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
Chapter 3 - 천재의 등장 (1)
4강전은 예상 외의 타격전이 이어졌다.
"후..."
지훈이 6이닝 3실점.
흔히 퀄리티 스타트라고 불리는 요건을 채우고 내려갔으나 이후에 올라온 불펜이 거하게 불을 지르며 8회 초가 진행되고 있는 지금 스코어는 10대9로 미래중이 간발의 차이로 리드를 잡고 있었다.
"타격이 강점이라길래 예상했다만..."
사실 이렇게까지 몰릴줄은 몰랐다.
지훈이 마운드에 내려갔을때부터 준비를 시작했지만 지금의 분위기로 보면 자칫 잘못하다간 유성이 1이닝 이상을 소화해야할지도 몰랐다.
"8강때 투구수를 절약하기는 했지만 최대한 적게 던지는게 좋은데..."
불펜이 화려하게 불을 질러버린걸 보면 그것도 불가능해보였다.
결국 유성의 예상대로 8회 초 1아웃 상황에서 교체 사인이 나왔다.
"죄송해요, 선배."
"괜찮아. 이럴때를 위해서 내가 준비를 한거니깐."
1사 만루의 위기.
이미 불펜 요원 3명은 2와 1/3이닝 동안 6실점을 기록하며 나가 떨어졌다.
이제 유성이 마지막 보루인 것이었다.
"드디어 올라왔네."
"기다렸냐?"
"기다렸지. 애들 공을 다 때리는데 와... 이걸 어떻게 잡아야하나 싶더라."
"그러면 이제 당한만큼 갚아줘야지."
"흐흐, 난 준비 됐으니 마음껏 던지라고."
"그래."
강혁이 자리로 돌아가고 유성은 공을 손에서 굴리며 자신이 상대해야할 타자들을 차분히 살펴보았다.
3번부터 시작하는 타순에 오늘 저쪽의 3,4,5번은 3홈런 7타점을 합작했다.
"그 중에 경계할만한건..."
4번에 위치한 강선호.
이녀석은 차후 프로에서도 나름 괜찮은 성적을 기록하였던 선수였다.
최대 장점은 통산 타율이 3할을 넘길 정도의 컨택 능력과 득점권에서 더 강해지는 집중력.
"뭐, 그동안 좀 시시하기는 했으니... 이 정도는 되어야지."
그 전에 우선 3번 타자를 처리할 필요가 있다.
깔끔하게 병살타로 처리하면 좋겠지만 유성의 구종으로는 병살타를 유도하는게 까다로웠기에 유성은 과감한 피칭으로 병살 대신 삼진을 잡는 쪽을 선택했다.
팡!
"스트라이크!"
가볍게 1스트라이크를 잡아냈고, 초구의 구속은 139km.
초구는 지켜보았지만 이정도 타격을 갖춘 팀이라면 140km 정도의 공에 대한 대비를 제법 해왔을 것이다.
'지금부터가 중요한데...'
강혁도 고민이 많은지 사인을 내는 속도가 느려졌다.
강혁의 입장에서 더 골치 아픈 점은 현재 루상에 나가 있는 주자들이 모두 발이 빠르다는 점이었다.
아무리 실책이 거의 없는 강혁이지만 이런 상황은 부담감이 클 수 밖에 없었다.
그러나 부담감을 안고서라도 사인을 내야했고, 2구째 사인은 체인지업이었다.
'체인지업 좋지.'
32강전때 유성은 정말로 포심만을 사용했다.
8강전에 체인지업을 쓰기 시작했지만 숫자로 따지면 10개도 안 되는 수준이었다.
게다가 대회 이전에 있었던 수 차례의 연습 경기에서도 유성은 90% 이상의 포심 비율을 보여준 전적이 있었다.
"큭."
체인지업이 날아올꺼라는걸 예상못했는지 거하게 헛스윙을 하며 타자는 잠시 타석에서 물러났다.
그것을 보며 유성은 좋은 판단이라고 생각했다.
단 두 구종이지만 포심보다 20km나 느린 체인지업이었기에 머리가 복잡해질 수 밖에 없었다.
그래도 결국 포심을 노리고 들어올 것이다.
수십년의 기억으로 인해 회귀한 시점 이전의 기억은 잘 없지만 작년에는 체인지업의 비중이 제법 되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하지만 올해는 유성이 의식하고 줄이면서 체인지업의 비중이 확 줄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비율로 따지자면 앞서 말했듯 포심 9에 체인지업 1에 불과할 정도였다.
그리고 유성도 마무리는 포심으로 할 생각이었다.
단 2개의 공만을 던졌지만 상대 타자의 실력을 파악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팡!
"스트라이크!"
삼구 삼진.
그리고 삼진을 잡아낸 3구째의 구속은 143km.
공식전에서 유성의 최고 구속이 갱신된 것이었다.
"아무리 이 나이대가 성장이 빠르다지만 또 구속이 올랐군."
"고등학교로 넘어올쯤에는 150km의 괴물 신인으로 등장할지도 모르겠군요."
"150이라... 미래고도 부럽단 말이지. 매년 S급이나 A급 유망주들이 꾸준히 수급되고 있으니깐."
"덕분에 점점 프로로 보내는 선수들도 늘고 있죠."
봄대회 4강전까지 진행되며 제법 많은 야구계 관계자들이 관중석에 들어차 있었는데 그들 대부분은 유성이 미래고로 갈 확률이 높다는걸 알면서도 관심을 보내고 있었다.
그 중에서도 이 두 사람은 유성의 잠재력을 보며 다음 단계를 예상하고 있었다.
"앞날이라는게 모르는거긴한데 저 녀석이라면 미국도 노려볼만하지 않을까 싶어."
"에이, 설마요? 라고 하기에는 추신소를 예견한 당신의 안목을 무시하기는 힘들겠군요."
"하하. 그건 운이 좋았던거지. 그 이후로 찍은 놈들은 죄다 골골 거리고 있지않나."
말은 그렇게 했지만 그가 보이고 있는 눈빛은 기대감이라고 하는 것이었다.
메이저리그 선구자인 박찬오도 이제는 은퇴 고민을 할 나이였다.
그 뒤를 이어갈 선수로써 유성은 충분한 잠재력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이것은 생각에 그칠뿐이었다.
아무리 그래도 유성은 아직 중학교 3학년에 불과했기 때문이었다.
유망주라는건 예상대로 크거나 예상보다 더 잘 성장할 수도 있지만 예상보다 못 크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아직은 지켜보는 수 밖에 없겠지."
"그렇군요."
그 사이 타석에는 다음 타자가 타석에 들어섰다.
가장 주의해야하는 강선호가 타석에 들어섰기에 유성과 강혁은 물론 내야진도 집중력을 끌어 올려야했다.
"오늘 저녀석은 홈런이 없었지?"
"네. 대신 내야를 관통하는 안타를 3개 때렸죠."
"내야수들 눈에 불이 켜질만 하군."
그런 분위기를 알고 있기에 유성도 신중하게 어떤 공을 어디에 던질지 고민하기 시작했다.
프로때의 기억을 살려보면 강선호는 몸쪽이든 바깥쪽이든 다 때려낼 수 있는 넓은 범위를 가진 타자였다.
'그래도 아직 중3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해볼만해'
다행이라면 녀석은 아직 넓은 범위를 커버할 수 있는 컨택을 보조할만한 파워가 모자란 상태였다.
그렇다면 지금의 강선호가 감당할 수 없는 힘으로 찍어누른다.
팡!
다시 한번 기록되는 143km의 구속.
아무리 연습을 많이해도 피칭머신의 공과 실전의 공은 전혀 다르다.
특히 유성처럼 구위까지 뛰어나다면 그 차이는 더 커진다.
'예상보다 더 한데...'
처음 이 공을 상대해본 강선호는 예상 이상의 공에 한숨을 쉴 수 밖에 없었다.
145km까지는 피칭머신으로 연습해보았기에 이 공을 어떻게든 건드릴 수는 있다.
하지만 안타로 만들어내기에는 자신의 파워가 모자랐다.
최대한 버티며 체력을 소진 시키는 것도 무리였다.
오늘 그는 선발 투수가 아닌 마무리 투수로 나왔기에 체력의 여유가 넘치는 상황이었다.
그렇기에 차라리 빠르게 승부를 보는게 좋았다.
강선호가 생각을 정리한 사이에 유성도 빠르게 승부를 보기 위해 2구째를 던졌다.
딱!
라인 근처에 있던 3루수가 빠르게 반응했으나 타구는 간발의 차이로 파울이 되었다.
주자의 움직임을 슬쩍 확인하는 것으로 파울이라는 것을 확인한 유성은 다음 공을 준비했다.
'하나 뺄까?'
'아니, 신중하게 가는 것도 좋지만 일부러 피할 이유도 없어.'
아마 녀석도 체인지업을 생각하고 있을것이다.
하지만 녀석이 생각하지 못하고 있는게 하나 있다.
후웅
퍽!
"스트라이크!"
유성이라고 해서 항상 스트라이크 존 안으로만 던지는 것이 아니었다.
보통 체인지업이라고 하면 유인구로 사용되는 경우가 많지만 유성은 체인지업으로 스트라이크를 잡는 경우가 대부분이었기다.
애초에 유인구 자체를 거의 안 던졌다.
그렇기에 강선호의 예상대로 체인지업이 날아왔으나 유성이 스트라이크 존 바깥으로 공을 던지며 헛스윙 삼진을 잡아낼 수 있었다.
그것으로 1사 만루의 위기가 종료 되었다.
여전히 스코어는 10대9로 미래중의 리드가 유지되고 있었고, 겨우 불씨를 끈 미래중은 8회 말에 2점을 더 추가하며 스코어를 12대9까지 벌렸다.
"아슬아슬했네."
"이제 마무리하러 가자고."
"그래야지."
3점차로 점수차가 벌어지며 사실상 마지막 이닝이 될 9회 초.
유성의 공은 거침 없이 미트에 파고들며 상대 타자들을 삼진으로 돌려세웠다.
그렇게 경기가 끝이 나는듯 했으나 2아웃 상황에서 대타가 나왔다.
"응? 저녀석은..."
이제와서 대타를 사용했기에 유성이 보았을때 이 기용은 경험을 주기 위해서라는 의도로 보였다.
하지만 대타의 이름을 듣고 거물을 만났음을 깨달았다.
2010년대 중반부터 프로에서 활약하며 평화왕이라는 별명으로 불렸던 넬슨 히어로즈의 김해성.
그는 유성보다 1살 어렸지만 한국에서 활동할때 가장 위협적인 경쟁자이기도 했다.
그렇다는 말은
'아직 중2란 말이지...'
놀라기는 했지만 프로에서의 김해성이라면 모를까 아직 중학생에 불과한 김해성이라면 그렇게 어렵지는 않을 것이다.
***
"zzz..."
"자냐?"
"..."
"안 자네."
"왜."
"안타 맞은게 그리 열 받았냐?"
김해성과의 대결은 결과만 말하자면 안타였다.
정확히는 3루수와 유격수 사이로 향하는 내야 안타였는데 유성도 별 수 없다고 생각하면서도 아쉬움을 느꼈다.
'앞으로 중학생이라고 방심하면 안되겠네.'
내야 안타를 허용한 뒤에 다음 타자를 바로 삼진을 잡아내며 경기를 마무리했기에 미래중은 결승 진출을 확정한 상태였다.
하지만 유성은 정보의 필요성을 느끼고 있었다.
상대 팀에서 주의할만한 선수나 선발로 나오는 선수들은 쉽게 알 수 있지만 김해성처럼 예상 외의 선수까지는 자료가 없는 상황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나마 고등학교로 올라가면 미래고의 자체 스카우터들이 존재하기에 상대 팀에 대해 파악하기 쉽지만 성적이 1순위가 아닌 미래중에서는 정보를 얻기 힘들었다.
"결승에 또 뜬금 없는 녀석이 나오는건 아니겠지..."
"에이, 설마 그런 녀석이 또 있겠어?"
훗날 유성은 설마가 사람 잡는다는걸 이때 알아야했다며 한숨을 내쉬기도 했었다.
물론 미래의 일이기에 지금은 결승전에 어떤 일이 벌어질지 전혀 모르는 상황이었다.
그리고 결승전이 다가오는 가운데 선수들은 마지막 휴식을 취하기 시작했다.
"괜찮냐?"
"하암, 4강이 너무 빡셌어."
"내가 다 해야겠네."
"그러면 좋겠지만 다른 녀석들도 좀 신경 써줘."
"음... 하긴 결승에서 맞붙는 팀은 타격보단 투수가 강하다니깐... 8이닝 정도만 던져도 충분하겠지."
프로팀이라면 일부러 긴 이닝을 소화할 준비를 할 필요가 없을지도 몰랐다.
불펜으로 나올 투수의 숫자가 많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고등학교도 아니고 중학교 환경에선 불펜 투수가 3명이나 되는 것도 풍족한 상황이었다.
결국 선발로 나설 선수가 많은 부담을 가져야했다.
그리고 유성은 그 부담을 짊어질 준비가 되어 있었다.
"그럼 난 만약에 또 불펜이 무너질때를 위해 준비 해야겠네."
"그럴 일은 없을꺼야. 여차하면 내가 그대로 끝내버릴테니깐."
짧은 준비를 마치고 이제 결승이 시작될때가 다가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