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
Chapter 2 - 애송이들 (2)
"유성아!"
"언제 왔어?"
"너희가 뛰어가던걸 보면서 따라오니깐 생각보다 안 멀더라고."
"얼마나 있었던거야?"
"훈련 시작할때부터 계속 보고 있었어."
"뭐? 안 추워?"
"응? 오히려 따뜻한데?"
"아... 그랬지."
돈지랄 소리까지 들을 정도로 학교에 많은 자금이 투입되었는데 그 돈지랄의 대표적인 부분 중 하나가 바로 경기장이나 훈련장 관람석에 열선이 깔린 것이었다.
잉글랜드 구단의 모 거부도 열선을 깔아버린 적이 있지만 거긴 프로팀이었고, 여긴 고등학교도 아니고 겨우 중학교였다.
'덕분에 최고의 시설에서 훈련을 하고 있으니 좋은거지만...'
그래서 유성은 미래 고등학교로 진학할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과거에도 미래고로 갔었고, 비록 타자지만 그곳의 시설을 마음껏 사용했기 때문이었다.
"이런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됬네. 미안, 다시 훈련하러 가야해."
"응, 잘해!"
"고마워. 너도 이만 들어가봐. 첫날이니까 푹 쉬어."
"그래, 고마워."
감독과 코치들이 예상보다 빨리 회의를 마쳤기에 이야기를 길게 하지는 못했다.
세연이 숙소로 향하는 것을 보았기에 유성은 더 이상 관중석쪽을 신경 쓰지 않았다.
그리고 이제 본격적인 훈련이 시작되었다.
물론 유성이 신경 쓰지 않는다고 해서 관중석에 있는 사람들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었다.
팡!
"137km라..."
"잘못 봤던게 아닐까요?"
"아니, 연습이라서 힘을 빼고 있는거겠지. 이 학교는 시설도 그렇고 여러가지 설비가 프로팀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지라 전광판도 프로에서나 쓸법한 고급형이거든."
"그렇다면..."
"오차 범위를 감안해도 140km는 확정이지. 운 없으면 143이나 144가 나올 수도 있고."
유성의 투구 훈련을 보고 있는 사람은 1,2명이 아니었다.
평소라면 교문이 닫혀있을 확률이 높기에 이렇게 지켜보기 힘들지만 오늘이 마침 개학식 날이다보니 외부인에 대한 제제가 없는 상황이었다.
거기다가 미래 중학교 입장에서 유성이라는 괴물을 숨길 필요가 전혀 없었다.
단순히 유성의 연습 투구만을 보았는데도 고개를 젓고 있는 스카우터들이 수두룩했기 때문이었다.
"박유성은 이미 1학년때부터 130km를 던지는 것으로 유명했습니다. 2학년때 137까지 구속이 올라왔고, 올해는 아직 봄대회가 시작도 안했는데 142까지 구속이 나오고 있죠."
"터무니 없이 빠른 성장이군."
기본적으로 유성은 타자로 메이저리그에 진출했을때도 4시즌 연속 전경기 출전이라는 기록을 세울 정도로 튼튼하고 강인한 몸을 자랑하기도 했었다.
"고등학교에서 엄청나게 노리겠어."
"평범한 선수도 아니고 에이스 역할을 하고 있는 선수이니 미래고로 갈 확률이 높지만요."
"이럴때 보면 미래 커넥션이 참 부럽단 말이지."
뭔가 남는것이 있을까라는 생각으로 유성을 더 지켜보았으나 이제는 마땅히 나올 것이 없었다.
그래서 그들은 시선을 2선발인 지훈으로 돌렸다.
팡!
"나이스볼!"
3월이 되며 지훈도 구속이 제법 올라온 상태였다.
아무리 유성이 강력한 모습을 보여도 보통의 대회가 그렇듯 일정이 빡빡한 면이 강하기에 에이스를 받쳐줄 2선발이 매우 중요했다.
"저 친구는?"
"2학년때부터 박유성과 함께 두각을 보였던지라 저 친구도 미래고가 유력합니다."
"...탐나는 선수는 이미 미래고로 가는게 확정이거나 유력하고, 나머지도 무리해서 데려갈 정도는 아니니 아쉽군."
냉정하게 상황 판단을 하며 물러나는 고등학교도 있었지만 반대로 죽이 되든 밥이 되든 들이대는 고등학교도 있었다.
물론 미래고의 훈련 설비와 시스템이 어떠한지 중학교와 회귀 전의 기억을 통해 잘 알고 있는 유성은 그보다 떨어지는 학교에 갈 이유가 전혀 없었다.
"죄송합니다. 전 미래고로 갈 생각이거든요."
"아니, 그래도..."
"우리 선수가 분명하게 거절했는데 자꾸 그러실껀가?"
"장감독..."
"아무리 그래도 에이스를 노리시는건 아니죠."
"끙..."
여러 고등학교에서의 움직임을 알고 있기에 장감독도 유성 주변을 꼼꼼히 체크해야했다.
어느정도 시기가 지나면 잠잠해지겠지만 그 전까지는 계속 신경을 쓸 필요가 있었다.
"뭐, 걱정마세요. 감독님. 개학식이라 이렇지. 내일부턴 거의 신경 쓸 필요가 없을 테니까요."
"하긴 오늘이 지나면 경기가 있는 날까진 닫혀있겠지."
외부인이 자유롭게 학교에 출입 가능한건 개학식인 오늘이 끝이다.
이후로는 그나마 미래중 출신 정도만이 어느정도 출입이 가능할 뿐이다.
그날 저녁 훈련을 마친 선수들은 기숙사로 돌아가며 학교의 문이 닫히는 것을 보았다.
그것이 말하는 것은 간단했다.
이제 새로운 학기가 시작된다.
***
다시 몇주가 흘렀다.
본래라면 이때부터 치루어지는 연습 경기에서 에이스인 유성이 선발로 나서야겠지만 이미 몇주 전에 있던 경기에서 먼저 선공개가 되었기에 전체적으로 1.5군이 출전 기회를 얻게 되었다.
"하암~"
"잠 못 잤냐?"
"자다깨다 자다깨다..."
"제일 끔찍한 케이스네."
유성이나 몇몇 주전급들은 벤치에서 구경하는게 오늘의 일이었다.
반면 오늘 유성 대신 나선 지훈이나 대체가 불가능한 강혁은 그라운드에 나가 있었다.
팡!
"지훈이도 이젠 135km는 가볍게 던지네."
"그러게. 유성이가 워낙 임팩트가 넘쳐서 그렇지. 지훈이도 작년이랑 비교하면 엄청 빨라졌어."
'분명 괴롭힐려는 의도였는데...'
세연과의 일 때문에 유성은 지훈에게 자신의 훈련법을 알려주겠다며 합법적으로 지훈을 굴렸다.
그러나 예상 외로 지훈이 그 혹독한 훈련을 버텨내더니 오히려 흡수하기 시작한 것이었다.
유성도 손 꼽히는 천재였지만 그것은 지훈도 마찬가지였던 것이었다.
다시 말해 한 팀에 천재가 2명이 존재하고 그 둘 모두 투수라는 점이었다.
'하긴 그 당시에 두 선발 중 하나가 사라졌는데도 우승을 거두었으니...'
냉정하게 따지자면 지훈의 타격은 좋지 않았다.
유성이 조금 더 투수로써 좋은 모습을 보였기에 에이스가 된 것이기는 하지만 만약 둘의 실력이 동일했다면 타격 실력으로 에이스가 정해졌을게 분명했다.
"...그나저나 너무 굴렸나."
훈련량이 늘어나서 그런지 몰라도 아직 한계 투구수가 멀었는데도 지훈은 힘이 떨어진듯한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불펜에 대기하고 있는 투수들의 면면을 본다면 어쩌면 마지막 1이닝 정도는 자신이 나서야할지도 모르는 상태였다.
예상대로 지훈이 체력 저하로 인해 6이닝을 채우지 못하고 마운드에 내려갔고, 첫 불펜 투수가 마운드에 올라갔다.
동시에 유성은 마지막 1이닝에 대한 부탁을 받고 마운드에 올라갈 준비를 하기 시작했다.
"오늘은 불펜이야?"
"그래. 그래도 이제 6회 말로 넘어갔으니 느긋하게 준비해도 될꺼야."
"당연히 그래야지. 니 140짜리는 피칭머신이 던지는 것보다 더 아프다고."
사실 이전까지의 유성은 단순히 구속만 빠른 투수였다.
나름의 제구력이 있기에 경기마다 적당한 성적을 보여주었지만 구위와 체력이 모자라서 1경기 4홈런을 맞은적이 있을 정도였다.
그러나 회귀 이후부터 지속해온 훈련 덕분에 구위와 체력이 보강되기 시작했고, 지금 시점에서는 구속, 구위, 체력을 모두 갖춘 투수가 되었다.
제구는 어쩔 수 없는게 안쪽, 바깥쪽만 제대로 넣기만 해도 중학교 수준에서는 추풍낙옆이기에 아직은 신경 쓸 필요가 없었다.
"다 풀렸냐?"
"그래."
생각에 빠져있던 사이에 어느덧 9회 초가 되며 유성이 마운드에 오를때가 되었다.
점수 차이가 좁혀지기는 했지만 여전히 5점 이상의 차이가 유지되고 있기에 세이브 상황은 아니었다.
"올해 미래중은 강하군요."
"성적보단 육성을 통해 미래고에 좋은 선수를 보내주는게 1순위니깐요. 올해는 다른 해보다 더 뛰어난 녀석들이 많은 것 뿐입니다."
빈말은 아니었다.
유성, 지훈의 원투펀치도 그렇고, 강혁이라는 독보적인 공수겸장의 만능형 포수도 이미 입학할때부터 각자의 잠재력이 조금씩 색을 보이고 있었다.
그렇기에 장감독은 이 선수들이 3학년이 되는 올해를 기다려왔다.
아무리 육성 중심이라지만 그도 성적에 대한 욕심이 있기에 이렇게 압도적인 전력이 구축 되었을때 트로피를 획득할 생각이었다.
"그나마 아쉬운건 불펜 정도인듯하군요."
"아무래도... 그렇습니다."
"뭐, 그 정도는 다른 학교에서 스카우트를 해오면 되니깐요."
그러는 사이에 140을 넘나드는 포심을 앞세운 유성은 6회부터 준비했던 것이 무색하게 단 7개의 공으로 이닝을 그리고 경기를 마무리해버렸다.
"깔끔하군요. 스카웃이 실패하면 1학년땐 클로저로 활용해볼까 싶기도 하네요."
"그것도 나쁘지 않죠. 선발로 나갈 때와 불펜으로 나올 때의 차이를 잘 조절하기도 하니깐요."
들으면 들을수록 보면 볼수록 만능형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전까지 구속 원툴의 투수였다면 올해 들어와서는 구속, 구위, 체력 그리고 멘탈까지 충분히 먹혀들만한 재능이었다.
"슬슬 우리 미래고에서도 괴물을 프로에 배출할때가 되기는 했죠."
"그렇죠. 기대만큼만 커줘도 프로에 큰 파문을 일으키겠죠."
"어느정도 수준으로 기대하는지요?"
"최소 155km는 되어야죠."
"상상만 해도 엄청나군요."
현 한국프로야구에서 155km를 던지는 투수는 손으로 꼽을 수 있을 정도 밖에 안된다.
그리고 선발로 뛸 수 있는 선수는 0이나 다름 없었다.
"메이저리그에는 아예 165km가 넘는 공을 던지는 투수도 있다던데..."
"네. 분명히 존재하죠. 다만 그 투수도 모자란 점이 있기에 선발로 뛰기는 힘들겁니다."
"그렇군요. 그 투수와 차이점을 둔다면..."
"제3의 구종을 익힐 필요가 있겠죠."
"3의 구종이라..."
현재 유성이 던질 수 있는 공은 포심과 체인지업.
그마저도 최근 터득한듯한 완급조절 덕분에 4,5개의 구종을 던지는 듯한 착각을 주고 있었다.
그러나 완급조절을 아무리 잘해도 결국 2개의 구종 뿐이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기 때문에 3번째 구종을 위한 준비를 하기 시작한 두 감독이었다.
"단조로운데..."
직접 공을 던지고 있는 유성도 2개의 구종으로는 한계가 있다는걸 진작에 파악하고 있었다.
문제는 과거로 돌아오기 전의 자신은 이 두 구종을 제외하고는 던져본 구종이 없었기에 마땅이 던질만한 공이 없었다.
'구속이 더 올라간다고 가정하면 완급조절로도 충분히 아마추어 단계에서는 충분히 할만할꺼야. 하지만...'
프로는 다르다.
짧게는 2,3년에서 길게는 10년 이상을 프로라는 세계에서 활동해온 선수들에게 2개의 구종으로 덤비는 것은 무모하다못해 자만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나마 다행인건 프로 입문까지 4년이나 남았다는건데... 2년에 하나씩 배우면 될려나?"
"뭔 생각하냐?"
"어, 다른 구종을 추가할까 싶어서 말이야."
"새 구종? 지금도 까다로운데 새 구종이라..."
"못 받겠다는건 아니지?"
"그건 니가 얼마나 완성도 높은 공을 던지느냐에 달렸지."
그 말을 듣고 유성은 피식하고 웃었고, 강혁도 그런 유성을 보다가 결국 자신도 웃기 시작했다.
"흐흐흐, 내가 봐온 투수 중 니가 제일 쩐다."
"야구 6년 밖에 안 한 녀석이 뭐래."
"그렇게 따지면 너도 5년 밖에 안 됬잖아?"
"박유성, 김강혁."
"네!"
"추가 훈련이라도 받고 싶나?"
"아닙니다!"
"그럼 얼른 기숙사로 들어가서 쉬도록"
"네!"
가볍게 한 소리를 듣기는 했지만 자신들이 꾸물거린 것이기에 유성과 강혁은 빠르게 기숙사로 돌아갔다.
그렇게 유성과 강혁을 마지막으로 선수들은 각자의 방에 들어갔고, 오늘 경기를 승리를 거둔 덕분에 하루를 기분 좋게 마무리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