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
Chapter 2 - 애송이들 (1)
"7이닝 무실점 13K 1사사구라... 그러면서 투구수는 80개가 안되고?"
"무작정 140만 던진게 아니라 체인지업도 던지고 포심 구속을 130 초반까지 낮추며 맞춰잡는 피칭을 하기도 했습니다."
"완급조절까지 갖추었다라..."
무려 142km를 던지는 괴물 중학생의 등장으로 단번에 중학교는 물론 고등학교에서도 이목이 집중 되었다.
유성이 다니는 학교가 어디인지 알고 나서 금방 관심을 접은 곳도 있지만 여전히 많은 학교가 이목을 집중하고 있었다.
중학교들은 차후에 있을 대회에서 유성의 학교와 맞붙을 경우를 고려해야하지만 고등학교들의 경우 차세대 에이스를 구할 수 있다는 생각으로 유성에게 집중하였다.
마침 중학교 3학년이라는 나이를 감안한다면 내년에 자신들의 학교로 데려온다면 전력으로서 최고가 될게 분명했다.
학교 밖에 어슬렁 거리는 그들의 모습을 확인한 몇몇 선수들이 유성이 있는 교실로 찾아와서 이 소식을 유성에게 전달 하였다.
"벌써 다른 학교 스카우터 비스무리해보이는 아재들 깔린거 같지?"
"어차피 고등학교는 정했잖아?"
"당연하지. 우리학교 기숙사가 너무 편해."
유성이 다니고 있는 학교의 이름은 미래 중학교.
이 학교는 세계적인 초거대 기업이 모기업으로 존재하는 호화라는 말이 붙을 정도로 뛰어난 시설을 자랑하는 사립 학교였다.
중고등학교는 물론 초등학교와 대학교까지 연계 되어 있었고 모기업이 워낙 크다보니 그로인해 만들어져 있는 커넥션도 보통이 아니었다.
"모기업 회장님께서 말씀하셨지."
"응?"
"'난 학생들의 미래를 위해 이 학교를 만들었습니다. 그렇기에 이 학교의 이름은 미래로 정하려고 합니다.' 라고 하셨지."
"...이걸 외우는 사람이 있던가?"
"가끔 머리 좋은 애들은 외우더라."
"아하..."
스포츠나 예체능 방향인 다른 학생들과 달리 공부 분야로 들어온 학생들은 차후 모기업의 사원으로 갈 확률이 높았기에 모기업 회장의 팬클럽이 따로 동아리로 만들어져 있기도 할 정도였다.
"가끔은 아이돌 팬들보다 쟤들이 더 무서워."
"그렇지. 작년 축제때 일만 생각해도..."
"어우, 그거 완전 트라우마 됐잖아."
물론 단순히 미래 고등학교, 대학교를 나왔다고 무조건 취업이 되는 것은 아니었지만 확률이 높아지는 것은 사실이었기에 새로운 학년이 시작된 오늘도 전학생이 1명 존재했었다.
"또 전학생이야?"
"올해 1호 전학생이지?"
"우리 1,2학년때도 개학부터 오지는 않았는데..."
"그나저나 왜 우리반으로 왔지? 반이 15개나 되는데?"
"이제보니 1/15의 확률을 뚫고 온거네?"
앞서 말했듯 워낙 인기가 많은 학교이다보니 열성적인 학부모들은 어떻게든 이 학교로 자신들의 자녀를 밀어넣으려고 애를 썼고, 400명 정원에 들어가지 못하자 전학이라는 루트로 어떻게든 들어온 것이었다.
덕분에 1학년 시작할때 400명이던 인원은 3학년이 시작한 지금 시점에선 450명을 넘어간 상태였다.
"이런걸 보면 우리학교가 대단하기는 해. 전학생들 올꺼 감안해서 아예 16개 반을 준비해놨잖아?"
"애초에 모든 비용이 장학금이니까 어떻게든 들어오고 싶은거지."
아무튼 반이 15개나 되다보니 야구부는 1반에 1,2명씩 나누어져있었고, 유성은 지훈과 같은 반이 되었다.
그렇기에 지훈과 잠시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에 새 담임이 들어왔다.
"익숙한 얼굴이네."
"그러게. 그런대 전학생 안 왔나?"
"들어오네."
"응?"
보자마자 심쿵하며 한눈에 반했다던가 그런 이야기는 아니다.
하지만 시선을 땔 수는 없었다.
그만큼 아름다운 여자아이가 교실에 들어오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메이저리거로 살면서 많은 미녀들을 봐왔던 유성도 한순간 시선을 때지 못할 정도였으니 나머지는 말할 것도 없었다.
그나마 유성이 빠르게 정신을 차렸을때 칠판에는 이름 세 글자가 적혀 있었다.
'진세연'
"그러면 세연이는... 저기 창가쪽에 빈자리로 갈래?"
"네, 선생님."
"응?"
유성이 이름을 확인하는 사이에 세연은 창가쪽의 빈자리.
즉, 우연히 비워져있던 유성의 옆 자리로 왔고, 유성에게 인사를 건냈다.
"안녕? 난 진세연이라고 해."
"아, 난 박유성이라고 해. 앞에 이 녀석은 김지훈이라고 우리 둘은 야구부야."
"야구부? 아! 작년 올림픽때 금메달 땄지?"
여기서 작년 올림픽이라고 하면 2008 베이징 올림픽을 이야기하는 것이었고, 유성을 비롯한 모두가 잘 알고 있는 대회였다.
오죽하면 작년 올림픽 금메달 이후 갑자기 입부 신청이 생겼을 정도였다.
"대단한 선배님들이지."
"흐응~ 그럼 유성이 넌 투수야 타자야?"
"어? 투수인데..."
"정말? 사실 우리 사촌오빠도 야구하거든. 그것도 투수."
"아 그래?"
세연과 대화를 나누는건 예상 외의 일이었지만 지루할 틈은 없었다.
그럴 수 밖에 없는게 세연은 생각 이상으로 야구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
덕분에 유성과 세연은 틈만 나면 야구 이야기를 했고, 간간히 지훈이나 옆반에서 찾아온 강혁, 철민 등과도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다.
"으어어어어... 드디어 끝났다."
"이제 훈련하러가?"
"개학날이라 일찍 끝났으니까 당연히 훈련하러 가야지."
"그럼 구경하러가도 돼?"
"글쎄... 기숙사는?"
"어제 정리 다 해놨어."
"그럼 괜찮겠지."
운동부는 특성상 기숙사가 거의 필수지만 나머지 학생들 특히 공부로 들어온 학생들은 달랐다.
물론 예외라는 것은 항상 존재했는데 세연도 그 예외 중 하나인듯 했다.
"그러면 기숙사에 짐 놔두고 옷 갈아입고... 아 우리 훈련장 어디인지 알아?"
"아니. 어제 학교를 둘러보긴 했는데 운동부 쪽은 못 가봤어."
여기서 잠깐 학교 구조를 설명하자면 학생들이 수업을 받는 본관을 중심으로 위로는 1천명이 넘는 중학생들과 교직원들을 담당하는 식당이 존재하고, 좌측에는 1천명 가까운 인원이 수용 가능한 기숙사가 존재했다.
거기서 더 가면 운동부들을 위한 각종 시설들이 존재했다.
참고로 기숙사 앞에는 제법 큰 분수대가 있었다.
"그럼 기숙사 앞 분수대에서 만나자."
"그래."
중간까지는 같이 가더라도 남녀 기숙사는 건물이 분리 되어 있었기에 잠시 헤어진 유성과 지훈 그리고 세연이었다.
세연이 먼저 기숙사로 들어가고 유성과 지훈은 남자 기숙사로 움직였다.
"어때?"
"뭐가?"
"세연이."
"겨우 몇시간 이야기한거지만 이쁘고, 착하고 보니깐 성적도 좋던데."
"그렇지? 그렇다면 우리 에이스는 저 여자애를 어떻게 생각하시나?"
"뭔 뚱딴지 같은 소리야."
"하긴... 넌 전에부터 여자 문제에는 냉정했지."
전부터라고 한다면 1학년이나 2학년때 이야기일꺼다.
지훈과 알게 된게 중학교에 들어온 이후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유성은 지훈이 저런 이야기를 하는 이유를 떠올리지 못했다.
"모르겠다는 표정이네. 아차, 내 방은 여기가 아니라 옆이지."
"좀 있다보자."
"그래, 그때도 생각 못하면 제대로 이야기해주마."
방 안에는 아무도 없었다.
애초에 방에서 할만할 일이 딱히 없었기에 유성은 빠르게 옷을 갈아입고 기숙사 밖으로 나갔다.
잠시 기다리자 지훈이 먼저 나왔고, 지훈은 아직 세연이 없다는 것을 확인하고는 유성이 앉아 있는 벤치에 앉아서 방금의 주제를 계속해서 이어갔다.
"1학년때 여자애들이 4명이나 있었지. 4명 다 그때나 지금이나 인기가 적든 많든 있는 애들이지. 그 중 하나는 내 취향이기도 하고."
"..."
"아, 미안. 암튼 그 4명이 순차적으로 너한테 고백했는데 우와... 그렇게 냉정할줄은 몰랐지. 덕분에 2학년때는 잠잠하나 했더니 겁 없는 애들 5명이 또 고백하더라."
"그리고 또 내가 차고?"
"그렇지. 무려 9명이나 거절한 덕분에 1학년때 니 별명이 얼음 왕자였는데 2학년땐 아예
프로즌킹이 됐잖아. 아, 물론 넌 이 별명을 모를텐데 야구부 애들도 2학년 막판에 알았던거고 딱히 여자 관련 이야기 할 틈이 없었는데..."
"내가 10번째일지도 모른다고?"
"으악! 깜짝아!"
갑자기 튀어나온 세연으로 인해 지훈은 반쯤 정신줄을 놓아버렸고, 사복으로 갈아입고 온 세연은 유성과 지훈이 앉아있는 벤치에 앉았다.
아직 날이 춥다보니 세연은 패딩에 긴 치마를 입고 있었다.
'아니, 지금 중요한건 이게 아니지.'
그렇게 생각하며 유성은 지훈이 왜 이런 이야기를 했는지 파악했고, 세연이 오해를 안하도록 조금씩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난 여자에 관심이 없는게 아니라 성공하기 전에는 관심을 안 가질려는거야."
"추하다... 악!"
"후훗. 너희 정말 친하구나?"
뜬금 없이 끼어들려는 지훈을 가볍게 응징하고 있을때 세연의 이야기를 들은 유성은 슬쩍 지훈을 보고 고개를 저었다.
과거로 돌아오기 전에도 지훈은 베프였다.
그것은 지금도 변하지 않는 사실이었다.
다만 지훈이 진지하다가도 가끔 정신줄을 놓은것 같은 모습을 보였기에 일부러 고개를 저었다.
"이 녀석! 날 배신하는거냐!"
"뭔 소리야."
고개를 저었지만 이러한 모습 덕분에 세연은 다 알겠다는듯한 표정으로 두 사람을 쳐다
보았다.
그렇게 가만히 있는가 싶었으나 시간이 제법 지난 것을 깨달은 유성과 지훈은 세연에게 양해를 구하고 달리기 시작했다.
"시간을 너무 낭비했어!"
"그러게 니가 쓸때 없는 소리만 안 했어도 벌써 도착했지."
"내가 없는 사실을 말한것도 아닌데!"
그래도 기숙사와 훈련장의 거리가 멀지 않았기에 아슬하게 훈련 시간에 맞춰서 도착을 할 수 있었다.
그리고 유성과 지훈의 도착을 끝으로 야구부의 훈련은 시작되었다.
***
"우엑..."
"뒤지겠네..."
"개학식부터 죽는다 죽어..."
"아, 어지러."
미래중학교 야구부의 훈련은 혹독하기로 유명했다.
훈련을 많이 한다고 할 정도는 아니었지만 그만큼 훈련의 밀도가 높았다.
게다가 이 과정을 통해 단련된 수 많은 선수들이 고등학교와 대학교 그리고 일부는 프로에서까지 활약을 펼치고 있었다.
그러다보니 선수들은 어떻게든 이 훈련을 모두 소화하겠다는 의지를 보이고 있었다.
다만 겨울 사이에 크게 발전을 한 유성은 이제 이정도 훈련은 가쁜하다는듯한 모습을 보이고 있었기에 코치진 사이에선 고민이 있었다.
"이거 참... 저렇게까지 가뿐하게 소화할줄은 몰랐는데 말이죠."
"좋은게 좋은거죠. 다른 선수도 아니고 에이스가 저렇게 기량이 좋아졌다면 올해는 오래간만에 우승을 거둘 수 있다는 이야기니까요."
야구가 투수 혼자서 하는 종목이 아니라지만 그래도 투수의 영향력은 막강하다.
게다가 유성은 단순히 투수로서만 뛰어난 것이 아니라 타자로서도 영향력을 보여줄 정도의 실력을 갖추고 있었다.
그러다보니 본격적으로 경기를 치루게 되면 유성을 몇번에 놔두느냐도 코치들 사이에서는 큰 화두였다.
"뭐, 연습경기라는게 이런저런걸 시험해보는 자리니까요. 그때 조금씩 실험해보도록 하죠."
"역시 그게 편하겠죠."
그러는 사이에 휴식을 취하고 있던 유성은 관람석에 세연이 있는 것을 발견하고 코치들의 위치를 파악했다.
다행스럽게도 코치들은 회의에 들어갔기에 그라운드에 보이는 사람은 없다.
또한 휴식 시간이기에 잠깐 정도의 여유는 있다.
생각을 정리한 유성은 슬쩍 세연에게 다가갔다.
그리고 지훈은 그런 유성을 보고 은근슬쩍 선수들에게 이야기를 퍼트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