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7화. 마왕의 걸음
세상에 물건은 많았다.
그런데 문제는 그 물건이 내가 원하는 때에, 원하는 장소에 있냐는 것이었다.
한여름 더위에 얼음을 원할 때는 남극에 얼음이 아무리 많아도 의미가 없는 것이었다.
제국은 넓고 병사는 많았다.
하지만 샤론성과 서모너성이 넘어감에도 불구하고 제국의 병사들이 도착할 때까지는 너무나 많은 시간이 필요했다.
나는 제국 황궁의 포탈을 통해 지구로 넘어갔다.
빠른 시간에 내가 원하는 물건을 조달할 수 있을 만한 인물들과 만났다.
“협회장님, 제국의 병력들을 빠르게 한곳으로 모아야 해요. 병력을 빠르게 한곳으로 운반할 수 있는 운송 수단이 필요해요. 다행히 차량이나 헬기 정도를 운반하는 데는 어려움이 없어졌어요.”
“마력으로 구동되는 비행 차량을 원하시나요?”
“제가 사용하는 비행 차량이면 최고이지만 그 정도의 물건을 대량으로 빠르게 구할 수 있을까요? 지금 글리제에서는 몬스터 웨이브, 그러니까 던전 브레이크와 비슷한 사태가 벌어졌어요.”
“어느 정도의 병력을 이동시키려 하시나요?”
“최소 수십만, 최대 이백만 명 정도 돼요.”
협회장은 조금 고민하더니 말했다.
“이동 수단이 마력 비행 수송선이라면 그 정도 물량을 맞추기 쉽지 않을 겁니다. 물량이 많으면 주문 제작을 해야 해서 한참 걸릴 거구요. 하지만 소량의 군용 수송기 정도라면 대통령과 이야기하면 어느 정도는 가능할 것 같군요.”
나는 바로 협회장과 함께 대통령을 만났다.
“반갑습니다, 민준 헌터님. 대한민국을 여러 번 구하신 영웅을 이제야 만나 뵙네요.”
“감사합니다.”
“협회장님께 듣기로는 군용 수송기를 원하신다고요.”
“네. 대가는 얼마든지 치를 수 있어요.”
“한국군의 비행 수송선의 양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아시다시피 국토의 면적이 좁아서 비행 수송선을 많이 필요로 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우리 군에서 뺄 수 있는 수송선은 바로 빼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그리고 그런 비행 수송선이라면 미국과 러시아 쪽에 많을 것 같습니다.”
“아!”
“제가 연락을 돌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나는 우리나라는 기본이고 러시아, 미국, 중국을 넘나들며 수송선을 구했다.
그러면서도 프란시아의 상황이 걱정되어 화면을 계속 보며 연락했다.
[카나, 지금 상황은 어때?]
[저희는 프란시아 왕성에서 진영을 구축하고 있어요.]
[적은?]
[여기까지 오는 데 며칠 걸릴 것 같아요. 처음에 산을 내려올 때는 거침없었는데 아무래도 고기를 쌓아두신 것이 시간을 끄는 데 유효했던 것 같아요.]
적들의 절반 이상은 오크였다.
오크들이 눈앞의 고기를 두고 그냥 지나갈 리 없었다.
이미 샤론성과 서모너성에서 격렬한 전투를 벌인 후 실컷 쌓여 있는 고기들을 외면할 수 있을까?
고기에 수면제가 들어 있는 것은 덤이었다.
[고기 안 수면제가 효과 있었을까요?]
[별로 없대.]
[그런데 왜 사용하셨어요?]
[별로라면 아주 조금은 있다는 거니까. 평소라면 의미 없는 수면제도 두 번의 전투를 벌인 후 충분한 식사를 한 몬스터에게는 효과가 있지 않을까?]
[그렇군요.]
그렇게 시간을 벌며 호주, 유럽, 남미까지 날아갔다.
그 결과 비행 수송선을 총 5천 대 정도 구할 수 있었다.
수송선 한 대당 대략 30명 정도의 인원이 탑승한다고 가정하면 15만 명을 한 번에 나를 수 있었다.
15만이면 100만 대군의 일부긴 하지만 그래도 상당한 숫자였다.
더 이상 지구에서 시간을 끌 수도 없어 글리제로 넘어가려 했다.
지이이잉.
우리나라 대통령의 연락이었다.
“네, 대통령님.”
“북한에서 연락이 왔네.”
“네? 북한이요?”
지금 내가 구하고자 하는 물건은 비행 수송선인데, 북한에 비행 수송선이 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북한에 비행 수송선이 있나요?”
“그렇지는 않은데 자네가 수천 km 거리를, 다수의 헌터들을 이동시키려 한다는 소리를 들은 모양이네.”
“그건 맞는 말인데요.”
“그럼 연락이 갈 테니 이야기나 한번 들어보게나.”
“알겠습니다.”
잠시 후 북한에서 연락이 왔다.
―안녕하십네까? 남조선의 민준 헌터님 맞습네까?
“아, 네. 맞아요.”
―북조선의 군사 물자를 담당하는 사람입네다.
“아, 그러시군요. 제가 비행 수송선을 구하고 다닌다는 소식을 들으셨군요. 북한에 비행 수송선이 많이 있나요?”
―비행 수송선은 없습네다.
“그럼요?”
비행 수송선을 찾고 있는데, 비행 수송선 없이 왜 전화를 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니까, 민준 헌터님은 다수의 헌터들을 수천 km가 넘는 곳으로 가급적 빨리 이동시켜야 하는 것 맞습네까?
“맞아요.”
―고럼 고거 잘되었습네다. 저희가 수천 km의 거리를 빠르게 이동시킬 수 있는 운송 수단이 있습네다. 초특급이라요.
듣다보니 솔깃해졌다.
“그게 뭔가요?”
―미사일입네다.
“네?”
순간 당황스러웠다.
북한의 이야기는 이랬다.
과거 북한에서는 국가적으로 미사일 생산에 사활을 걸었던 적이 있었다.
당시에 미사일은 꽤 강력한 무기였다.
게다가 당시의 미사일은 스마트 시스템이 도입되던 시기였기 때문에 수천 km를 날아가면서 미사일이 스스로 위치를 찾아가기 때문에 거의 오차 없이 도착할 수 있다고 했다.
하지만 몬스터와 헌터의 세상이 되어버린 지금, 그런 화약 무기의 가치는 상당히 떨어졌다.
이제는 보관비가 더 들 지경이었다.
―원가에 드리겠습네다. 원가. 손해 보고 파는 겁네다.
“그런데 미사일에 헌터를 태운다는 게 가능할까요?”
―저희가 이미 다 연습을 해봤습네다. 익스퍼트 상급은 그냥 타고 가면 되고, 중급은 실드 한겹, 하급은 두 겹 걸고 가면 됩네다. 다 해봤습네다. 별로 죽는 헌터는 없었습네다. 상급 이상은 그냥 뛰어내리고 중급 이하는 도착하기 전, 중간에 뛰어내려서 낙하산을 펴면 됩네다.
중간에 죽는 헌터가 별로 없었다는 말이 조금 이상했지만 가능하다면 지금 상황에서 가장 빠른 방법일 것 같았다.
“물량은 얼마나 있는데요?”
―삼십만 발 있습네다.
상당한 물량이었다.
나는 그길로 평양으로 날아갔다.
지금도 통일은 되지 않았지만 대통령이 소개한 자리이며, 물건을 사러 가는 길이라서 거리낄 것은 없었다.
그리고 한 국가가 한때 국력을 총동원해서 만든 미사일을 얻을 수 있었다.
나는 글리제의 제국으로 넘어왔다.
황궁에서 조금 떨어진 평지에는 지구에서 샤샤의 선물함으로 보낸 오천 대의 수송선과 삼십만 발의 미사일이 있었다.
나는 다시 한번 몬스터들의 위치를 점검했다.
프란시아 쪽의 적도 아직 프란시아 왕성에 도착하지 않았고 제국 쪽의 적은 올라오려면 멀었다.
이동하기 적절한 타이밍이었다.
“샤샤야, 이제 내가 제국의 각지에서 황궁으로 올라오고 있는 지방군에 방문해서 이 수송선과 미사일들을 줄 거야. 잘 날라보자. 알겠지?”
“네, 그럼요. 어디 한두 번 날라보나요?”
하긴, 샤샤가 운반한 물품과 쏘아댄 화살 중에서 어느 것이 더 많을까?
종종 나는 샤샤가 궁수인지 유통회사 직원인지 헷갈린 적도 있었다.
“알파야, 화면.”
―네.
화아악!
화면이 켜졌다.
나는 귀족 연명부를 들었다.
“자, 1번 귀족에게로.”
슈우우욱.
화면이 1번 귀족에게 이동했다.
화면 속에서 나름대로 진형을 갖추고 이동하고 있는 귀족군이 보였다.
말을 탄 기사들과 걷고 있는 보병이 보였다.
쟤들이 걸어서 여기까지 오려면 얼마나 걸릴까?
전쟁이 다 끝나고 오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동!”
화아악!
눈앞이 잠시 환해지더니 다시 낯선 장소가 나타났다.
마치 포탈을 타는 듯했다.
“어?”
“누구냣!”
갑작스럽게 나타난 나에게 병사들이 반응했다.
나는 미소를 지으며 대답해주었다.
“응. 너네 황제.”
그 소리에 1번 귀족이 헐레벌떡 달려왔다.
그리고 나는 1번 앞에 수송선 170대와 미사일 1,000대를 꺼내놓았다.
“폐하, 이것이 무엇입니까?”
“아, 이거요? 여기 이것들은 수송선이고, 이쪽은 미사일이에요.”
귀족은 무엇에 쓰는 물건인지 몰라 고개를 갸웃했다.
“용병 소환!”
수송선과 미사일 사용법을 가르칠 지구의 인원들을 미리 용병 등록해두었다.
수송선 운전 교육자가 말했다.
“과거 수송선은 오랫동안 훈련된 파일럿들만 탈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다릅니다. 사용자 친화적 사용 환경, 이것은 단지 컴퓨터만의 이야기가 아니었습니다. 사용자 친화적 비행체, 30분이면 사용하실 수 있을 겁니다.”
북에서 온 미사일 관리자도 설명을 했다.
“마나를 사용할 수 있는 기사 수준은 이쪽으로 모입네다. 한 방에 갑세다. 한 방.”
나는 미사일을 사용하는 방법이 궁금해서 가까이 가서 보았다.
“자, 익스퍼트 상급, 중급, 하급은 이쪽에 줄을 섭네다. 마법사들은 중급은 실드 한 번, 하급은 두 번을 걸어줍네다. 탑승자는 요기 미사일에 배를 붙이고 앉습네다.”
기사 한 명이 나와 미사일에 몸을 실었다.
미사일에는 앉는 의자와 손잡이, 발걸이가 있었다.
북한의 관리자가 기사에게 물었다.
“등급이 얼마나 됩네까?”
통역용 용병이 옆에서 말을 전해주었다.
“이곳 기사단장이라고 합니다. 익스퍼트 상급입니다.”
“상급이면 그냥 타면 됩네다.”
띡띡띡.
“민준 헌터님, 여기가 맞습네까?”
도착지를 묻길래 내가 도착 지점을 알려주었다.
북한 관리자가 기사에게 안내를 했다.
“요기 빨간불이 들어오면 뛰어내리면 됩네다. 끝까지 타고 있으면 바닥에 부딪혀 폭발합네다. 그럼 출발합네다.”
푸스스스!
미사일에 불꽃이 붙기 시작했다.
“꽉 잡으시라요!”
슈아악!
강한 불꽃을 내며 미사일이 하늘로 솟았다.
반짝!
미사일은 금세 하늘의 반짝이는 점이 되었다.
저 멀리서 꺄악 하는 비명 소리가 어렴풋하게 들린 것 같았다.
“자, 다음 오십네다.”
북한의 비쩍 마른 관리자가 수많은 기사들을 벌벌 떨게 했다.
그래도 죽지만 않는다면 초스피드 배송인 것만은 확실해 보였다.
* * *
하루 만에 제국의 지방 귀족가 300곳을 돌았다.
미사일의 도착 지점은 몬스터들이 제국으로 북진하는 곳의 약간 앞쪽이었다.
그곳은 작은 산이었는데 무려 30만 발을 얻어맞고 깊은 구덩이가 되었다.
미사일은 초고속 배송이었다.
제국의 병력들은 황궁으로 모였다가 다시 남쪽으로 내려가 올라오는 몬스터들과 싸울 생각이었다.
하지만 순식간에 30만의 병력이 제국을 향해 올라오는 몬스터의 앞에 도착해버렸다.
그리고 미사일을 타고 온 기사들은 왜인지 몰라도 악, 악 소리를 지르며 오러를 줄기줄기 흘렸다.
뭔가 극한을 경험하고 온 기사들 같았다.
정신 무장만큼은 확실하게 된 것 같았다.
나도 이들과 최전선에서 함께했다.
“와, 30만의 숫자는 어마어마하네.”
끝이 없어 보였다.
그래도 최강자들의 수는 부족했다.
“용병 소환!”
프란시아 왕궁에서 대기하고 있던 차지율 등의 S급들을 소환했다.
“얼른 이곳을 치고, 다시 프란시아로 돌아가야죠.”
이쪽을 얼른 치고 다시 S급들을 프란시아 왕궁으로 돌려보내야 했다.
그쪽도 몬스터들이 다가오고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마나를 일으켜 목소리를 키웠다.
무려 삼십만이었다.
왼쪽에 보이는 언덕에도, 오른쪽에 보이는 평지 끝에도 군사들이 있었다.
이들에게 들리려면 아주 크게 소리를 높여야 했다.
“쳐라!”
아직 제국어는 조금밖에 모르지만 단어 몇 개는 할 줄 알았다.
샤론 마을은 그냥 한국어를 가르쳐버렸는데 제국인들에게 다 한국어를 가르치기는 힘들 것 같았다.
나의 명령에 삼십만이 움직였다.
저 아래 오만 정도 되는 몬스터들이 있었다.
제국군이 몰려가자 마족 둘이 달려 나왔다.
나는 고개를 돌려 든든한 S급들을 보았다.
“성녀님.”
“네.”
“오, 이제는 성녀 아니라고 빼시지도 않네요.”
“교주님이 성녀라면 성녀니까요.”
“크크. 그럼 우리도 갑시다.”
“네. 교주님.”
성녀, 교주와 함께하는 S급 팔라딘들이 마족을 향해 달려갔다.
* * *
느긋함, 지루함, 나른함.
셀 수 없이 오랜 기간을 절대자의 지위로 살아온 마왕의 행동에는 그런 느낌이 묻어 있었다.
흔들흔들.
마왕은 수십 마리의 데스나이트들이 끄는 가마에 올라 몸을 맡기고 있었다.
“응?”
나른하던 마왕의 눈동자가 떠졌다.
“호오?”
뭔가 색다른 재미라도 생겼는지 혀를 내밀어 입술을 훔쳤다.
지금껏 두 개의 성을 점령하는 데도 별다른 관심도 없었는데 뭔가 새로운 흥미가 생긴 듯했다.
그때 하늘에서 비행 몬스터 한 마리가 내려왔다.
펄럭.
착.
“주인이시여. 북으로 올라간 부대가 전멸했다고 합니다.”
눈도 마주치지 못하고 내용을 설명한 몬스터는 부들거리며 떨고 있었다.
마왕은 이미 알고 있던 내용을 다시 듣게 되니 짜증이 났다.
퍼석!
보고한 몬스터의 머리가 부서졌다.
“뛰어라.”
가마를 천천히 끌던 데스나이트들이 뛰기 시작했다.
데스나이트는 익스퍼트 상급은 되어야 겨뤄볼 만한 존재들이었다.
그들은 주인의 심기를 불편하게 하지 않기 위해 천천히 이동했지만 이제 뛰라는 명령이 내려왔다.
그들이 뛰기 시작하자 프란시아 왕성까지 남은 거리는 순식간이었다.
저 멀리 프란시아의 왕성이 보였다.
“멈춰라.”
데스나이트들이 멈추자 마왕이 가마에서 내렸다.
마왕이 한 걸음을 걸었다.
그러자 하늘의 색이 변하기 시작했다.
한 걸음.
공기의 냄새가 달라졌다.
한 걸음.
기이이이잉.
모두의 귓속에 이명이 들렸다.
씨익!
마왕이 프란시아 왕성을 향해 미소를 지었다.
금쪽같은 소환수들
— 거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