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9화. 결전
“달려라!”
“쳐라!”
“와아아아!”
제국군들이 기세를 끌어올렸다.
두두두두.
마나를 사용하는 15만의 병력의 진군에 땅이 진동했다.
그 기세에 성벽을 향해 공격하던 몬스터 군단도 제국군 방향으로 완전히 몸을 틀었다.
“크아아아!”
“타아아아!”
서로 간에 괴성을 지르며 점차 가까워졌다.
거리가 좁혀지자 제국군의 병력은 마나를 사용하기 시작했다.
지이이잉!
몬스터들도 가만히 있지는 않았다.
거센 기합과 함께 몸이 두 배로 부풀거나 눈이 붉어지고, 검은 마기를 둘러싸는 몬스터들이 많았다.
제국군의 일선이 몬스터 군단과 부딪쳤다.
콰콰쾅!
챙챙챙!
콰직!
캬아아악!
200만의 병력에서 고르고 고른 15만이었다.
마나를 쓰지 못하는 병력은 없었다.
지이잉.
검에 마나를 씌워서 몬스터의 피부를 갈랐다.
대형 몬스터들도 많이 있었지만 이쪽에는 오러 익스퍼트들이 널려 있었다.
쿠우우우!
드레이크가 거대한 몸을 흔들며 달라붙는 기사들을 떼어내려 했다.
하지만 익스퍼트 상급이 스물 이상 달라붙으면 드레이크도 함부로 움직일 수가 없었다.
수가 많은 제국군은 횡으로 일자로 다가가다가 점점 둥글게 말아 몬스터 군단을 포위했다.
그리고 일선에서 몬스터와 싸우는 병사들은 뒤쪽의 압력에 전진해 몬스터 군단 내부로 들어갔다.
가장 앞에서 싸우는 병사들은 앞, 옆, 뒤 모두 몬스터가 있었다.
하지만 그렇게 사방에 적이 있는 것은 몬스터의 입장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언제 어디에서 적의 공격이 날아올지 모르는 처절한 상황이었다.
디아론 백작이 성벽 위에서 아래의 전황을 보니 마치 양손을 깍지 끼듯 제국군과 몬스터군이 섞이고 있었다.
몬스터군이 조금 여유가 있는 곳은 성벽 쪽에 위치한 몬스터들뿐이었다.
그 모습을 보고 있던 디아론 백작이 외쳤다.
“성문을 열어라! 모두 돌격한다!”
“와아아아!”
끼이이익!
성문이 열리고 디아론성에 있던 병력들도 성벽 앞으로 뛰어나갔다.
병사들의 눈에서 광기가 어른거렸다.
이곳에는 디아론의 병사들만 있지 않았다.
샤론성, 서모너성 그리고 프란시아 왕성의 병사들도 있었다.
프란시아에서 살던 병사들의 입장에서는 무려 자신의 수도를 짓밟은 몬스터 군대였다.
누가 봐도 제국군이 도와주고 있는 지금이 절호의 기회였다.
몬스터와 인간을 합해 이십만이 훌쩍 넘는 생명체들이 서로를 죽이기 위해 사력을 다했다.
하지만 그렇게 수많은 인간과 몬스터의 괴성 속에서도 손가락 하나 움직이지 않고 상대를 노려보는 부대가 있었다.
나와 소환수, S급, 500의 팔라딘이었다.
후욱.
긴장을 하다 보니 스스로 그리고 상대가 숨 쉬는 것 하나까지 느끼고 있었다.
상대는 마왕.
왜곡된 얼굴을 가지고 있었지만 존재감은 강렬했다.
왠지 그는 자신의 부대가 밀리고 있음에도 개의치 않는 듯했다.
“큭큭큭큭.”
마왕은 이 상황이 즐거운 듯 웃는 것 같았다.
그러던 순간.
화아악!
거대한 눈동자가 나를 덮쳤다.
* * *
“민준아, 뭐 해?”
졸린 눈을 비비며 고개를 들었다.
어라?
저 얼굴은 뭐지?
짧은 머리카락에 여드름 범벅인 저 얼굴.
친구인 우철이었다.
“야! 니는 어떻게 바다에 놀러 와서도 처자고 있냐?”
맞다.
우리 바다에 놀러 왔지.
내가 뭘 하고 있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뭔가를 하고 있던 것 같은데 생각이 나지 않았다.
“어…? 잠깐 졸았나 봐.”
스무 살, 나는 여름방학을 맞아 우철이와 다른 친구들과 함께 바다에 놀러 왔다.
수영복을 입고 파라솔 아래 모래에 누워 잠시 잠이 든 것 같았다.
주변을 보니 하하 호호 열심히들 놀고 있었다.
우철이가 물속에서 손을 흔들었다.
“들어와!”
“어, 그래.”
졸린 정신을 깨울 겸 바다에 들어갔다.
“나는 저기 동그란 거 찍고 온다.”
저 앞에 수영금지 라인과 부표가 있었는데 우철이가 부표를 찍고 온다고 했다.
자꾸 멀리 가는 우철이 조금 걱정됐지만 저 녀석은 원래 수영을 제법 했다.
촤아악, 촤아악.
역시 수영 실력이 제법이었다.
따사로운 햇살, 한여름의 바다.
젊음의 즐거움이 넘치는 곳이었다.
뭔가 한여름 낮잠을 자며 꿈을 꾼 듯했지만 여름의 바다는 그런 기분을 금세 날려주었다.
“악!”
어디서 소리가 들렸다.
주변을 둘러보니 저쪽으로 수영을 가던 우철이가 보이지 않았다.
불안한 마음에 우철이가 있어야 할 곳을 자세히 살펴보았다.
그때 우철이가 수면 위로 오르락내리락했다.
뭔가 문제가 생긴 것 같았다.
“우철아!”
주변에서는 각자 노느라 바빴고 우철이의 상황을 파악한 것은 나뿐이었다.
나는 얼른 주변에 있는 튜브 하나를 들고 우철이에게 헤엄쳐갔다.
촥촥.
“우철아!!”
우철이가 있던 장소에 도착했다.
하지만 우철이는 보이지 않았다.
얼른 물속을 살펴보았다.
우철이는 없었다.
다시 소리를 질렀다.
“우철아!”
첨벙.
물속으로 잠수해서 살펴보았다.
관광지라 그런지 바닷속은 투명하고 맑았다.
하지만 수면 위에서 내리쬐는 햇빛과 물속의 작은 부유물만 보일 뿐 우철이는 보이지 않았다.
어쩔 수 없이 수면 위로 올라가려 했다.
어라?
그런데 올라가지지 않았다.
허우적거리는 몸짓과 다르게 수면이 점점 멀어지고 있었다.
안 돼!
왜 이러지?
다시 정신을 차리고 수면을 향해 헤엄쳤다.
하지만 가라앉을 뿐이었다.
순간 우철이도 이렇게 가라앉은 건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물속이라 방향을 혼동하고 있을까 봐 다시 한번 어느 쪽이 위쪽인지 파악하려 했다.
위쪽에 밝은 수면이 보였다.
하지만 그 밝은 빛은 점점 멀어져갔다.
이대로 가라앉는 건가?
이대로 죽는 건가?
신기하게도 죽는 것이 두렵지는 않았다.
늘 목숨을 걸었으니까.
목숨을 걸었다고?
이상한 생각이었다.
고작 스무 살에 군대도 안 갔는데 목숨을 걸고 뭔가를 한 적이 없었다.
그저 두렵다기보다는 슬펐다.
가족, 친구, 다시는 그들을 만나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슬펐다.
부모님.
동생.
친구들.
그리고 어렴풋하게 누군가 떠올랐다.
누구지?
누구였지?
기억해야 하는데 기억나지 않았다.
꿀럭.
숨이 쉬어지지 않았다.
첨벙!
그때 누군가 나를 향해 수면을 뚫고 내려오고 있었다.
누구지?
물속에서 밝은 수면을 등지고 있어서 얼굴이 보이지 않았다.
이상한 가죽 갑옷을 입은, 긴 머리카락의 여성이었다.
탁.
그녀가 나를 잡았다.
하늘색 머리카락이 물속에서 흩날렸다.
자세히 보니 그녀의 가죽 갑옷은 군데군데 뚫려 있었고, 그 구멍들에서는 붉은 액체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피?
피를 흘린다고?
그녀는 당장 119에 실려 가야 할 것 같았다.
이런 몸으로 나를 구하러 온 건가?
도대체 누구기에?
그녀가 나를 들어 올리자 아래쪽에 있던 나의 자세가 바뀌었다.
수면에서 내려오는 빛이 그녀의 얼굴을 밝혔다.
어떻게든 나를 끌어올리려고 온 힘을 주고 있었다.
그 얼굴을 보니 알 것 같았다.
너였구나!
“샤샤!”
챙그랑!
주변 바다와 해변이 유리창처럼 깨져 나갔다.
그리고 나는 전장의 한복판에 있었다.
눈앞의 참상에 당황스럽기만 했다.
수많은 시체.
부러지고 꺾이고 잘린 누군가의 육체들이 전장을 뒤덮고 있었다.
몬스터와 인간들은 거의 공멸하다시피 했다.
곳곳에 깊이는 10m, 길이는 수백 미터는 되어 보이는 도랑이 만들어져 있었다.
대규모 마법이 난사되었던 것 같았다.
샤샤는 내 앞에 무릎 꿇고서 피를 흘리고 있었다.
“힐! 힐링! 디바인 홀리 큐어!”
화아악!
신성력이 가미된 큐어를 퍼붓자 샤샤의 몸이 회복되었다.
“다행이야.”
샤샤가 나를 구하러 왔다.
고개를 들어 앞을 보니 굳건한 방패와 검이 나를 지켜주고 있었다.
커다란 방패를 든 은발 기사는 뒷모습만 보아도 카나였다.
방패에 줄줄 오러를 두른 모습이 방패 마스터 그 자체였다.
그런데 오러의 색이 범상치 않았다.
압축된 강기.
카나는 나를 지킬 때 그리고 내가 위험에 처할 때 더욱 강한 방패가 된다.
그리고 그 옆의 여성 검사는 조금 낯설었다.
제리처럼 양손 클로를 사용하고 있긴 한데, 양손의 클로에 오러를 두르고 있었다.
클로 마스터?
오러를 클로에 두르고 있다면 S급이었다.
저런 인재가 우리 편에 있다면 모를 수가 없었다.
그런데 옆모습을 자세히 보니 제리와 닮았다.
마치 얼굴에 있는 털이 빠지면 저렇게 생겼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설마… 제리?”
“냥. 민준 괜찮냥?”
“제리! 각성했어?”
“그래, 민준이 죽을 것 같으니 힘이 솟았당.”
내가 위기에 처하자 샤샤는 나를 구하러 왔고, 카나는 방패로 나를 지켰으며, 제리는 한계 이상의 힘을 내어 적을 막아냈다.
“마왕은?”
“저쪽에 있당.”
마왕이 굳건하게 서 있었다.
주위를 돌아보았다.
500의 팔라딘 중에 멀쩡하게 서 있는 것은 50이 채 되지 않았다.
마왕이 나를 보는 것 같았다.
“디바인.”
신성력을 끌어올렸다.
적은 마왕.
그 힘의 상극은 신성력일 것이었다.
그때 마왕에게서 검은 기운이 물씬 풍기더니 충격파가 사방으로 퍼져 나갔다.
사아악!
소름 끼치는 기운이 주변으로 퍼져 나갔다.
끼기기긱.
우어어어.
크어어어!
시체들이 일어서기 시작했다.
아주 오래전 마왕군과 싸우면 반드시 죽는다고 하여 마왕군을 죽음의 군단이라 불렀다.
또 누군가는 마왕군이 죽지 않는다 하여 불사의 군단이라 불렀다.
5만의 몬스터와 15만의 기사들이 싸워 상당수가 죽었다.
그리고 몬스터와 기사들의 시체는 다시 일어나 마왕의 군단이 되었다.
내가 샤론성, 서모너성, 프란시아성에서 회피 위주로 싸웠기 때문에 알 수 없었다.
마왕군의 진정한 무기는 5만의 숫자도 아니고, 마왕의 무력도 아니었다.
싸울수록 수가 늘어나는 불사의 군단이었다.
아군의 기세가 꺾이는 것이 느껴졌다.
마왕은 강했지만 어떻게든 숫자로 밀어붙였는데 이제는 숫자에서 역전당했다.
두근.
가슴에서 울렸다.
두근.
가슴이 더욱 세차게 울렸다.
화아악!
가슴 속에서 빛이 뚫고 나왔다.
신성력이었다.
화아악!
이제 막 기지개를 켜려 하는 언데드들에게 신성력의 빛이 닿았다.
스르륵.
뜨거운 열기에 녹아내리는 아이스크림처럼 언데드들이 힘없이 흘러내렸다.
나로부터 퍼져 나가는 신성력에 마왕이 나를 주목했다.
경계하는 듯했다.
마왕이 나에게 달려왔다.
순간 마왕의 움직임을 놓쳤다.
쾅!
주르르륵.
어느새 내 앞에 나타난 카나가 마왕을 막은 채 주르륵 뒤로 밀렸다.
카나의 어깨 너머로 마왕의 얼굴이 보였다.
지금까지는 그 얼굴을 볼 수 없었지만, 이제는 인식할 수 있었다.
하얀 얼굴.
마치 마네킹처럼 하얀 가면 같았다.
그리고 내 가슴에서는 신성력이 주체하지 못할 정도로 흘러나오고 있었다.
나는 내 앞을 지키고 있는 카나의 등에 왼손을 짚었다.
화아악!
카나에게 신성력이 전달되었다.
오러와 신성력이 합쳐진 카나에게서 퍼져 나오는 기운이 사방으로 뻗어 나갔다.
“타앗!”
뒤로 밀리던 카나가 기합 소리와 함께 한 걸음 전진하였다.
쾅, 쾅, 쾅!
마왕이 손을 휘둘러 카나를 가격했지만 카나는 굳건하게 내 앞을 지키고 있었다.
오른쪽에 제리가 보였다.
오른손을 뻗어 제리에게도 신성력을 보냈다.
화아악!
제리의 클로에서 빛나는 강기는 신성력을 머금어 더욱 하얀색으로 바뀌었다.
제리와 눈이 마주쳤다.
제리는 밝게 빛나는 클로를 마왕의 몸에 꽂아 넣었다.
그리고 샤샤.
가죽 갑옷은 군데군데 찢어지고 뚫렸지만, 힐과 큐어로 체력은 회복되었다.
나는 샤샤와 능력치를 공유할 수 있었다.
남은 손은 없지만 샤샤에게 마나와 함께 신성력도 보냈다.
화아악!
샤샤의 몸에서도 밝은 신성력의 빛이 빛났다.
주우욱!
샤샤가 가진 모든 마나와 신성력을 화살 한 대에 담았다.
피잉!
푹!
마왕의 몸에 화살이 박혔다.
“크아아아!”
쩌저적!
유리에 금이 가듯 마왕의 몸에 금이 갔다.
마네킹처럼 하얀 얼굴에도 금이 갔다.
막타가 필요한 순간.
나는 카나의 머리 위를 뛰어넘으며 오른 주먹에 마나와 신성력을 가득 채웠다.
“타앗!”
벽돌 깨기처럼 위에서 아래로 주먹을 내리쳤다.
콰지직!
마왕의 몸이 부서졌다.
쿠쿠쿠쿵!
마왕의 몸에서 시작된 마나의 소용돌이가 태풍처럼 불어닥쳤다.
고오오오!
그리고 바닥에 검은 심연의 구멍이 생기며 마왕의 부서진 육체가 빨려 들어갔다.
마지막에는 반쪽짜리 가면이 나를 노려보더니 이내 바닥으로 사라졌다.
띠링!
―레벨이 올랐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
귓가에 알림 소리가 끊임없이 들렸다.
금쪽같은 소환수들
— 거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