 관계자들에게 자신의 가치를 제대로 보여주었다.
4번 타자를 처리한 이후 유성은 좀 더 과감한 볼배합을 가져갔다.
포심은 여전히 대부분의 비중을 차지하고 있지만 결정구에 체인지업만 존재하던 이전과 달리 커브가 추가되며 타자들은 맹렬한 선풍기만을 돌릴 수 밖에 없었다.
그렇게 빠르게 이닝이 넘어가며 8회 다시 한번 그 4번 타자를 상대하게 되었다.
이쯤되자 고교 관계자들은 물론 기자들 그리고 야구에 대해 알고 있는 학생들까지 유성에게 이목이 집중 되었다.
"7이닝 무실점 무피안타 무사사구"
"다시 말해 7이닝 퍼펙트."
유성의 컨디션이 좋은 편이기는 하지만 최고는 아니었다.
대신 수비진의 컨디션은 오늘 최고조를 기록하고 있었다.
"아무리 중학교 대회라지만... 결승전에서 대기록이라..."
"삼진도 15개나 잡아놨지. 좀 힘들지도 모르지만 2이닝 안에 5개를 더 잡으면 20K도 가능하겠군."
"그래도 말이지. 커브도 슬슬 눈이 익은듯 한데..."
이쯤되면 아주 이를 갈고 있을게 분명했다.
거기다가 상대 벤치를 보면 4번 타자가 실패할때를 대비해서 대타가 한꺼번에 3명이나 준비 중인 상태였다.
그런 점을 감안한다면 남은 이닝은 앞선 이닝들보다 더 험난할지도 모르는 상황이었다.
"그렇다면 악몽을 안겨줘야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