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금쪽같은 소환수들-222화 (221/230)

222화. 샤론

소환수들과 함께 샤론 마을로 향했다.

슈우우욱.

비행 차량을 타고 가며 창밖을 바라보았다.

“이쯤인 것 같은데…….”

“그렇게 좋으세요?”

샤샤의 물음에 나는 잠시 뜸을 들였다.

“좋다기보다는… 설렌다?”

“크크! 그 정도예요?”

“샤샤야, 늘 화면을 통해 바라보던 장소야. 요즘은 둘러볼 곳이 많아서 예전만큼 둘러보지는 못하지만… 한때는 샤론 마을 한 바퀴를 둘러보는 게 내 루틴이었다고.”

“알아요. 민준 님이 샤론 마을을 좋아하시니까 저도 기분이 좋아서요.”

“서모너성도 있고, 이제는 제국의 황궁도 차지했지만 그래도 샤론 마을처럼 애착이 가는 곳이 없지.”

슈우욱.

비슷비슷한 나무와 언덕을 지났지만 나는 알 수 있었다.

“다 왔다!”

창문에 얼굴을 가져다 대었다.

저기 아래, 샤론 마을을 둘러싼 성곽이 보였다.

“오, 감동이야.”

“크크!”

내가 온다는 소식을 들었는지 저 아래 주민들이 손을 흔들고 있었다.

슈우우욱.

비행 차량이 착지하고 문이 열렸다.

철컥.

“후읍~”

크게 샤론의 공기를 들이마셨다.

향기마저 상쾌한 것 같았다.

기분이 좋아서 그런지 더 상쾌했다.

그러고 보니 나 빼고는 이 좋은 곳을 다들 와봤다.

용병으로 계약하면 글리제나 지구로 이동시켜줄 수는 있었지만 나 스스로가 이동하지는 못했다.

글리제 출신인 소환수들은 말할 것도 없고, 동서 형님과 같은 길드원들도 이곳에서 몬스터 헌팅을 꽤 했다.

그리고 길드 헌터가 아닌 차지율 등의 헌터들도 이곳에 와봤다.

여동생 민아는 아예 이곳으로 유학을 보내서 마나 고리까지 하나 뚫어줬고, 심지어 일반인인 우리 부모님까지 샤론에 와보셨다.

내가 가장 마지막에 와보는 것이었다.

그렇게 크게 샤론의 공기를 들이마시는데 귀여운 아이 두 명이 반가운 인사말을 건넸다.

꼬마 마법사 길리언과 샤샤의 동생 올가였다.

“혼자옵서예.”

“크크크.”

처음 받아보는 대형 꽃목걸이였다.

인사말은 제주도 말이고, 대형 꽃목걸이는 왠지 우리나라 문화가 아닌 것 같았지만 어찌어찌 지구의 문화가 짬뽕으로 섞인 것 같았다.

그래도 뭐든 좋으면 좋았다.

“영주님,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어라?

길리언이 유창하게 한국말을 했다.

“와, 길리언… 너 지금 용병 상태도 아닌데 한국어 잘한다.”

길리언은 내 칭찬에 쑥스러운지 얼굴을 붉혔다.

“네. 열심히 했어요.”

랭귀지니어스라고 했던가?

영지의 한국어 교육을 담당하는 이라고 했는데 뿌듯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길리언의 옆에는 샤샤의 여동생이 있었다.

“올가야, 반가워.”

“네, 안녕하세요.”

샤론 마을의 촌장 출신으로, 이제는 서모너 영지를 아우르는 행정관이 된 다니엘이 안내를 맡았다.

“영주님! 영지를 둘러보시겠습니까?”

“그래요. 좋아요. 샤론 마을을 한 바퀴 둘러보고 싶어요.”

나와 소환수들의 걸음에 맞춰 영지민들이 줄을 이뤄 따라왔다.

아! 이 길!

“크크크.”

아직 나오지도 않았는데 웃음이 나왔다.

“민준 님, 왜요?”

“아, 샤샤야, 이쪽으로 가면 벽화 나오잖아. 그냥 웃겨서.”

여고생들은 떨어지는 낙엽에도 웃는다던가?

아니면 기분이 좋으면 별것 아닌 것으로도 웃는다던가?

내 상태가 그랬다.

쭉 걷다 보니 벽화가 나타났다.

산속 깊은 숲에 다리 다친 모습을 하고 있는 소녀의 모습으로 시작하는 벽화였다.

나는 벽화를 찬찬히 살펴보았다.

“이야, 그림에 질감이 살아 있네.”

“그렇죠?”

“샤샤도 저렇게 산속에 웅크리고 있을 때가 있었는데… 이제는 프란시아를 넘어 글리제에서도 유명한 인물이 되었어.”

“크크크. 곧 즉위식을 열고 황제 폐하가 되실 분이 하실 말씀은 아닌 것 같은데요?”

“그런가?”

한 걸음씩 걸을 때마다 달라지는 벽화의 그림을 보며 추억이 돋았다.

옷장 깊숙한 곳에 넣어두었던 옛날 사진들을 보는 느낌이었다.

벽화에는 제리와 처음 만나 싸우던 장면, 제리의 마을에 도착해 제리가 대전사가 되어 할머니를 기쁘게 해주는 장면도 나왔다.

“제리야.”

“왜 그러냥?”

“아니, 제리 할머니 뵌 지 오래되었잖아. 이따 한번 소환해드리자.”

슬쩍.

제리의 꼬리를 보았다.

제리는 겉으로는 좋다는 표현을 잘 안 하지만 꼬리에 다 티가 났다.

걸음을 옮기니 카나가 시험에 통과해 세 번째 소환수가 되는 그림이 나왔다.

안타깝게도 팔이 잘려 의수를 하게 되는 장면도 있었다.

물론 그림에서는 의수가 더 훌륭하고 강하게 그려졌지만 안타까운 마음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카나의 오른손에 눈길이 갔다.

마을 한 바퀴를 다 둘러보았다.

정말 쑥쓰러웠지만 나의 동상이 있는 곳도 가보았고, 잘 자라고 있는 마나초 밭에도 가보았다.

“꿍이야.”

쏘옥.

흙무더기 속에서 꿍이가 머리를 내밀었다.

행정관 다니엘이 꿍이를 칭찬했다.

“신수의 도움으로 마나초들이 완전히 자리를 잡았습니다. 마나초를 인위적으로 키우는 것은 불가능하다 여겼는데… 모두 신수의 덕분입니다.”

나는 강아지 머리를 쓰다듬듯 꿍이의 머리를 긁어주었다.

“에구에구. 잘 있었어?”

“꾸우.”

덩치가 커서 지구에 풀어놓기는 좀 그렇고, 마나초 밭을 키우는 데 도움이 될 것 같아서 이곳에서 키웠는데 이제는 꿍이를 이곳저곳 옮겨야 할 것 같았다.

“꿍이는 여러 곳을 옮겨 다녀야 할 것 같아요. 이제 제가 돌봐야 하는 지역이 늘어난 만큼, 곡물을 많이 생산하는 지역에 돌아가며 꿍이를 풀어주는 것이 좋을 것 같아요.”

일명 풍요와 대지의 신수를 활용한 신수 농업법이었다.

마을 교육관을 거쳐서 마을 공장을 둘러보았다.

알타르가 이곳의 공장장 역할을 하다가 이젠 꾸얀이 거의 넘겨받아서 하고 있었다.

지이이잉.

철컥.

지이이이.

철컥.

저게 뭐지?

내가 샤론 루틴을 안 한 지 조금 되긴 했지만 저런 기계를 이쪽으로 넘긴 기억이 없었다.

“저건 뭐죠?”

꾸얀이 나서서 자신 있게 장비에 대한 소개를 했다.

“지구의 한상일 가신과 함께 완성한 장비입니다.”

거대한 쇳덩어리로 만든 기계가 마치 도장을 찍듯 위아래로 움직이며, 위쪽 판이 올라갈 때마다 그 사이에 있던 몬스터 가죽 제품이 한쪽으로 옮겨지고 있었다.

“위쪽 판과 아래쪽 판에 마법진이 그려져 있습니다. 두 판 사이에 몬스터 가죽을 넣고 누르면서 마법진을 발동시켜 무두질을 하도록 하는 장치입니다.”

“아, 무두질이요.”

“예. 예전에 알타르 님께서는 모든 과정을 마법으로 하셨는데 한상일 가신과 마력을 아끼는 방법을 논의한 끝에 시간 가속은 마법을 사용할 수밖에 없지만 열과 압력을 가하는 건 꼭 마법이 아니어도 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면 어떤 장점이 있죠?”

“알타르 님께서는 4서클 마법진을 활용하셨습니다. 즉, 최소 3서클 마법사가 필요했습니다. 그러면 이 장비를 사용할 수 있는 인원이 몇 명 되지 않습니다. 하지만 이것은 3서클입니다. 이곳 공장 직원 대부분이 2서클이니, 대부분 사용 가능한 장비가 되었습니다.”

“와! 정말! 정말 멋지네요.”

나는 진심으로 감탄했다.

마법사들은 대부분 서클을 올리고, 높은 단계의 마법을 사용하려고 애쓴다.

하지만 지구의 직원과 협의하니 거꾸로 낮은 단계의 마법으로 바꾸었다.

대중화.

고위 마법사만이 사용할 수 있는 마법이 아니라 보다 많은 사람들이 사용할 수 있는 저서클 마법진으로 만드는 작업이었다.

꾸얀은 자신이 뭘 만들었는지 아마 모를 것이다.

저 기계가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 대중화라는 의미가 무엇인지를 말이다.

“대중화했으니 이제 여러 대를 만들면서 규격을 통일해야겠죠. 그리고 샤론 마을뿐만 아니라 서모너 영지 전체 그리고 제국에서도 이런 장비를 사용한다면 대중화, 규격화, 규모화를 완성하겠네요.”

꾸얀이 내 말의 의미를 못 따라오는 듯했다.

“아무튼 돈을 쓸어 담는 제품의 혁명이 일어난다는 말이에요.”

지이잉.

철컥.

그 와중에도 유압 프레스 같은 기계가 가죽 제품을 토해내고 있었다.

영주관까지 오니 공터에 마을 주민 대부분이 모여 있었다.

내가 온다고 해서 모두 모인 것 같았다.

마나를 짜서 목소리를 높였다.

“오늘은 제가 정말 즐겁습니다. 축제를 열겠습니다.”

나는 이틀 동안 샤론 마을에서 머물며 축제를 열어 주었다.

공장을 멈추고 먹고 마시게 하니 모두가 즐거워했다.

갑작스러운 휴일에 노동자들이 즐거워하는 것은 세계 공통, 아니 우주 공통이었다.

샤론의 방문을 마치고 서모너성에도 방문했다.

인구는 이곳이 샤론에 비할 바 안 되게 많았다.

“와아아!!!”

군중의 함성 규모가 달랐다.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서모너 김입니다.”

“와와와와!!”

이곳에서는 비행 차량을 지상용으로 바꾼 뒤 차량 위에서 카퍼레이드를 펼쳤다.

저들은 자신들의 영주를 직접 보는 것이 처음이었다.

지구의 문물이 스며들며 새로운 변화의 중심에 서는 영지의 주인이 누구인지 궁금했을 것이다.

그렇게 카퍼레이드를 펼치며 밤나무 마을, 파닐 마을, 에린 마을도 둘러보았다.

제리에게만 할머니의 휴가를 주기 미안해 샤샤와 카나에게도 휴가를 주었다.

서모너 영지에서 며칠간의 시간을 보낸 후 다시 제국의 황궁을 거쳐 지구로 넘어왔다.

“흠~”

텁텁한 도시의 향기가 느껴졌다.

샤샤와 카나를 소환했다.

“샤샤야, 역시 공기가 달라. 그렇지?”

“그렇죠. 그렇지만 저는 이곳의 향기도 좋은걸요.”

“그래?”

두 달 이상을 글리제에서 머물렀다.

이제 서모너 영지는 물론이거니와 제국도 어느 정도 안정이 되었으니, 지구와 글리제를 어떻게 효과적으로 이을 수 있을지 이야기를 나눠봐야 할 것 같았다.

그런데 저쪽에서 나를 향해 달려오는 무리가 있었다.

“와! 김민준 헌터다!”

“안녕하세요. BCD뉴스입니다.”

“헌터일보에서 나왔습니다. 글리제의 대형 국가를 점령하셨다면서요? 정말입니까?”

“헌터님! 마족을 모두 처단하는 쾌거를 이루셨다고 합니다. 더 이상의 마족은 없는 겁니까?”

기자들이 어떻게 알고서 몰려왔다.

“제가 나올 줄은 어떻게 아셨어요?”

“일주일 전부터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저는 2주 전부터 텐트를 치고 살고 있었습니다.”

저기 한쪽에 텐트 몇 개가 쳐져 있었다.

기자로서 살아가기도 쉽지 않아 보였다.

정성이 갸륵해 인터뷰를 해주었다.

“마족은 모두 처단하신 겁니까?”

“음, 일단 제가 알고 있는 마족은 모두 잡았습니다. 하지만 또 어디에 숨어 있을지는 모르죠. 발견하면 최선을 다해 싸우겠습니다.”

“글리제가 어디 있는 곳인가요?”

“우주 멀리 있는 다른 행성입니다.”

“그곳에서 국가를 점령하셨다고 들었습니다. 크기와 인구는 어느 정도 되나요? 그곳에도 인간과 비슷한 인류가 있나요? 몬스터는 없습니까? 자원은요?”

“일단 글리제의 대형 국가를 점령한 건 맞습니다. 하지만 영토가 넓어서 안정화하는 데는 시간이 조금 걸릴 것 같습니다. 크기는 러시아의 세 배…? 인구는 정확하지 않습니다. 자원은 아직 더 탐사해야 합니다. 몬스터는 많죠. 그리고 글리제의 인류라면 여기.”

나는 샤샤와 카나를 손으로 가리켰다.

“샤샤와 카나가 글리제인입니다. 인간과 비슷한가요?”

“네!”

“아니요! 더 예뻐요!”

기자들도 보는 눈이 있었다.

그렇게 인터뷰를 마치고, 오랜만에 집에도 가보고 부모님 댁에도 들렀다.

부모님 댁에 가는 길에 스마트폰으로 뉴스를 보니 내 기사가 벌써 올라와 있었다.

[자랑스러운 한국인, 신행성을 정복하다!]

[글리제인, 인간보다 예뻐.]

[결혼 정보 길드, 글리제 행성으로 향하다.]

결혼 정보 길드?

내가 영향력 있는 사람이 된 것 같긴 한데, 그 영향력이 꼭 내가 생각했던 대로 발휘되는 것은 아닌 것 같았다.

* * *

제리는 제국에 남아 있었다.

트란산맥에서 지내고 계신 할머니를 오랜만에 모셔서 함께 지내고 있었다.

오랜만에 본 할머니는 아직도 제리를 어린아이처럼 대해 주셨다.

제리는 종족에서는 대전사였으며 기사 등급으로 따져도 웬만한 왕국 기사단장 급인 익스퍼트 최상급 단계였다.

하지만 할머니에게는 어린아이일 뿐이었다.

“냥.”

할머니가 제리의 털을 고르고 있는데 제리가 흠칫 놀랬다.

“왜 그러니?”

“할머니, 못 느꼈어?”

“글쎄다… 나는 모르겠구나.”

나이가 있어서 그런지 감각기관이 많이 둔해지신 것 같았다.

“땅이 흔들렸어.”

“땅이?”

“응.”

제리는 불안한 눈빛으로 먼 곳을 바라보았다.

그 방향에는 제리의 고향인 트란산맥이 있었다.

금쪽같은 소환수들

— 거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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