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6화. 물량
“너무 넓어.”
화면으로 보이는 제국은 너무 넓었다.
샤론 마을의 주민들은 서모너성을 지나 프란시아 왕궁 근처까지 이동하고 있었다.
프란시아 방향의 몬스터들은 샤론성을 출발해 서모너성으로 향하고 있었고, 제국으로 향한 몬스터들은 도착하려면 아직 멀었다.
나는 화면으로 서모너성을 보며 전투에 대한 작전 회의를 했다.
“샤론성에서는 치고 빠지기를 선택하셨습니다. 서모너성, 프란시아 왕궁도 비슷한 방법을 사용하실 겁니까?”
“일단 서모너성에도 샤론과 같은 작전입니다. 그리고 프란시아 왕성에서는 프란시아 국왕의 결정에 따라 다르겠죠. 일단 국왕에게 프란시아 왕궁도 버리자고 말하긴 했습니다.”
“왕성을 버리자는 말에 동의하던가요?”
“생각해본다고 하더군요. 국왕이 왕성을 버리지 못하겠다고 하면 어쩔 수는 없지만, 아무튼 핵심적인 전투는 디아론성에서 벌이기로 해요.”
“디아론성도 밀려버리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흠… 어려운 문제네요. 디아론성도 안 된다면 제국으로 피해버리는 방법도 있죠.”
물론 제국으로까지 피난을 가야 한다면 일반 주민들의 고생길이 뻔했다.
“귀족들이 보낸다는 병력을 세어보니 200만 대군이 모여들고 있어요. 그중 기사급만 수십만이에요.”
“수가 상당하네요.”
“그래요. 이들이 모인다면 제국으로 올라오는 몬스터들은 이길 수 있을 것 같아요. 그 후 다시 프란시아를 도우러 가야 해요. 하지만 제국은 너무 넓어요.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결국 시간이에요.”
프란시아를 돕자는 의견에 반대하는 이는 없었다.
“우리가 빨리 모여서 내려가거나 아니면 프란시아에서 우리가 올 때까지 버티거나. 그것도 안 된다면 프란시아에서 피난을 제국 방향으로 해와야죠.”
모든 경우의 수가 쉬운 일은 아니었다.
나는 빤히 지켜보고 있는 상황에서 광활한 공간이 문제라는 상황이 안타까웠다.
* * *
서모너성에서는 전투 준비가 한창이었다.
“샤샤 님, 발리스타는 모두 준비되었습니다.”
“마나석은 모두 꺼냈습니다.”
“재고 따윈 하나도 남기지 않았습니다. 모두 준비되었습니다.”
준비된 무기를 모두 소모하고 떠나는 작전은 최소의 인명 피해로 최대의 적을 잡는 방법이었다.
게다가 샤론성에서 치고 빠지는 작전을 한번 해보니 이제는 병력들이 알아서 준비를 잘했다.
병사 한 명이 샤샤에게 물었다.
“샤샤 님, 그런데 이렇게 뒤로 빠지지 말고 한곳에서 모든 무기를 쓰면 안 되는 겁니까? 이렇게 무기가 많은데도 후퇴하는 것이 아쉽습니다.”
샤샤가 고개를 저었다.
“안 돼요.”
“왜죠?”
“지금 우리가 밟고 있는 이 성.”
“서모너성이요?”
“이것도 무기예요.”
“아!”
병사는 바로 이해가 되었다.
쏟아붓는 데 포함되는 것은 서모너성 자체도 마찬가지였다.
성 자체를 쏟아붓는다면 성을 갈아탈 수밖에 없었다.
“몬스터가 몰려옵니다!”
성벽의 망루에 있는 병사가 소리쳤다.
시야 확보를 위해 성 주변에 있는 나무나 큰 덤불을 제거했다.
그래서인지 흙먼지가 피어올랐다.
흙먼지가 구불구불한 하나의 선이 되어 다가왔다.
두두두두.
땅의 진동이 몰려왔다.
“캬아아아!”
숫자만 보면 오크가 가장 많았지만 그런 것들은 눈에 들어오지도 않았다.
“우어어어어!”
드래곤의 다운그레이드 버전이라는 드레이크가 최전선에서 달려왔다.
S급 헌터들이야 드레이크와 싸워본 경험이 있지만 일반 하급 기사들의 입장에서는 재앙 그 자체였다.
“온다!”
서모너성의 병사들은 쏟아붓고 튀는 작전을 생각하며 아낌없이 원거리 무기를 쏟아부었다.
피피피핑!
슈슈슈슉!
대형 화살, 마법 폭탄이 난무했다.
원거리 스킬이 있는 헌터들도 마나를 아끼지 않았다.
“샤론성에서 했듯이 다 짜내고 튈 거야!”
“마나 아끼지 마!”
체력 안배를 하고 싸울 때와 뒤가 없는 공격은 확연히 달랐다.
몬스터는 무자비하게 달려들었지만 이에 맞서는 팔라딘 헌터와 병력들도 만만치 않았다.
“쳐라!”
“다 쏟아내!”
하지만 적의 몬스터들은 평범한 오크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쿵. 쿵.
걸음걸음이 묵직하고 위에서 쏟아지는 원거리 마법을 무시하는 대형 종도 있었다.
드레이크가 쏟아지는 화살과 원거리 마법을 무시한 채 성벽을 들이받았다.
쾅!
드드드드.
드레이크가 들이받는 진동 때문에 성벽이 흔들렸다.
성벽을 부수는 공성 무기 그 자체였다.
그리고 팔라딘과 병사들은 전방만 신경 쓸 수도 없었다.
“끼야아아!”
하늘에서는 공중 몬스터가 날아다니며 서모너성을 지키는 병력을 노렸다.
지상 몬스터만 있으면 성벽을 지키면서 한쪽만 신경 쓰면 되겠지만 공중 몬스터가 날아다니니 시선이 분산되었다.
덥석!
대형 박쥐를 닮은 공중 몬스터가 급하강을 해서 하급 기사 한 명을 발로 잡았다.
펄럭!
공중으로 딸려 올라가는 하급 기사였다.
샤샤가 이를 보고 바로 화살을 날렸다.
“파이어 애로우!”
피잉!
빠르고 강렬하게 날아가는 불화살에 하급 기사를 잡은 비행 몬스터가 쥐고 있던 기사를 놓쳤다.
쿵.
바닥에 떨어진 기사는 간신히 살았음을 느끼며 숨을 가쁘게 쉬었다.
하지만 박쥐를 닮은 공중 몬스터의 수가 상당히 많았다.
또 한 명의 하급 기사가 비행 몬스터에 잡혔다.
펄럭!
몬스터가 하급 기사를 잡고 하늘로 날아오르고 있었다.
피잉!
이번에도 도움을 주기 위해 샤샤의 화살이 날아갔다.
쾅!
하지만 다른 비행 몬스터에 의해 막혀버렸다.
재차 쏘아지는 화살.
피잉!
쾅!
여러 마리의 방해로 인해 결국 기사 한 명이 하늘로 딸려 올라갔다.
“아!”
펄럭, 펄럭!
샤샤는 까만 점이 되어버린 하급 기사를 보며 입술을 깨물었다.
하늘 높이 올라간 기사는 정신이 없었다.
기사의 눈에는 땅바닥이 까마득하게 보였다.
이대로 날아가서 몬스터 무리에 던져지거나 혹은 그냥 이대로 떨어지면 죽음이었다.
그때 소리가 들렸다.
―용병 계약하세요.
구원의 목소리였다.
“네! 계약하겠습니다.”
화아악!
하늘 높은 곳에서 비행 몬스터의 발에 매달려 있던 기사가 사라졌다.
기우뚱.
갑작스러운 무게 감소에 기사를 잡아 날고 있던 비행 몬스터가 기우뚱거렸다.
캬아아아!
비행 몬스터는 자신이 놓쳤을 거라 생각하며 두리번거리면서 잡았던 기사를 찾았다.
하지만 기사는 그곳에 없었다.
제법 멀리 있었다.
용병 계약을 하고 무조건 네라고 대답한 기사의 귀에 지시하는 말이 들렸다.
―저쪽으로 가세요.
소환된 하급 기사는 정신을 못 차리고 두리번거리다가 손가락으로 어딘가를 가리키고 있는 사람을 보고는 정신을 차렸다.
손가락 방향에는 이미 몇 명의 기사들이 더 있었다.
그곳에는 기다란 테이블이 있었고 각종 포션이 준비되어 있었다.
안내인인 듯한 사람이 말했다.
“포션 마시시고, 다시 참전할 준비되셨으면 저쪽으로 가세요.”
안내인이 가리킨 곳에는 몇 명의 기사들이 준비를 하고 있었다.
화아악!
기사들이 사라졌다.
위기에 빠지면 이렇게 소환되고 체력과 정신을 가다듬은 후 다시 투입이었다.
기사는 이러한 체계적인 전투에 자신감이 생겼다.
그리고 잠시 후 다시 서모너성 위로 투입되었다.
“캬아아아!”
“타앗!”
서모너성에서도 화려한 한 방을 준비하고 있었다.
“모두 외성에서 빠져서 내성으로 이동해요!”
서모너성의 병력들은 썰물처럼 빠져서 내성으로 이동했다.
그리고 병력들이 빠져나간 자리는 몬스터들이 꾸역꾸역 채우고 있었다.
“이거, 뒤로 빠지는 것도 자꾸 하다 보니 익숙해지는데?”
“익숙하긴 뭐가 익숙해요! 아주 아슬아슬하니 죽겠구만.”
몬스터들은 외성을 점령하고 기세가 올랐다.
몬스터들도 외성에서 내려와 다시 내성을 들이받았다.
“콰아아아!”
“콰우우우우!”
원거리 무기와 마법진들이 준비되어 있었다.
준비된 무기를 쏟아붓고 뒤로 빠지는 작업의 연속이었다.
내성에서의 공격이 이어졌다.
우리 쪽 S급들도 이제 마족을 상대하는 데 익숙해졌다.
그리고 숫자도 둘뿐이었다.
“그래, 막기만 해. 적을 죽이려고 하지 마.”
“타앗!”
“그렇지. 일단 적의 숫자부터 줄이고 시작하자고. 천천히 뒤로 빠지면서 몬스터 군단의 수를 줄이자고. 제대로 붙는 건 조금 나중에 하자고.”
“알았어요!”
근데 그것도 쉽지는 않았다.
쾅!
쾅!
슈슈슈슉!
내성을 보호하기 위해 설치된 고정식 마법진과 무기들이 있었다.
“완전히 돈 많은 집안 3세가 된 기분이에요.”
“왜?”
“그동안 병사의 전투는 검과 창을 휘두르고, 기사들은 마나를 두른 채 백병전을 하는 거라고 생각했어요. 이렇게 마법진과 마법 무구, 소모식 무기들을 마구 쓰는 전투는 생각하지 못했어요.”
“돈 많은 집안 3세는 아니더라도 돈 많은 영주님 밑에 있는 건 맞아.”
“하긴, 그래요. 그리고 그 고기들은 다 뭐예요?”
“아, 시간 끌기용이야.”
“시간이요?”
“지금 적들이 밀려오는 속도가 빨라. 그래서 그 속도를 줄일 필요가 있지. 몬스터들이 밀려오는 경로에 고기를 쌓아두고서 먹고 잠이나 자라는 것이지.”
“그렇군요.”
샤샤가 소리를 질렀다.
“내성에서도 빠집니다! 병사들은 벙커로 이동합니다!”
“이번에도 몬스터들이 벙커로 따라 들어올까?”
“쟤들도 따라 들어왔다가 한 방 먹었을 텐데… 안 따라오지 않을까?”
“안 따라오면 더 좋아.”
“왜?”
전투가 가열되어 대답을 듣기도 어려워졌다.
“병사들 먼저 빠지고, 팔라딘도 빠집니다. 다지기 작전 들어갑니다!”
화아악!
병사들이 사라지기 시작했다.
사라진 병력은 용병 계약을 통해 서모너성에서 카나가 있는 프란시아 왕성으로 이동했다.
병사들과 팔라딘 헌터들이 차례차례 용병 스킬을 타고 이동했다.
마지막은 기예라, 알타르, 스피오크가 남았다.
세 마법사가 마법진을 발동시켰다.
드드드드드.
성벽이 진동했다.
눈치 빠른 몬스터는 슬슬 거리를 두기 시작했다.
외성이 내성 방향으로 무너졌다.
내성도 무너졌다.
외성 방향이었다.
그래서 그 사이에 있던 몬스터들은 양쪽에서 몰아친 성벽의 바위들에 깔리게 되었다.
쿠에에엑!
하지만 바위에 깔려도 대형 몬스터들은 버틸 수 있었다.
대형 몬스터가 버티고 있으니 중소형 몬스터들도 대형 몬스터의 옆에서 몸을 피했다.
그 순간 마법진이 완전히 활성화되었다.
쿠쿠쿠쿠!
내성에서 외성 사이의 지면 한 지점이 위로 솟구쳤다가 아래로 떨어졌다.
어스퀘이크!
무려 8서클 마법이었다.
세 마법사가 며칠 전부터 합심해서 준비한 마법이었다.
어스퀘이크의 충격은 고리 모양인 내성과 외성의 경계를 따라 둥근 띠를 그리며 파동을 쳤다.
출렁출렁.
얇은 띠로 제한된 범위에서 파도가 퍼져나가는 것 같았다.
파도가 지나가면 그곳에 있던 몬스터와 성벽의 바위들이 공중으로 떠올랐다가 함께 바닥으로 처박혔다.
퍼어억!
성을 십여 바퀴나 돌고서야 고리 모양의 파동은 완전히 가라앉으며 성을 멈추었다.
어스퀘이크 마법은 지각을 찢고 그 위의 모든 건물을 붕괴시키는 마법이었다.
외성과 내성 사이의 통로에 집중된 마법은 그 사이에 있던 몬스터를 바위와 함께 꾹꾹 눌러 다졌다.
바위와 함께 십여 회 다져진 몬스터들은 형체를 찾아볼 수도 없었다.
다진 고기가 되어버렸다.
띠링!
―레벨이 올랐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마족을 잡지도 않은 것 같았지만 레벨이 올랐다.
―민준 님.
알파가 나를 불렀다.
보통 이렇게 알파가 나를 먼저 부를 때에는 뭔가 중요한 용건이었다.
“왜?”
―레벨이 올라서 카드 다섯 장을 뒤집으실 수 있습니다.
“아!”
드디어 카드 다섯 장을 모았다.
그렇다면 그 아이템을 사용할 수 있었다.
“그럼 마족의 눈을 사용할 수 있어?”
―그렇습니다.
마족을 처치하고 얻은 아이템.
마족의 눈이었다.
그냥 눈이 아니었다.
공간 이동의 능력이 담긴 눈알.
“카드 다섯 장을 소모해서 마족의 눈을 사용하겠어!”
―알겠습니다.
―재료 아이템 마족의 눈과 카드 다섯 장을 소모해 스킬을 제작합니다.
―제작이 완료되었습니다.
―화면이동 스킬이 등록되었습니다.
[스킬: 화면 이동]
―관찰하는 화면으로 소환술사가 직접 이동한다.
간단하지만 강력한 기능이었다.
이거면 제국 내에서 거리의 한계를 극복할 수 있었다.
“알파야, 샤샤를 보여줘.”
화면으로 샤샤가 보였다.
프란시아 왕성으로 이동해 현재 큰 접전은 없었다.
“샤샤 소환.”
화아악!
샤샤가 소환되었다.
“샤샤야, 내가 지구로 넘어가서 수송 차량을 주문하고 올게. 몬스터들에게 물량전이 뭔지 제대로 보여줘야겠어.”
금쪽같은 소환수들
— 거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