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
Chapter 1 - 적응 (2)
마운드에 오른 유성은 가볍게 몸을 풀며 공을 던질 준비를 했다.
그러면서 자신의 구속을 예상해보았다.
'작년 최고 구속이 137이라고 했던가...'
투수로서 공을 던진것 자체가 이미 수십년 전의 일이었기에 정확한 상태도 기억이 안 나는 유성이었다.
하지만 겨울동안 꾸준히 쌓아온 기반이라면 달라질 수 있었다.
"그럼 던진다."
"얼마든지."
공을 받는건 당연히 이번에 3학년이 되며 주전 포수가 된 강혁이었다.
자세를 잡은 유성은 천천히 다리를 들어올렸고, 빠르게 다리를 앞으로 뻗었다.
그리고 거의 동시에 팔, 어깨, 상체를 움직여서 손에 쥐고 있는 공을 던졌다.
팡!
공이 미트에 들어가며 큰 소리가 났고, 불펜에 있는 선수들의 이목은 그곳으로 향했다.
그리고 구속을 측정하고 있던 코치는 놀람을 감추지 못했다.
"이건... 유성아 잠깐만 기다려봐라. 감독님!"
"왜 그러는가?"
"구속이..."
140km
작년 최고구속보다 무려 3km나 더 빨라졌다.
그것을 확인하자 다시 한번 모두의 이목이 유성에게 집중되었고, 유성은 그런 시선을 느끼며 빠르게 2번째 공을 던졌다.
"139km."
"투구폼이 조금 바뀐거 같지 않나?"
"네? 투구폼이요?"
멀지 않은 거리였기에 그 소리를 들은 유성은 이번에는 조금 천천히 동작을 가져갔다.
덕분에 구속이 136km까지 내려오기는 했지만 이제는 확실히 알 수 있었다.
"잠깐 멈춰봐라. 유성아, 투구폼을 건드렸니?"
"살짝요. 정확히는 발을 조금 더 뻗고 몸이 더 돌아가도록 했어요."
발을 조금 더 뻗는 것으로 포수 미트까지의 거리를 조금이나마 줄였고, 상체 회전을 늘린 것으로 힘을 더 실어넣을 수 있도록 만들었다.
"방학동안 피칭은 금지였을텐데..."
"당연히 공은 안 던졌죠. 하지만 쉐도우피칭을 하는건 문제 없잖아요?"
"그렇기는 한데..."
그런 유성의 대답에 감독이나 코치나 감탄을 감출 수 없었다.
그들도 나름의 선수 경력이 있었고 보는 눈도 있기에 단 3번의 투구만으로도 유성의 새로운 투구폼이 얼마나 높은 완성도를 가지고 있는 것인지 알 수 있었다.
"어떻게 생각하나?"
"큰 변동을 주지 않고 이런 효과를 가져왔습니다. 제구는 좀 더 확인해봐야겠지만 유성이가 에이스로 나설듯 합니다."
"역시 그런가."
이게 올해 첫 피칭이었다.
그런대 벌써부터 최고 140이 나온다는 점에서 생각보다 빠르게 경기를 잡을 필요성을 느꼈다.
"원래 일정대로라면 3월이 되어야 경기를 치뤄야겠지만... 벌써 저정도라면 1주일 정도 당겨보죠."
"아직 날이 덜 풀렸으니 남부 지방으로 찾아주세요."
"알겠습니다."
유성은 단 2개의 구종만을 가지고 있었는데 하나는 포심이었고, 다른 하나는 체인지업이었다.
물론 이것도 과거로 돌아오기 전까지의 이야기였다.
이미 140km라는 중학교 수준에선 강속구를 넘어 광속구 취급을 해도 무방한 공을 가졌기에 유성은 힘을 조절하기 시작했다.
'지겹게 당해왔던 완급조절을 내가 쓰게 될줄은 몰랐군.'
완급조절이라는 것은 간단하게 이야기하자면 빠른 공, 느린 공, 더 느린 공을 던지는 것인데 쉽게 말해 구속을 조절하는 것을 말하는 것이었다.
유성을 예로 들자면 130, 135, 140km의 공을 던지는 것이었다.
"체인지업도 120에서 더 낮춰볼까..."
공 던지는 것 자체는 오랫만이지만 몸이 감각을 기억하고 있기 때문에 유성은 금방 체인지업의 구속을 115km까지 끌어 내릴 수 있게 되었다.
사실 유성의 이러한 행동은 대단히 놀라운 것이었는데 단순히 구속만을 낮추는 것이 뭐가 어렵겠나라고 할지도 모르지만 실상을 알아보면 프로에서도 이런 세밀한 컨트롤이 하지못하는 투수들이 많았다.
당연히 그 과정을 지켜보던 감독과 코치들은 올해 많은 우승 트로피를 들 수 있을 것이라고 확신했다.
"나이스 볼!"
"좋아. 오늘은 여기서 끝내도록 하자. 휴식 시간을 가진 뒤에 그라운드로 나오도록 해라."
"네!"
그렇게 투수들의 피칭 테스트가 종료되고 이어진 것은 투수들의 타격 테스트였다.
지명타자 제도가 없는 아마 야구였기 때문에 투수들도 타격 연습을 해둘 필요가 있었기 때문인데 이번에도 유성은 이목을 집중 받아야했다.
"다시는 타격을 안 할줄 알았는데..."
과거로 그것도 아마추어 시절로 돌아왔으니 타격도 필수였다.
그렇기에 방망이를 잡은 유성은 생각보다 날아오는 공들을 치는게 쉽다고 느껴졌다.
20년 넘게 프로에서 생활하면서 쌓여왔던 경험에서 비롯되는 것이었는데 덕분에 유성은 시작부터 날아오는 공들을 가볍게 받아쳤다.
"유성이가 타격을 이렇게 잘했나?"
"아니요. 따지자면 평균 수준이었습니다."
"겨울 사이에 투구에 이어 타격까지 발전했다니..."
"포텐이 터지고 있는걸까요?"
"그건 아니야. 하지만... 지금의 훈련은 큰 의미가 없겠군."
결국 유성은 별개의 훈련을 추가로 진행하게 되었다.
이전까지는 그저 팀에서 손 꼽히는 선수 중 하나였다면 이제는 팀에서 가장 중요한 요주의 선수가 된 것이었다.
"이거 특별 대우인가?"
"특별 대우라면 특별 대우지."
"넌 또 왜 여기 왔냐?"
"겨울에 너랑 같이 훈련했다니깐 보내버리더라."
의도하지 않게 강혁까지 추가 훈련을 받게 되었다.
같이 훈련한 멤버는 더 있지만 그들은 따로 이야기를 안 한듯 했다.
애초에 그들보다 강혁이 조금 더 유성의 훈련을 더 잘 소화하기도 했기에 납득할만한 일이었다.
"호오... 인터넷에서 찾아낸 메이저리그 훈련법이라고?"
"아 철민이냐."
"그래, 나다."
"이렇게 보고 있어도 되냐?"
"우린 이제 휴식 시간이거든."
"부럽구만."
지금 추가로 하고 있는 훈련의 목적은 분명하다.
겨울 사이에 급격히 성장했던 선수들은 전부 거쳐갔던 과정이기 때문이다.
"1학년때 지켜봤던걸 우리가 하게 될줄은 몰랐네."
"우리 학교가 역사는 짧아도 시스템은 최고이니 좋게 생각하자고."
"그렇지. 학교 규정이 빡시기는 한데 그만큼 시설은 최고이니..."
겨우 중학교 단위에서 전용 구장을 갖추고 있는 학교가 과연 몇곳이나 될것인가로 많은 이야기가 있었지만 그들의 학교는 거의 유일한 학교라고 할 수 있었다.
물론 미국 같은 곳과 비교하면 이야기가 달라지겠지만 한국에선 독보적인 곳이었다.
"중요한건 그게 아니지. 이 훈련을 한다는건 이 둘은 올해 대회에서 주전으로 확정이라는 소리이기도 하니깐."
"생각해보니 그렇네?"
앞서 말했듯 1학년때 선배 선수들이 이 훈련을 하던 것을 보았고, 그 선수들이 어떤 활약을 펼쳤는지 잘 보았기 때문에 에이스와 주전 포수 자리가 정해진 것이 확실했다.
그것은 2선발을 비롯한 나머지 포지션의 경쟁이 더욱 심화가 되었다는 이야기이기도 했는데 그렇기 때문에 선수들은 이미 공지된 연습 경기 날까지 매우 치열한 경쟁을 펼치며 그날을 위해 몸 상태를 끌어 올리고 기량을 발전 시켰다.
빠르게 시간이 흘러 2월 27일
새로운 학년이 시작하기까지 바로 3일 전에 첫 경기를 치루게 되었다.
"이보게, 장감독. 왜 작년보다 빨리 경기를 잡았는가?"
7,8개 정도의 크고 작은 대회들을 치루는 고등학교와 달리 규모가 상대적으로 작은 중학교에서는 4개의 대회만을 치루었다.
그리고 첫 대회는 4월 말에나 있었기에 예년 같으면 3월 중순쯤부터 연습 경기가 시작 되었을텐데 올해는 그걸 2주 정도나 앞당긴 것이었다.
"올해 괴물이 하나 나왔거든요."
"괴물?"
"저기 따로 훈련 중인 투수랑 포수 있죠?"
"어디? 과연... 다시 대권 시즌이 돌아온거로군. 좋네, 오늘 경기 결과를 봐야 알겠지만 올해는 조금 더 지원 해주겠네."
"그러면 감사하죠."
'이 학교는 이래서 좋단말이지.'
감독이 되기까지 서류 심사와 2차례에 걸친 면접을 봐야했지만 이후로는 계약 기간까지
전권을 보장해주고 있었다.
심지어 성적 부담도 없었는데 사립학교라는 특성과 중학교와 고등학교가 근접해있다보니 연결성을 가지고 선수 육성을 진행하기 때문에 중학교는 철저하게 육성에 중점을 두고 있었다.
"덕분에 트로피는 부가적인게 되었지만..."
그래도 계약기간동안 3개의 트로피를 들어올렸고 올해 전력이라면 다시 몇개를 더 들어 올릴 수 있게 되었기에 충분히 만족할 수 있었다.
그리고 올해 간만에 들어올릴 트로피를 위한 초석이자 기둥이 바로 유성이었다.
"왠지 귀가 가려운데..."
"왜?"
"그걸 내가 어떻게 알어."
시간 때우기에 불과한 하지만 시선을 돌리기에는 확실한 잡담을 나누며 유성과 강혁은 작년보다 빨라진 첫 경기를 준비하고 있었다.
상대는 경상도에서 손꼽히는 강팀 중 하나였다.
그 팀의 멤버들을 조금 떠올리며 계속해서 준비를 이어갔고, 이내 경기 시간이 다가오게 되었다.
이제 괴물의 등장을 알릴때가 된 것이었다.
경기가 시작 되기 전에 마지막으로 선수들은 한 자리에 모였다.
"원래라면 남부로 원정을 가는게 맞지만 그쪽에서 여기서 경기를 치루는걸 조건으로 걸었기에 우리 홈구장을 사용하기로 했다."
"왜 여기서 한데요?"
"자신감이 과한거지. 원정을 와도 우리에게 이길 수 있다나 뭐라나..."
이정도면 충분하다.
육성 중심의 팀이라고 해도 기본적으로 잠재력이 충만한 선수들이었다.
얼마든지 그들을 박살낼 전력은 되었다.
"미리 이야기 했지만 오늘 선발은 유성이다."
"네!"
"긴장하지 말고 침착하게 던지도록 해라. 그럼 선발 라인업을 이야기해주마."
사실 겨울동안 보여준 유성의 타격 능력을 감안하면 4번에 넣어도 어색하지 않았다.
하지만 아직 2월 말 밖에 안되었다는 점을 감안해서 장감독은 유성을 아끼기 위해 9번에 배치를 하였다.
"아무튼 우리가 홈팀이니 선 수비 후 공격으로 진행된다. 다들 글러브는 챙겼지?"
"물론이죠."
"좋아. 가볍게 박살내고 와라."
"네!"
천천히 몸의 근육을 이완시키며 마운드로 걸어가기 시작한 유성은 선발로 나온 선수들의 면면을 확인했다.
과거로 돌아오고 어느덧 2달이 흘렀다.
그 사이에 얼굴이란 얼굴은 다 익혔기에 오늘 선발 멤버가 전원 3학년이라는 사실을 깨닫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리지는 않았다.
대신이라고 해야할까 벤치에 앉아있는 지훈이 보였다.
올해 팀의 2선발이 유력한 녀석이다보니 오늘 경기에서는 불펜으로 나올 확률이 높았다.
왜냐고 묻는다면 새 학기가 시작되는 시기이다보니 경기 일정을 잡기 힘들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다음 경기는 작년과 같이 3월 중순에 잡혀있기 때문이었다.
'정리하자면 이건 날 시험하기 위한 장.'
그렇다면 봐줄 것 없이 페이스를 끌어 올린다.
그리고 녀석들을 찍어 누른다. 아니 박살낸다.
'과거로 돌아왔는데 이 정도는 해야지 않겠어?'
그런 실 없을지도 모르는 생각을 순간적으로 하는 사이에 사인이 나왔다.
구종은 당연한 이야기지만 포심이었다.
심지어 강혁은 한 가운데를 요구 하고 있었다.
"그거 좋네."
양손을 머리 뒤로 올리고 이어서 왼발을 들어 올리며 오른발을 투구판에서 틀었다.
그와 동시에 손을 얼굴까지 살짝 내렸고 몸도 오른발 방향에 맞추어 돌아갔다.
이어서 들어 올린 왼발을 뻗었고, 땅에 디뎠다.
이미 모았던 양손은 떨어져있었고 글러브를 끼지 않은 오른팔은 공을 잡은 채로 앞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굽혀진 팔이 펴지며 나아가기 시작했고, 일정 지점에 도달하자 오른손에 쥐고 있는 공을 놓았다.
팔 위치로 따지자면 유성의 투구폼은 쓰리 쿼터라고 할 수 있었다.
그리고 쓰리 쿼터의 투구폼을 통해 날아간 공은 단숨에 강혁이 요구하는 스트라이크 존
한가운데 들어갔고 상대 타자는 가만히 지켜 볼 수 밖에 없었다.
팡!
그리고 모두의 이목은 전광판에 기록된 구속으로 향했다.
142km
***
"응. 뭐? 142라고?"
"스코어 14대0이라고?"
"7이닝 무실점에 1사사구라고?"
이날 경기 결과는 야구부가 존재하는 거의 모든 중학교에 알려졌다.
괴물의 등장과 함께 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