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
Chapter 2 - 애송이들 (3)
시간은 빠르게 흘러 첫 대회가 있는 4월이 되었다.
그 사이에 몇번의 연습 경기에서 유성은 여전히 좋은 모습을 보여주었고, 그것은 2선발인 지훈도 마찬가지였다.
덕분에 아직 대회가 시작하지 않았음에도 미래중은 유력한 우승후보로 꼽히고 있었다.
"이젠 100개도 던질만해."
"그래? 그럼 완봉도 해야지?"
"대진표가 괜찮아서 콜드 게임 나올 확률이 더 클꺼 같은데?"
"아, 그런가?"
아무래도 한국에서는 야구를 하는 학교의 숫자부터가 적은 편이다보니 최대한의 대진표를 구상해도 48강이 한계였다.
덕분에 시드 팀으로 구분되는 일부 팀들은 1라운드 경기가 없었는데 미래중도 시드 팀으로 구분되었기에 1라운드는 치르지 않은 상태였다.
"32강부터라..."
"우승까지 5번만 이기면 되네."
"너 3번에 나 2번이면 딱 맞네?"
"그렇지. 하지만 초반에는 힘을 아껴야하니 콜드게임으로 밀고 가는게 좋을꺼야."
"하긴... 8강쯤부턴 진짜 강팀들이 몰려있으니..."
앞서 대진표가 괜찮다고 이야기했던 것은 바로 강팀과의 매치에 대한 이야기였는데 미래중은 운 좋게도 32강과 16강에 약팀으로 구분 되는 팀들과 맞붙게 되어 있었다.
"작년에는 운 없게 우승 후보들을 32강, 16강에서 만나는 바람에 결국 4강에서 떨어졌잖아."
"그렇지. 역전에 재역전으로 겨우 올라갔더니 계속 강팀이 나와서 우리까지 고생이었지."
다른 이들이 보기에는 겨우 1년 전의 일이지만 수십년의 기억이 있는 유성에게는 추억이라고 할 수 있었다.
"지훈아."
"응?"
"트로피 가져오자."
"넌 당연한 소리를 뭐 그리 진지하게 하냐."
"내가 그랬어?"
"어."
"..."
순간 분위기가 이상하게 흘러갈뻔 했지만 적절한 타이밍에 코치들이 선수들을 소집했다.
야구의 인기는 많지만 인프라가 좋은 편은 아니었기에 경기마다 주변의 구장을 임대해서 사용해야했는데 미래중은 전용 구장이 있다보니 대부분의 경기에서 홈팀으로 뛸 수 있었다.
"언제 끝날꺼 같냐?"
"초반부터 터지면 5회 좀 늦으면 7회."
"뭐가 되었든 콜드네."
콜드게임은 5,6회에 15점차 이상 차이가 나거나 7,8회에 10점차 이상 차이가 나게 되면 그대로 리드를 가지고 있는 팀의 승리로 경기가 종료 되는 제도였다.
아직 경기를 치루지도 않았는데 콜드게임을 자신하는 이유는 32강이나 16강에서 상대하는 팀들은 유성과 지훈이 1학년때 이미 눌러버린 적이 있는 팀들이었다.
사실 유성은 기억이 안 나지만 친구들의 이야기에 따르면 그러했다.
"중학교에서 140km를 본 애들이 얼마나 되겠어? 흐흐흐."
"가끔 유성이가 무서울때가 있어."
"나도 그래."
"이럴때는 적이 아니라서 정말 다행이네."
친구들이 수근거리는건 가볍게 무시한 유성은 오늘 상대팀들의 면목을 가볍게 살펴보았다.
수십년 전의 일이기에 잘 기억 나지는 않았지만 눈에 띄는 녀석은 없었다.
'그동안 치룬 경기는 많았지만 대회는 이게 첫 경기니...'
선전포고도 할 겸 찍어누를 필요가 있었다.
그렇기에 유성은 강혁에게 미리 오늘 경기에선 포심만을 사용할 것을 이야기했다.
"뭐?"
"걱정마. 제구는 제대로 할꺼고, 필요하면 완급 조절도 할꺼야."
"아니... 그정도만 되어도 문제 없기는 한데..."
"괜찮아. 결과만 좋으면 다 되는거야."
물론 메이저리그에선 세이버메트릭스를 통해 세부적인 것까지 모두 확인하고 확인이 가능하지만 한국은 세이버메트릭스의 ㅅ도 도입이 되지 않은 상태였다.
하물며 지금 유성이 있는 곳은 중학교였다.
단순 피지컬 차이로도 최강자가 될 수 있는 곳이었다.
그렇기에 마운드에 오른 유성은 미리 자신을 상대하게 된 상대팀에게 묵념을 표했다.
"미안하지만... 제물이 되어줘야겠어."
"플레이볼!"
주심의 사인이 떨어지고 첫 타자를 만난 유성은 가볍게 공을 던지기 시작했다.
그렇다고 그 공이 가벼운 것은 절대 아니었다.
팡!
"이것은 스트라이크요."
팡!
"이것은 140km요."
팡!
"그리고 이것이 삼구삼진이요."
건드리지도 못했다.
대회가 시작되기 전까지 유성이 선발로 출전했던 경기는 총 5경기였다.
그리고 그 5경기를 치루며 유성은 단 1실점만을 기록했다.
그마저도 실투로 인해 장타를 허용한 것이었기에 그 팀보다 전력이 떨어지는 이 정도 팀은 유성 입장에서 별것 아닌 그저 거쳐가는 과정에 불과했다.
그렇기에 나머지 두 타자도 삼구삼진으로 단번에 처리했다.
단 9개의 공만을 그것도 포심만을 던져서 1회 초를 마감해버린 유성은 천천히 덕아웃으로 향했다.
기선 제압은 완벽하게 해놨고, 동료들이라면 충분히 1회부터 자신에게까지 타석을 연결해줄테니 말이었다.
딱!
타자가 공을 쳤으나 공은 2루수에게 흘러갔고, 2루수는 가볍게 잡아내며 1루로 공을 던졌다.
그 결과는 당연히 아웃이었다.
"..."
"허..."
예상 외의 상황이 발생했다.
상대 선발이 3학년이 아닌 2학년이라는 점과 최근 전학을 와서 상대해본적이 없다는 점이었다.
단순히 데이터가 없는 수준이었다면 실력으로 해결했을테지만 저쪽 투수의 실력은 제법 괜찮은 편이었다.
덕분에 볼넷 1개를 얻어냈지만 득점을 올리지 못하며 예상과 달리 0대0의 스코어로 1회를 마무리하게 되었지만 유성은 침착했다.
"7회까지 갈 생각을 해야겠군."
예상 외의 복병이 나올줄은 몰랐기에 순간 당황했던 유성이지만 고등학교도 아니고 겨우 중학교 레벨에서는 얼마든지 상대 투수를 무너트릴 방법이 있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선 살아날려는 상대팀의 기세를 다시 박살낼 필요가 있었다.
"마침 4번 타자인가..."
요주의 투수는 절묘하게도 바로 뒤인 5번에 배치 되어 있었다.
즉, 이 둘을 확실하게 처리할 필요가 있었다.
팡!
"스트라이크!"
'일단 1스트라이크.'
구속은 여전히 140km가 기록 되었고, 유성은 구속을 확인하는 대신 타자의 표정을 보았다.
투수로써의 경력은 짧지만 타자로써의 경력은 지금 이곳에 있는 그 누구보다 뛰어난게 바로 유성이었다.
그렇기에 타자의 표정이나 하다못해 눈빛만 보더라도 그의 심리를 알 수 있었다.
"쫄았군."
이러면 뒤는 편하다.
적당히 몰아붙이거나 유인구로 낚으면 되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생각하니 괜히 웃음이 나올것 같았다.
솔직히 말해서 지금도 다시 이렇게 공을 던지고 있다는게 실감이 안 날때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후우..."
아직 경기 중이었기에 유성은 가볍게 심호흡을 하고 2구째를 던졌다.
딱!
공이 높게 떠올랐다.
하지만 공은 멀리 날아가지 못했고, 3루수가 자기 자리에서 조금 앞으로 나와서 가볍게 잡아냈다.
앞으로 보내기는 했지만 유성의 구위에 밀린 나머지 타구는 내야플라이에 그치고 말았다.
"그래도 4번이 폼은 아니라는건가..."
4번 타자가 이정도라면 이어서 타석에 들어서고 있는 요주의 투수인 5번 타자는 어떤 모습을 보여줄지 관심이 가기도 했다.
'눈빛은 좋네.'
저런 눈을 가지고 있던 녀석들은 대부분 한가닥하던 녀석이거나 할 확률이 높은 녀석들이었다.
만약 동료였다면 도와줬을지도 모르지만 지금의 녀석은 무너트리고 넘어가야할 적에 불과했다.
그래도 유성은 바로 공을 던지지는 않았다.
앞서 4번 타자가 공을 건드린 점이나 4명의 타자에게 던진 11개의 공이 모두 포심이었다는 점 때문에라도 슬슬 변화를 줄 필요가 있기 때문이었다.
마침 강혁이 유성의 생각을 읽기라도 한듯 완급조절을 한 포심을 요구했고, 유성은 타자를 잠깐 보고는 130km까지 구속이 내려간 포심을 던지며 녀석의 타이밍을 흐트려놓았다.
예상 외의 공이 날아왔기에 녀석도 순간 움찔하기는 했으나 빠르게 배트를 내밀었다.
하지만 이 공은 녀석의 스윙을 유도하기 위해 던진 공이었다.
딱!
공을 건드렸으나 1루수 정면으로 튕겨갔고, 좀 까다로운 타구였지만 1루에 있던 철민이 가볍게 잡고 1루 베이스를 밟으며 순식간에 2아웃이 만들어졌다.
나머지 타자는 신경 쓸 필요 없었다.
다시 페이스를 끌어 올려 140km의 포심 3개로 다시 삼진을 잡아냈기 때문이었다.
이걸로 2이닝 무실점을 기록한 유성은 덕아웃으로 돌아가 자신의 타석이 돌아오기를 기다렸다.
2회 말로 이어진 경기.
상대 투수에 대한 파악이 된 것인지 타자들의 타격이 살아나기 시작했고, 1사 만루의 찬스에서 유성의 타석이 돌아왔다.
"역시 감독님도 보통은 아니라니깐."
겨우 1회의 피칭만으로 상대 투수의 약점을 간파하면서 대량 득점의 찬스를 만들어냈다.
투수로써 뛰어야하기에 유성이 9번에 배치되기는 했지만 타격에 전념했다면 4번 타자는 유성이 차지했을지도 몰랐다.
팡!
"스트라이크!"
초구를 가만히 지켜본 유성은 투수의 상태가 좋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130 초반의 구속은 계속 유지되고 있지만 1회에 비해 제구가 흔들리고 있었다.
"잠재력은 있지만..."
딱!
"아직은 애송이군."
불안한 제구로 인해 상대 투수는 결국 실투를 던지고 말았고, 유성은 그것을 놓치지 않았다.
130km의 적당한 스피드에 스트라이크 존 한가운데로 정확하게 날아오는 공을 놓치기에는 20년이 넘는 경력이 아쉬웠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유성이 때려낸 공은 저 멀리 날아가기 시작하며 이내 담장 너머라는 종착점에 도달했다.
그랜드슬럼
1루, 2루, 3루에 주자가 모두 존재할때 홈런을 쳐야 가능한 야구에서 가장 강력한 1방.
그 1방으로 스코어는 4대0으로 바뀌었고, 상대팀은 그대로 침몰했다.
1회에 점수를 뽑아내지 못했기에 콜드 승을 거두는 것이 꽤나 어려울 것이라 생각했으나 6회 15대0의 스코어가 만들어지면서 경기는 그대로 미래중의 콜드승으로 종료 되었다.
"6회는 예상 못했지?"
"그렇기는 한데... 5회에 끝났으면 뭔가 아쉬웠을테니 괜찮아."
6이닝 무실점.
즉, 유성은 완봉승을 거두었고, 완봉승을 거둔 유성의 투구수는 겨우 58구에 불과했다.
압도적인 전력차로 첫 경기에서 승리를 거둔 미래중은 이후 지훈이 등판한 16강에서 5회 콜드 승을 거두었고, 다시 유성이 등판한 8강전에서도 7회 콜드 승을 거두며 3연속 콜드 승으로 4강에 도달했다.
이제 단 2번만 승리를 거두면 우승을 차지할 수 있게 되는 것이었다.
"좋아, 생각보다 쉽게 4강까지 올라왔다. 하지만 진짜는 지금부터다."
말은 그렇게 해도 미래중이 진다는 생각은 잘 되지 않았다.
8강에서 맞붙은 팀은 올해는 약해졌지만 작년에 2번의 우승을 거둔 강팀이었는데 그런 팀을 7회만에 박살내버렸으니 당연히 자신감은 최대로 올라간 상태였다.
"빅4의 정점이 우리라는 것도 알려줘야하고 말이지."
"하나는 이미 나가 떨어졌으니 빅3이 맞지 않나?"
"그런가? 아무렴 어때? 결국 우승팀이 1강이 될테니깐."
"그렇기는 하지."
매년 팀 전력에 따라 다르지만 첫 대회가 시작하기 전에 몇몇 중학교들을 강팀으로 분류하는데 올해는 4개의 팀이 분류 되며 그 팀들은 빅4라 불리며 유력한 우승후보로 뽑히고 있었다.
이미 미래중이 8강에서 무너트린 팀이 그 중 하나였고, 4강에서 상대할 팀도 마찬가지였다.
물론 유성의 입장에서 본다면 별 다른 의미가 없는 일이었다.
수십년의 프로 경험이 있는 유성에게 중학교 선수들은 그저 애송이에 불과했다.
"그러면 애송이들을 쓸어버리러 가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