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
Chapter 1 - 적응 (1)
"잠시만 생각 좀 하자."
분명 그는 죽었다. 당장 눈을 감기 전까지만 해도 피를 흘리며 죽어가던 것을 보았기 때문이었다.
"꿈인가? 아니면..."
"마, 지훈아. 유성이 머리가 이상해진거 아니가?"
"그런가? 아까만 해도 멀쩡했는데?"
그제서야 그를 보고 있던 두 사람의 존재를 알게 되었다.
워낙 오래 전이라 기억이 희미하기는 하지만 중학교 시절 같이 뛰었던 친구들이었다.
그들을 보자 머리가 냉정하게 돌아가기 시작했다.
"지금 몇년이더라?"
"응? 몇년? 뜬금 없이 뭔 소리야... 철민아?"
"2008년."
"2008년? 잠깐만 지금 몇월 며칠이야?"
"진짜 맛 갔나봐. 12월 18일이잖아."
"12월 18일?"
그때 한가지 생각이 뇌리에서 스쳐지나갔는데 과거 사고를 당했던 날은 2008년 12월 19일. 바로 내일이었다.
그렇다면 오늘이 방학식이 있는 날이고, 기숙사 생활을 하고 있는 유성은 방학식 다음 날에 집으로 향하던 버스에서 사고를 당할 예정이었다.
'미래를 바꿀 수 있다.'
많은 피와 땀과 눈물을 흘리게 했던 그 사고를 피할 수 있다. 하지만 유성은 내색하지 않았다.
당장 자신을 보고 있는 두 친구들의 시선이 신경 쓰였기 때문이었다.
"아, 미안. 그런데 무슨 일이야?"
"아. 석식시간이라고 이야기 해주려고 왔다가 우리까지 멍 때리고 있었네."
"난 그럴까봐 숨겨둔 빵 묵었는데."
"언제 숨겨둔거야? 어차피 그래놓고 더 먹을꺼잖아."
"그렇기야 하지."
"그러면 밥이나 먹으러가자."
계속 떠들다간 밥 먹을 시간이 모자랄게 분명하기에 유성은 지훈과 철민을 끌고 식당으로 향했다.
식당으로 향하며 유성은 2008년에 대한 것들이 떠올렸다.
이 시기의 유성과 지훈은 팀의 원투 펀치로 활약하고 있었고, 철민은 주전 1루수로 활약하고 있었다.
그런 상황에서 유성이 사고로 빠지게 되자 팀은 큰 위기를 맞이하고 말았는데 타격에도 재능이 있던 유성이 빠지며 투타 모두 전력이 감소하며 우승 후보로 꼽히던 팀이 추락하고 말았던 것이었다.
식사가 끝난 이후 유성은 그라운드를 보며 생각에 빠졌다.
사고가 일어나던 날 무슨 버스를 몇시 몇분에 탔는 것까지 확실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간단하게 생각하면 그 버스 대신 다음 버스를 타는 방법이 있었다.
"아니야. 그 버스가 아니라 내가 탄 버스가 사고 날 가능성이 있어."
다행스럽게도 내일 바로 기숙사를 비워야하는 것은 아니었다.
2일의 여유기간이 있기 때문에 버스 사고가 나는지 안 나는지 정도만 확인하고 내려가도 충분했다.
아예 기숙사에 남는 선수도 있었지만 그에 맞는 사정이 있는 선수만이 남는 것이기에 유성은 늦게라도 집으로 돌아가야하는 입장이었다.
그렇기에 몇가지 생각을 더 했던 유성은 시간이 늦은 것을 깨닫고 이만 기숙사로 돌아가 잠을 청했다.
다만 수십년간 잊을 수 없었던 일이었기에 쉽게 잠들지 못하였고, 결국 해가 뜰때쯤에서야 유성은 잠이 들 수가 있었다.
그리고 깨어났을때 유성은 그때와 똑같은 시간에 똑같은 버스가 사고가 났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승객을 가득 채운 버스 1대를 포함하여 9대의 차량이 충돌하며 사상자만 50명에 달하고, 사망자는 현재 3명으로 집계되고 있습니다.]
"결국..."
"응? 유성이 너 안 갔냐?"
"어? 아, 늦잠 잤어."
"그러고보니 저 버스 니가 집에 갈때 타던 버스 아니냐?"
"...맞아."
"그래? 다행이네. 늦잠 잔 덕분에 사고를 피했으니깐."
"그게 그렇게 되나?"
"너무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것도 안 좋으니깐."
"강혁이 넌 이번에도 기숙사 잔류냐?"
"그렇지 뭐."
여유롭게 식사를 하며 TV를 보고 있는 김강혁은 유성과도 많은 호흡을 맞춘 절친 중 하나이자 팀의 주전포수였다.
나이에 맞지 않는 진중한 성격을 가지고 있었기에 친구들 사이에선 애늙은이라고 불리기도 했었다.
어찌되었건 중요한건 유성이 평생의 아쉬움을 남긴 사고를 피해갔다는 점이었다.
하지만 유성은 전날 생각했던 만약의 상황을 염두에 두고 있었다.
그래서 유성은 신뢰 할 수 있는 강혁에게 물어보기로 했다.
"사고가 또 날까?"
"아니."
"응?"
"아니, 그럴 수 밖에 없는게 지금 저 버스 자체가 중단 됐어."
"뭐? 아니 그게 무슨 소리야?"
"저 버스 말고 다른거 없으면 집에 못가는거지."
"허..."
전날 밤에 잠을 설치며 생각했던 것들이 전부 무용지물이 되었다.
또한 수십년간 아쉬움을 남겼던 사고마저 피하게 되었다.
터무니 없는 상황들이었기에 허탈감도 느껴졌지만 그래도 사고를 피했다는 것은 좋은 일이었기에 유성은 우선 집에 연락을 해서 이번 방학때는 못 갈것 같다는 이야기를 전했고, 감독을 찾아갔다.
"감독님."
"응? 유성아. 집에 안 갔냐?"
"그게..."
간략하게 버스 사고에 대한 이야기를 알리며 유성은 이번 방학에는 기숙사에 잔류하겠다는 이야기를 감독에게 알려야했다.
사정을 들은 감독은 빠르게 서류 작업을 진행하였고, 유성은 공식적으로 기숙사에 잔류할 수 있게 되었다.
"이번에도 3명이서 노는가 했더니 운 좋게도 에이스가 남았네."
"3명?"
"진표랑 강호도 매년 남아있었잖아."
"아... 그랬던가?"
"...이런 녀석이 에이스라니."
"어차피 주장은 너잖아."
"그렇기는 하지."
아직 확실한 실감이 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과거로 돌아왔다는 사실에 조금씩 익숙해지고 있었다.
과거로 돌아온 3일째 되는 날 유성은 문뜩 깨달았다.
사고를 당하지 않았기 때문에 자신이 멀쩡하게 공을 던질 수 있다는 사실을 말이었다.
그 사실을 깨달은 유성은 공을 던져보고 싶었지만 문뜩 불어온 찬 바람을 맞으며 깨달았다.
"그러고보니 겨울이네."
프로로 생활하던 시절에도 겨울에는 철저하게 휴식을 취하며 다음 시즌을 위한 준비를 해왔었다.
그 시절을 잠시 떠올린 유성은 봄을 기약하며 공을 던지는 것을 뒤로 미루었다.
대신 프로시절에 배우고 체득했던 20,30년 뒤의 훈련 방법들을 조금씩 시도하기 시작했다.
"뭐하냐?"
"훈련."
"이건 처음보는 훈련인데?"
갑작스러운 질문이었지만 수십년간 쌓아온 유성의 처세술은 문제 없이 그 질문을 해결 할 수 있도록 해주었다.
"인터넷을 보다가 우연히 찾은 메이저리그의 훈련 방법이야."
"메이저리그? 거기 사이트 어디냐?"
"몰라."
"모른다고? 그런데 넌 어떻게 알아?"
"내가 찾은게 아니라 아는 친구가 찾은거거든."
결국 강혁은 주제를 바꿀 수 밖에 없었다.
"쯧. 포수 훈련법은 없냐?"
"있었던거 같지만 기초 훈련부터 하는게 좋을꺼야."
"또 기초인가..."
아무래도 기초적인 부분에서 지적을 꽤나 받아왔었기에 강혁은 또 기초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자 고민에 빠졌다.
하지만 고민은 길지 않았고, 유성과 함께 훈련을 진행하기 시작했다.
유성이 겨울이라는 이유로 공을 안 던진다고 했기에 포수 연습을 할 수도 없었고, 타격 훈련도 마찬가지로 공을 던져줄 사람이 없었기에 본격적으로 하기는 힘들었다.
얼마 후 유성과 강혁의 훈련에 기숙사에 있던 또 다른 선수들인 김진표와 백강호가 합류했다.
각자 중견수와 우익수에서 뛰고 있는 선수들이었는데 오랫만에 본 얼굴들이다보니 어색한 감이 있었다.
당장 강혁만 해도 과거 은퇴 전까지 간간히 연락을 하던 사이였기에 금방 적응했지만 그들과는 연락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웁..."
"아까까지만 해도 별거 아니었는데 난이도 올리니깐 죽겠다."
"끙... 유성이 넌 이거 언제부터 했냐?"
"오늘."
"신이시여."
"역시 세상은 불공평해."
유성도 힘든것은 마찬가지였지만 사고를 당하기 전까지만 해도 팀에서 가장 뛰어난 체력을 보유하고 있던게 유성이었기에 그들보다 조금 더 훈련을 이어갈 수 있었다.
"으엑..."
물론 유성도 한계가 찾아오는건 멀지 않았다.
이미 쉬고 있던 다른 선수들 옆으로 가서 휴식을 취하던 유성은 한창때와의 체력 상태를 비교했다.
'역시 현역 시절보단 못하는군.'
현역시절의 유성이라면 지금보다 더 강도 높은 훈련마저 거뜬히 해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의 유성은 겨우 중학생에 불과했다.
'준비가 많이 필요하겠군.'
과거로 돌아온게 확실해졌고 사고마저 피한 지금 망설일 필요는 없었다.
유성은 타자로써 명예의 전당에 도달 할 정도로 타격에서 정점에 올랐다.
하지만 투수로 도달하지 못한 것에 아쉬움이 남았는데 이제 그 아쉬움을 날릴 수 있게 된 것이었다.
"목표는 메이저리그의 정점"
***
"악!"
"이녀석 얼마나 무리를 한거야?"
"하하... 훈련에 너무 열중하다보니..."
마침 양호 선생님이 당직이라 학교에 계셨던게 다행이었을 정도로 유성은 꽤나 무리하게 훈련을 진행했었다.
물론 유성 입장에서는 앞으로를 위해 현재 자신의 한계가 어디인지 확실히 알아둘 필요가 있었지만 다른 이들이 보았을때 충분히 무모한 일이었다.
"일단 오늘은 더 이상 무리하지마."
"네."
양호실에서 나온 유성을 기다리고 있는건 강혁과 감독님이었다.
혹시 강혁이 무슨 소리를 한게 아닌가 싶었지만 감독님의 용건은 다른 것이었다.
"난 일이 있으니 당분간 학교에 없을꺼다. 그러니 무리하지 마라."
"네."
어차피 학교에 남아 있는 선수라고 해봐야 4명 밖에 안되니 큰 문제는 없었다.
감독님이 자리를 비우게 되었으니 유성은 현재 자신의 몸상태에 맞게 훈련 스케줄을 계획하기 시작했다.
겨울은 늘 그래왔지만 이번에도 길었다.
1달이 조금 넘는 기간의 방학 동안 유성은 계속해서 기초적인 훈련을 진행했고, 강혁이나 다른 둘도 조금씩 유성이 알려준 훈련에 적응을 하였다.
그렇게 2월이 되자 선수들은 다시 학교로 모였다.
"유성이 너 집에 안 갔냐?"
"그래."
"헐..."
아직 새로운 학기가 시작되는 3월이 될려면 시간이 더 남아있지만 3월부터 시작되는 대회가 있었기에 선수들은 몸 상태와 컨디션을 끌어 올리기 시작했다.
"방학동안 다들 몸 관리 잘했지?"
"네!"
"좋아. 우선 조부터 나누자. 투수, 포수는 불펜으로 움직이고 내야는 먼저 타격 훈련을 하고 외야는 각자 자리로 움직여라."
"네!"
방학동안 아예 쉰 선수도 있고 유성처럼 훈련을 한 선수들도 있었다.
그런 행동들을 통해 선수들의 몸상태가 어떠한지 확인하기 위해 팀이 모이자마자 바로 실전 테스트가 진행되었다.
"일단 지훈이 먼저 하자."
"네."
유성, 지훈을 비롯해 이제 중학교 3학년에 올라가는 선수들이 올해 핵심을 담당해야하기에 먼저 테스트를 받게 되었는데 그 중에서도 넘버2로 취급되는 지훈이 먼저 마운드에 올랐다.
팡!
"평균 129km라... 조금 느린가?"
"첫 피칭인걸 감안하면 나쁘지 않습니다. 4월이 되면 130 중반까지 올라올 테니까요."
"유성이가 문제겠군."
유성이 알고 있던 지훈의 구속, 구종, 제구는 그대로였다.
동시에 지훈이 앞으로 어떻게 될지도 알고 있었다.
'140 초중반 포심을 중심으로 한 컨트롤 아티스트.'
그것이 훗날 프로에 입성한 지훈의 모습이었다.
그리고 지훈이 공을 던지는 것을 보며 몸을 풀던 유성은 이제 자신이 테스트 받을때가 되었다는 것을 알았다.
그리고 코치의 사인을 받자마자 마운드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