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
Chapter 3 - 천재의 등장 (2)
결승전 장소는 여러 논의 끝에 미래중의 경기장에서 치뤄지게 되었다.
절묘하게 다른 구장들이 수리나 프로팀의 사정으로 인해 사용이 불가능했기 때문이었다.
"유성아."
"응? 아, 세연아."
"내일 결승이라며?"
"그렇지."
바로 앞이 기숙사라서 그런것일까 얼마 전에 제대로 보지못했던 세연의 사복 차림을 확인 할 수 있었다.
'이쁘네.'
과거로 돌아오기 전 메이저리그에서 활약하며 수 많은 미녀를 보아왔던 유성이지만 세연은 그런 여자들이 하나도 생각 안 나게 할 정도의 매력이 있었다.
물론 지금의 유성은 여자에 신경 쓸 여력이 없었다.
과거로 돌아온지 아직 반년도 안 되었다.
그리고 조금씩 기반을 잡아가고 있다.
"저기 유성아?"
"응? 왜 그래?"
"아니... 그... 힘내라고."
괜히 웃음이 났다.
그래서인지 자신도 모르게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것도 잠시 세연이 유성의 손을 잡으며 멈추게 되었다.
"저기..."
"아, 미안. 부드러워서 계속 쓰다듬었네."
"마음대로 쓰다듬었으니 내일 꼭 이겨."
"물론이지."
그동안 결승전을 위해 차근차근 준비하던 것이 있었기 때문에 유성은 자신 있게 우승하겠다고 말할 수 있었다.
그렇게 다음날 결승전이 시작되었다.
"플레이볼!"
팡!
초구는 포심 패스트볼이 날아왔고, 상대팀의 선두타자는 예상했다는듯 배트를 휘둘렀으나 헛스윙을 하고 말았다.
"초구를 노렸군."
"그것보단 아예 공격적으로 나오기로 한 모양이야."
오늘 경기가 결승전이라는 점으로 인해 고등학교 관계자들은 물론 일부 기자들도 경기를 보러온 상황이었다.
그리고 결승전이기에 미래중에서는 학생들을 관중석에 앉히며 선수들을 응원하게 하였다.
이어진 2구째로 단숨에서 2스트라이크를 잡아낸 유성은 3구째 체인지업으로 배트를 유도했고, 상대 타자는 맥 없이 스윙을 헛스윙 삼진으로 물러나고 말았다.
그 순간 일부 학생들이 유성의 이름을 부르며 환호했고, 유성은 웃으며 다음 타자를 상대할 준비를 했다.
"오늘 경기 어떻게 생각하나?"
"아직 1회도 안 끝났어. 그리고 두팀 모두 결승까지 올라온 팀들이야. 누구 하나가 우승한다고 확신하기 힘들어."
그 사이에 유성은 2번 타자를 가볍게 3루수 땅볼로 처리했고, 3번 타자는 초구 파울 플라이로 물러나며 단 8개의 공으로 1회 초를 마무리했다.
"빠르군."
"기본적으로 공격적인 피칭을 통해서 투구수를 아끼는 스타일이니깐."
"관건은 상대 선발이 어떤 피칭을 하느냐겠군."
덕아웃에 돌아온 유성은 강혁과 함께 2회 볼배합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평소라면 타석에 들어설 준비를 해야겠지만 오늘 상대팀 투수는 중학교에서도 손꼽히는 투수 중 하나였다.
게다가 오늘 강혁의 타순은 6번이었고, 유성은 7번으로 조정 되었다.
"타순 조정이라..."
"박유성이 나름 타격에도 뛰어난 모습을 보였으니 힘을 응집 시킬려는 생각인가 보군."
"하긴 이번 대회 유일한 만루 홈런도 저녀석이 때려낸거니..."
그러는 사이 미래중의 공격이 전개되는 1회 말도 예상 외로 빠른 전개가 이루어졌다.
유성과 마찬가지로 삼자범퇴로 이닝이 마무리 된 것이었다.
"제법인데?"
"그러게."
"에휴... 볼배합도 머리 아픈데 타격까지 신경 써야하네."
'일단 저녀석을 프로에서 본적은 없다.'
그 말은 고등학교 이후로 자의튼 타의든 야구를 그만 두었다는 것이다.
이런 선수는 오히려 아마추어 시점에서 더 위협적이었다.
유망주라고 해도 최고점을 찍는 시기가 존재한다.
정말 아마추어 단계에서 야구를 그만 두었다면 지금이 그 정점일 확률이 높았다.
"쉽게 우승할꺼라고 생각하지는 않았잖아?"
"그렇기는 하지..."
이미 강혁은 장비 착용을 마쳤다.
그것을 본 유성은 강혁과 시선을 마주쳤고, 수년간 호흡을 맞춰온 배터리이기에 말 없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그라운드로 나아갔다.
그렇게 이닝은 2회 초로 넘어가게 되었다.
선두 타자는 4번 타자였다.
"이녀석이 제일 중요하지."
그 어떤 팀도 4번 타자가 약한데 타격이 강하다고 하지 않는다.
그만큼 4번 타자의 위상은 중요했다.
자료에 따르면 이 팀은 4번이 공격의 대부분을 책임지고 투수들이 최소한의 실점으로 틀어막는 투수의 팀이었다.
올해는 제법 개선이 된듯 하지만 이미 4강전에 4번을 제외하면 다들 한단계 낮은 수준이라는 것이 드러났기에 4번 타자만 제대로 막아도 우위를 잡을 수 있었다.
그리고 중요한 승부처답게 초구 140km의 포심을 녀석은 바로 반응하였다.
딱!
빠른 속도로 날아간 타구는 조금만 더 멀리 그리고 안쪽으로 들어왔다면 홈런이 되었을 정도로 큰 타구였다.
"그나마 이정도 구속이라서 막았지만..."
이정도라면 변화구를 던지기 까다로울지도 모른다.
하지만 녀석은 프로 선수가 아닌 아마추어 선수였다.
"약점은 분명히 존재하지."
팡!
2구째의 구속은 131km가 기록되었으나 녀석은 배트를 휘두르지 않았다.
하지만 유성은 실망하지 않았다.
애초에 기대를 하지 않은 공이었다.
스트라이크가 아닌 볼을 위한 공이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녀석이 눈에 띌 정도로 움찔한 것은 확실하게 보았다.
'1스트라이크 1볼이라...'
일단 2스트라이크를 만들 필요가 있었다.
그렇기에 유성은 한발 빠르게 체인지업을 꺼내들었다.
"큭!"
앞선 경기에서도 1스트라이크 1볼이나 2스트라이크 1볼 같은 상황이 나왔으나 유성은 2스트라이크 1볼 상황에서나 체인지업을 던졌다.
유성이 체인지업의 역할을 결정구로 한정지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 정도 상대라면 굳이 결정구로 역할을 한정 지을 필요는 없었다.
그렇게 2스트라이크 1볼의 상황이 만들어졌고, 선택권이 주어졌다.
좀 더 신중하게 갈것인가 아니면 바로 끝을 볼 것인가라는 선택권이었다.
'길게 갈 필요 없다.'
오늘 자신은 최소 8이닝 최대 완투를 생각하고 왔다.
괜히 더 많은 공을 던질 이유가 없었다.
그렇다면 무엇으로 끝을 보느냐가 관건이었다.
초구는 빠른공, 2구는 느린공, 3구는 더 느린공인 변화구.
생각은 짧게 결정은 빠르게 마침 강혁의 사인도 유성과 일치했다.
팡!
143km
"스트라이크!"
삼진 아웃.
유성이 삼진을 잡아내자 관중석에 있던 학생들이 다시 한번 유성의 이름을 부르며 환호했다.
큰 산을 넘은 유성이었기에 그들에게 손을 흔들어줄 여유가 있었다.
"팬서비스 괜찮네."
"그러게. 아직 어리지만 스타성이 있어."
"이정도면 확실하게 미래고로 가겠지?"
"미래고에게 선택을 못 받으면 모를까... 애초에 저정도 실력인데 선택을 못 받을리도 없고."
기자들이야 승리를 거둔 팀과 경기에서 활약한 선수 정도만 보면 되지만 고등학교 관계자들은 오늘 경기에 출전한 모든 중학교 3학년들을 체크해야했다.
"저 녀석 정말 못 데려오나?"
"저쪽을 보시죠."
"응? 저건..."
"미래고 감독입니다."
"놓치지 않겠다는거로군."
미래라는 이름의 커넥션 덕분에 미래고는 다른 학교들보다 한발 빠르고 정확하게 미래중 선수들의 자료를 얻을 수 있었다.
그 중에서도 유성은 S급으로 분류되는 최고 수준의 유망주였다.
그러니 고등학교를 지휘해야할 미래고 감독이 여기와서 경기를 지켜보고 있는 것이었다.
각 학교의 관계자들이 서로 눈치 싸움을 펼치고 있을때 유성은 나머지 두 타자를 처리하며 2회 초도 삼자범퇴로 이닝을 마무리했다.
"좀 빠른거 같지 않아?"
"미래중은 4강전에 불펜이 무너졌고, 다른쪽도 불펜 소모가 심하니깐. 둘 중 오래 버티는 사람이 이길꺼야. 게다가 결승전이라는걸 감안하면... 말 다 했지."
"그렇군."
상대 투수도 보통은 아니었다.
유성만큼 빠른 공을 가진 것은 아니었지만 다양한 변화구를 앞세우며 미래중 타자들을 차근차근 정리해 나갔다.
"철민이가 얼마나 해줄려나..."
타순 조정으로 클린업의 응집력이 떨어졌다고 이야기 될지도 모르지만 유성이 보았을때 이 타순이 현재 미래중의 타선을 두번째로 극대화 시킨 타순이라고 생각 되었다.
가장 극대화 시키는건 자신이 4번으로 들어가는 경우였다.
딱!
초구부터 바로 배트를 냈으나 파울이 되었다.
철민의 출루 여부에 따라 자신이 타석에 들어갈 수도 있기에 유성은 상대 투수의 공을 차분히 지켜보기 시작했다.
'최고 구속은 138km. 지훈이랑 비슷하고...'
변화구는 커브, 슬라이더, 체인지업.
정석이라고 할지도 모르지만 포심과 함께 이 4개 구종만으로도 메이저리그를 얼마든지 지배할 수 있다는걸 수 많은 선수들이 보여주었다.
"크악!"
2구째 커브를 겨우 참아냈으나 3구째 슬라이더와 4구째 체인지업에 연달아 배트를 휘두르며 철민은 삼진 아웃으로 물러나고 말았다.
생각보다 더 수준급의 피칭이었다.
1명만 출루해도 자신의 타석이기에 이제 유성은 배트를 들고 몸을 풀기 시작했다.
'이정도 실력과 잠재력이라면 프로에 못 간게 이상한데...'
그렇다면 그 외의 문제로 인해 프로에 가지 못한게 분명했다.
그 잠깐 사이에 5번 타자도 물러나고 말았다.
"강혁아."
"응?"
타석에 들어서려는 강혁을 잠시 부른 유성은 코치들을 슬쩍 보고 강혁에 자신의 생각을
작게 이야기 해주었다.
"초구 직구 생각하고 휘둘러."
"...확실하지?"
"그래."
"알았어."
그렇게 타석에 들어선 강혁은 유성의 말대로 스윙을 준비했다.
어차피 첫 타석이다.
타석에서 공을 오래 지켜보지 못하는건 아쉽지만 다음 타석을 생각하면 기회는 남아있었다.
그렇다면 한 타석 정도는 파트너의 말을 들어주는 것도 나쁘지 않았다.
게다가 유성의 말이라는 제법 신뢰가 가기도 했다.
강혁이 타격 자세를 취하자 상대 투수는 공을 던졌고, 강혁도 포심 구속에 맞추어 스윙을 시작했다.
딱!
"쳤다!"
"2루수 넘어갔어!"
2루수 키를 넘어가는 타구는 그대로 중견수와 우익수 사이로 흘러가기 시작했고, 강혁의 파워를 경계해서 후진 수비를 펼치고 있던 외야진이 급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 사이 강혁은 1루를 지나 2루로 향하기 시작했고, 뒤늦게 중견수가 공을 잡아서 던졌으나 강혁은 서서 2루에 도착한 뒤였다.
2사 2루의 찬스.
2루의 강혁이 엄지를 들어올리는 것을 보며 타석에 들어선 유성은 오늘 경기에서 가장 중요한 1점을 뽑아내기 위해 자세를 잡았다.
"끙..."
유성이 타석에 들어서자 투수 입장에서는 곤란해졌다.
그는 유성이 만루 홈런을 때리던 장면을 직접 보았던 사람 중 하나이기에 강혁보다 더 골치 아픈게 유성인걸 알고 있었다.
그런대 유성 앞에 주자를 놔두었으니 실점을 피할 방법이 없었다.
그나마 있는 답은 고의사구인데 4번 타자도 아니고 7번 타자에게 고의사구를 하기에는 감독의 시선이 있기에 불가능했다.
'붙으면 진다는걸 알고 있나보군.'
수십년간 프로에서 생활하며 경험이 모자란 투수들을 수 없이 상대해왔다.
게다가 지금 눈 앞의 투수는 아예 아마추어 투수였기에 어떠한 심리를 가지고 있는지 잘 알 수 있었다.
"상대하기는 편하겠군."
이미 이 팀에 대해서는 파악했다.
눈 앞의 선발 투수와 4번 타자를 제외하면 경계할 선수는 없다.
결국 결정을 내리지 못한 투수는 공을 던졌으나 그 공에는 확신이 없었다.
확신이 없는 공은 최고의 공이 되지 못하였고, 유성은 그 공을 놓치지 않았다.
딱!
저 멀리 날아가기 시작한 공은 그대로 쭉쭉 날아가며 외야수들 마저 뛰어넘었다.
텅!
그렇게 타구는 담장을 넘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